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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격렬한 시위와 격렬한 대응, 격렬한 체포로 화제가 되었던 프랑스 최초고용법(CPE) 저지 투쟁이 4월 10일 프랑스 정부의 CPE 법안 철회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진보진영 내에서도 우리가 여기에서 뭘 배우니 마니 여러 가지 의견들이 제출되고 있다. 

이 토론문의 목적은 투쟁을 신앙으로 만들어 찬양하기 위함도 아니고, 투쟁을 일방적으로 폄하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이 토론문은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고 프랑스의 저 전설적인 투쟁에서 과연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1. 프랑스 CPE 저지 투쟁의 전개 

유럽연합 헌법이 국민투표에 의해 부결된 이후, 프랑스 우파 정권은 ‘민중의 고통이 고용에서 나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며 새로운 형태의 고용 관련 법안을 제출했다. 그것은 ‘신고용계약’, 줄여서 ‘CNE’라고 부르는 것으로 2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하여 한국의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고용 방식을 사용자가 제멋대로 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명백한 신자유주의적 ‘개혁’(?) 조치였으나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는 ‘덴마크 모델’을 들먹거리며 ‘이게 사용자가 잘 자를 수 있도록 한 것 같아도 해고자에 대한 보상과 재취업 교육을 잘 해주면 되는 것 아녀?’ 라는 말로 국민적 사기를 쳤다. 

이 사기가 먹혔는지, 아니면 그때가 8월이라 다들 바캉스를 떠나고 없었는지, 일부 품격 있는 레지스탕스들이 CNE 반대 투쟁을 조직했으나 CPE 반대 투쟁만큼 잘 되지는 않았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 11월 소위 방리유 사태가 터졌고 그동안 우파정권의 이런 저런 조치에 왠지 불만이 많았던 사람들은 거리를 때려 부수고 자동차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내무장관 사르코지는 강경진압, 강경진압을 외쳤고 이 사태는 뭐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해 1월, 드 빌팽 총리가 20인 이하 사업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CNE의 골간 내용을 20인 이상 사업장을 포함한, 대신에 26세 이하 노동자들에게만 적용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최초고용법(CPE)를 발의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 프랑스의 학생과 노동자들은 2월과 3월에 각각 40만명, 100만명 규모의 CPE 반대 시위를 열었다. 드 빌팽 총리는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이걸 잘 밀어 붙여 대선도 나가야 되고 해서 “정책 변화는 없을 것”이라 발언했다. 거기에 일종의 특별조치를 통해 CPE를 최종 시행하도록 밀어붙이는 방법을 썼고 이 때문에 CPE 반대 세력들은 더욱 더 많이 화가 났다. 

학생들은 학교를 점거하고 고등학생들도 시위에 끼어들었으며 3월 중순에는 분위기 파악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던 프랑스 사회당도 CPE를 헌법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나름 액션을 취하기 시작했지만 보기엔 별로 좋지 않았다. 

그 이후 드 빌팽 총리는 ‘법안을 수정할 수도 있는데..’ 라며 양보 의사도 내비춰 봤는데 반대 세력들은 거의 전설적인 수준으로 난리를 쳐댔고 4월 5일에는 득의양양해서 이제 막 정부를 대상으로 최후통첩까지 해버렸다. 결국 정부는 두 손을 들었고 CPE법안은 철회되었으며 드 빌팽 총리는 속된 말로 새가 되었다. 

2. 프랑스와 한국의 투쟁 양상 

CPE 반대세력이 진행한 투쟁에 대해 68의 재현이라는 둥의 해석이 많다. 확실히 이번 CPE 반대 투쟁은 10년에나 한 번씩 돌아올까 말까한 ‘노학연대’ 투쟁을 다시 한 번 스펙타클하게 보여주었고 그 투쟁의 강도에 있어서는 지하철, 기차 등의 선로에 눕거나 (만에 하나 뭐가 잘못되어서 그 위를 기차가 휭 지나간다고 생각해보라!) 도로를 봉쇄 해버리는 등 정말로 1968년을 떠올리게 할 만큼 격렬했다. 

