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 회장님과 이란에 대한 방송 내용
오늘 오전까지 22매를 쓰라는 일이 있었는데, 11시에 쓰기 시작해서 1시 2분에 넘겨줬다. 배트맨은 항상 수단이 있기 마련이지.
아래는 지난 일요일 방송 내용이라 시일이 좀 됐다. 하지만 내용은 뭐 계속 똑같은 거 같아서 올림.
1.
오늘은 영화같은 탈주극 덕분에 잠을 못 이룬다.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 소식인데, 악기 케이스에 숨어서 탈출했다 어쨌다 얘기가 많다 보니 다들 영화 같은 이야기라며 감탄하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곤 전 회장이 할리우드 관계자와 접촉했다며 이를 근거로 영화화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스펙터클이 과연 사건의 본질일까는 의문이다.
곤 전 회장이 탈출한 이유는 횡령이나 배임 등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는 사내 쿠데타에 의한 것이고 일본 검찰과 사법부가 여기에 호응하고 있어서 부당하다는 것이다. 일본 검찰은 곤 전 회장의 구속기일이 만료될 떄마다 추가 기소해 구속기간을 늘려왔다. 보석으로 풀려난 곤 전 회장이 트위터에 곧 진실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쓰자 바로 다음날 검찰이 또 추가 기소를 해 다시 구속되기도 했다. 곤 전 회장이 두 차례 보석을 위해 쓴 돈만 우리 돈으로 150억에 달한다.
일본도 검찰의 힘이 세다. 특히 이번 수사를 주도한 도쿄지검 특수부는 권력과 유착한 거악을 잡는 걸로 유명했던 조직이다. 일본 정계에 엄청난 영향을 준 록히드 사건, 리크루트 사건, 사가와규빈 사건 등을 모두 도쿄지검 특수부가 수사했고 전현직 수상의 연루 사실을 밝혀내는 등 큰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2천년대 들어서는 몰락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오사카지검 특수부에서 증거조작 사건이 일어나면서 특수부 무용론이 제기되던 상황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일본 언론들은 검찰의 강압적이고 무리한 수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닛산은 엄밀히 말하면 르노 닛산 연합 구조 안에 있다. 곤 전 회장은 프랑스 르노 출신인데 닛산이 위기일 때 구조조정을 통해 다시 회생시킨 장본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오랫동안 집권해왔기 때문에 닛산의 일본 경영진과는 갈등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곤 전 회장의 혐의도 닛산 측 내부고발에 의한 자체 감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 검찰로 넘어가면서 적용된 것이다.하지만 언론에서 나오는 얘기를 보면 단순한 사내 쿠데타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올랑드 내각에서 경제산업부 장관일 때부터 르노의 닛산 합병을 주장해왔다. 프랑스 제조업을 살리는 일에 이용하겠다는 명분이다. 이를 위해서 르노의 정부 지분 영향력을 2배로 늘릴 수 있는 차등의결권제 도입도 추진했다. 애초 곤 전 회장은 여기에 저항했지만 마크롱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회장 임기 연장을 위해 합병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는 얘기가 있다. 형식상 프랑스 기업이 일본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게 되므로 이건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큰일이다. 그래서 일본 정부나 정계 인사 배후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더욱 영화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 앞서 곤 전 회장의 탈출극보다 더욱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라고 볼 수도 있다. 하여간 영화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다들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영화 같다.우리가 던져봐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사법정의나 검찰권력의 문제는 전용기를 굴릴 정도의 부자나 유명인이 억울한 일을 당해야 그나마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요즘 검찰개혁이 뜨거운 감자인데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한다. 둘째로 정치권력이든 기업이든 자유무역이니 시장원리니 하지만 자기들에게 필요할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르노와 닛산의 합병은 양사 노동자들에게는 좋은 일인지, 프랑스인과 일본인의 입장에선 어떤지, 에마뉴엘 마크롱과 아베 신조에게는 정치적으로 어떤 문제인지스펙터클을 떠나서 한 번 생각해보자.
2.
