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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조국

자기들 좋을대로

2020년 9월 4일 by 이상한 모자

조광조님이 재판에서 증언거부권을 행사했다. 오늘 그 얘기를 했는데, 이게 오히려 판사의 유죄심증 형성할 수 있고 여론이란 측면에서도 좋지 않다… 검찰이 질문한 내용은 다 내일 신문에 날 건데… 검찰에선 진술 거부하고 재판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더니 증언 거부하면 누가 그걸 받아들이겠냐… 그랬다. 중요한 건 이걸 다 알면서도 했다는 거다. 법정에선 법적리스크 최소화만 신경쓰고 여론은 SNS로 때우겠다 이거 아니겠나. 뒤집어 말하면 일부 혐의는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이겠다.

백서들은 체제의 모순까지 조국이 책임져야 되느냐 이러는데, 여러 차례 썼지만 죄가 되느냐 여부와 이런 일을 한 사람을 법무부 장관시키는 게 맞는거냐는 다른 문제이다. 조광조의 SNS 세계에선 아니겠지만, 재판은 여기에 죄까지 되는 거냐의 문제이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조광조님은 주요 혐의에서 무죄가 예상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관계없다. 검찰 수사에 의도가 있고 거칠게 진행됐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겨레의 어떤 분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그럼 이재용 부회장 수사는 어떤가. 삼성 변호인단은 무엇보다 검찰이 이 부회장을 목표물로 삼은 동기를 적시하지 못한다. 변호인단뿐 아니라 그 누구도 검찰의 부당한 동기를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또 50여차례의 압수수색과 몇백차례의 임직원 소환조사를 과잉수사라고 주장하는 축도 있는데, 사건의 중대성과 복잡성에 비춰보면 최선을 다한 수사였을 뿐이다.

잭슨의 연설을 읽으며 떠오르는 것은 그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다.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는 동기 분석이 나오고, 70여차례 압수수색으로 상징되는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아무리 봐도 기소된 혐의와 수사 규모·강도가 비례하지 않는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60671.html

이재용 수사는 맞고 조국 수사는 틀렸다… 근데 시중에 의혹이 제기되는 사안에 대해 수사에 착수를 하지 않으면 실체를 어떻게 파악하나? 그마저도 수사를 무력화할 수 있는 여러 수단을 이미 갖추고 있는 대상에 대해서? 권력에 대해서는 수사를 하지 않고 기소를 하지 않는 게 문제이지, 수사를 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흑서들이 계속 언급하는 일본인의 수사지휘권 발동… 그것도 불구속 수사를 하라는 거였다. 그 대상자는 이케다 하야토와 사토 에이사쿠였고 둘 다 수상이 됐다. 당시 요시다 시게루 총리의 원투펀치로 이미 거물들이었다.

개혁은 개혁이고 통치는 통치다. 이 정권도 엘리트 통치를 하시잖아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아니잖아. 그러면 통치에 무슨 컨센서스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수사 재판에 비협조, 그러면서 언론 통해서는 하고 싶은 말만… 이게 가리키는 모델은 전에도 지적했지만 분파별 이익공유가 통치를 대체한 남미형 정치다.

언론이 논조를 달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윤총장 말마따나 정론지면 체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 사람이 한 얘기를 이리 저리 재단해서 구미에 맞게 써먹을 일이 아니다. 그러고보면 요즘 습관화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령 아래의 글을 보라.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은 한국에서도 이에 관한 논쟁의 장을 열고 있다. 사건에 대해 어떤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는 또다른 정치적 올바름의 과잉 아닌가. 86세대의 ‘내로남불’도 안 되지만, 정치적 올바름의 남용도 안 된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60127.html

(물론 나는 위와 같은 서술 방식 또는 견해에 반대하는 한겨레 기자 몇몇을 알고 있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조국, 한겨레

