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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정치 사회 현안

국정원이 왜 나와

2021년 7월 21일 by 이상한 모자

김경수 씨의 삽질은 당연히 비판 대상이고 책임져야 한다. 이건 사태 초기부터 말했다. 근데 드루킹들에게 돈 줄테니 불법선거운동해라, 이렇게 시킨 게 아니라는 점에서, 오히려 드루킹들이 두루미계획 망상하면서 돈을 갖다가 바쳤다는 점에 포인트를 둬야 한다.

드루킹과 같은 망상가들과 한 편이라고 보고 ‘열린인사추천’^^ 까지 해주는 그런 정치가 도대체 뭐냐… 결국 경제민주화든 두루미계획이든 스타일 비슷하고 정파적 효용만 있으면 다 우리편 시켜주는 기만적 정치 아니냐… 내 얘기가 이 얘기임.

윤석열은 여기에야 말로 ‘끼리끼리’를 들이 댔어야 한다. 근데 웬 국정원? 국가기관 그 중에서도 정보기관이 나서서 정권재창출한다고 염병한 거 하고 정치 낭인들하고 한편 먹는 게 같나?

윤석열이 이 차이를 모를까? 그럴리는 없겠지. 여기서 세 가지를 알 수 있다. 1) 불법인지 따지는 것엔 관심이 있지만 정보기관 고유의 문제엔 솔직히 관심이 없다 2) 전직 대통령 수사와 함께 보수정권에 반기를 든 사례 중 하나인 국정원 건과 드루킹 건을 병렬처리해 이짝이건 저짝이건 다 문제니까 내가 이러는 거지 보수에 칼 꽂은 게 아닙니다 이 얘기를 하고 싶다 3) 조선일보랑 유튜브를 개많이 봐왔다

윤석열 씨도 현직에 있을 때 고민을 많이 했겠지.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할까… 분명 서울중앙지검장 할 때까진 한 편이었는데…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는 이유가 있어야 될거 아니야? 그 이유가 조선일보랑 유튜브에 잘 나와있었던 거지. 주사파들이라서 그렇구나! 윤석열식 자유민주주의가 반공주의와 결합된 게 이 이유라고 본다. 120시간이나 봉쇄 그런 것도 윤석열이 시장주의자여서도 또 나름의 정치적 노림수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주구장창 보수언론이 계속 해온 얘기야 그게…

여튼 나는 이 염병 하지 말고 국힘에 빨리 입당하라고 윤석열 정치 참여 선언 이후 계속 모든 방송에서 반복해서 얘기했다. 차라리 입당을 해서 이준석이랑 편을 먹고 당내 기득권이랑 싸우는 모습을 연출했어야지. 국힘 변해야지 왜 안 변하냐 막 때렸어야지. 범 내려온다? 범은 거기서 내려왔어야지 엄한 데로 내려와서 자다가 깬 후 아무데나 으르렁 대다가 발에 막 채이고 깨갱하고… 뭐냐 이게?

이준석이 안 받아주는데 어떻게 한 편을 먹느냐, 손뼉도 두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거 아니냐 이거지? 정치라는 게 왼쪽 손이 도망을 다니면 오른쪽 손이 쫓아가 어떻게든 들이박고는 손뼉 소리가 났다고 우기는 것이요. 한심해도 어쩔 수 없어. 이준석이 거리두기를 하든 말든 당근이라고 하든 시금치라고 하든 같은 편이라고 하는 거야. 김재원 막 들이 받으면서 우리 이준석 대표님 엉엉엉 하는 거지.

그것도 못하면서, 내가 박근혜를 잡아 넣어서 죄송합니다 흑흑 이러고 다니면서, 무슨 정치를 한다고. 대구 한복판에서 탄핵은 정당했다고 하는 이준석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없나요?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김경수, 드루킹, 윤석열

120시간의 민란

2021년 7월 21일 by 이상한 모자

드라마 제목으로 좋을 것 같아. 민란을 일으키고 진압될 때까지 120시간에 대한 얘기인 거지. 에피소드 1개당 2시간 스토리로…

오늘 아침 방송에서 120 시간에 대해 한 얘기. 첫째, 이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로 120시간은 아니어도 윤석열 주장대로 할 수 있게 해줬다. 둘째, 윤석열이 얘기한 것은 정확히 크런치모드에 대한 얘긴데 이미 과로사 사례가 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거는 전형적인 IT 및 게임업계의 악습이고 이미 세계적 지탄의 대상이다. 이러고 게임을 잘 만드냐면, 그것도 아니고!

셋째, 윤석열 말대로 노사합의에 의하여 노동자가 일하고 싶은만큼 일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과로사 막을 수 없다. 나는 이게 핵심이라고 본다. 다른 출연자분들은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은 것 같지만. 가령 특수고용, 알아서 자기 단가를 깎고 제한된 시간 내에 한 탕이라도 더 뛰려고 한다. 주52시간제에 대한 보수언론의 전형적 반대 논리 중 하나는 잔업을 마음껏 할 수 없게 돼 실질적으로 임금이 깎인다는 거였다. 이 개념하고 싸우려면 노사합의는 무조건 사측 우위로만 된다라는 논리 이상의 주장을 해야 한다. 그래야 법으로 일정 시간 이상은 일을 그냥 하지 말게 정해야 한다는 개념이 가능한 거다. 120시간, 노동자가 원해도 안돼!

