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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중앙위에서 비례대표 선출 방안에 대한 당 내 다수파의 의지가 관철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분당’과 ‘신당 창당’을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더 이상 ‘자민통’으로 대표되는 정치노선을 신념으로 삼는 사람들과 더 이상 당을 함께 할 수 없으리라는 현실 인식과 앞으로 당 권력은 강령과 당명 개정 문제를 포함해서 완벽하게 우리의 손을 떠날 것이라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주파가 당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한 마지막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는 까닭이다.

어떤 동지들은 사지에 남아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고 있고, 어떤 동지들은 한시라도 빨리 퇴각해서 새로운 진지를 꾸밀 것을 제안하고 있다. 어떤 동지는 지금 즉시 계획을 행동에 옮길 것을 촉구하고 있고 어떤 동지는 운동의 책임과 대중의 지지를 이야기 하며 보다 신중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정치적 결단으로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하는 점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당 내 자주파가 얼마나 잔인하고 패권적이며 비상식적이고 무능한지를 이야기 하는 것은 분당과 신당 창당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되지 못한다. 결국 그것은 권력 문제이고 비례대표를 둘러싼 권력 쟁탈 게임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좌파의 무능만을 고백할 뿐이다. 물론 당 내 좌파는 무능하지만 최소한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집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패배했는가? 우리가 지금 실로 반성하고 극복해야 할 민주노동당의 오류는 무엇인가? 이것이 분당과 신당 창당을 선동하기 전에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게 진지하게 던져야 할 물음이다. 진지한 자기반성과 성찰이 있을 때에야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이러한 것이 없는 악다구니와 우격다짐만으로는 분당은커녕 우리의 정치적 생명력을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이 자명하다.

나는 분당과 신당 창당을 주장하는 많은 동지들의 진지함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지들은 지금 최소한 갈팡질팡 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대중을 대상화 시키지만 우리 또한 대중의 일부분임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일방적인 선동의 악습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대신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가 왜 새로운 운동을 시작해야 하는지, 그 새로운 운동이란 어떤 것인지를 말이다.

지금과 같은 아마추어리즘으로 새로운 당을 만들었을 때 소위 좌파가 장악한 그 당의 집행부는 지금의 민주노동당보다 더 훌륭한 정치적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나는 의심스럽다. 고립의 두려움이나 패배주의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의 좌파 동지들이 자주파와 역사적 순간을 공유했고 거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걷어 차버릴 수 있을 때에야 우리는 민주노동당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는 바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나는 철학과 사상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오늘날 우리는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진 온갖 사상들의 자투리들을 보고 있지만 그 중 우리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까지 판단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은 아니다. 남한 사회 변혁 운동의 철학적, 사상적 오류는 무엇이었는가? 직설적으로 말하면 나는 정당 운동으로서의 스탈린주의와 노동조합 운동으로서의 생디칼리즘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말하고 싶다. 

스탈린주의에 대해

이미 다른 동지가 말했듯이, 스탈린주의를 협소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특별히 소련 체제나 일당 독재와 같은 제도적 측면에서의 문제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스탈린주의는 레닌 이후 왜곡되고 잘못 이해된 가장 속류화된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대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가 세계의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가 세계를 변혁할 것이라 이야기 하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주의를 뒤엎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이유는 쪽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잘났기 때문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식의 인간주의-휴머니즘, 그리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비과학적인 무언가를 전제하는 관념론이 마르크스주의를 배반한 스탈린주의 철학의 특징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노동자가 노동 해방을 해야 하는 이유가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곤 하는데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자료에서 그런 식의 논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돈 벌어서 효도해야 하기 때문’ 이라고 대답하지 않는 것인가? 양쪽 다 ‘인간 본연의 모습’, ‘효도’ 라는 규명되지 않는 비과학적 가치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구조에 종속된 그 누가 ‘구조에서 독립적으로 자유로운 개인’을 미리 규명할 수 있어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사회주의의 사상적 시조 마르크스와 스탈린의 운동 선배인 레닌은 단연코 이런 식의 허술한 논리를 전개하지 않았다. 이런 허술함이 가져온 대표적 폐해가 바로 독일에서의 나치 집권이다. 스탈린주의를 충실하게 교시했던 코뮌테른의 발명품 단계론에 따라 독일 공산당은 반파시즘을 해야 한다고 했다가 사회민주주의를 적으로 삼아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주장하다가 했다. 결국 전 세계 우파의 최대 걸작인 나치가 집권할 때 까지 노동자 국가의 충실한 시녀는 이를 방관하기만 하였다는 혐의를 벗을 수 없게 되었다.

