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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또 왔다. 선거연합 이야기다. 누구는 민주당을 포괄하는 선거연합을 지칭하는 ‘민주대연합’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또 누구는 진보정당 만을 대상으로 하는 ‘진보대연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명확하게 예상되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 ‘진보정당의 역사는 비판적 지지의 역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비판적 지지는 언제나 진보정당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을 민주-평화-개혁세력에게 갖다 바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다른가? 십 수 년 간 진보정당에게 심각한 정치적 폭력으로 다가왔던 선거연합논의를 이번만큼은 다르게 해볼 여지가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서 선거연합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민주대연합이란 무엇인가?
 
일단 선거연합에 대해 논하기 전에 민주대연합에 대한 기본적인 역사적 상식부터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물론 87년에도, 92년에도 민주-평화-개혁 세력은 진보진영에 자신들을 비판적지지 할 것을 강요해왔지만 실질적으로 이러한 요구가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97년 대통령 선거일 것이다.

87년 대투쟁 이후 노동계급의 성장과 고도화된 자본의 축적구조가 김영삼 정권의 경제정책을 ‘도’와 ‘모’를 오가는 혼란스러운 것으로 만들었고, 이는 결국 97년에 IMF의 구제금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후에 변화된 사람들의 인식이다. 박정희 시대로부터 ‘아무것도 없던’ 이 나라에 기업을 만들고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여 오늘날의 경제발전을 이루었다고 믿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IMF 구제금융 사태는 “우리가 지금까지 신자유주의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경제가 이 모양이 되었구나!”라는 일종의 회한을 심어주었다. 때문에 신자유주의 개혁의 주요한 걸림돌이었던 재벌과 공무원들에 대한 대중들의 무차별적인 반감이 확산되었다. 재벌은 몸을 사리며 ‘기업인의 사회적 책무’를 얘기하기 시작했고 공무원들은 ‘철밥통’이라는 말과 함께 영원한 구조개혁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가운데에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은 박정희 시대의 정부-재벌 동맹과 대비되는, ‘공정한 경쟁’, ‘투명한 시장’, ‘정경유착과의 단절’이라는 허울 좋은 개념들로 포장되었다. 결국 이 시기 대두된 ‘경제민주화’라는 요구는 ‘정치적 민주화’와 한 세트인 것처럼 포장되었지만 사실은 시장 원리를 강화하고 이 사회의 좀 더 많은 것들을 시장주의의 입 속에 던져 넣는 것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이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으므로 대중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강력하게 자신들의 경제정책을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후기 박정희의 경제 관료들이 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했던 일이며, 전두환의 경제 관료들이 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했던 일이며, 노태우의 경제 관료들이 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즉, 군사독재정권이 그렇게 관철시키고 싶어 하였으나 내부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한국 경제시스템의 체질 변화-신자유주의적 개혁 조치를 김대중 정부가 IMF라는 위기를 통해 밀어붙여 버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들은 점점 더 정치적 문제에 대한 불신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빤히 보인다’는 것이다. 97년 위기를 통해 대중들은 정부가 모든 것을 ‘똑바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체득한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고시 친 공무원들이 만든 정부의 정책을 믿고 자신의 삶을 설계해봐야 끝에 가서는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엘리트 관료와 정부 기구의 수장들이 기본적인 금융 어휘 하나를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에 대중들은 경악했다. 이제 대중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알아서 살아남는 것 뿐’이다. ‘작은 정부’와 ‘시장원리’는 자연스럽게 대중들의 삶 곳곳으로 스며들었고 정치는 그저 냉소의 대상이 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 역시 김대중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노무현 정부의 관료들은 김대중 정부의 경제 정책을 충실히 계승하려고 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비록 노무현 정부는 정치적 민주화와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를 통해 키워져 온 중간계급의 새로운 도덕률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것을 자극하여 집권에 성공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실질적인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김대중 정부의 연장선상에서 발을 뗄 생각을 하지 않았으므로, 자신을 지지했던 수많은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게 하면서 까지 임기 말에 한-미FTA를 추진해 버린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며 그 자신들에게 있어서도 일관된 정책적 고려에 의한 것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삶을 구원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대중들은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평화-개혁 세력에 등을 돌렸다. 민주-평화-개혁 세력의 신념 그 자체에 열광했던 정치적 주체들도 무대에서 퇴장해 버렸다. 박정희의 신념에 열광했던 정치적 주체들은 이미 97년에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결국 정치의 무대에 남아있는 것은 97년에 정치를 냉소하면서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에 눈을 뜬 주체들, 신자유주의 10년을 온 몸으로 버티면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스스로 체득해버린 사람들뿐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BBK 스캔들’을 필두로 한 일련의 온갖 추문에 대책 없이 노출되었음에도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은 정치가 던지는 여러 가지 허울 좋은 ‘가치들’, 그 이면에 훨씬 더 유물론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그래서 과연 자본이 얼마나 더 축적될 수 있느냐, 그것이 이 자본주의 체제를 얼마나 더 지탱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반전의 메시지는 ‘죽음’의 세계에서 우리 곁으로 내려온다.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의 정치적 자연사(퇴임) 이후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인해 벌어진 촛불시위 정국은 민주-평화-개혁 세력의 ‘가치’에 열광했던 주체들이 다시 정치의 무대 주변으로 몰려오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잃어버린 10년’간 당한 수모를 앙갚음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박정희의 가치에 열광했던 주체들 또한 속속들이 복귀하기 시작했다. 이제 할 말이 생겼던 것이다. ‘우리만 실패한 것은 아니다!’라는, 그리고 ‘우리도 이제 이만큼 업그레이드 했다!’라는 할 말이!

