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정치권 논쟁이라는 형태로까지 온 게 한심스러워서 정리함.
1) 애초 PD라는 분의 문제제기 취지
“호평 받는 유튜브 클립 하나 봤는데 여성 아이돌과 피디가 사이좋게 노노 주고받고 있어 무척무척 속상했음”
“어제 태어나 사투리 모르냐는 말 들은 중년의 경상도 네이티브 심정… 여러분이 그 혐오표현을 내고장 사투리로 알고 계신 게 절 슬프게 하는 거에요.
“아이고 마 대다
그냥 경상도 말에서 노를 다 들어내뿌자
그게 우리가 이 사회에 빚을 갚는 길이라면”“안녕하세요. 대화를 시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경상어 화자와 연구자들이 어법에 맞지 않는 사용이라 수없이 지적해왔음에도 경상도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비문의 노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룰루룰루님을 포함한 그분들이 다 일베식 사고를 하여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생각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더 위기감을 느낍니다. 혐오표현이 놀이가 되다 못해 보통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원형을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익숙하게 쓰던 말이 혐오표현이라니 당황하신 것 이해합니다. 그런 세상을 방치한 기성세대의 잘못이 큽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일베식 노 사용자를 일베라 단정짓거나 사투리 사용을 검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혐오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이 노를 남발할 때는 그저 화가 났지요. 하지만 이제 평범한 사람, 해맑은 청소년들, 멋지고 호감 가는 사람들마저 의심 없이 어법에 맞지 않는 노를 사용하기에 한없이 슬퍼집니다. 저 역시 경상도 방언 사용자이자 고향의 언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혐오의 침략을 어쩌면 좋을지 참담한 심정입니다.
언어는 살아 움직이기에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태도입니다. 그것이 사투리가 아닌 혐오표현에 뿌리를 둔 표현임을 알았을 때 사용을 멈추느냐 아니면 익숙하기에 계속 사용하느냐는 스스로 선택한 태도의 영역입니다. 부디 룰루룰루님께서도 일상화 된 일베식 노 사용에 대해 경상어 화자로서 한번 더 고민해주시길 바랍니다. 누군가를 모욕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을 내고장 말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일베의 ‘노’ 어미 활용이 정상적 사투리 이용 방식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어 문제라는 취지
직접 한 적 없는 주장:
– ‘노’가 어미인 경상도 사투리 용법은 다 일베다
– 특정 아이돌 가수가 일베다
따라서 직접 한 적 없는 주장을 상정한 반론은 잡음에 불과함. 가령…
– 이준석: 경남 거제 출신의 스물두 살 아이돌이 고향 말로 ‘무섭노’라고 했다는 이유로 일베 낙인이 찍혔다
– 진중권: 아직 어린 아이돌 스타 하나 잡아 5·18 제단에 바쳐야 만족들 하시려나
– 나경원: 사상과 사투리까지 재단, 스타벅스도 못가고, 사투리도 마음대로 못쓰는 검열사회, 남조선이 돼가노. 무섭노. \<- 심지어 이건 일반 사투리가 아닌, 정확히 일베식 용법에 해당
이들을 오스트리아 언어학자 루트 보다크의 신극우 전략에 넣어보면 좀 더 문제가 선명해짐. 지난 번 신진욱 교수 글 또 인용함. 또진욱…
오스트리아 언어학자 루트 보다크(Ruth Wodak)에 따르면, 신극우 전략은 ‘도발-부인-피해자화-전치-주류화’의 패턴을 보인다. 계산된 모호성으로 도발적 메시지를 던지고, 비난에 처하면 의도성을 부인한다. 제재가 가해지면 ‘전체주의’, ‘파시즘’을 비난하며 자신을 억압받는 피해자로 만들고, 쟁점을 ‘표현의 자유’로 전치하여, 자신들의 도발을 사회가 관용하게 만든다.
이 틀로 보면 신극우 전략에서 이준석과 진중권은 피해자화, 나경원은 피해자화-전치의 단계를 정확하게 수행하고 있는 셈.
2) 애초에 ‘무섭노’는 일반적 용법인가?
이건 이렇게 이러쿵 저러쿵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경상도 출신이 아닌 내가 판단할 수 없음. 다만 기준이 있다는 것은 그간 지적되어 온 바임.
(1) 국립국어원의 답변으로 유추할 수 있는 바
안녕하십니까?
알고 계신 것처럼 현재 ‘-노’는 경상 방언에서 의문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로 쓰이고 있으며, 과거부터 쓰여 왔던 어미입니다. 아래에 해당 쓰임을 첨부해 드리니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안녕하십니까?
‘-노’는 의문사가 있는 의문문에 쓰이므로, ‘니 귀엽노’와 같은 쓰임은 어색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노’는 기본적으로는 의문형 종결 어미라고 볼 수 있을 것임.
(2) 감탄형 등 다른 용법도 있다는 주장에 대해
여기서 반론으로 등장하는 게 안태형 동아대 국어문화원 교수의 다음과 같은 견해임. 언론에 공통된 인용된 발언은 다음과 같다.
“동남방언에서는 ‘-노’가 의문형의 형태를 가지고는 있지만, 혼잣말이라든지 한탄·독백에서 감탄형으로도 쓰인다.”
그런데 이 직후에 이런 사례를 든다.
