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안내
  • 이상한 모자
  • 야채인간
  • 김민하 공화국
  • 신간 안내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엘리트주의

흙뷁요리사

2024년 10월 7일 by 이상한 모자

요즘 흙뷁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이 유행이라는데, 안 봤다. 분명히 밝혔다, 안 봤다고. 안 봤는데 하도 여기저기서 흙뷁요리사 얘기를 하니까 안 봤는데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관련한 글이 신문에도 나오는데, 죽 읽다 보면 대략 그런 말씀들 많이 하시는 것 같다. 공정한 경쟁 표방하는 것 같지만 이미 흙수저 뷁수저를 나눈 것부터가 계급 격차를 내면화 하고 있는 거고, 이모님 뭐 이렇게 부르는 것도 여성혐오 아니냐…. 이런 얘기.

좋은 말씀에 100% 동의하면서, 흙뷁요리사라는 기획 자체의 의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흙수저 뷁수저라는 대립은 뷁종원과 안선생님의 대립 구도에서 보듯 대중과 엘리트의 대립이다. 원래 전통적으로 우리 음식-대중은 흙수저에 더 친화적이다. 맛있으면 됐지 뭘 자꾸 따지냐, 평가는 미식-평론가가 아니라 대중과 판매량이 한다, 미식-평론가가 뭘 아냐 이게 보통 하는 얘기 아닌가? 그래서 흙수저 뷁수저의 대립은 근본이 없어도 많이 파는 사람(이쪽 편에 속한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라, 양쪽을 구분하는 구도가 그렇다는 거다)과 가게가 망할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근본이 있는 걸로 유명한 사람의 대립구도라는 점에서 정확히 대중과 엘리트의 구도를 재현한다.

그런데 실제 양팀을 경쟁을 붙여 보면, 흙수저 심사위원도 뷁수저 만큼의 엘리트적 짬바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니까 흙수저도, 거기 나올라면 그냥 되는 게 아니예요. 엘리트적으로 평가받지는 못하지만 ‘실력'(즉 능력…. 이 개념에 대해서는 제가 몇 안 되는 읽은 척 할 수 있는 책인 미국의 반지성주의에 등장하는 ‘자조(self-help)’와 연관지어 볼 수 있음)이 있어야 팔아먹을 수 있는 거지. 이것도 일정 이상이 쌓이면 뷁수저랑 개념과 논리로 다이다이 뜰 수 있는 것임. 기본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뷁수저가 흙수저를 일방적으로 무시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고 그러면서도 사실 조금 깔봤지만 대한민국 대표 먹짱 뷁종원이 먹으면서 다 맞춰버리니까 깜짝 놀라며 다시 보고 뭐 그런 연출이 그래서 나오는 거다. 그러니까 사실 출신은 흙수저와 뷁수저지만 이들의 경쟁이 가능하도록 하는 원리, 그 근본을 관통하는 그런 거는 능력주의다 라는 게 기본 구도가 아닐까 하는 것.

이러한 구도를 성급하게 우리 사회의 모습에 갖다 붙여버려 본다면? 대중과 엘리트의 분열과 대립도 능력주의로 커버가 되는 거고, 그 ‘커버’의 과정에서 대중이 엘리트의 원리와 논리를 거부감 없이 학습한다는 것(가령 흙뷁요리사 보면서, 난 그냥 맛있으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요리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의도를 다 싣고 재료 크기까지 맞춰서 썬다는 걸 보고 감탄했다고 말하는 분들 있을 것임). 그걸 재현하는 쑈가 아닐까 하는 게, 제 머릿 속에 있는 뇌피셜적인 흙뷁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무렇게나 메모를 해놓는 것.

이렇게 쓰면 이제 숏폼 콘텐츠 같은 녀석들이 와서는 ‘응^^ 다음 뇌피셜’ 이런다고 인제. 그래서 블로그에다 썼잖아. 내가 이걸 쓰고 돈이라도 달라 그랬니? 진정하시고. 안 봤다니까 글쎄.