코뮌테른이 전 세계 각국에 교시하는 이 멋진 ‘혁명 공식’은 한국에도 그대로 수입되고 변용되었다. 80년대 유행했던 사회구성체 논쟁은 사실 NLPDR 이라는 혁명 공식에서 무엇부터 시작할 것인지에 대한 열렬한 탐구로 귀결되었다. 한국사회를 제 나름의 방식으로 열심히 분석한 결과, 운동 내 우파 진영은 NL부터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운동 내 좌파 진영은 이제 PD를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양쪽 다 진지하게 NLPDR이라는 박제화 된 혁명 공식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할 줄을 몰랐다. 운동 내 우파 진영은 아직까지 NLPDR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지만 좌파 진영은 단지 그것을 외면하고 있을 뿐이지 이것을 완전히 극복해본 일이 없다.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운동을 갈망하고 있다면 그 운동에서 극복해야 할 것은 결단코 ‘민족주의’가 아니다. 논쟁의 국면에서 좌파와 민족주의자와의 갈등을 상정한다면 우리는 ‘계급이 먼저냐 민족이 먼저냐’와 같은 황당한 논쟁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들의 ‘한민족이 뭐가 나쁘냐?’는 프레임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논쟁이 사회적 담론의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주파 사상의 정체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스탈린주의이기 때문에 운동의 영역에서는 이러한 논쟁에서 좌파의 비판이 자주파들의 사상체계에 아무런 충격도 가하지 못한다. 

소위 일심회나 북핵과 같은 북에 대한 태도의 문제부터 패권주의적, 일방주의적 당 운영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민주노동당 내에서 자주파가 미움 받았던 이유 중 스탈린주의 철학이 구체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은 문제가 없다.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해야 한다. “가라, 스탈린주의자들이여! 실패한 국가 사회주의와 함께!” 이것은 ‘반-조선노동당’도 아니고 ‘반-민족주의’도 아니다. 이것은 보다 근원적인 철학에 대한 물음이다. 우리가 만들 새로운 운동은 스탈린주의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실패한 사상에 목을 매는 어떤 바보 같은 집단과는 이제 갈 길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 이것이 가장 분명하게 우리가 자주파와 결별하는 길이다.

생디칼리즘에 대해

생디칼리즘이란 노동조합으로 혁명을 하겠다는 사상이다. 남한에는 80년대 전노협 시절에 자생적으로 탄생한 바 있다. 오늘날 노동조합 운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주의와 비과학적 인간주의 등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생디칼리즘을 넘어서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바로 이 문제들이 80년대 생디칼리즘에서 비롯되어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80년대와 같은 상황에서는 생디칼리즘은 사실 어쩔 수 없이 이용되었던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전노협을 거쳐 민주노총이 만들어지고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생디칼리즘 특유의 비타협적 전투성이 상실되어가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운동 활동가들의 일부는 재빨리 ‘노동자 정치세력화’ 구호를 외치며 표류하는 노동조합의 정치적 지향을 붙잡아 고정시키려 노력했으나 잘 성공하지 못하였고 결국 오늘날과 같은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다.

핵심적인 문제는 생디칼리즘 노선을 추구했던, 또 지금까지도 추구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혁명적 사상은 노동 계급의 외부에서 온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운동이 전체 변혁 운동에 복무하려면 노동조합 그 자체만이 아니라 외부의 변혁적인 그 무엇이 노동조합 운동 내에 지속적으로 개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많은 생디칼리스트들이 ‘노동조합 본연의 활동’을 열심히 하면 노동계급이 중심이 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한다. 심지어 노동조합은 부르주아 헌법에도 그 기능과 권한이 보장되어 있는 기관인데 말이다!

유일하게 노동조합이 변혁적일 수 있는 순간은 조합원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외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자본주의 사슬에 포함된 ‘창문’ 역할을 할 때뿐이다. 노동조합 운동 활동가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그 무엇을 체험하고 직관할 수 있도록, 창 너머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물론 오늘날의 생디칼리스트들도 노동조합이 이러한 변혁적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러분, 창밖을 보세요. 그곳이 자본주의 세계의 너머랍니다. 저 곳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치적 영역에서 바람직한 답은 “진보정당을 지지해야 하겠습니다.”이다. 그러나 생디칼리스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노동조합 활동, 투쟁을 열심히 해야지요.” 이는 결국 동어반복이다. 대중 조직과 당 조직은 이러한 방식으로 종종 혼동된다.