“경남 방언으로 말하면 ‘와 이렇게 졸리노’ 같은 경우에는 ‘왜 이렇게 졸리지’라는 표준어로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감탄의 형태일 경우에도 ‘-노’가 쓰인다.”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는 게, “왜 이렇게 졸리지?”는 의문형으로도 볼 수 있는 사례임. 그래서 ‘의문형이 아닌 감탄형으로도 쓴다’는 사례라면 맞지 않다.
문제의 영상을 보면 여성 아이돌 가수 등의 “무섭노”는 “무섭네…” 또는 “무서워…”에 가깝다. “(왜 이렇게) 무섭지?”로 볼 수는 없을 듯 하다. 따라서 안 교수의 사례로 설명할 수 있는 용법은 아님.
이외 언론 보도를 보면 의문형 종결 어미가 아닌 사례라면서 ‘~노’를 쓰는 사례들이 등장. 다만 ‘와 이리 재밌노’와 같이 여전히 의문형으로 쓰는 경우인데 반례로 드는 경우가 있어 이건 빼야 한다. 일부 논문이 인용된 사례도 있다. 여기엔 확실히 감탄형 어미로서 ‘~노’의 활용이 나옴.
3) ‘무섭노’가 일반적 용례가 아니라면, 모두 일베적 용법인가?
이건 확언할 수 없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 논리적으로만 보면
- 일반적 용례가 아닌 용법이 자연스러운 변화에 의한 것인지 일베적 문화의 영향인지 알 수 없으며 (이건 학문적으로 연구해볼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여성 아이돌 가수가 자연스러운 변화의 영향을 받았는지, 일베의 영향을 받았는지, 일베의 영향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로 일베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알 수 없음. (이건 학문적 연구 대상 조차 아니다)
4) 이 얘기를 왜 해야 하나?
사회적으로 논할만한 유의미한 핵심은 ‘일베적 표현 방식이 일상어의 표현을 침습하고 있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이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있음. 애초의 문제제기도 논란이 있을법한 방식이긴 했으나(개인이 남긴 몇 줄의 글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소모적 방식으로 논쟁하는 일을 다들 10년 넘게 하고 있긴 한데, 솔직히 피곤한 건 사실임) 이를 주장하고 있음.
나머지 쟁점은 잡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사안에서 발견되는 극우포퓰리즘의 시도에 대해선 따로 생각을 남겨놔야 할 듯 함.
1) 개인화
앞서 봤듯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사고하고 대안도 사회적 차원에서 논해야 하는데, 모든 얘기를 개인의 문제로 끌고 가려고 함. 그런데 여기서 잘 봐야 함. 사회적 차원의 문제제기를 하려는 사람이 누구고, 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치환한 후 자기 얘기를 하려는 사람이 누군지. 내가 볼 때 최근 극우포퓰리즘의 전략 중 하나가 문제를 끊임없이 개인화 하는 것임. 왜? 문제를 개인화 해야 피해자화 하기 용이하고, 그렇게 해야 극우포퓰리즘의 동원 전략 논리로 쉽게 끌고갈 수 있음.
2) ‘낙인찍었다’는 낙인찍기
앞서 보다크의 이론에 빗대어 설명하면 피해자화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성 아이돌 가수를 일베로 낙인찍고자 하는 여론 흐름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도(이를 시도하는 개인 혹은 팬덤이 있었을 수는 있다) 특정 정치 세력 혹은 이의 지지자들이 그러한 ‘낙인찍기’의 시도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표현하자면 ‘낙인찍었다는 낙인찍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보다 일반적인 사안으로 확대해보자면 ‘딱지를 붙였다는 딱지 붙이기’도 있다. 사람들은 실제 낙인을 찍거나 딱지를 붙이는 광경을 직접 보고 반감을 갖게 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낙인을 찍고 딱지를 붙였다”는 고발과 회고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특정 세력에 대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
3) 피장파장-내로남불 구도를 통한 이미지 세탁
전통적인 전략의 확장판인데,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이 사안을 메갈-손가락 찾기를 통한 페미사냥과 연결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앞서 중궈니횽도 그런 거 같고…. 그런데 그게 같냐? 집게손 찾기랑 지금 이 ‘~노’에 대한 얘기가 같아? ‘~노’를 쓰는 사람을 다 색출해서 그 사람이 다니는 직장에 개지랄을 해가지고 짤리게 만들고 불매운동을 하고 사이버테러와 불링을 하고, 그런 거냐 지금? 이 새끼들이 장난치나…. 이러한 시도를 통해 거둬들이는 효과는 1) 일베나 일베타령 하는 놈들이나 똑같다는 식의 피장파장 프레임 2) 일베타령 하는 놈들이 사실은 일베랑 똑같더라는 내로남불 프레임 3) 집게손 찾기 하는 애들이 차라리 낫더라는 식의 이미지 세탁(곧 나올 듯)… 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까지 썼는데 이 사례에 딱 알맞는 티비조선의 보도. \<“무섭노” 저격한 MBC PD…과거 본인 연출작 ‘노’ 자막 속출에 역풍\>… 내용을 보면 이 PD가 과거 연출에 관여한 프로그램에 “뭐라하노?”, “들을 여가가 어딨노” 등의 발언과 자막이 나온다는 내용이다. 앞에서부터 본 분들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사람 등신 만드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도 목적도 없는 보도이며(나왔다는 자막이 다 의문형 종결 어미로서의 ‘~노’이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프레임에 일조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딴 얘기를 뭐라도 찾아낸 듯 쓴 기자와 이걸 보면서 PD를 비웃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나라 이 사회에 뭔 희망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뭐 더 있겠지만 일단 시간도 없고 하니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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