이 와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은 기나 긴 도화선에 붙여진 마지막 불꽃이었다. 비로소 ‘폐족’되었던, 민주-평화-개혁 세력의 가치에 가장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던 주체들이 일어선 것이다. 그들은 97년에는 ‘정권교체의 당위’를, 2002년에는 ‘바람직한 정치인 대통령 만들기의 당위’를, 2004년에는 ‘사표론’을 이야기 한 그 장본인 들이다. 지금 이 시점에 진보진영에 ‘민주대연합’을 말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이들은 오늘날 이명박 대통령을 선출한 ‘신자유주의적 주체’를 양산해낸 당사자들인데다가 그들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기에 진보진영에 온갖 탄압을 가하고 멀쩡한 사람을 죽게 만들며 그러고도 “죽음을 더 이상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닌가? 이들은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그러한 과거에 대한 한 가닥의 반성도 없이 ‘이명박 심판’을 부르짖을 입장이 못 된다.

과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기 위해 진보진영이 “한-미FTA 추진에 대해 냉정하게 이야기해 보자.”라고 해도 “그건 선거연합을 하지 말자는 얘기”라고 일축한다. “사표론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사표론은 다수파 정당의 기본적인 권리라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한다. 대체 그러한 태도가 우리에게 어떤 정치적 전망을 보여줄 수 있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대연합을 말하는 것은 오직 그 사람들의, 과거의 영광을 도로 되찾아오고 싶다는 욕망을 얘기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선거연합은 자신의 욕망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성사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도 없이,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이 오로지 대통령에 대한 반대만으로 선거연합을 할 수는 없다.

