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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다크나이트 대 인셉션

영화감상 조회 수 5757 추천 수 0 2010.08.01 20:40:32

이 글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와 '인셉션'에 대한 스포일러를 상당하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사람들만 이 글을 읽기를 권합니다.


1) 다크나이트와 인셉션을 모두 본 사람
2) 다크나이트와 인셉션을 둘 다 볼 생각이 없어서 아무래도 상관 없는 사람.
3) 스포일러고 뭐고 내용 다 알고 영화봐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 먼저 읽으면 좋은 글 : http://weirdhat.net/xe/halloffame/6238

 

   

‘인셉션’에서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강박'에 대한 본인의 '강박'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메멘토, 다크나이트, 인셉션(불행히도 나는 프레스티지를 보지 못했다)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집요한 관심은 감독 본인이 강박증자라는 사실을 오히려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감독이 어떤 사람인가, 감독은 어떤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는가, 감독이 내는 수수께끼의 답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관심은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느낄 것인가,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에 대한 해석은 백만 가지가 있을 수 있고 그러한 백만 가지의 해석은 각자의 특정한 주장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영화에 전문적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화 평을 써서 먹고 사는 입장도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영화를 평하는 것은 단지 취미일 뿐인데, 그렇다 해도 삶의 언저리에서 정치적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특정한 주장, 즉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인셉션을 보고 쓰는 글 역시 당연히 정치적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나는 하필이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강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정치적 문제를 이야기 하려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정치적인 문제를 사고하는 데에 있어서 우리 자신의 처지를 완전히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도착증자이거나, 강박증자이거나 혹은 신경증자이다. 정치적 행위를 하기 위한 전제도 이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즉, 정치적 기술의 핵심은 '너희들과 같은 병리적 주체들로 하여금 어떻게, 어떠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것인가?', 혹은 '너희들과 같은 병리적 주체들의 착각을 어떻게, 어떠한 현실 자각으로 이끌 것인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기에 매우 좋은 소재이다.

 

이 사람의 영화에 늘 등장하는 강박에 휩싸인 주인공들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강박은 늘 무언가를 모두 알아야 한다는 욕망, 무언가를 모두 통제해야 한다는 욕망에 다가가기 위한 것으로 표현된다. 영화상에서 다루어진 가장 현실적인 강박증자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강박증의 전형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잭 니콜슨이 매우 뜨거운 물로 손을 씻고 비누를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모습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이것을 멸균에 대한 욕망으로 본다면, '정상인'인 우리는 왜 그와 같이 세균을 박멸하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가? 세균을 손에 붙이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결과적으로 '세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포기'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가 똑바로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항상 포기해야만 한다. 강박증자들은 자신들을 향해 던져지는 무의식적인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그것에 계속해서 대답하려 하는데, 이들이 자신의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우선 그 요구(혹은 질문)에 대해 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기억하면서 다크나이트의 주인공인 배트맨이라는 신비한 캐릭터에 대해 생각해보자. 배트맨은 고담시를 범죄가 없는 도시로 만들려는 '어떤 요구'에 대답하기 위하여 자신의 막대한 자본을 쏟아 붓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담시의 범죄는 없어지지 않고 (없어질 리도 없다) 오히려 배트맨의 행동으로 인해 세상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기만 한다. 물론 그러든 말든 배트맨은 '뒤를 쉽게 돌아볼 수 있는 가벼운 배트맨 의상', '바퀴가 모터싸이클의 형태로 분리되는 장갑차' 등의 발명(?)을 자신의 법적인 피고용인들에게 요구하면서 세상에 대한 더욱 더 완벽한 통제를 시도하는 데에 박차를 가한다.

 

상상으로의 도피

 

배트맨은 자신의 '불가능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불완전한 상징적 질서와 싸워야만 했다. 이 싸움은 늘 배트맨의 패배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욕망은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즉, 그는 매번 '포기'를 강요당하면서 인간의 정신을 유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실현 불가능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상징적 질서와 싸우지 않아도 되는 꿈의 세계로 도피한 코브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의 꿈이라는 상상적 질서가 현실세계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현실세계가 간섭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코브는 자유롭게 꿈속을 여행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즉, 그의 입장에서는 배트맨처럼 채워지지 않는 상징 질서의 틈을 메꾸고 그것을 완전무결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밤을 지새울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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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적 주체라는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획기적인 발명일 수 있는데, 그러한 코브의 기쁨이 영화에도 잘 나타나 있다. 코브는 아내와 함께 이 꿈 속에 50년이나 머물면서 꿈속의 상상적 질서를 지배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50년이 흐른 다음에 한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그 문제의 본질에 대한 코브의 설명은 '아내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라는 것이나 실제로는 코브의 실현되지 못한 마지막 욕망이 절박한 문제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애초에 꿈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는 것'에 만족할 수 있었다면 50년간 살아온 그 꿈속에서 빠져 나와야 할 이유가 없다. 코브가 꿈속에서 빠져 나와야 했던 이유는 50년간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자식들'의 문제가 새삼스럽게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는 것'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던 아내 '맬'을 꼬드겨 현실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런데, 도대체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실재에 대한 열정

