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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작품 감상

최근 OTT로 본 것들

2024년 2월 16일 by 이상한 모자

밥 먹으면서 틀어 놓게 되는데…

가마쿠라도노의 13인은 과연 명작이었다. 박물관에 모셔야 한다. 역사적 사실과 맥락을 완전히 허물지는 않으면서, 그 안에서 최대한 흥미로운 얘기를 만들어 내고, 그러면서도 최신(?) 학설이나 소수설 등을 나름대로 반영하려는, 괜찮은 사극이다. 마지막 장면엔 나름대로 메시지가 있는데, 기성 세대가 나름대로 명분을 갖고 그럴만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건 알겠으나, 이제는 새로운 세대한테 맡기는 게 필요하고 그걸 필요하다면 극단적 방식으로라도(기성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해야 한다는 뭐 그런… 여기서 ‘기성세대가 명분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전후세대와 역사적 백래쉬를 대입하면 느낌이 좀 올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

이걸 보고 나서 내친김에 어떡할래 이에야스로 달려볼까 했는데, 1화를 보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꺼버렸다. 처음부터 MSG가 좀 과하다 싶은…

그 다음에 마찬가지로 오구리 슌이 나온 넷플릭스의 일본침몰을 봤는데, 이건 좀 그저 그랬다. 처음엔 약간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으나 뒤로 가면서 너무 교훈 위주로 가는 거 아닌가 했다. 물론 그런 교훈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서사가 현대화되면서 지구온난화 등이 부각되면서 더 그렇게 된 거 같은데 좀 아쉬웠다.

그 다음에 신문기자로 옮겨 갔는데, 보는 게 좀 힘들어서 일단은 멈췄다. 이건 아무래도 실화 기반인데다 아베 신조가 그렇게 된 상태인데 아키에를 떠올려야 하니… 최종적으로 그냥 묻히고 만 사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갈등이 되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신문에 많이 등장한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을 보게 되었는데… 가령 이런 글.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27290.html

내용이나 위아더월드 녹음 현장 영상 자체는 기존에도 알려진 내용이지만, 저렇게 묶어서 다큐멘터리로 보니 새롭고 뭉클한 감동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밥 딜런인데, 사회부적응자처럼 심통난 표정으로 서있는 게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자기가 대단한 인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실제 나 자신이 스스로를 볼 때는 그렇지 않고 초라한 사람인데, 그런데도 여기 있으려니 쫄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런 기분 아니었을까 하는데… 다큐멘터리에선 스티비 원더의 어드바이스를 받고 한 두 번 만에 솔로파트 녹음을 마친 걸로 나오지만, 인터넷에 공개돼있는 영상을 보면 상당히 여러번 시도한 걸로 돼있다. 역시 밥 딜런… 유튜브 영상 댓글이 재밌다. 밥 딜런이 머릿 속으로는 “why am i the world? why am i the children?” 하는 것 같다는…

그리고 인상적인 건 역시 신디 로퍼 여사인데, 익히 알려진 내면의 돌아이가 주체가 안 되는 그 상태이면서도 귀염미가 넘친다. 저는 그 자칭 락커라 신디 로퍼 하면 구니스? 그러면서 좀 피식 웃고 그랬는데, 이거 보고 다시 찾아서 노래를 듣고 하니까 느낌이 다르더라. 늙어서 그런가? 아무튼 신디 로퍼 여사를 존경하게 되었다. 근데 그래도 노래는 취향에 맞지 않는데, 그 와중에 딱 꽂히는 노래가 있다고 하면 역시 이거다.

https://youtu.be/LGV1xTgJf0Q?si=9ctXUuVPeoqMTNFA

Change of Heart인데, 향수를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 이런 게 여사님이 일본에서도 먹히는 비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영상의 여사님은 이 때도 50이 넘은 나이신데, 그래서 전성기의 미친 사람같은 그루브는 아닌데, 그래도 그 나이의 제스처는 확실히 아니다.

일본 사극으로 시작해서 신디 로퍼로 끝났는데, 일본적이네. 더 쓸게 없는 건 아니지만 밥 먹고 일하러 갈 준비해야 돼서 이만…

Posted in: 작품 감상, 잡감 Tagged: Change of heart, 가마쿠라도노의 13인, 밥 딜런, 신디 로퍼, 신문기자, 일본침몰,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발더스 게이트 3로 코로나19와 AI를 연상한 글

2023년 12월 10일 by 이상한 모자

올해의 게임으로 뭘 꼽겠느냐 하시기에 팬텀 리버티 확장팩도 쳐주나요 했는데, 그럼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흠… 그런데 아무래도 발더스 게이트 3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나.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6754a89d-ed04-47aa-a31e-ac353b3b7a03

무릇 비평이라는 것은, 이게 얼마나 좋은 건지를 나열하기 보다는 작품을 통해 현실을 짚고 그 행위를 통해 다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역시 AI의 시대이기 때문에, 사이버펑크2077에 대해서도 언젠가 쓸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쪽은 ‘제거적 유물론’이 승리한 세상을 그리고 있다. 샘 올트먼이 쫓겨나는 과정을 굳이 일반인공지능을 둘러싼 갈등으로 보는 언론의 시각은 이미 완벽하게 제거론이 승리한 세상이다. 사이버펑크2077은 그 세상에서 우리가 우려하는 바가 어떻게 현실이 될 수 있는지, 어떤 시나리오가 가능한지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소재랄까?