민주노동당이 말하는 진보대연합

이러한 민주대연합의 부당함을 잘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최근 주장했던 것이 진보정당끼리만 선거연합을 하자는 '진보대연합'이다. 그런데 진보대연합이라고 해서 다 같은 진보대연합은 아니고, 잘 관찰하면 사실 여기에도 몇 가지 다른 결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기술적 측면을 언급하는 진보대연합인데, 이는 이번 2010년 지방선거에 한해서 가능한 지역에 양 당의 후보들을 서로 가능한 만큼 지지하자는 것이다. 나름 현실적 측면을 고려한 의견이겠지만, 문제는 이번 지방선거 국면에서는 별로 의미 있는 주장이 못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보양당 모두 어느 지역에, 얼마만큼, 어떤 후보를 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지경에 처해있으며 상당수의 선거구에서 진보양당 중 하나의 당에서만 후보를 내는 상황이 부지기수로 벌어질 것인데, 이 경우 진보대연합을 굳이 선언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후보를 내지 못한 당은 후보를 낸 당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고로,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진보대연합은 2010년 지방선거 이후의 정치일정까지 염두에 둔, 즉, 진보양당의 통합을 전제로 한 것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노동당의 일부 유력 인사들이 진보진영의 대통합을 언급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들의 주장을 들여다보고 검토하면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민주대연합'의 재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선거연합의 ‘근거’는 여전히 중요하다. 강기갑 대표나 이정희 의원, 김창현 울산시당 위원장 등의 최근 발언을 검토해보면 위에서 언급한 ‘빈약한 근거’를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위의 유력 인사들 모두가 '이명박 정권은 독재 파쇼 정권'이고 '이명박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진보진영이 지방선거에서 통 크게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문제들이 산적해있는 상황에서 그런 것들을 해결하지 않고 진행하는 선거연합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중요한 전략적인 선거구들, 즉, 서울, 경기도, 울산 등에서 후보단일화 등의 선거 전술을 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단지 특정 선거구에서 후보 단일화 협상을 하기 위한 전술을 진보대연합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진보대연합은 전당적 차원에서 추진되는 정책(policy)이자 방침의 형태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개별 선거구의 상황에 따라 서울에서는 후보단일화를 성사시키고 경기도에서는 후보단일화의 '후'도 꺼내지 않는 상황을 진보대연합이라 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이 문제는 진보정당운동 세력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리되던 시점으로 되돌려놓고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즉, 도대체 '분당의 순간'이 왜 도래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진보대연합을 주도적으로 이야기 하는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과 같은 민주노동당 인사들은 오늘날 진보진영의 이 분열이 자신들의 '패권주의'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분당 국면에서 선도탈당파가 주요하게 외친 슬로건이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의 청산'이었다는 점을 기억해보면 패권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인정할 수 있지만 종북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일 게다.

사실 나조차도 '종북주의'라는 단어가 적절하였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문제제기의 핵심은 ‘종북주의’라는 특정한 어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게 ‘종북주의’던, ‘사회주의’던, ‘도날드덕주의’던 간에 ‘낡은 사상’과 결별하지 않으면 우리는 정치적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선도탈당파들의 주장이었다.

특히 나는 그 당시에 민주노동당에 ‘스탈린주의’와의 과감한 단절을 요구했다. 이것은 풀어 말하자면 오늘날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원칙 확립이 실질적인 대안 체계를 구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므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선 사회주의를 이야기 하는 것을 ‘좌편향’으로 규정하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들 좌편향 세력을 찍어 눌러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 경우 무엇이 좌편향이고 우편향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은 상부에서 내려온 문건이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히틀러 시기의 독일 상황을 떠올려보자. 코민테른이 독일의 상황을 자기 마음대로 규정하여 독일공산당에게 “지금은 우편향과 싸워야 할 때인데 독일사민당은 바야흐로 사회파시스트라고까지 부를만한 우편향이 되어버린 것이 틀림없다! 고로 지금은 나치를 내버려두고 독일 사민당과 싸워야 할 때이다!”라는 엽기적인 지침을 내리지 않았다면 과연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에게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고 죽어버리는 상황이 왔겠느냐는 말이다.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의 말대로 소수파들이 권력을 잡지 못해서, 또 잡을 가능성조차 찾을 수 없어서 그냥 당을 나간 것이라면 이러한 문제제기를 도대체 왜 했겠는가? 당 내 소수파들이 아무리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당 지도부가 공식 논평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옹호하고 간부가 당 내 주요 인사들의 성향을 적어서 북한에 보내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발언을 하는 등의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비극적인 사태가 도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당연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민주노동당의 주요한 인사들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반성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이런 문제의식을 부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통합을 말하고 진보대연합을 언급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일은 구실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민주노동당의 이념 노선에 대한 자기반성이 없는 진보대연합 논의는 한 마디로 민주당의 민주대연합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다.

진보의 재구성

이러한 상황에 비교하자면 진보신당의 주요 인사들이 주장하는 ‘진보의 재구성이 전제된 진보대연합’론은 차라리 현실적이라 할 것이다. 진보정당운동 세력 전체의 자기반성과 지금까지 걸어온 정치 노선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 및 과감한 변혁을 통한 진보의 재구성 과정이 있어야 진보대연합도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의 문제는 진보신당 내부에서조차 ‘진보의 재구성’이 무엇인지 명확히 확인되거나 합의되지 않는 다는 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우선 민주노동당과의 분당 과정에서 분당의 의의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하다가 갈라져 나온 이때에 우리가 버릴 것은 무엇이고 취할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다들 다른 대답을 늘어놓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에피소드는 소위 ‘당헌 전문에 대한 논쟁’이다. 이 논쟁은 진보신당 지도부가 당헌 전문에 진보신당의 성격을 규정하는 문장을 넣음으로서 시작되었다. 논란이 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진보신당은 불평등과 억압, 착취와 수탈에 저항하고 사회 진보를 바라는 모든 이들이 함께 하는 대중정당이며, 선거에 매몰되지 않고 기성 제도의 벽을 뛰어넘어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정당이다. 또한 지역 사회에 뿌리 내려 진보적 삶을 일상에서 실현하는 생활정당이다.”

