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와 복고풍 당명에 대한 방송 내용
요즘 뉴스는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다. 염증이 느껴진다. 트위터를 보니 경향신문 필자 선정이 구리다는 이 정권 지지자의 볼멘소리가 올라와 있다. 그 중 누가 내 이름을 언급했다. 나는 경향신문은 물론 어떤 메이저-일간지에서도 고정 칼럼을 맡아본 일이 없다. 그건 약간 컴플렉스 같은 것이기도 하다. 어디가서 글쟁이를 자처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 물론 어쩌다보니 저술가니 칼럼니스트니 하는 직함으로 불리게 됐지만. 그건 필요하니까 대는 타이틀인 거고, 근본적으로는 운동권이다.
그런데 그건 어떤 지향인 거고, 지금의 나는 남들 보기에 그저 시사 보따리 장수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방송국의 요구대로 떠들 뿐이다. 신세가 이렇다 보니 모든 것에 더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 중에는 모 당에서 누구를 국회의원 만들기 위해 뭔가를 할 거라는 얘기도 한다.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마음은 그저 냉담자이다. 하지만 단 하나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거다. 내 방은 하수구다. 몰래 땅굴을 파서 거사를 준비하는 곳이고, 동시에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벌이다 실패해 결국 돌아올 곳이다. 기분 상으로는,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하다가 또 돌아왔다. 그래서 방에 대해서 집착을 하고 있다.
아무튼. 그래도 방송 내용에 약간의 고집을 넣는 걸로 마지막 포기하지 않은 일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되짚으려고 하고 있다. 뭐 어차피 이제와서는 식상한 얘기들이지만, 그냥 올린다. 일요일의 방송 내용이다.
1.
오늘은 일본 코로나19 대책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요코하마 항 인근에 정박해있는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70명의 감염자가 새로 확인됐고. 이 배에 있는 감염자 수는 지난달 25일 홍콩에서 내린 홍콩 주민을 빼고 355명으로 늘어났다. 일본 전체 감염자 수는 408명으로 집계됐다.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중국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확진된다든지 감염 경로를 추적하기 어려운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 내놓고 있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후생노동상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황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일본은 의사와 환자 간을 포함한 병원 내 감염 사례도 있는 상태다. 거의 통제할 수 없는 국면으로 갈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언론에서 지적하는 바를 보면 전염병을 치료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일본에 들어오는 걸 막으려고만 하다가 일을 키웠다고들 한다. 이른바 미즈기와 작전이라는 건데 미즈기와는 한자를 읽으면 물 수에 가 제 자… 물가란 뜻이다. 육지에 도착하기 전 물가에서 승부를 본다는 뜻으로 일본 방역대책을 한 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크루즈선을 해상에 격리한 것도 그렇다. 이 배를 방치하는 바람에 확진자 수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 입항을 거부하는 바람에 거대한 세균배양접시가 됐다는 비유가 나올 정도이다. 이 배의 탑승객 다수가 외국인이라는 점도 일본 정부의 대응에 영향을 미쳤을 걸로 보인다.
바이러스가 국내로 번지는 것을 원천 차단할 수는 없으니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최선이었지만 그게 안 된 이유 중 하나는 의료체계의 문제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코로나19 검사가 가능한 의료기관은 국립감염증연구소와 전국 83곳에 있는 지방위생연구소인데 이들 기관을 완전히 가동하면 산술적으로 하루 최대 1500명 정도의 검사가 가능할 거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 전염병 대응에 대한 숙련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훨씬 적은 숫자를 언급하고 있다. 앞서 다이어몬드 프린세스호에 있는 승객과 선원은 모두 합치면 3700명이 넘는데, 이 때문에 초기부터 승선 인원 전원에 대한 검사 등은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관광 산업을 보호 논리도 있다. 한일 갈등으로 지자체 관광 수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중국으로부터의 관광 수요도 급감할 수밖에 없게 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내에 확진자가 늘어나 다른 국가에서 여행금지 등의 조치를 취하면 일본 관광산업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더군다나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더 타격이 클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크루즈선의 확진자 통계를 따로 내기도 한 것이겠지만 망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의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정책은 바이러스 침입을 막는게 아니라 늦추는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면서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 서비스를 신속하고 제공하는 쪽으로 정책 전환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도 타산지석 삼아야 할 대목이 있다. 예를 들면 일본 네티즌들이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느라 이렇게 된 거 아니냐는 얘기를 한다는 점이다. 국내 보수언론의 논조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일본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염병 발생 이후엔 특별히 중국을 배려한 뭔가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중국 정부가 초기에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지금도 그런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 대응이 늦어진 측면이 작용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세계보건기구 등의 대응 문제의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건예산 삭감이 있다.
