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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메가뱅크’라고 한다. 산업은행지주가 우리금융지주 인수전에 참가하겠다는 발표 이후에 나온 얘기다. 이명박 정권의 ‘실세’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산업은행지주 회장으로 가면서 무언가 큰일을 벌일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지금 우리금융지주 인수전의 돌아가는 판을 보고 그 ‘큰일’ 이라는 것이 메가뱅크가 아닐까 하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세간에는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메가뱅크론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수준의 대형은행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메가뱅크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다른 경제적 역량은 세계 10위권 안에 든다고 자평할 수 있지만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소위 야당 인사들의 비판이 뜨겁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아예 작정을 한 듯 ‘메가뱅크 구상은 관치금융의 부활이며 감당해야 할 위험도 메가톤급일 것’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한국노총 소속금융산업노조 역시 ‘관치금융의 부활’을 거론하며 ‘메가뱅크를 추진하면 총파업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상황 덕택에 지난주 내내 주요 일간지의 경제면 기사엔 ‘관치금융’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다동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에서 '관치금융 철폐 및 메가뱅크 저지 금융노조 공동투쟁본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그렇다면 강만수 산은지주회장의 입장은 무엇일까? 강만수 산은지주회장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산은지주의 우리금융지주 인수는 산업은행 민영화를 완성하기 위한 방책 중 하나이며, 우리금융지주를 국내자본이 인수하느냐 외국자본이 인수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집권 이후 추진된 산업은행 민영화 정책은 기본적으로 시장에 대한 일방적인 신뢰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산업은행이 정책금융과 상업금융을 혼재해서 가지고 있으며 상업금융의 비중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으므로 장기적으로 민간금융의 발전에 제약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산업은행으로부터 정책금융은 분리하고 나머지 상업금융 부문은 민영화를 해서 민간의 시중은행이 아직 갖추지 못한 상업금융의 영역, 즉, 경쟁력 있는 투자은행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국가와 시장이 혼재되어 있는 산업은행에서 국가가 담당해야 할 부분은 떼어내서 국가가 담당하고, 나머지 시장이 담당해야 할 부분은 민간에 넘기되 이것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이것이 2008년 6월에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산업은행 민영화 및 한국개발펀드(KDF) 설립 방안’의 주요 내용이다.

산업은행이 가지고 있던 정책금융, 즉 ‘국가의 몫’은 ‘정책금융공사’라는 형태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남은 상업금융, 즉 ‘민간의 몫’을 민간에게 내주는 것을 지금까지 ‘산업은행 민영화’라고 부른 것이다.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민영화가 잘 진행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유는 산업은행이 매력적인 상품이 아니어서였을 것이다. 산업은행이 가지고 있었던 상업금융의 규모가 누군가 인수를 해봐야 이득을 보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이 강만수 회장 등의 생각인 것 같다. 때문에 금융권의 또 하나의 골칫거리인 우리금융지주를 인수해서 상업은행으로서의 모습을 확실히 갖추는 작업을 시작하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들의 계획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인정해줄 수는 없다. 산업은행측은 민영화의 밑그림이 싱가포르개발은행이나 독일의 도이체방크와 같은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연기금 등 국가의 여유 자원을 국부펀드화 하여 다른 국가의 부동산이나 산업에 투자하는 일을 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국가 재정의 일부를 말 그대로 투기화하는 것으로 신자유주의적 개혁조치의 대표적인 모델 중 하나이며 예측 불가능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필연적인 부작용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방식이다.



▲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연합뉴스

하지만 야권 일부의 비판이 이러한 차원을 넘어서서 ‘관치금융’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관치금융이라는 단어는 과거의 향수를 불러온다. ‘정경유착’이 큰 문제이던 시절 정부가 은행을 압박하여 공정한 시장원리가 아닌, 정부와 경제 권력의 불건전한 관계를 근거로 금융정책의 방향이 결정되어 결국에는 경제위기를 불러왔다는 식의 설명 말이다.

이는 외환위기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외환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취임사에서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을 언급하며 국가 경제를 시장원리에 충실하도록 하는 개혁에 착수할 것임을 천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프레임에서 본다면 ‘관치금융’을 해결하는 방법은 금융을 관에서 빼앗아 민간에 맡기는 것이다. 금융산업에 시장원리를 강화하면 공정한 경쟁이 유도되어 모두가 잘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즉, 여기에서도 시장은 ‘공정성’을 국가보다 더 잘 보증해줄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등장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산업은행 민영화는 금융산업과 국가재정을 세계적 관점에서 시장화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조치이다. 그리고 이는 엄밀히 말하면 이명박 정부만의 새로운 아이디어조차도 아니다.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에는 투자은행을 설립하고 파생상품을 활성화하며 연기금을 자산운용시장에 투입하고 사모펀드를 적극적으로 육성한다는 식의 ‘강만수 다운’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관치금융’을 언급하며 산업은행의 우리금융 인수를 비판하는 맥락은 두 가지 정도인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첫째는 그들이 아무리 복지정책을 이야기 하고 서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이야기해도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라는 피지배계층에 불리한 정책적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둘째는 전략적으로 끊임없이 ‘IMF 프레임’을 호출하여 단기적인 정치적 이득을 모색하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시장의 실패를 우려하는 소위 진보세력이 이러한 정치세력과 어떻게 정책연대를 할 수 있을지 잘 상상이 안 된다. 야권이 집권하는 방법보다 집권한 이후가 더 걱정된다. 연립정부를 구성해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핵심 세력이 신자유주의적 개혁조치를 계속 이어갈 때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정부에서의 ‘철수’ 말고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어쩌면 ‘메가뱅크’를 둘러싼 논란은 진보세력의 역량부족을 증명하는 것이며 야권연대는 시기상조라는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 이 글은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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