문제가 된 것은 “선거에 매몰되지 않고 기성 제도의 벽을 뛰어넘어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정당이다.”라는 부분이었다. 과거 민주노동당에서의 과오를 선거에 집중하지 않고 과격한 투쟁에 매달렸던 것에서 찾는 사람들은 그 고생을 해서 새로 만든 당의 당헌 전문에까지 이런 문구를 넣어서 자기들이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선거 활동’에 방해가 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즉, 진보정당이 벌이는 일상적인 정치 활동의 대부분은 어떤 방식으로든 ‘선거’와 관계가 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선거에 매몰되지 않고 기성 제도의 벽을 뛰어넘어 사회변화를 추구 한다’는 것은 선거와 다분히 거리를 두려는, 혹은 선거가 아닌 폭력 혁명과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의도가 담긴 문장이므로 새로운 진보정당에서는 그것을 용납하면 안 된다는 얘기였다.

이러한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들은 다소 전통적인 좌파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살아온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악하자면 실제 진보정당에 있어서 정치적 선명성을 잃어 당 활동에 많은 제약이 가해지는 순간은 당이 오로지 선거에만 집중하여 다른 어떤 운동적 활동을 하나도 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을 때라는 것이다. 때문에 진보정당은 당연히 선거를 주요한 정치적 활동으로 전제하고 정치 활동을 벌여야 하나(대중정당) 선거 이외의 공간, 즉 일상생활에서(생활정당)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대안적인 정치활동(운동정당)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런 진보정당의 노선을 ‘사회운동적대중정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양 측의 입장 중 어떤 것이 옳으냐고 물으면 다는 단호하게 후자의 입장이 옳다고 말할 것이다. 사실 사회운동적대중정당론은 민주노동당 초창기에 당 기관지인 ‘이론과 실천’에 제출된 바 있는 주장이다. 그 때에는 비교적 사람들끼리 합의가 잘 되었다. “아, 그렇지. 좋은 얘기야.” 라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였다. 또 실제로 당시 민주노동당의 활동가들은 비록 실천은 그렇게 하지 못할 지라도 사회운동적대중정당의 노선을 늘 이야기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진보신당을 창당하니까 그런 노선은 이제 폐기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즉, 그간 우리의 진보정당운동이 여러 측면에서 죽을 쑨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사회운동적대중정당노선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유로코뮤니즘 정당들의 역사를 살펴보라. 그들이 각 동네에 노동자회관을 만들고 노동자들의 생활과 문화를 장악했을 때 그들은 성공할 수 있었다. 반대로 선거에서 더 이상 득표를 하지 못하리라는 공포심으로 그들을 지금까지 떠받치고 있었던 노동자 서민의 생활에서 떠나갔을 때 그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각각 구체적인 형태는 다르겠지만 이것이 유럽에서 성공한 거의 모든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 우리나라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상 ‘정치적 영역’이 일상생활에서 거의 소멸하고 없는 이 나라에서 오히려 사회운동적대중정당노선에 따른 실천 활동 계획의 대상들은 진보정당운동에 있어서의 ‘블루칩’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진보정당은 오로지 선거만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에 또 다른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진보신당이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이러한 기본적인 정치 노선조차 합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민주노동당까지 끼워서 ‘진보의 재구성’을 말할 수 있겠는가?

