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 관료
동아일보 / 일본의 방역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 (2020. 03. 07.)
이 글은 두 가지 단면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정치가 자기 이익을 위해 관료의 전문성을 훼손한 게 위기의 원인이란 인식이다. 두 번째는 정치의 관료 우위를 만들어 온 것은 자민당만이 아닌 일본 정치 전체였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 정권이 대응에 소극적인 이유를 ‘중국 눈치보기’와 ‘올림픽 업적’에서 찾는 관점은 첫 번째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어제 쓴대로 ‘리버럴’인 아사히 신문 기자의 발언에서 보듯 이건 일본 내에서도 지배적 관점이 된 듯 하다. 일본이 한중 입국자에 대한 비자 정지를 결정하자 똑같은 논리가 자리만 바꿔 다시 등장했다. 시진핑 방일이 무산되고서야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리버럴’의 주장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신실하지 않은 정치의 자리에 아베 신조를 갖다 놓고, 자신들은 진정성 있는 태도를 갔도 있다는 걸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글에서 보듯 오히려 정치의 관료에 대한 우위를 강하게 주장해 온 것은 리버럴들이었다. 자민당-관료-자본이 한 몸이 돼 사익을 추구하며 정치를 망가뜨리고 있으므로 다수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뼛속까지 정치인 사람들이 통치를 해야 민중의 의사가 반영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슬로건을 앞세워 집권한 것이 민주당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 자민당 정권 내에서도 그런 주장에 기반한 움직임은 있어왔다. 다나카 가쿠에이의 이른바 일본열도개조론을 통해 족의원-관료-자본의 삼각동맹체제를 만든 경세회 및 그 일당들을 제외한 모든 파벌이 같은 주장을 했다. 이 삼각동맹을 깨부수는데 성공한 것은 ‘이익’이 아니라 ‘신념’을 중시한다고 주장하는 청화회의 고이즈미 준이치로였다. 기시 노부스케로부터 시작된 이 파벌은 지금의 아베 신조로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렇게 되자 과거 정치의 관료 우위를 주장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손타쿠’ 등 관료 장악의 폐해를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 상황이 정치냐 관료냐, 불순한 사익 추구냐 신실한 전문성 추구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정치가 관료를 짓눌러서라고 말할 수 없다면 일본의 방역 대책이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테일한 문제는 링크된 매경프리미엄?의 글이 잘 짚어놨다. 물론 이상한 제목과 전형적 결론이지만 이런 거 저런 거 다 제하고 보면 우리가 무슨 글을 읽을 수 있겠는가. 여튼 이런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보면 일본의 방역이 실패하고 있다기 보다는 우리가 어떤 면에서 지나치게 잘하고 있는 것 아닌지를 돌아봐야 한다.
일본이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보는 이유의 핵심은 진단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매뉴얼을 중시 탓인지 진단 과정 자체가 비효율적으로 돼있고 진단키트도 부족하며 진단 주체의 숙련도 문제도 있는 것 같다. 반면 사람을 개처럼 부려 효율성을 극대화 하는데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한국은 세계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속도로 우수한 진단키트를 생산해내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메르스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전염병은 있었다. 가깝게는 신종플루다. 그런데 신종플루 때는 특진비라든지 의료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주로 제기됐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는 박통이 젊은이들더러 중동으로 돈을 벌러 가라고 한 탓이었는지(동아시아 국가 중에 우리처럼 고생한 나라는 없다), 정권이 누가 봐도 너무 많은 잘못을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재용이 사과를 하는 지경까지 갔기 때문인지 아무튼 정파적 레벨이 상당히 올라간 채로 정치화 됐다. 그래서 지금 보수세력이 이 정권을 물어 뜯는 건 메르스 사태의 반작용(네가 했으니 나도 해도 된다!)이다. 즉, 정치적 실패가 오늘의 성공(뭐 비교적 성공…)으로 이어진 거다.
그러니까 뭐가 우위에 있든 그것은 근본적으로 정치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관료에 대한 정치 우위론은 근대 이후 반복되는 논리의 변형이다. 관료가 아닌 정치, 정치가 아닌 관료가 아니라 어떤 정치인가가 중요하다. 뭐가 잘 되려면 우리의 경험과 자원을 일본에 나눠주는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실제 키트 개발의 기술 일부가 일본에 제공된 걸로 알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호혜적 구조가 필요한데 일본은 문을 닫아 버리고 외교적 마찰을 감행하는 거꾸로 된 선택을 했다. 그래서 나는 바람직한 정치의 가능성을 짓밟아 버린 것, 이게 수상 관저 결정이 잘못된 이유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뭐 또 참고할 글이 있었던 거 같은데 못 찾아서 그냥 여기까지 하고 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