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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감

할머니 이야기를 활용하는 반정치주의

2020년 5월 19일 by 이상한 모자

어느 글에서 요즘 사건에 대한 보수언론의 피해자 중심주의 타령을 당사자주의라고 했는데, 이 근본은 반정치주의이다. 동아일보 김순덕 씨가 글도 쓰고 중앙일보가 천영우 씨 얘기 듣고 [단독] 붙여서 기사도 냈다. 요지는 일본이 주는 돈이라도 받고 끝냈어야 하는데 정대협들이 자기들 간판 내릴까봐 이걸 막아서 이 지경이 된 거다, 이런 얘기다. 거짓말 같냐? 김순덕 씨가 이렇게 썼다.

1995년 일본이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통한 해결책을 모색했을 때 윤미향은 이 돈을 받으면 피해자 할머니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공창(公娼)이 되는 것이라는 막말을 했다. 윤정옥 역시 위안부 문제가 ‘침략정치의 골수’라며 배상금 아닌 동정금을 뿌리쳐 ‘전후 청산의 모범’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심에서 한참 멀어진 것이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른 ‘화해·치유재단’의 기금도 정대협은 거세게 반대했다. 그러나 생존 피해자 34명, 사망자 유족 68명이 44억 원의 ‘치유금’을 받은 것으로 집계돼 있다. 교수 출신, 운동권 출신의 피해자단체 사람들에게는 피해자들의 구체적이고도 소박한 아픔은 단순한 ‘돈 문제’로 보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피해자 할머니들에게는 그토록 민족적 자존심만 강조한 사람들이 왜 피 같은 국고보조금이나 코 묻은 국민모금의 회계는 그따위로 처리했는지.

(생략)

윤미향이 운동가 시절 주장해온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 공식 사과와 배상’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요구함으로써 한일관계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은 더욱 걱정스럽다. 일본이 정의연의 요구를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않는 한, 위안부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그게 과연 피해자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일까.

반대파, 아니 상식파를 토착왜구로 몰고 가는 집권세력의 전략은 윤미향의 얕은수로 인해 효능을 잃었다. 반일감정을 국정동력으로 삼아온 청와대가 단안을 내리지 못한다면, 이낙연이 윤미향의 제명과 사퇴를 이끌어내 리더십을 입증해야 한다.

김순덕 씨는 지난 주에는 이렇게도 썼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피해자 중심 접근’이어야 한다고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는 2017년 말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이제 정의연은 물러나야 한다. 피해자들은 일본의 ‘적절한 사과’에 동의하고 경제적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는데 ‘민족적 자존심’을 내세워 막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반일을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삼을 작정이 아니라면, 2015년 한일 합의를 사실상 파기한 문재인 대통령이 나설 필요가 있다. 정의와 기억은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정의연도, 정부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생각하니? 아래는 내가 11일날 쓴 글 일부이다.

보수세력이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이유는 뭘까? 이 정권이 맹목적 반일노선 관철을 위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피해자들의 반발을 부추기고 활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싶은 것이다. 이를 통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강제징용 판결과 수출규제 사태로 이어진 이 정부의 대일정책을 비판하겠다는 게 아닐까 한다.

윤미향 당선인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게 중요한 문제처럼 논의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음은 천영우 씨가 하는 말을 듣고 중앙일보가 쓴 기사이다.

천 전 수석은 “사이토 부장관이 일본이 구상하는 위안부 문제 해법을 가지고 저를 찾아왔다.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피해 생존 할머니를 한분 한분 찾아뵙고 일본 총리대신의 사과 친서와 일본 정부 보상금을 직접 전달한다는 아이디어였다”고 했다.

다만 천 전 수석은 “일본이 국가 예산으로 보상금을 지불한다는 사실을 우리 정부는 ‘일본이 국가책임을 인정했다’고 해석하고 국민에게 설명하겠다. 이를 추후 일본이 ‘국가책임을 인정한 게 아니다’라는 소리를 하면 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설명하자 사이토 부장관이 아주 난처해 하며 확답을 하지 못하고 (논의를 위해)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덧붙였다.

천 전 수석은 사이토 부장관이 돌아간 이후 일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당시 윤미향 정대협 대표를 각각 만나 위안부 문제 해결책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고 한다. 당시 “다수의 할머니는 살아있는 동안에 일본의 사과와 보상을 다 받아내면 최선이지만, 그게 안 되면 보상이라도 제대로 받고 싶어하는 인상이었다”는 게 천 전 수석의 설명이다.

