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위임정치에 대한 보고서
김여정이 왜 이러냐에 대해서 설왕설래가 많았는데,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보고서가 있어 읽어보았다. 비전문가로서 나 같은 사람이 혼자 해석한 내용(물론 한계가 있을 것)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보고서 전문 PDF는 아래 링크에 첨부돼있고, 여기서는 일부 내용만 발췌한다.
‘유일체계’ 혹은 ‘1인 독재 국가’라는 말이 시사하듯 지도자 1인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북한의 정책결정 시스템에서는 조직행태나 정부정치적 요인이 나타날 개연성이 매우 낮다고 일견 판단할 수 있으나, 관료주의적 성향이 강한 권위주의 체제일수록 이러한 경직성이 조직행태적 요소의 강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본 보고서는 판단함.
△정책노선이나 지향점의 차이를 전제하는 정부정치 요인과 △각 기관 고유의 논리와 사고방식, 표준운영절차(SOP)에 대한 경직성이 기관 간의 입장 차이로 나타나는 조직행태 요인을 구분할 필요가 있음.
조직정치적 요인은 정책방향이나 노선보다는 각 기관의 고유한 작동방식 이나 고정화된 패턴이 정책결정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음. 북측의 공식문헌이 ‘기관본위주의(우리의 조직이기주의와 유사한 쓰임새)’라는 말로 이러한 경향을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는 점은 그와 같은 현상이 예외적이지 않다는 방증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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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담화의) 대미 메시지와 대남 메시지 사이에는 문투나 사용하는 어휘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일관되게 드러나는 바, 대미 메시지가 북한의 전통적 외교 문장과 유사성이 있는 반면 대남 메시지의 경우 ‘나는…밉더라’ ‘미안한 말이지만’ 등 개인적 문장 특성이 강하게 드러남.
김여정 본인이 전통적 외교 문장 작성에 익숙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대미메시지의 경우 전문관료들의 조력 혹은 검토를 받은 흔적이 드러남. 반면 대남 메시지에서는 반면 대남 메시지에서는 이러한 제약 없이 그대로 발표된 것으로 보임. 이는 대남부문과 대미부문에서 김여정의 전문성 혹은 결정 권에 일정한 차이가 있음을 시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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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의 위임 권한은 △통전부를 중심으로 하는 대남부문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작동하고 있으나 △이 또한 결정적 국면에서는 김영철이라는 상징적 존재가 필요했으며 △대미부문의 경우 외무성 등 전문관료그룹의 조력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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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여정의 담화가 ‘다음번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총참모부 에게 넘겨주려고 한다’ ‘우리 군대 역시…그 무언가를 결심하고 단행할것이라고 믿는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음. 대남부문은 지시의 대상인 반면, 총참모부로 대표되는 북한군은 요청 혹은 기대의 대상이라는 뉘앙스가 강함.
같은 방식으로 비무장지대 진출과 전선 요새화 등의 군사행동 방안을 처음 언급한 6월 16일 자 총참모부 공개보도는 이들 ‘통일전선부와 대적관계부서로부터…행동방안을 연구할 데 대한 의견을 접수하였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 총참모부는 대남부서로부터 ‘지시’를 받는 수직적 관계하에 있는 것이 아니며, ‘의견’을 주고받는 수평적 관계임을 전제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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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의 위임정치 구조가 알려진 바와 같이 대남·대미 부문과 군사부문에 별도의 책임자가 존재하는 형식이라면, 군사행동 방안 관련 메시지의 위와 같은 특성은 이들 부문 사이의 격벽(Compartmentalization)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는 방증일 수 있음.
이러한 표현의 사용은 김여정이 ‘사실상의 후계자’이거나 ‘김정은 위원장의 대리인’ 위상을 갖고 있는 상황이라면 성립하기 어렵고, 오히려 군사부문이 대남·대미 부분에 대해 일정 수준 독립적 관할권을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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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해 이러한 절차 강조는 우선 지휘체계로 상징되는 표준운영절차(SOP)를 지키기 위한 군사부문의 조직행태적 특성을 반영 혹은 고려한 것이며, 최근의 위임 정치 구조가 이러한 격벽 현상을 활용, 강화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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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의 부문 간 격벽 가설을 적용할 경우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함. 당시 언급된 대응행동계획이 대부분 군사부문에 속하거나 인민군의 조력이 필요한 것이었던 반면, 통전부 관할이었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는 대남부문의 독자적 판단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최대치였으리라는 추론임.