 

상상적 질서를 지배하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 즉 완전한 자신의 질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다시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사실 그로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에게 필요한 유일한 것은 열정, 실재에 대한 열정이다.

 

여기에서 잠시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를 떠올려보자. 하비 덴트는 자신이 추구하는 형태의 완벽한 상징적 질서를 추구했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이러한 질서가 완성되는 듯 보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로서는 더욱 더 그러한 자신의 강박에 더욱 잘 매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강박적 행위의 결과로 연인이었던 레이첼이 죽고 자신의 육체가 반 토막이 난 후에 그는 좀 더 심오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굳이 조커의 달콤한 속삭임들이 아니었어도 그 상황은 그가 자신의 완벽한 질서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에 매우 충분한 것이었다. 이제 하비 덴트의 남은 길은 자신의 질서가 실패했던 그 순간을 자꾸만 반복하려 하는 것이다. 자신이 소멸할 때 까지.

 

 

하비 덴트의 이러한 행동은 상징적 질서가 실패한 순간, 즉 실재가 우리의 소박한 세계에 침범한 그 순간에 대한 어떤 열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점을 생각하면서 다시 인셉션으로 돌아와 보자. 코브가 맬에게 심은 것은 '실재에 대한 열정'이다. 이곳은 꿈이고 우리는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다시 말해 '우리가 구축한 완벽한 질서를 거부하기 위한 그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을 위해 코브는 '당신은 기차를 기다리고, 그 기차는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겠지만 그게 어디인지는 알 수 없고, 하지만 그래도 우린 함께이므로 괜찮아' 라는 문장을 고안해내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이 불행한 두 부부가 달려오는 기차를 이용해서 꿈속에서의 동반자살을 하는 장면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느낌을 가져다주는데, 어쨌든 그러한 과격한 방법으로 꿈속의 자살을 하여 현실로 깬 이후의 상황은 하비 덴트의 실패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즉, 하비 덴트처럼 맬 역시 자신에게 가해진 '실패'의 상황을 반복해서 되풀이 하는 것이다.

 

실패

 

이로 인하여 코브는 애초에 이루어야 했던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없게 된다. 자기 자식들을 향한 그의 욕망은 ‘얼굴을 볼 수 없는 아이들의 뒷모습’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고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 코브의 앞에 나타나는 아이들의 모습은 오로지 이 잔인한 뒷모습뿐이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인셉션이라는 영화가 시작된다. 즉,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 코브의 ‘불가능한 욕망’은 ‘아이들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는 것’이고 이것을 쟁취하기 위한 눈물 나는 투쟁 그 자체가 이 영화를 구성하고 있다. 즉, 이 영화는 코브라는 강박적 주체가 구원을 받는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다크나이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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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다크나이트의 결말에 대해 생각해보자. 하비 덴트의 실패는 배트맨의 실패이기도 하다. 레이첼은 하비 덴트의 연인이었으나 동시에 브루스 웨인의 연인이기도 했다. 하비 덴트의 실패는 배트맨이 조커의 기만전술에 완전히 속아 넘어간 때문이었다. 하비 덴트가 잃은 것을 배트맨도 똑같이 잃었다. 즉, 하비 덴트가 실패한 지점에서 배트맨도 똑같이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배트맨은 하비 덴트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의 ‘강박’은 아직 질서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배트맨의 이 강박이 얼마나 완고한 것이었던지 배트맨은 상징적 질서의 실패를 자기 자신이 떠안으면서 상징적 질서를 완전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즉, 배트맨이라는 자신의 기표를 상징적 질서의 구멍 위에 덮어버림으로서 자신이 꿈꾸는 상징적 질서 그 자체의 파국을 가로막는 것이다.