미국과 이란이 또 갈등을 빚고 있어서 잠이 안 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 트윗을 썼다. 자신들이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제거한 것에 대해 이란이 보복을 거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미국 자산이나 미국인이 공격을 받을 경우 이란 내 52개 목표물에 대한 공격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하필 52개로 한 것은 과거 이란이 인질로 삼은 미국인 52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이란 본토에서의 직접적인 군사작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기 때문에 심각하다.
미국은 이란이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중심으로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제거가 불가피했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이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라크 전쟁 때도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등을 얘기한 일이 있지만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거짓말이 물론 아닐 수도 있으나 100% 믿기도 어렵다는 것이다.미국의 군사옵션을 가능케 한 사건인 바그다드 대사관 습격도 미국은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배후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라크 주민들의 정치적 경제적 불만이 시위로 터져나왔고 이게 이전 사건들과 묶여서 맥락화 된 영향도 클 수 있다. 즉 솔레이마니 배후론은 과장됐을 수 있다는 건데 따라서 아무래도 정치적 영향을 중심에 놓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대선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뭔가 대외정책에서 성과를 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데 그럴만한 것이 없다. 북한에 대해서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자기가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해왔지만 이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국면에 들어왔다. 특히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통제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따라서 중동에서 뭔가 자랑거리를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한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의 노선은 고립주의고 오히려 군사개입 가능성을 크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고립주의가 그냥 미군 철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중동의 극단주의 세력을 내버려 뒀다가 9.11 같은 사태를 다시 맞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현실적으로 군사적인 개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드려면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중동 전체를 아우르는 평화체제를 만들어서 자체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 주고 손을 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의 대리인들을 활용해서 지역을 알아서 힘으로 통제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방식은 후자라고 볼 수 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이끄는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은 이란의 시아파 벨트 전략을 관철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나라를 지키는 임무가 아니라 이란 혁명 즉 정치적 노선을 관철하는 게 주 임무인 군대이다. 공화국과 신정 체제의 결합인 이란 노선에 반대하는 중동 국가는 왕정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와 적대하는 수니파 국가들, 그리고 이스라엘이다. 즉 중동에 이란 대 반이란 전선을 만들고 반이란 세력의 미국의 대리인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 본인은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결합한 관료제의 특성이 원래 그런 식이다. 관료조직은 지도자에게 선택지를 주고 선택하게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거기에 맞는 정책적 시나리오를 제공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은 국내정치만 고려해 즉흥적으로 선택한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은 이미 준비된 선택지 중 하나라는 것이다. 즉, 이 배경에는 미국 내 대외적 강경파들의 의도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란 입장에선 굳이 보복을 해서 미국의 전략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이란 정치도 미국에 대한 적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란은 중요한 결정은 종교지도자가 하지만 그 정치적 책임은 대통령이 지는 구조이다. 오바마 정권에서 이란 핵합의는 오랜 제재로 생겨난 경제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온건파 대통령이 결단을 한 것처럼 돼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핵합의가 사실상 파기됐고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는 지금 이란의 현재 체제는 정치적 위기이다. 따라서 대외적으로 강경파적인 노선을 꺼내 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 다만 이른바 중재국들을 활용한다든지, 그 수위가 조절될 가능성은 있다.
미국의 반전세력은 석유 문제를 거론하기도 하는데 당장 유가가 상승했고 주식시장도 출렁였는데 이건 단기적 영향이고 장기적인 문제를 봐야 한다. 오바마 정권의 해법처럼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가 풀려서 석유 수출이 가능해질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다른 산유국들은 피해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이란 전략에는 이런 영향도 있을 수 있다.
앞으로 미국과 이란이 전면전까지 가느냐가 관심사인데 둘 다 각자 본토를 타격하는 전면전까지 가는 것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다른 지역에서 대리전의 형태로 충돌이 지속될 수 있다. 최근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은 이라크 지역에서 일어났다. 최악의 경우 제2의 이라크 전쟁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 이라크 전쟁에 대한 평가가 어땠는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아래 동영상은 어젯밤에 KBS라디오에서 떠드는거. 앞에 조금 나오고 없어진다. 버벅대는데, 왜냐면 낭독용 원고가 없다. 앞에 놓여있는 건 일종의 참고자료들. 이런 데서 실력이 다 드러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