특히 폭파 당일은 앞서 설명한 대로 총참 모부가 공개보도라는 형식을 통해 ‘대남 부문의 의견을 접수’했고, ‘당중앙군사위의 승인’을 절차상의 조건으로 밝힌 날이었음. 즉 당시의 폭파는 부문 간 격벽 현상으로 인해 김여정과 대남부문이 독자적으로 취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조치를 단행한 것이었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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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공세와 관련해 유력하게 제기됐던 설명 중 하나는 김여정의 2인자 위상을 공식화 하려는 국내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관측이었음. 전체 공세기간에 걸쳐 진행된 대중집회와 릴레이 기고는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나, 군사행동계획 보류 결정이 공개된 6월 24일 이후 상황은 이와 상충함.
6월 24일 북한의 온라인 대외선전매체들은 전일 게재했던 대남 비난과 전단살포 캠페인 독려 기사를 일제히 삭제했음. 당중앙군사위 예비회의 개최와 군사행동계획 보류 결정만을 건조하게 보도한 노동신문 역시 당일자 인터넷판의 3면 기사 전체가 사라졌음. 노동신문의 특정지면이 완전히 삭제되는 경우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건임.
전날까지 북측이 관영언론을 통해 진행했던 대규모 대남전단 살포 준비나 ‘전연 지대로 달려가 응징에 동참하자’던 대중집회 메시지는 이후 전혀 언급되지 않았음. 북측이 김여정이 대남공세의 주도인물임을 주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했음을 감안하면, 갑작스러운 중단으로 그의 정치적 위상은 반대로 타격을 입었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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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대남공세의 주된 목표가 주민들에게 김여정의 정치적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결과만 놓고 볼 때, 이러한 목표는 달성됐다고 보기 어려움. 6월 하순 이후 북측의 주요 정치이벤트 관련 보도에서 김여정의 노출 빈도나 수위가 낮아졌으며, 수해 복구 등을 위한 8월의 주요 노동당 회의에 김여정이 연속적으로 불참했다는 사실 역시 눈에 띄는 대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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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본 것처럼 대남·대미 부문과 군사 부문 사이에는 상당한 수준의 격벽이 존재 하며, 이를 넘나들 수 있는 것은 최고지도자 1인뿐이라는 원칙이 정립돼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음.
특히 이 사안에서 드러난 쟁점은 ‘군부= 강경파’라는 전통적 프레임과 다르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음. 이는 정책노선 이나 방향에 대한 이견이라기보다는 지휘 체계 혹은 고유영역의 보장이라는 관료주의적 특성에 가깝기 때문임. 달리 말해 북한의 조직·기관에게 이러한 관료적 이해가 ‘대화냐 대립이냐’ 같은 거대담론 못지않게 중요한 변수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의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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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수뇌부의 잦은 교체를 통해 군부를 성공적으로 장악했 다고 평가 받아 왔음. 특히 리병철 당 군수공업부장을 통상 현직 지휘관 몫이었던 당중 앙군사위 부위원장과 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임명하면서 ‘군에 대한 당의 우위’라는 원칙은 정점을 찍은 바 있음.
이에 따라 선대 시기와 달리 현재의 북한 군부에는 높은 수준의 발언권을 지닌 상징적 인물이 따로 존재하지 않음. 이렇게 보면 앞서 전제한 군사부문의 재량권 역시 특정 인물이나 파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문직역으로서의 인민군’이라는 집체적 특성 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며, 따라서 앞으로도 쉽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사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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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협상국면 진입 이후, 북한은 대외정책 운용에서 김정은-김여정 백두혈통의 활동공간과 가시성을 극대화하는 추세를 보여왔음. ‘외교의 개인화’로 요약할 수 있는 이러한 흐름은 협상상대인 트럼프 대통령의 특수성 등을 감안하면 합리적 선택이었을 수 있으나, 그 부작용 역시 무시할 수 없어 보임.
특히 경제·군사분야와 달리 비전문가인 김여정 제1부부장이 6월 당시 절대적 결정권을 행사한 대남부문의 경우 개인적 한계가 한층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봐야 할 것임. 그러한 한계가 대미부문 등으로 번져 전략적 이익을 훼손하는 상황을 방지 하기 위해 △최종결정권의 김정은 유보, △전문관료그룹의 메시지 관리, △부문 간 관할범위 분리와 관료적 절차 강조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며, 지금의 부문별 역할분담 구조가 갖고 있는 주요 특성은 이러한 고려가 반영된 결과물로 보임.
‘개인화된 외교’는 탄력적 정책결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거꾸로 김정은 위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 개인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부과함. 하노이 회담의 실패 이후 김 위원장이 감당해야 했던 선전선동 메시지 재구성의 어려움이 그 한 사례였다면, 6월 대남공세의 마무리 과정에서 드러난 한계는 김여정 제1부부장 역시 같은 함정을 피하기 어려움을 시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