그러한 결과가 오늘날 더 이상 변혁적인 전망을 가지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노동운동이다. 생디칼리즘에서는 명확하게 노동조합 내부에만 바람직한 정치가 존재하지만 오늘날 우리 노동운동에 존재하는 사상은 타락한 것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는 노동조합에서 정치가 사라졌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노동조합 안에만 정치가 존재하다가 하는 꼴이 되었다. 전자의 경우가 오늘날 만연한 경제주의로 나타났고 후자의 경우가 ‘100만 민중대회’, ‘민주노총 독자 후보론’ 등의 조야한 노동자주의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오늘날 노동조합 운동에서 변혁을 이야기 하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정치’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조합원들에게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다.

생디칼리즘의 극복은 오히려 생디칼리즘의 원형을 다시 사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타락한 사상으로부터 소위 전노협 정신을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새로 태어날 전노협 정신은 20년 전과 같은 모양이 아니라 그 외부에 진보정당과 진보정치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사회운동적 대중정당에 대해

실천적으로 당 운동은 보다 과감하고 보다 실험적인 내용을 가지도록 거듭나야 한다. 보수정당과 같은 조직 시스템을 고민하는 것은 득표나 의회정치에 잠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광범위한 대중들의 지지를 얻는 데에는 결국 실패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우리가 혁명(?)을 완수하기 전 까지는 그 누구도 우리의 편이 아니다. 모든 질서가 보수정치의 취향으로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오늘날과 같은, 대중 속에 뿌리가 튼튼히 박히지 않은 진보정당 조직은 지배계급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무너뜨릴 수 있는 사상누각에 불과하지 않은가.

오늘날의 대중들이 정치에 냉소하는 것은 정치가 자신들의 곁에 있지 않고 티비 브라운관 너머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2002년의 노무현 돌풍을 떠올려보자. 그때 노무현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것은 특정 지역이나 거물 정치인, 거대 자본이 아니라 바로 나 한 사람의 보잘 것 없는 실천이 거대한 정치권력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 민주주의의 환상에 정확히 걸맞게도 내가 표현하는 무언가가 엄청나게 큰 존재인 국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기대가 이토록 전국적이고 광범위하게 나타났던 때는 선거 역사상 2002년이 유일무이하지 않나 싶다.

물론 그러한 기대가 꺾여버린 오늘날에는 그것이 더 거대한 냉소로 다시 태어나 이명박에 대한 ‘묻지마 지지’로 이어지고 있지만, 거꾸로 우리는 거기에서 대중이 무엇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를 꿰뚫어 보아야 할 것이다. 대중들은 여전히 정치적 영역에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찾고 싶어 하고 승리의 경험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부족한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에게 작은 경험이나마 자신의 것으로 겪을 수 있게 해준다면 변혁을 향한 대중의 정치적 열망은 지금보다 곱절은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대중들과 직접 피부를 맞댈 수 있는, 지역에서의 변혁운동이 중요하다. 그것은 기존 정당 활동의 범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과감한 실험이 되어야 할 것이다. 티비 브라운관 너머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정치가 존재하며 자신의 인식 체계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대중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그것은 공간의 문제로 귀결될 수도 있는데, 일각에서 추진되고 있는 ‘민중의 집’ 사업 등은 이런 측면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할 수 있겠다. 

그런 고민의 연장선상에서는 유럽의 많은 진보정당들이 과거부터 가지고 있었던 지역과 관련된 활동 등을 돌아보고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이것의 한국적 변용이 어떻게 하면 가능할 것이며 대산별노조의 지역본부와 어떠한 연관성을 가질 수 있는지 창조적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모래 위의 성이 아니라 튼튼한 토대를 건설하는 일이다. 상층고공정치에 일희일비 하느라 소비해버린 우리의 진보적 상상력을 다시 일깨워야만 한다. 계속해서 밀어닥치는 선거에 대응하면서 하루의 생명을 어떻게 연장할까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직하게 10년의 계획을 작성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아쉽게도 최근 사민주의자를 자청하는 일부 의회주의자들은 자칭 사회주의자들에게 선거 대응이 당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역사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들 중 또 어떤 이는 영국노동당 모델을 주장하면서 지역조직에 집착하지 않고도 충분히 진보정당 운동을 해나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민주노동당에 민주노총이 영향력을 가지는 것을 비판하면서 노동조합의 집단 가입 전통이 있는 영국노동당 모델을 주장하는 것은 좀 아이러니한 일이지 않은가.