 

급진적인 시선에서 본다면 배트맨의 이러한 결정은 ‘체제 유지’를 위한 가련한 몸짓으로 보일 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토퍼 놀란과 다크나이트를 우익의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비난하는 것이 적절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러한 행위도 ‘다크나이트’를 ‘다크나이트’답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라 하겠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나의 관심사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빨갱이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것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다시 한 번 바라보자. 놀랍게도 배트맨의 이 슬픈 이야기는 현실사회주의의 실패와 기묘하게 겹쳐지는 것으로 비추어지지 않는가?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급진적 기획의 모든 시도를 현실사회주의와 연관 지으면서 체제의 실패를 공산주의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사회주의의 시도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이 우리에게는 곤란한 것으로 다가온다는 의미에서 이 시대의 현실사회주의야 말로 ‘다크나이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레닌을 읽는 사람들이여! 이제 우리는 박쥐 가면과 하키 보호대를 준비해야만 할 것이다!

 

구원

 

이와 비교하자면 인셉션의 결말은 어떠한가? 복잡한 모든 장애물들을 헤쳐 나가며 꿈속의 방황을 마치고 모두가 눈을 떴을 때, 비행기 안에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색함이 흐른다. 물론 이것은 감독의 의도적 편집이다. 잠에서 깨어난 사이토가 전화를 걸지만 우리는 그가 전화를 거는 목적이 코브의 전과를 말소시키기 위해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심사를 받는 과정까지 주변 사람들은 코브를 보는 듯 안 보는 듯 힐끔거린다. 이제 관객들은 불안감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도대체 지금 이 장면은 꿈인가, 현실인가? 코브의 욕망은 이루어진 것인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가? 심지어 ‘피셔’까지도 코브를 보는 듯 안 보는 듯 곁눈질 하지만 그의 그러한 몸짓이 무슨 의미인가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이 불안함은 영화가 끝날 때 까지 계속된다. 코브의 아버지는 그 장소에 있을 리가 없지만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코브의 아이들은 성장을 한 것 같으면서도 안 한 것 같으며, 토템은 쓰러지지 않으면서도 금방 쓰러질 것만 같다.

 

감독이 이러한 애매모호함을 계속 늘어놓은 이유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열린 결말’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이 ‘열린 결말’이야 말로 코브에게는 일종의 구원으로 작동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애초에 코브의 욕망은 실현이 불가능한 욕망인데 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코브는 양자택일의 순간을 강요당해야 한다. 문제는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이다. 코브가 맬에게 ‘인셉션’을 시도하면서까지 자식들에게 집착하였던 것은 그가 만든 상상적 질서에서조차 자식들의 실재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코브의 선택지는 자신이 만든 ‘상상적 질서’를 포기하고 ‘현실의 아이들’을 찾느냐, 아니면 현실의 자식들을 포기하고 ‘상상적 질서의 아이들’에 만족하느냐로 정해진다. 하지만 코브의 입장에서는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없고 동시에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다.

 

그런데 감독의 ‘열린 결말’은 이러한 딜레마를 전도시킨다. 즉, ‘상징적 질서와 상상적 질서 모두에서 아이들의 얼굴을 찾을 수 없다’는 문장을 뒤집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의 얼굴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의 위치는 상징적 질서와 상상적 질서가 아닌 곳에 존재할 것이다’라고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코브는 그게 현실인지 꿈인지 결정할 수 없는 위치에 존재하는 순간에만, 다시 말하자면 꿈과 현실을 동시에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에만 (그리고 그러한 꿈과 현실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에만) 비로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제 다크나이트와 인셉션의 결말을 양쪽에 놓고 우리의 처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가 진보주의자라면 우리는 늘 우리의 이상에 대한 강박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숱한 실패와 좌절의 순간을 통해 우리는 늘 ‘포기’를 강요당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배트맨의 길을 걷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비 덴트의 뒤를 따르지 않으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인셉션의 결말이 우리에게 통찰을 가져다 줄 수 있지 않은가? 다크나이트의 배트맨이 한 것처럼 현실사회주의의 잔영이 자본주의 체제의 실패를 덮고 있다면 바로 그 잔영의 너머, 즉 꿈도 현실도 아닌 곳에, 인셉션의 코브가 그렇게 갈구하였던 것이 존재했던 것처럼, 우리가 갈구하는 그 무엇이 존재하리라는 믿음과 그것을 추구하는 열정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인셉션의 영화가 끝나고 스텝롤이 흐르는 장면을 끝까지 바라보면 영화중에서는 ‘킥’의 예고로 사용되었던 에튀드 피아프의 ‘아니오, 난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가 흘러나온다. 영화 그 자체가 상상적 질서의 구성물임을 직시한다면 이제 우리는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꿈에서 빠져나올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동지들이여, 자! 이제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이상한 모자

2010.08.01 21:30:33
*.146.143.41

그냥 영화 보고 개소리 썼구나 생각하세요.

silentpoet

2010.08.02 11:40:12
*.244.221.2

좋은 "개소리" 잘 보고 갑니다.