진보신당의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여 보면 상황이 극단적으로 흘러갈 때까지도 이 런 문제에 대하여 당 내의 합의가 도출되는 것이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당 지도부를 포함한 일부 당원들은 ‘결단’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진보의 재구성’논의를 가능한 부분 까지만 논의하고, 논의할 만큼 최대한 논의하였으므로 지금까지의 토론 결과로만 진보의 재구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진보의 재구성과 관련한 논의를 종료하고 진보의 재구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 자의적 해석을 덧붙여서 진보대연합을 추진하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긴 엄청난 혼란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위의 언급은 진보의 재구성 논의와 관련하여 진보정당이 처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상황이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를 가정하지 않더라도 진보의 재구성과 관련한 정확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을 경우 이후에 닥칠 어려움은 누구라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든 나쁜 상황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진보의 재구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누군가에 의해 제출될 때 까지 우리는 그저 ‘진보의 재구성에 대해 말하자!’라며 변죽만 울리고 있으면 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라도 먼저 ‘진보의 재구성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꺼내야만 한다. 지금 진보정당들의 논의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바람직한 선거연합에 대하여

일단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일정 부분 진보정당운동에 관여했던 사람으로서 그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이 글에서부터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선거연합의 형태에 대하여 서술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당장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무엇을 이야기해야 성공적인 선거연합의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중요한 것은 더 이상 ‘허망한 가치’에 의한 선거연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허망한 가치란 시장바닥의 언어로 바꿔 말하자면 ‘하나마나한 소리’다. ‘신자유주의 반대’, ‘이명박 반대’, ‘내 인생 반대’ 등의 가치가 그렇다. 내가 선거에 나가는 후보라고 해도 그 가치를 지지한다는 행위 자체가 나쁠 것이 없는 것이면 신자유주의도 반대하고 이명박도 반대하고 내 인생도 반대한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게 다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차를 안 사주는데 “아버지 나 사랑해?”라고 물어봐야 뭐에 쓸 것인가?

특히 이런 방식의 선거연합은 평소에는 어떤 공동의 실천도 도모하지 못하다가 선거 직전에 와서야 허둥지둥 짝짓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이렇게 급조된 선거연합은 그저 무기력하기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세월의 경험을 통해 잘 안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선거연합이 미래의 전망을 함께 세우는 소중한 경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 때에만 좋은 말 걸어놓고 표 계산 잘 한 다음에 선거 끝나고 나서 언제 연대, 연합을 이야기 했냐는 듯 발로 걷어 차버리는 바보 같은 일이 이제는 없어야 한다.

선거연합의 구실로서 좀 쓸모가 있는 이야기를 던져보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처해있는 객관적 상황을 다시금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지방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와 성격이 다르다. 국회의원 선거가 법안을 생산하고 중앙의 예산을 심의, 배분하는 사람을 뽑는 선거라면 지방선거는 지역에서 실제로 이 예산을 쓰는 사람을 뽑는 선거이다. 당연히 ‘가치들’의 너머에 있는 시커먼 물적 토대가 선거의 핵심이 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상황은 지방선거 국면에서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의 노골적인 냉소와 맞닥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은 당연히 이번에도 수도권 규제 완화로 인한 개발이득 및 토지와 주택가격의 상승 및 건설경기 부양 등을 요구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진보정당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몸을 돌려 이러한 문제를 슬쩍 피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

지금까지의 태도는 회피에 가깝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도 예외가 없다. 어차피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해봐야 표만 떨어질 일이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감히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는 정책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겠는가? 특히 2008년 총선에서 뉴타운 때문에 손해를 본 진보세력 중에서 말이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이 문제를 정면돌파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한국 정치는 개발과 부동산의 논리에 좌우될 것이라는 게 진정한 문제 아닌가? 그렇다면 한국의 진보세력에게는 이 문제를 적어도 선거 국면에서 중요하게 취급하여야 할 그런 사명이 있지 않은가? 언젠가 거품이 꺼질 때에 사람들이 ‘아, 진보정당에게 그래도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구나!’하는 평가는 받아야 될 것 아니겠는가?