결국 이들은 단지 변혁운동의 문제를 회피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증상이 대면하길 요구하는 문제를 어거지로 회피하는 것은 또 다른 질환을 불러올 뿐이다. 이 땅의 새로운 변혁운동을 준비하는 세력은 당면한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고 가장 올바른 해답을 내놓아야만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노동조합운동에 대해

다시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어찌됐건 더 이상 노동조합운동을 이 상태로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앞의 문단에서 나는 우리 노동조합운동에서 생디칼리즘이 문제였고 생디칼리즘으로부터 다시 이 문제를 사고해야 한다고 적었다. 그것은 노동조합운동에 정치성의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되, 그것이 적절히 응집될 수 있는 구심이 외부에 존재하도록 운동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민주노총 모델은 그렇지 않았던가? 물론 민주노동당 배타적지지를 선언한 초기에는 이것이 그러한 모델로 발전되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랬다. 그러나 모든 것이 뒤틀려버렸다. 오늘날 민주노동당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운동을 열망하는 대중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거듭된 후퇴로 민주노총은 단지 민주노동당에 돈을 대주고 그것을 통해 일정 지분을 보장받는 조직이 되어버렸다. 민주노총의 그 돈은 어디서 나왔는가? 돈의 상당부분이 정규직 노동자들, 그래도 살 만한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민주노동당이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매수당해서 비정규직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그것이 그저 그런 사실일 뿐이다. 노동조합 운동과 진보정당의 필요성과 역할이 승리를 경험해본 일이 없는 그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서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노동조합운동은 지리멸렬 할 것이다.

핵심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고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미 기반이 단단한 노동조합운동, 이제 어느 정도 할 만한 노동조합 운동에서의 기득권은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정규직, 비정규직 편을 가르자는 이야기인가? 비정규직만 중요하고 정규직은 안 중요한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현실에 안주하는 정규직 노동조합운동의 가슴에 새로운 불을 붙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주의에 찌든 정규직 노동자들과 정치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연대 투쟁이 사회적 의의를 가지며 그것이 곧 진보정치를 통해 유의미한 정치적 영향력을 분출될 수 있다는 기대감과 확신을 체득할 수 있는 기회가 똑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상실하거나 혹은 아직까지 얻지 못한 것이 바로 이러한 정치의 영역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경제주의를 원한다고 해서 경제주의를 던져주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분노를 흩뿌릴 대상을 찾는다 해서 아무 의미 없는 난타전을 만드는 현재의 노동조합운동의 방식은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누군가 진보신당을 말하고 그것을 위한 분당을 이야기 한다면, 새로 출현할 진보 정당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지향의 운동이 지지할 수 있는 당으로서 처음부터 출발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형태의 노동조합 운동이 존재할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운동은 어떤 진보정당을 지지할 것인가가 진정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직면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만 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한 예로서 프랑스의 ‘SUD노조’와 같은 모델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물론 이들은 글자 그대로의 전형적인 생디칼리즘에 충실한 조직이지만 자신들의 투쟁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하고 있고 또 그것을 정치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법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참고해봄직한 조직이다. 현재 존재하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운동에 SUD노조와 같은 조직 원리를 접목시킬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조직이 새로운 진보정당을 사실상 배타적으로 지지하게끔 할 수 있다면 기존의 조직된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도 진보정치의 새로운 진정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조합 조합원들에 대한 심도 있는 교육이 받쳐주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계획이다. 따라서 새로운 진보정당의 창당준비위원회부터 노동조합 운동에 개입하기 위한 교육 기구를 조직하는 것이 시급하고 필수적이며, 이 교육 기구의 커리큘럼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이념을 대표해야 하고 앞서 언급한 지금까지 우리 운동의 한계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내용이 되어야 한다. 지금 노동조합 운동이 대중을 겨냥해 만들어 내는 그저 그런 교육자료와 같은 수준의 내용이면 안 된다.