이상한 모자

2010.08.02 20:12:33
*.146.143.41

감사합니다.

다시다

2010.08.02 12:37:20
*.124.106.137

이야 이건 정말 좋네요. 역시 좋은 영화 리뷰는 영화만 관심있는 사람이 쓰는 게 아닌가봐요.

이상한 모자

2010.08.02 20:13:04
*.146.143.41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 또 감사합니다.

rheya

2010.08.02 14:07:57
*.149.135.24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읽고 나서 사소한 질문 하나, 무거운 질문 하나가 남는데요..

1. 정말정말 사소한 질문입니당. 코브가 꿈에서 깨는 장면이 정말로 불안하셨나요? 저는 놀란이 이딴 식(저는 이렇게 찝찝한 결말을 좋아하지 않아요)으로 결말을 낼 줄은 몰라서 그냥 아- 이제 다 끝났구나- 하면서 오히려 편안한 느낌이었거든요. 장인 어른이 마중나왔을 때도 그냥 반갑다는 느낌이었고.

이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질문이었구요.

2.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인셉션의 결말이 우리에게 통찰을 가져다 줄 수 있지 않은가? 다크나이트의 배트맨이 한 것처럼 현실사회주의의 잔영이 자본주의 체제의 실패를 덮고 있다면 바로 그 잔영의 너머, 즉 꿈도 현실도 아닌 곳에, 인셉션의 코브가 그렇게 갈구하였던 것이 존재했던 것처럼, 우리가 갈구하는 그 무엇이 존재하리라는 믿음과 그것을 추구하는 열정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지젝의 냄새를 강하게 맡았어요. 물론 이상한 모자님이 지젝과 똑같은 지적을 반복했다는 말이 아니라, 지젝이 쓰고 있는 분석틀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거지요. 특히 제가 인용한 부분에서는 지젝이 항상 말하곤 하는 '할 수 없었지만 꼭 해야했던' , '사태의 불가능성과 긴급성을 동시에 인지했던' 지젝의 레닌이 떠올라요. 저에겐 지젝이 하고 있는 (또 이 글에서 이상한 모자님이 반복하셨던) 그 말이, 현실 공산권 붕괴 이후에 좌파를 지배하고 있는 무기력증을 넘어서 (라캉의) '실재'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로 들리거든요. 그런데 이 지점에서 지젝이 항상 말을 아끼곤 하는 탓에, '실재'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에 어떤 전망이 있는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어요. 마침 이상한 모자님이 언급을 해주셨으니까, 이 부분에 대해 묻고 싶어요. (지젝의) '실재'로 나아가야 한다는 언급들이 과연 "우울성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좌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지젝의 영화분석이나 현실분석에는 탁월한 점이 많지만, 지젝이 '실재'를 언급하며 미래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는 지점부터, 지젝은 차라리 좌파에게 마치 중세의 무반성적인 종교적 열정을 복원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상한 모자

2010.08.02 20:20:33
*.146.143.41

1. 코브가 눈을 뜬 이후의 표정을 잡는 장면부터 사실 불안 불안했습니다. 이전에 꿈에서 깨어나는 다른 멤버들이 숨을 몰아쉬며 죽다 살아났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것에 비하여 이 비행기 안에서는 그런 기미는 하나도 없고 그저 눈을 껌뻑이고만 있으니까요.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으러 나갈 때 사람들이 코브를 흘끔 흘끔 쳐다보는 장면에서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거 꿈일 수도 있어!' 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목적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 식의 연출을 할 이유가 없거든요.

2. 제가 지젝의 말을 옮기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냥 말을 옮기는 사람일 뿐이고 사실 세상 물정도 잘 모르는 사람에 불과하여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없네요. 다만, 우리가 혁명이나 그런 종류의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가 필요한데,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그런 종류의 열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무반성적인 종교적 열정이라기 보다도, 반성을 제대로 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죠. 지젝이 '전체주의가 뭐 어쨌다구?' 라고 말하는 것의 함의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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