백서와 흑서들이 사는 세상

2020년 8월 30일 by 이상한 모자

얼마 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백서 흑서 얘기를 했다. 백서에 대해선 그랬다. 조국 씨가 억울한 게 있을 수 있고 검찰과 언론의 만행도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일가가 실제로 한 일들만 따진다 하더라도, 그걸 기득권이면 모두 하는 일로 일반화하고 정당화 하는 게 옳은가? 우리 사회의 기준은 그 정도면 되는 것인가? 흑서에 대해선 그랬다. 분명 새겨들을 말이 있다. 특히 이 정권 지지자들 사이에 ‘대안적 서사’가 만연해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들의 주장은 그러한 ‘대안적 서사’에 또다른 서사로 대항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게 아닌가 의문이라고 했다. 물론 권력이 기획을 하다시피한 백서와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어댄 얘기를 책으로 만들고 흑서랍시고 하는 걸 동렬에 놓고 비교할 일은 아니긴 하다.

아무튼, 그럼에도 세상 만사 다 똑같아서 지겹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 횡행하는 논리… 조국이 미워서 윤석열을 지지하겠다든지, 윤석열이 미워서 조국을 지지하겠다든지… 정권에 속았다 이러면서 사뭇 비장하게… 이런 게 말이 되나? 조국 윤석열이 선거 나갔습니까? 지지하고 말고 하게? 걔네가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하고 억울한 건 억울하다고 하고, 그와 별개로 정권의 성격을 평가하고… 그러면 그만 아닌가?

이제는 뭐만 하면 박근혜랑 뭐 다르냐, 최순실이랑 똑같다 이러는데 물론 굳이 같은 점을 찾자면 찾을 수도 있다. 그걸 근거로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도 그걸 성실히 하면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냥 인상 하나를 단편적으로 떼서 봐라 박근혜랑 최순실이랑 뭐가 다르냐, 이러는 건 그럼 뭐 다른가?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종류가 다르다는 것이다. ‘더 낫다’는 게 아니고,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이걸 앞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이해를 못해. 더블민주당에 실망했으니 난 이제 보수정치를 지지… 이게 상품논리라고 얘기를 해도… “문정권이 박정권보다는 낫다”는 단순비교로 받아들인다. 빼빼로에 실망했다고 새우깡을 사겠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그게 아니고 원래부터 새우깡을 살 생각이었고 난 새우깡이 좋다… 그러면 새우깡을 사세요 누가 뭐라고 합니까?

왜 이런 세상이냐? 원래 이게 근대 민주주의의 문법이다. ‘지지한다’는 게 핵심이 아니고 ‘반대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모양 이꼴로 사는 것이다. 이거 처음 하는 얘기 아니야. 작년에도 했지. 서초동 촛불 어쩌고 할때. 봐라.

현대 민주주의에서 대중의 직접 행동은 무언가에 대한 요구보다는 ‘반대’하는 차원에서 이뤄진다. 예를 들면 민주주의를 요구한다는 것은 ‘독재정권에 반대한다’는 명확한 반대논리가 있어야 가능해진다. 2017년 조기 대선을 가능케 한 촛불집회 역시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의한 통치를 반대하자는 것이었다. 이른바 ‘운동권’들은 습관적으로 자신들이 선호하는 의제를 말하며 “촛불의 명령”이라고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야말로 이러한 반대 논리의 실천적 결론이었다. 28일의 시위도 마찬가지다.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검찰의 과잉수사와 이를 주도하는 인물로 비춰지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전횡에 반대한다는 것이고, 이의 실천적 결론이 ‘조국 수호’인 것이다.

(생략)

이 결과 남는 것은 오로지 이해득실과 손익계산이 정치의 본질이 되는 냉소적 세계관이다. 여기에는 어떤 가치판단이나 대의명분이 설 자리가 없다. 다들 어떤 당위를 내세우는 것 같지만 실제 가치와 명분은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대상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 세계관에서 앞서의 ‘열광’은 ‘각자도생’과 동전의 양면을 구성한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2546

글을 하나만 쓴 게 아니예요. 지겨워.