즉, 오늘날 보수 세력의 정권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마음을 먹는다면 선거연합이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공통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실천을 함께 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주제에 대한 공동 실천이 필요하겠는가? 나는 여기서 세 가지 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당연하게도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공통된 비전을 세우는 일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의 욕망은 부동산과 개발 이득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이들의 왜곡되고 음습한 욕망을 해체하고 재조립하기 위하여 이러한 주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진보진영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이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프레임을 이번 지방선거에서 던져야만 한다. 그 실질적인 내용은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이미 합의된 슬로건 안에서의 새로운 수도권 도시계획이 핵심이 될 것이다. 그린벨트 해체에 대한 찬성, 반대, 수도권 GTX 노선에 대한 찬성, 반대가 아니라 오로지 이윤을 창출하고 자본을 축적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주먹구구식 도시계획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각각의 도시들은 친환경적으로 새로 디자인되어야 하고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교통 시스템이 수도권 전체를 대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이 개발과 부동산을 바라보는 방식에 일정 정도의 생채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의 진보주의가 아무것도 개발하지 않고 원시시대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브라질의 ‘꾸리치바시’와 같은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연대전략’과 같은 계급 복원 및 형성 모형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사회연대전략은 노동계급이 분열되어 사실상 계급적인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계급 내부에서부터’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사회적 임금을 확보하며 고용안전망을 구축하고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며 보편적 복지체계를 세우는 여러 시도를 통하여 노동계급을 형성, 복원하고 단결시키는 전략을 말한다. 몇 년 전, 민주노동당에서 제출되었던 것인데 당 내 논의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 양보론’으로 폄하되어 결국 실질적인 정책으로 구체화되지는 못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은 계급적으로 한 데 묶을 수 없는, 개인 단위로 분절된 삶의 방식을 야기하고 있고 그것이 또 다른 신자유주의적 주체를 생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이들이 온전히 자기 계급의 자리로 돌아가고 왜곡된 계급적 질서를 다시 재조정하여 실질적인 ‘정치’가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전망이 반드시 필요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보다 확장된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일이다.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이 오늘날의 정치 시스템을 냉소하고 있는데 이들이 갖는 이러한 관념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에 이러한 고민의 핵심이 들어있다.

즉,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이 어떤 정치적 전망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관철시킬 수 없는 한 아무런 소용이 없다. 때문에 그들은 말해봐야 입만 아플 뿐인 진보적이고 계급적인 대안을 생각하기 보다는 돈을 벌어 자신의 신분상승을 이뤄내는 것이 모두가 잘 사는 훨씬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아무리 진보적 담론을 공중전을 통해 유포해봐야 사람들이 실제로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면 그저 ‘좋은 이야기’에 그치고 말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확장된 민주주의 시스템이란 어떤 것인가? 사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일부 인사들이 이야기 하는 ‘공동지방정부론’이 이러한 현실에 대한 작은 대안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 레닌이 말했듯 ‘전제왕정에 노동부장관 자리 하나 얻어 봐야’ 근본적인 개혁을 이루어내기란 하늘에 별 따기일 것이다. 즉 핵심은 ‘시스템’에 있는 것이지 무슨 자리에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서구에서 논의되고 있는 ‘심의민주주의’적 시스템의 도입에 대해 합의하는 것이다. 심의민주주의란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갈등을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적 기구를 통해 조정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물론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도 포함된다.

물론 심의민주주의 시스템을 지금 당장 전면적으로 실현하자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일단 노동시간의 혁신적인 단축이 가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들이 그 민주적 기구에 출석할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자체에서 심의민주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이고 이를 위한 몇 가지 핵심적인 제도를 마련하는 것 정도의 수준에서는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정책들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러한 취지와 의의에 선거연합의 참여자들이 동의하는 것 정도로도 충분한 진전을 이루어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민주대연합’의 ‘민주’가 민주당의 민주가 아닌 민주주의의 민주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주장을 가장 먼저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주제들을 선거 국면에서 주요한 슬로건으로 제시하는 것이 소위 선거 전문가들이 말하는 ‘좋은 선거 전술’은 아니다. 이번 선거는 누가 뭐래도 일자리, 복지, 교육 등의 주제가 핵심적인 이슈가 되고 사람들은 그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응은 어느 당이나 다 마찬가지다. 무슨 당이든 이렇게 얘기 할 것이다. 뭘 만들어서, 혹은 유치해서 일자리를 몇 백만 개 창출할 것이고, 사람들을 나태하게 만들지 않는 선에서 복지 제도를 확충할 것이고, 혁신적인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 교육감과 패키지 선거를 할 것이고…. 좋은 이야기들 이지만 이런 것들을 주제로 어떻게 선거연합을 하겠는가?

꼭 위의 세 가지 주제가 아니더라도 좋다. ‘반 이명박 전선’을 외치는 정치 세력들에게 오늘날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반성과 새로운 미래의 전망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없는 선거연합은 또 다시 진보정당에게는 아픔을 안겨주고 민주당에게는 단기적인 성과만 안겨줄 뿐인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부디 이번 지방선거가 민주당은 이행 각서를 쓰고 민주노동당은 반성문을 쓰며 진보신당은 정신을 차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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