어제는 모 라디오 프로그램의 송년회라는 자리가 있었는데, 잠시 게임에 대한 대화를 했다. 어릴 때부터 게임패드 조작이 매우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성별 편향과 그게 게임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잠시 얘기했는데, 뭐 그것은 나중에…

Posted in: 작품 감상, 잡감 Tagged: 게임, 발더스 게이트3, 사이버펑크2077

일본 할아버지 만화영화 보고 한 생각

2023년 11월 12일 by 이상한 모자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일본 할배의 만화영화를 보러 갔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풍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 않아 굳이 볼 생각은 없었지만, 다들 대실망이라고 하기에 급 흥미가 생긴 것이었다.

2차 대전과 그 후의 그 시절은, 그러니까 그런 거다. 죽음과 맞닿은 전쟁을 하던 그 논리로 재건과 생산으로의 동원을 정당화했다. 전투기 엔진 만들던 설비를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데 투입했다. TV, 전기밥솥, 세탁기가 현대적 ‘3종의 신기’로 등장했다. 전쟁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아이러니다. 죽음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삶이다. 1941년생인 일본 할배의 성장기는 그런 때였다.

전쟁과 불길로 소멸한 엄마를 찾고 싶은 본의와 순산이라는 현실의 생산을 맡아야 할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탑으로 돌입하는 주인공은 마치 이상과 생계를 저울질하며 대중예술에 투신하는 할배의 초심을 말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창작이라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거나 혹은 감수하는 세계이고, 동시에 죽은 세계이면서, 죽은 것에 삶을 불어 넣는 세계이다. 창작물은 녹아내린 가짜 엄마나 깨져버린 장미처럼 살아있지 않다.

거기에 삶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것은 아직은 늙지 않은 할머니처럼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으면서도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펠리컨들의 침공은 곧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님을 깨닫게 되는 사건이다. 젊은 상태의 엄마가 팰리컨을 불태우는 과정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의 씨앗들도 어쩔 수 없이 불태워지는데 이건 전쟁의 논리다. 더군다나 펠리칸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도 좋아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이상이랄까 그런 것을 찾아 달려온 것이지만 그 안에도 죽음으로 삶을 혹은 삶으로 죽음을 정당화 하는 논리 즉 현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탑 안에서 꿈과 환상의 모험을 쫓은 끝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에 도달하지만 거기서 발견하는 것은 주인공에게 네가 싫다고 말하는 그의 본심이다. 세속적으로 말하면 전처의 자식이다. 좋을리가 있겠나? 그런데 거기서 주인공이 또 깨닫게 되는 것은 삶과 죽음의 동질성, 즉 이상과 현실의 어떤 융합이다. 그 둘은 자매이면서, 같은 자식의 어머니가 될 운명을 지고 있다. 애초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은 현실의 인물이면서 왜 탑에 이끌렸는가? 경위야 어찌됐든 그도 나름의 이상이랄까 명분을 품은 것이다. 주인공을 어른스럽게 대하지 않고 싫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속내이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이들 자매는 같다고 해도 좋다.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한쪽하고는 거리를 두면서 다른 한쪽을 그리워하며 울며불며 쫓을 필요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을 더 이상 그렇게 부르지 않고 “나츠코 엄마”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모험의 클라이막스는 업계의 정점에 달한 일본 할배 그 자신을 마주하는 씬일텐데, 만들어 놓고 보니 자기 혼자 외골수로 도를 추구한다고 뭐가 되는 세상은 아니다. 그렇게 뭘 해봐야 세계는 고작 하루 정도 연장될 뿐이며, 그렇게 만든 세계마저도 야심가가 이끄는 군국주의 잉꼬 집단에 의해 침식되고 있다. 이 야심가는 나름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이 빤하고 속물적이다. 믿을만한 후계자를 세워 세계를 유지해볼까도 하지만 사실은 의미가 없는 몸짓이다. 자기가 만든 세계 안에서도 전쟁과 죽음, 삶과 생산과 이 사이를 잇는 기만은 계속된다(여기까지 왔으면, 어느새 그것이 자연이며, 생명이다!). 애초에 세계를 유지하는 동력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그게 대중이든 자본이든 뭐든)에서 왔다.

그러한 끝에, 군국주의 잉꼬가 고귀한 이상 혹은 심혈을 기울인 유산을 끝내 망쳐버린다면? 그래도 친구를 남겼으면 된 게 아닌가? 애초에 이렇게 되기 훨씬 전의 어떤 시점에 뭔가를 이루는 게 아니라 친구를 택해야 됐던 게 아니었을까? 여기까지 왔는데도 남긴 게 없다고 하면, 그래도 ‘나츠코 엄마’를 현실에 돌려주는 일은 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뭐 그런 거다.

이게 뭐랄까, 전쟁의 가해자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온전한 피해자일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공범의식을 가질 수도 없는 그 세대 일본인들의 은퇴 심경 같은 거라고 하면 어떨까? 아무튼 어떤 공감이 될만한 얘기라고 생각했으니까 만든 거 아니겠나.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70대 노년층이 보면 만족할만한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그런 얘기.

Posted in: 작품 감상, 잡감 Tagged: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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