이 새로운 노동조합운동의 조직은 민주노총에 종속적인 처지여도 안 되지만 배타적인 관계를 형성하거나 분리된 조직일 필요도 없다. 민주노총이 냉정하게 내칠 수 없는 조직임과 동시에 민주노총에 버림을 받아도 하나 아쉬울 것 없는 조직을 지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들이야 말로 노동조합운동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외쳤던 ‘산별정신’의 놓쳐버린 중간 고리를 메꾸는 핵심이다.

남은 문제들

어쨌든, 분당과 신당 창당이 필요하다면, 분당과 신당 창당을 실제로 추진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우리가 낡은 껍질을 벗어 버리고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이 낡은 껍질인지, 뭘 딛고 일어서야 하는지, 연구하고 논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한 두 사람의 별 볼일 없는 머리에서 나올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변혁운동에 복무해온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정리해보고 따져보아야 한다. 이 글은 단지 그러한 수많은 작업의 일부가 될 것을 염두에 두고 쓰여 졌다. 나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해야 남들에게도 무슨 말이든 해보라고 재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우리 안의 수많은 차이들, 수많은 논쟁지점들, 수많은 불평불만들을 나중에 해치울 일로 미뤄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분당’에 이르러서는, 드러내놓고 논쟁 하고 성숙하게 결론을 낼 때도 되었다. 

나는 당의 외부에 새로운 변혁운동을 위한 일종의 위원회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외연을 넓게 가져서 사회당의 대표이든 노동자의 힘의 대표이든 함께 머리를 맞대고 어떤 새로운 운동을 해야 하는지,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든다면 어떤 조직이 되어야 하는지 함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운동 역사로 볼 때 더 논의할 것도 없어 보이지만, 그간 많은 세월이 지났고 각기 운동의 한계에 부딪쳐 있기 때문에 오랜만에 의미 있는 논의를 만들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한 논의 이후에 여기에서 가장 시급하게 조직되어야 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조합원들과 새로운 진보정당의 당원이 된 이들을 위한 강력한 교육 기구이다. 이 교육 기구에는 물론 상당수의 전문가와 진보적 지식인, 그리고 실제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변혁운동의 활동가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 교육 대상의 수준별로 현재 수준에 비추어 좀 더 프로페셔널한 내용들을 제공할 수 있는 정도의 역량을 갖출 필요가 있다.

또한, 당장 분당과 신당 창당이 시급한 정치적 일정으로 다루어지고 있고 당 내 좌파가 그것에 대한 시급한 판단을 요청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할 때에는 즉시 결단을 내리는 기민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결단마저도 일정한 목표를 가지고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분당’ 과 ‘신당창당’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 진정한 목표는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 내는 것’ 이어야 한다. 분당과 신당창당은 그것을 위한 방법론 중 하나일 뿐이다.

지금까지 위에 서술한 내용은 나 자신이 최근까지 느껴왔던 문제의식을 토대로 생각해본 ‘새로운 운동’의 실루엣이다. 동지들은 이 내용에 동의할 수 있는가? 전진은 과연 이런 내용들을 토대로 실천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운동 언저리에 5년 있었던 것 가지고 쓴 얘기라 15년, 20년 인생을 걸고 운동한 사람들 성에 차지 않는 얘기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정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분당과 신당창당에 대한 명확한 논리가 서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운동의 문제와 그 원인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이, 당장 눈앞에 놓인 약간의 불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더 큰 불만과 그에 대한 불평을 쏟아내야 한다. 그러한 작업 없이 말로만 반성한다하고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으면서 분당을 하고 신당을 창당한다 해도 우리에게 무슨 발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지금 그야말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책임있고 생산적인 논의와 토론이다.

이상한 모자

2011.06.21 13: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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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입장은 뭐냐, 이런 말도 있어서 분당 시기에 전진 내부 게시판에 쓴 조잡한 글을 올린다. 원래 여기에 있었는데 홈페이지 보수 과정에서 유실됐는지 없더라.

여기 나온 이런 문제의식으로 분당을 하자는데 동의한 사람들도 있고 긴 글도 몇 편 나오고 그랬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과연 이런 대단한 일을 할 생각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생각이 아예 없었거나 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독자파는 대답해야 한다. 통합진보정당 안 하면 이걸, 아니 이런 비슷한 거라도 할 수 있는건지.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지금까지 못한 이유는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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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정치평론 이상이 교수 인터뷰에 대한 짧은 감상 file [12] [1] 이상한모자 2011-01-11 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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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코미디 전진 떡밥 (6) - 빨갱이들의 귀환 [7] 이상한 모자 2008-08-09 13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