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현안에 대한 답변
명절에 심심들하셨는지, 여러 질문을 보내오셨는데 카테고리를 좀 나눠서 답변을 해야 할 것 같군요. 먼저 정치 일반이나 현안에 대한 질문을 보내신 것에 대해 답하겠습니다.
Q: 평론가님의 종교적 배경이 궁금합니다. (최○○)
A: 어렸을 때 교회를 다녔습니다. 목사 아들과 친구였습니다. 그러다 사춘기 때문인지 큰 회의를 느껴 교회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지금은 종교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세뇌를 당해 종교라는 두 글자를 듣기만 해도 이런 노래를 부르는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높으신 양반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우릴 구원 못 하 네… 이렇게 말하면 꼭 교회 나가는 사람은 바보라는 거냐 이렇게 반응하는 분들이 있는데, 다른 분들의 종교 활동을 지지하고 존중합니다. 이상한 활동을 하는 것만 아니면…
Q: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될것 같나요 (문재인전대통령)
A: 우울한 질문이군요.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구도를 떠올리고 싶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예: 한동훈 이준석 이재명의 3자구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종신집권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누가 차용증을 쓰고 돈을 꾸어준다면 제가 좀 해볼까 합니다. 정동영 씨가 나온 대선에 이회창 씨가 한 220억인가를 어디서 빌리더군요. 그게 15년 전이니까 저도 500억 정도는 써야되지 않을까요? 당은 너희들모두혼내준당 소속으로 하겠습니다.
Q: 진보 정당은 앞으로 어찌해야할까요ᆢ ㅜㅜ (이상한양말)
A: 예를 들어 영끌로 집을 샀는데 지속적인 금리 인상으로 한 달에 갚아야 할 이자가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 됐습니다. 손해를 감수하고 집을 도로 팔자니 거래 절벽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 없죠. 진보정당이 그런 처지입니다. 답은 없습니다. 없는 겁니다. 그런데 앞으로 더디더라도 가야 할 방향이라는 건 얘기할 수 있겠죠. 이럴 때는 아쉬운대로 장 선생님의 글이라도 읽어봅시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57155.html
Q: 아무래도 시사 방송에 좌파 측 진행자들이 많다고 보여지는데요. 개편 시즌이 오면 우파 쪽으로 싹 물갈이 되나요? 그러면 김민하 선생님도 한겨레 정도 빼고 방송이 확 줄게 되나요…? 화이팅… 적당한 추석 보내시길… (개복치)
A: 미래를 어찌 알겠습니까만, 그보다 먼저, 선생님이 생각하는 그들은 좌파가 아닙니다. 이게 좌파들끼리 누가 더 씨뻘건가를 두고 벌이는 나만 좌파야 경쟁이랑은 다른 얘깁니다. 실제로도 그들은 스스로 좌파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저는 좌파입니다. 우리 좌파들이 이런 문제에 민감합니다. 누가 좌파인지 밤새워 논쟁하느라 정작 할 일은 못합니다. 지금도 그러네요. 질문이 뭐였죠? 종편도 있고 유튜브도 있고 방송장악 필요성이 옛날만큼 크진 않을 겁니다. 그러나 뭐라도 하고 싶은 분위기가 분명히 있는 건 사실입니다. 물론 방송장악의 범주에 한겨레와 같은 매체가 포함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겨레의 인터넷 방송은 다른 잘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바뀌거나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마음을 비우고 살아야 합니다.
Q: 스승님 전 대통령 선거 이후 취하지 않으면 잠도 잘 못자고 태극기 부대처럼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됐습니다. 사람이 나이들면 유해진다 그러는데 다 개소립니다. 저는 더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매일매일 뉴스를 접할때마다 너무너무 화가나서 돌아버렸습니다. 앞으로 오년동안 어떤 마음가짐으로 생활해야 정신건강을 조금이라도 보전할 수 있을까요? (나○○)
A: 괴로울 때마다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를 읽으십시오. 대통령 선거 결과가 달랐다고 칩시다. 또 다른 어떤 복잡한 이유로 괴로웠을 겁니다. 지금 괴롭지 않은 분들도 3년 후 정도에는 반드시 괴롭습니다. 제 책을 보시면 만능 스위치가 없는 방에 대한 비유가 나오는데요. 우린 그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누가 대통령을 하든 세상은 어쨌든 굴러간다는 말입니다. 황교안 권한대행 시대도 있었습니다. 벨기에인가 어디는 실제로 무정부 상태가 몇 달이나 계속된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봐도 정 진정이 안 되면 보리밥 정식에 막걸리라도 한 잔 하면서 성대모사를 연습하십시오.
Q: 안녕하세요?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칼럼 잘 구독하고 있습니다.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도 잘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김민하님 평론의 차별성은 드러난 현상을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현상 이면의 본질과 원인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양쪽 진영 다 문제가 있다는 양비론적 태도가 자칫 지당하신 말씀처럼 느껴져 힘이 좀 빠질 때가 있어요~^^ 그리고 저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데 저같이 평범한 일반인이 정치에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이상한 모자님의 경험담도 듣고 싶네요~ 평론가님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인사드렸습니다~^^ (김○○)
A: 감사합니다. 효능감 그거는 시간 나실 때 천천히 책을 다시 한 번 읽어주셔도 좋겠는데, 이 말씀 왜 드리냐면 아직은 그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뭔가 진전된 얘기를 하려면 저도 생각과 고민을 더 해야되겠지요. 그건 그렇고 양비론이라는 말은 남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쪽은 똥먹고 또 다른 쪽은 오줌을 먹는데 배설물 먹는 것은 그만두라고 말해야지 뭐 어떻게 할까요? 평론가가 지당한 말을 해야지, 어떤 평론가처럼 “나는 친윤이고 너는 두 시 청년이다”해야 할까요? 또 요즘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가만 보면 이쪽 저쪽 말고 제3의 선택지가 있다거나 하는 주장도 모두 양비론이라는 정해진 답에 가두는 어법이 종종 보이는데, 고약합니다. ‘1, 2번 선택지’와 ‘제3의 선택지’를 대립항으로 보면 ‘제3의 선택지’를 말하는 사람은 양비론이 아니고 한쪽 편을 드는 거죠. 이걸 굳이 양비론의 논리에 가두는 전제 자체가, 선택지는 1, 2번 뿐이라는 건데, 그게 오히려 어떻게 보면 양비론의 구도를 되살린다는 점에서 양비론을 비판하는 양비론인 것이 아닐까요? 양비론 비판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이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쪽은 복지 축소를 말하고 한쪽은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데 거기다 대고 피곤하니 둘이 그만 싸우라고 말하는 거죠. 그런데 요즘 정치권 논쟁은 이런 게 아니고, 네가 수사를 안 받는데 왜 나만 수사를 받아야 하느냐 이런 식 아닌가요? 그러지 말고… 내가 받을테니 너도 받아라, 라고 말하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말하는 게 양비론일까요? 물론 방송이라면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말을 해야 하니 허무할 때도 있겠습니다. 사실 글도 제한된 지면이라는 점은 그렇지요. 그래서 긴 책을 썼지 않습니까? 책도 양비론이라고 하면 그 다음엔 뭐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없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