투쟁에 참가한 각 조직들에는 전국대학생연합, 전국고등학생연합, 청년급진좌파, 쉬드노조 학생위원회, 노동총동맹 청년조직, 독립민주고등학생연합, 청년사회주의운동, 청년혁명적공산주의, 청년공산주의운동 등이 있었다. 거기가 거기 같고 저기가 저기 같지만 평소에 절대로 하나로 안 뭉치던 친구들이 이번 CPE 투쟁에 있어서만큼은 힘을 합쳐 싸웠던 것이다. 도대체 왜,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좀 있다가 생각해보기로 하자. 

그에 비해 한국의 비정규입법안 저지 투쟁은 어떠하였는가? 가두투쟁은 물론 조직되지 못했고 총파업을 순환파업의 형식으로 하려고 해보았지만 순환파업이 아니고 순환집회 비스무리 하게 되어버렸다. 우리의 ‘한 방’을 보여주는 투쟁이 조직된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안 하는 듯 하면 쉬고, 국회에서 하는 듯 하면 우르르 떠들고, 다시 뭔가 무산됐다 하면 집에 가고 하면서 스스로의 힘을 스스로 빼는 격의 행동을 되풀이 했다. 

3. 프랑스 사회당의 행태와 민주노동당 

CPE 투쟁과 국내의 비정규입법안 저지 투쟁을 돌아봄에 있어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진보정당의 역할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앞에서 지적된 대로 프랑스 사회당은 여기는 이랬네 저기는 저랬네 눈치를 보며 정치적 일정만 챙기다가 사태가 심각해지자 비로소 생색을 내기 시작했다. 물론 프랑스 사회당이 이런 처신을 한 지는 꽤 오래 되었다. 지금도 프랑스 사회당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세계화를 거부할 수 없다’, ‘덴마크 모델을 하자’, ‘아직은 정책을 발표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등의 이야기만 들어놓고 있다. 프랑스 사회당의 떠오르는 대선 주자 세골렌 루아얄은 노골적으로 자신이 블레어주의자 임을 피력하고 있다. 

덕분에 여당의 삽질로 일어난 이 난리는 야당에다가 나름 좌파란 소리도 듣는 사회당에게 하느님이 기회를 집어다가 손에 쥐어준 것과도 같았으나 별다른 행동도 없고 이야기도 없고 당연히 대안마저 없는 통에 지지도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에 비하면 한국에서 비정규입법 저지 투쟁에 있어서의 민주노동당의 역할은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몇 배는 더 긍정적인 것이었다. 물론 투쟁 과정에서 권리보장입법이다, 인권위 권고안이다, 사유제한 수정이다 뭐다 해서 갈팡질팡 하는 오류들은 있었으나 사유제한 수정 이외에는 국내 다른 단위들의 투쟁들과 맞물려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전부 다 민주노동당의 책임으로 떠넘기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비정규입법안 저지투쟁과 CPE 저지 투쟁의 본질적 문제 

프랑스에서 그렇게 격렬하게 투쟁을 했으니까 우리도 뭔가 거기에서 배워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실 길에 세 사람이 지나가면 그 중 한 사람은 꼭 스승이 될 만한 위인이다라고 하는 말도 있고 우리에겐 개똥을 봐도 타산지석으로 삼는 좋은 문화도 있으니, 무얼 봐도 뭐든 배울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일 것이다. 

그렇다. 그러니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런데 이것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비정규입법안 저지투쟁과 CPE 저지 투쟁의 어떤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사고하지 않으면 안된다. 

1) 프랑스 노동법제와 산업구조의 기본 구성

우선 프랑스 노동법제의 기본적인 구성을 알아보도록 하자. 프랑스의 노동법은 크게 무기계약(CDI)과 유기계약(CDD)로 나누어진다. 무기계약을 통한 고용은 우리의 정규직 고용과 비슷한 것이며 유기계약을 통한 고용은 사용 사유가 제한되어 있는 기간제 고용과 유사하다. 