대중이 직접 거리로 나오는 ‘투쟁’은 대개 비주류 의식의 발현이다. 기성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기득권에 대항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다. ‘서초동’과 ‘광화문’은 서로를 가리켜 기득권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자신의 기득권적 속성은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따라서 이것은 텅 비어있는 대중투쟁이며 양쪽의 대립은 기만적 포퓰리즘의 대결이 될 수밖에 없다. ‘서초동’과 ‘광화문’의 배후가 되고 있는 정치세력들은 각자 이런 상황의 이해득실을 계산하며 정치적 이득을 재생산하기 위한 정치에 골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 실종된 것은 ‘대의정치’가 아니라 기만적 대립구도에 파열을 낼 ‘대안적 정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대안적 정치’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것 중 하나는 ‘서초동’이냐 ‘광화문’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대중투쟁의 ‘스펙터클’이다. 200만이니 300만이니 하는 데에만 몰두해서는 이 함정을 빠져나갈 수 없다. 그런데 언론과 기성 정치는 빠져 나가긴커녕 오히려 스스로 함정 속으로 몸을 던지는 상황을 계속해서 연출하고 있다. 이런 자해적 몸짓이 아니라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이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3224

이런 똑같은 관계가 백서와 흑서 사이에도 성립한다고 본다. 이제 또 그러겠지… 무슨 얘긴지 다 아는데 난 더 이상 이 정권을 지지할 수 없다… 난 처음부터 지지 안 했으니까 그건 맘대로 하시라고요!!! 제발!!!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조국

그게 뭐 어쨌다는

2020년 6월 23일 by 이상한 모자

지난 주에 어떤 분이 막 의기양양해서, 존 볼턴이 책을 냈다고,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없었고 트럼프는 이 상황을 이용하려고만 했다는 게 드러났다고, 거봐라! 막 으스대는 것이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비핵화 의지든 빅딜 스몰딜이든 각각의 전제가 있다. 무조건 하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 조건을 맞춰가자는 게 지금까지 한 일이었다. 수십차례는 했을 얘긴데 이럴 때마다 다시 처음부터 얘기해야 한다.

존 볼턴이 사실왜곡을 했고 막 부들부들하는데, 난 참 뭔 말인지 모르겠다. 존 볼턴이 쓴 얘기는 대략 그럴 것으로 예상됐던, 아마 너는 그렇게 봤으리라 생각했던, 뭐 표현하기에 따라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뭐 그런 것들이다. 디테일에서 사실을 왜곡한 게 없지는 않겠지만 큰 틀에서 없는 일을 지어낸 건 없어 보인다. 나머지는 존 볼턴의 해석, 의견, 느낌이다. 이걸 갖고 뭐 어쩌구 저쩌구 엉엉 너무 피곤하다. 한겨레의 이런 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0464.html 뭘 어쩌자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된다. 존 볼턴 책 갖고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은 크게 두 경우 아닌가 한다. 첫째, 정파적 유불리가 중요하다고 생각… 둘째, 원래 북핵문제에 관심 없었음…

존 볼턴의 회고는 자기 앞가림 제대로 못하는 두 지도자 사이를 중재해 그래도 뭔가 되는 일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이 정권의 노력을 오히려 보여 준다. 하노이 회담에 이르는 과정까지는 잘했다고 평가해왔다. 그 이후가 문제지.

내 생각에 진짜 문제는 그나마 그게 한반도 평화든 뭐든 뭔가 대의에 입각해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던 주체는 문통이 거의 유일했다는 거다. 정부 여당 인사들 중에 어디 공개적인 자리 나와서 진심을 갖고 진지하게 한반도 평화 얘기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다들 경제를 말하거나(통일은 대박이다?) 지지율이나 선거에 좋은 영향 뭐 이딴 소리만 했다. 민족주의가 문제가 아니고 민족주의조차 없는 게 문제 였다. 지금 봐라, 망한데다가 성과도 없을 것 같으니 통일부 장관 아무도 안 한대잖아. 임종석? 저 바쁩니다… 그러자 한눈 팔던 이인영이… 뭐 나? 어? 지금? ?? ……

무슨 조씨 문중 얘기는 또 뭐고… 웃겼다. 남명 조식 선생 생각하니 중앙일보 조강수 씨가 일전에 쓴 글이 떠올랐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764584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을 우리고 살고있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문재인, 북핵문제, 임종석, 조국, 존 볼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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