그리고 민란 얘기. 이것은 ‘봉쇄는 미친소리’와 세트이다. 봉쇄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재탕하는 것이란 점에서 아주 악랄하다. 그리고 본인 마음과 관계없이 결국 지역감정 얘기로 빠진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현명치 못하다.

꼭 지역감정이냐 이렇게 따지지 않다 하더라도, 1차원적 정치다. 충청도 가서는 내가 충청의 아들입니다 이러고 대구에 가서는 대구 사람들 짱입니다 이러고 광주에 가서는 여긴 왜 이렇게 발전이 안 될까요 하고… 윤석열 정권에선 충청 대구 인맥이 요직을 죄 차지할 것이며 광주는 난개발로 한 번 뒤집어 보겠다는?

윤석열이 국회 법사위 가서 막 얘기할 때, 사람들이 역시 정치적 감각 있다 이랬잖아? 난 그때도 얘기했다. 저게 준비된 자기 영역에 대해서는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준비돼있지 않은 전혀 다른 룰이 지배하는 공간인 정치로 가면 그대로 리스크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건 정치의 소양이 아니다… 선동가의 소양일 수는 있어. 이런 어법의 문제에서 정치적 소양이라는 거는 뭘 막 열심히 과격하게 얘기했지만 지나고 보면 거스름이 없는… 뭐 그런 거지. 미친소리 민란 120시간 이거는 아니지.

오늘 보니까 어떤 분은 이래서 윤석열을 탈진보가 어찌 지지하냐며 막 그러시는데, 이게 현실 정치지요. 내가 지난번에 민주당만 빼고 캠페인 할 때도 좀 웃기다고 생각했어. 그게 우리 정치를 이렇게 만들어 온 일반문법, 그러니까 기성 정치의 자기조직논리야. 친일만은 막자, 독재만은 막자, 군인만은 막자, 외환위기놈들만은 막자, 구태정치만은 막자, 이명박근혜만은 막자… 나라가 맨날 비상시야. 근데 다들 그래요. 원래 그런 거요. 자유민주주의 타령도 똑같은 것. 그러니까 너무 슬퍼 마시고.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윤석열, 주52시간제, 탄력근로제

지선생 글로 보는 교훈

2021년 7월 19일 by 이상한 모자

https://m.hani.co.kr/arti/opinion/column/1003999.html

모든 글은 자기 식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식으로 이해하는 거다, 나는.

가령 자본주의를 반대하면 공산주의가 되는 것인가? 중국의 사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본주의를 반대한 것의 실천적 결론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아닌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마치 더블민주당에 대한 반대가 현실에선 국힘이나 윤석열로 귀결되듯, 끝도 없이 반복돼온 반대의 정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혁명의 외피를 뒤집어 쓴 자본주의 내의 핑퐁게임으로 귀결되어 왔다. 진보는 많은 것들을 바꾸고 쟁취해왔지만 결국 살아남는 것은 언제나 자본주의였다.

현실 정치를 돌아봐도 그렇다. 미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심지어 이란도 그렇다. 일국의 정치 내에서는 각각의 정파가 서로를 반대하는 정치적 내전을 벌이지만, 그 결론은 언제나 글로벌 자본주의로의 편승이었다. 좌파를 반대하는 우파와 우파를 반대하는 좌파, 다들 마찬가지다. 양당을 반대하는 진보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교수인 나카노 고이치 씨는 일본 정치의 극우화 경향에 대해 진자운동의 축이동 이라는 틀을 갖다 댄다. 무슨 얘기냐면, 일본의 리버럴 정치가 진자를 왼쪽으로 아무리 밀어도, 한쪽으로 쏠렸던 진자가 진자운동의 원리에 의해 다시 돌아올 때는 진자의 축 자체가 우측으로 이동하고 있는 탓에 그 결과는 우측으로의 더 심화된 백래시가 된다는 것이다.

나카노 고이치 씨는 실천적 결론으로 제대로 된 리버럴 정당의 건설을 주장하지만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건 이미 다들 알고 있다. 그러나 진자운동의 축이동이라는 개념 자체는 쓸만한 데가 있다. 축은 좌에서 우로 움직이고 있다기 보다는,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글로벌 정치경제체제의 경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애초 자본주의는, 그걸 뭐라고 부르든, 그러니까 군주제라 부르든 봉건제라 부르든 뭐든 간에 전근대를 반대하는 것의 맥락으로서 발명되었다. 권력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는 것은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근대로의 이행으로서 긍정적으로 해석되었다. 이 덕에 지금도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는 많은 경우에 동일시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자본주의적 모순으로부터 경제적 자유를 제한할 필요를 부정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종종 정치적 자유의 제한으로 오도된다.

중국이 보여준 것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의 분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자본주의 권력은 과거와 같은 방식은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더 교묘하고 더 세련된 방식으로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미 그것은 현실이다.

현실 정치에서 권력을 쥐고 있지 않은 쪽이 오로지 반대만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흐름을 반대하는 좌파의 기획은 무엇인가? 이 가능성을 중국이 아이러닉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마디를 더 보태자면,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은 단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체제의 최대 수혜자들이 직접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를 실효적으로 만들 때에야 가능하다. 중국은 그게 오도된 프롤레타리아 독재, 즉 공산당 체제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없어서 이만…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공산주의, 반자본주의, 중국, 지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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