Posted in: 신변잡기, 잡감 Tagged: 능력주의, 엘리트주의, 포퓰리즘

신호등 연정

2021년 9월 28일 by 이상한 모자

좀 기분이 그렇다. 가령 브렉시트 당시 찬반으로 나뉜 구도가 유럽의회 선거까지 이어졌던 바를 떠올려보자. 전통적 주류를 표방하는 중도-좌파, 중도-보수의 전반적 하향 추세 속에 극우파-포퓰리즘(브렉시트)과 신자유주의의 잔당(브렉시트 반대)이 새로운 대립구도를 형성했다. 기후위기-운동은 좌파-포퓰리즘이라는 틀로서 부상했다. 구도를 단순화해보자면 전통적 좌우 구도가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건 근본적 대립이 되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브렉시트와 반브렉시트는 대안 없는 포퓰리즘이냐 엘리트 정치로의 회귀냐의 구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중도-좌파와 중도-보수를 제치고 극우 포퓰리즘의 라이벌 자리를 신자유주의의 잔당들, 그러니까 엘리트의 정수들이 차지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딱한 것은 기후위기-운동인데 자신의 좌표를 기성정치에서의 좌우 구도, 엘리트 대 포퓰리즘 구도 중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정체성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심지어 어느 맥락에 들어가더라도 기후위기-운동은 더 이상 기후위기-운동이 아니다. 가령 기후위기-운동을 극우포퓰리즘에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반-극우포퓰리즘 동맹의 맥락 속에 넣게 된다면 중산층 운동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엘리트주의 반대라는 맥락에서 극우포퓰리즘과의 동맹을 모색할 수도 없다. 딜레마이다.

신호등 연정은 이 함정의 새로운 시나리오를 예고하는 것 같다. 독일 녹색당이 얼마나 기후위기-운동의 맥락에 충실한 정치를 해왔는가와는 별개로, 적-황-녹이라는 구성은 반-극우포퓰리즘의 동맹에 기후위기-운동이 포획된 듯한 느낌을 준다. 마찬가지로 좌파당 역시 같은 원리로 극우포퓰리즘과 같은 자리에 앉는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호기롭게 적녹동맹을 외쳤던 현실 정치운동의 좌파는 이런 식으로 해체되고 있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극우포퓰리즘, 녹색당, 신호등 연정, 엘리트주의, 좌파당

이명박근혜와 문정권

2021년 7월 13일 by 이상한 모자

어떤 좌파가 썼다. 이 정권은 포퓰리즘이다. 발명된 적대를 정파적으로 활용하고 민주주의로 정당화 했다… 이 정권이 역사상 처음으로 그런 일을 한 것처럼 얘기한다. 여러분이 자칭 민주세력들과 교분이 있으셔서 그들의 행태가 남 일 같지 않게 여겨져 그렇지, 이명박근혜도 똑같이 했습니다. 그들은 총칼로 집권했나? 민주적으로 다 했어. 여러분이 태극기쓰와 교분이 있었다면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서 반복해서 얘기하는 게 이거다.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는 그 자체의 개념이 아니라 거꾸로 그게 고치려는 현상의 원인 진단이 뭔지를 물어야 한다. 윤석열은 자유민주주의라는 한도 내에서 진보와 보수가 공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자유민주주의가 포괄하지 않는, 그러니까 ‘밖’에 있는 건 무엇인가? 이걸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진다. ‘586운동권의 철학’, ‘민중민주주의’라고 답하면 이명박근혜 되는 것이다. 윤석열은 국가보안법에 찬성한다. 청문회 때 다 했다. 다만 최근 인터뷰에서 ‘철학’이 아니고 ‘끼리끼리’를 문제 삼았는데, 그건 차라리 낫다고 본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리하길 바란다.

아무튼, 내 얘기는 아무리 문정권이 미워도 이명박근혜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이런 얘기가 아니다. 포퓰리즘보단 차라리 엘리트주의 막 이러다가 독재가 아니고 민주주의… 또 이 얘기 하고 영원한 반복인데, 애초에 그게 다 하나라는 거다. 동전의 양면이예요. 그게 한 세트예요. 그거를 깨닫는 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엘리트주의, 자유민주주의, 포퓰리즘
« 이전 1 2 3 다음 »

최근 글

  • 엘리트-포퓰리즘과 포퓰리즘-엘리트주의
  • 좋은 말로 하면 악플이 아니게 되나?
  • 이단이 되어야
  • 주식 투자를 10억씩 하는 사람들의 훈계
  • 행복한 사람, 오지 오스본

분류

누적 카운터

  • 1,493,570 hits

블로그 구독

Flickr 사진

추가 사진

____________

  • 로그인
  • 입력 내용 피드
  • 댓글 피드
  • WordPress.org

Copyright © 2025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Omega WordPress Theme by ThemeH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