유럽 헌법 부결 이후에 입법된 신고용계약(CNE)은 기본적으로 무기계약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2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하여 고용 후 2년까지 해고가 실질적으로 자유롭도록 되어 있다. 최초고용계약(CPE)은 이것을 26세 이하의 노동자에 한해 20인 이상의 사업장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산업구조를 살펴보면 20인 미만 사업장은 90%에 육박하며 여기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 수는 프랑스 전체 노동자 수의 28.6%를 차지한다. 기간제, 파견, 실습, 수습을 모두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2002년 현재 전체 노동자의 11%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향후 신고용계약이 일반화될 경우 앞서 언급한 28.6%의 노동자가 전부 비정규직으로 채워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2) 프랑스와 한국의 부정적인 공통점 

중요한 것은 왜 신고용계약(CNE) 반대 투쟁은 잘 안됐는데 최초고용계약(CPE) 반대 투쟁은 이리도 잘 됐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신고용계약(CNE)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전부 바캉스를 갔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최초고용계약(CPE) 반대 투쟁 중에는 굳건하게 단결했던 서로 상이한 입장을 가진 프랑스 내 12개 노조와 기타 조직들이 최초고용계약(CPE)투쟁 이후에 ‘신고용계약(CNE)도 반대하자’ 와 ‘이제 집에 가자’로 의견이 나뉘어 연대가 깨진 이유는 또 무엇인가? 

누가 생각해도 이것은 CPE와 CNE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서라고 밖에는 생각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이 두 종류의 계약 형태에는 내용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고 단지 적용 대상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바로 이 ‘적용 대상’의 문제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다시 강조하는데 CPE의 적용대상이 CNE의 적용대상과 다른 점은 ‘20인 이하 사업장’ 이라는 부분과 ‘26세 이하의 노동자’ 라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조직된 노동자의 다수를 이루고 있고 또 실제로 프랑스 노동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20인 이상 사업장’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과 ‘26세 이하의 노동자’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이 투쟁의 주축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면 왜 CPE 반대 투쟁은 잘 됐는데 CNE 반대 투쟁은 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다. CPE 반대 투쟁에 참가했지만 CNE 반대 투쟁을 외면하는 다수의 조직된 대기업 노동자들과 엘리트 학생들은 CPE가 CNE로 시작된 프랑스 우파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조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신자유주의적 개혁조치에 의해 가장 먼저 희생될 28.6%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아예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서도 되풀이 되고 있다. 물론 최근 우리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하고 열심히 싸워서 좋은 결과를 냈다는 몇 가지 훈훈한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많은 곳에서 직면할 수 있는 일반적인 상황은 기존의 대기업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에 대해 무심하거나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방관, 심하면 방해를 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지 않고 심지어 구사대 역할을 하기까지 했던 어떤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현실을 목격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정규입법안 반대 투쟁에서도 그랬다. 원래 그 투쟁의 제대로 된 그림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 단체들과 민주노동당, 학생조직들, 기타 대중조직들이 광범위한 가두투쟁을 조직하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노동당의 의원단이 의회 내부에서 이 법안의 실질적인 폐기를 이끌어 내는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가두투쟁은 조직되지 못했고 보수정당은 진지하게 비정규 노동 문제를 논의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제들을 논의하면서 비정규법안을 하나의 카드로서 사고할 뿐이었으며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어정쩡하게 상임위실을 점거했다가, 몸싸움을 했다가, 구석에 처박혔다가, 좌절했다가 했다. 

만일 비정규법안을 앞에 놓고 우리가 프랑스 학생, 노동자들만큼 난리를 칠 수 있었다면 상황이 결코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가두투쟁이 조직되지 못한 책임을 민주노총 지도부나 민주노동당 지도부, 혹은 이제는 중년의 관료화된 전반적인 노동운동의 분위기에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5. 다시, 계급운동이다 

일찍이 우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이며 같은 노동자라고 줄기차게 구호로서 외쳐왔다. 이것은 당연한 진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동운동의 흐름을 돌이켜보면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은 이것을 철밥통이니 이기주의니 하며 비난하고 있지만 이것 자체가 천박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야 말로 본질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사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우리가 새로운 계급운동을 모색하고 조직하는 것뿐이다. 

급격하게 우경화된 노동조합 운동과 거의 완벽하게 무너져 내린 학생운동, 그리고 날이 갈수록 흔들리고 있는 진보정당 운동에서 우리는 얼마나 계급적 원칙에 맞는 운동을 해왔는가를 다시 한 번 반성하며 사고해야 한다. 

프랑스 반CPE 투쟁에 대한 수많은 평가를 진행하면서 우리가 혹시 바로 이 점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져보아야 한다. 반CPE 투쟁은 격렬했고,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끼쳤고, 실제로 CPE법안을 철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투쟁이 진정으로 계급적이었는가? 바로 이 지점을 우리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상한모자

2015.02.06 17: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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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격앙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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