중국눈치설의 부당한 점은 이게 결국 지금까지 일본의 잘못된 정책의 근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세계는 더 강하게 이어지고 있고 한 지역에서 발생한 전염병으로부터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 우리가 숨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없다. 그렇기 떄문에 전염병은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아야 하고 중국에도 그런 점에서 책임있는 태도를 촉구해야 한다.
2.
당명 재활용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안철수 전 의원이 추진하는 당명은 결국 돌고 돌아 국민의당이 됐다. 원래 안철수 전 의원이 만드는 당이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리기 위해 안철수신당이라는 당명을 추진했지만 선관위가 불허했고, 그래서 과거 국민의당 창당을 연상케하는 국민당으로 하려고 했지만 이것도 다른 정당명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불허했다(이 당은 남재준이 대선 후보로 출마하려고 했던 곳이다). 결국 아예 과거에 만들었던 당 이름인 국민의당을 쓰기로 한 것이다.
민주통합당도 등장할 예정이다. 바른미래당 대안신당 민주평화당이 합당하고 당명은 민주통합당으로 하기로 합의했다는 건데, 민주통합당은 과거 오늘날의 더불어민주당이 당 외의 세력과 통합하면서 썼던 이름이다. 앞서 국민의당은 2016년, 민주통합당은 2011년에 나왔던 당명이다 보니 여기가 어딘지 나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느낌이다.
이런 복고풍의 이름을 선택한 이유는 첫째로 두 정당 모두 호남지역에 우선 어필해야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두 정당명 모두 호남지역 유권자들에게 익숙한 이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호남지역 여론이 얼마나 호의적일지는 알 수 없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보면 그다지 좋은 반응은 없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한국정치의 부실이다. 노선이나 정책으로는 유권자들에게 당을 설명할 수가 없기 떄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인물, 당명, 색깔 정도로만 자기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당명과 색깔에 집착하게 된다. 국민의당이 민중당과 오렌지색 주황색 싸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자꾸 새로운 당을 만드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때만 되면 뭔가 혁신을 한다며 새로운 세력을 만들면서 더 이상 쓸 색깔도 없고 이름도 없는 복잡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자꾸 새로운 당을 만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앞서 말했듯 내세우고 싶은 분명한 노선이 없기 때문에 새롭다는 걸로 승부하고 싶은 마음이다.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등이 미래통합당으로 통합을 하고 색깔도 밀레니엄 핑크로 한다는데, 이들은 과연 새로운 세력인가? 인적구성을 보면 새누리당의 재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둘째는 새롭다고 하지만 사실은 새롭지 않다는 점 때문에 유권자들이 정치에 대한 염증을 느끼면서 다시 ‘진정한’ 새로운 세력을 갈망하는 악순환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에 편승하려다 보니 새롭지 않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력으로 포장지를 바꿔서 자꾸만 등장한다. 이런 현실은 우리 뿐만이 아니고 세계적으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프랑스의 에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마크롱 대통령 본인은 전형적인 기득권 엘리트고 사회당 올랑드 정권에서 장관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정치세력을 표방하면서 기존의 사회당과 지금의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양당구도를 붕괴시켜버렸다. 이게 될 수 있었던 에너지는 기성 정치를 증오하는 프랑스 유권자들로부터 왔다. 안철수 전 의원이 마크롱 대통령을 계속 거론하는 것은 비슷한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기성 정치를 증오하는 에너지는 마크롱과 같은 중도적인 정치로 귀결되기도 하지만 극우정당인 국민연합을 지지하는 쪽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그래서 극중주의 마크롱과 극우주의 마린 르 펜은 어떤 면에서 동전의 양면이다.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유권자들의 바람과 기성 정치의 충돌은 정치가 양극화되는 현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최근 유럽 정치는 한쪽에서는 녹색당 세력이 선전하고 다른 한쪽에서 극우정당이 선전하는 구도가 강화되고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미국 정치에서 진보적 의제가 중심에 놓이고 있으면서도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확률이 여전히 높은 것도 똑같은 현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치라기보다는 제대로 된 정치이다. 기득권과 엘리트가 아니라 일반 시민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체제가 돼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이 결과가 극우적 구호가 아니라 모두에게 득이 되는 바람직한 정치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선순환을 만들 책임이 정치와 언론에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를 관철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