반면 윤 대표는 달랐다고 했다. 천 전 수석은 “윤 대표에게 사이토안을 설명하고 혹시 그런 방향에서 타협이 되면 정대협이 환영 지지는 못하더라도 극렬한 반대는 하지 말아달라. 위안부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이보다 나은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했다”며 “그러자 윤 대표 얼굴에 아주 곤혹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그 표정을 보고서야 ‘정대협과 할머니들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천 전 수석은 “제가 구상하던 해법이 할머니들에겐 나쁠 게 없지만, 정대협으로선 이제 문 닫을 준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정대협엔 사형선고를 전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천 전 수석은 “당시 타결 직전까지 간 한일 간 합의가 깨진 이유는 정대협과 외교부 때문은 아니다”라며 “일본 측이 ‘국가책임을 부정하는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수 없다’고 해서 깨진 것이다. 당시 노다 내각은 총선을 앞두고 이미 운명이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국내의 정치적 리스크가 있는 결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천영우 씨가 설명하는 내용은 이른바 ‘사사에안’으로 알려진 그 얘기다. 외무성 차관인 사사에 뭐라는 사람이 초안을 내서 ‘사사에안’이다. 총리가 사과도 하고 일본 정부가 뭔가 돈도 주지만 그 성격은 인도적인 거고 이 문제에 대한 책임 여부는 인정을 못하겠다는 내용이다(중앙일보의 기사 내용과 제목을 보면 이게 사사에안이라고 불렸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물론 아니겠지). 우리 정부는 ‘플러스 알파’를 요구했고 이후 일본 정부는 ‘마이너스 알파’를 얘기하면서 하나의 기준처럼 언급돼왔다. 그러니까 천영우 씨 주장의 근거라는 것은, 자기가 ‘사사에안’의 내용을 설명했더니 윤미향 표정이 안 좋더라 뭐 이것 뿐인데, 그것마저도 당연하지 않냐? 국가 책임 인정을 안 한다는데, 표정이 좋겠니?

아래는 내가 월요일에 쓴 글의 일부이다.

이런 논리에서 드러나는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마치 교통사고에서 그렇듯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하면 끝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는 국제사회가 이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는 반성의 책임을 이끌어 내야 해결되는 문제이다.

애초 합의의 기본 얼개였던, 일본 총리가 반성의 뜻을 밝히며 사죄하면서 군의 개입을 인정하고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재단 출연을 하겠다는 것은 이런 차원에서 유의미한 것이다. 당시 합의가 이명박 정부 당시 일본의 안이었던 ‘사사에안’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이를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일 양국의 ‘톱’ 수준에서 합의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 “국제사회에서 문제제기 하지 말 것”,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의 적절한 처리” 등의 내용은 합의의 기본 취지가 전쟁범죄에 대한 진정어린 반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일상의 언어로 하자면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사과도 하고 보상도 했으니 더 이상 딴 소리 하지 마라”는 뜻이다. 과거를 기억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부끄러운 과거는 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보수세력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좁은 의미에서만 다루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친일파의 후손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일본과의 역사 갈등이 어떤 방식으로든 빨리 해소돼야 ‘국익’에 여러모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즉, 친일이냐 반일이냐가 아니라 반전평화의 명분을 지키느냐 경제적 이득이라는 효율성을 추구하느냐의 문제라는 뜻이다.

이렇게도 썼다.

대의명분을 잃지 않으면서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정치의 역할일 것이다. 그런 역할을 방기하던 사람들이 이제와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말하는 것에는 그 실제 내용인 ‘당사자주의’가 ‘위선적 진보론’과 결합해 보수적 세계관을 구현하는 소재로 쓰일 수 있다는 정파적 판단이 깔려있다. 이 세계관은 이상보다는 현실, 명분보다는 실리, 원칙보다는 효율을 중시하는데 이제 진보의 시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음에도 이런 가치관은 더 힘을 키워가는 것만 같다.

사실 지난해 일본과의 관계 악화가 불을 붙인 반일캠페인도 순수한 민족주의적 열정이 근원이 됐다기보다는 실리와 효율을 중시한 결과였던 건 마찬가지였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정말로 잃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이 국회의원직을 지키고 잃고는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다.

그러니까 반정치주의라는 거다.

사족. 그리고 할머니들이 10억엔 그거 다 받자고 한 것도 아니지. 당장 이용수 할머니가 뭐라고 했니? “내가 알았으면 돌려보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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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국회로?

2020년 5월 19일 by 이상한 모자

할머니를 국회로 보내면 되는데 운동권이 가로챈 후과가 이거 아니냐는 얘기를 봤다. 할머니를 국회로 보내는 것에는 찬성한다. 그런데 운동권이 중간에 가로챘다고 하고 끝낼 정도로 세상이 단순하지 않다. 학출이냐 노출이냐 논쟁 옛날에 다 한 거 아닌가.

옛날에 덤프 아저씨들하고 일했는데, 그 중에는 노조 하자는 사람도 있고 먹고 사는 게 우선이니 일거리부터 나누자는 사람도 있다. 특수고용노동자가 노동권을 쟁취해야 문제가 풀린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면 노조하자고 하고, 노동권 쟁취는 영영 안 될 판이니 먹고 사는 일이라도 해결하자는 사람들이 일거리 소개라도 상부상조 하자고 했다. 활동가들은 당연히 전자를 주장했고 또 그게 맞는 건데, 그렇다고 후자의 주장을 세상 철 모르는 소리로만 치부하기도 쉽지 않다. 둘 사이에 영영 화해 못할 간극이 있는 것도 아니나, 어쨌든 후자를 주장하신 분들이 활동가들을 더 미워했던 건 사실이다. 물론 또 전자를 말하는 사람과 후자를 말하는 사람을 무 자르듯 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그 당시 의장(다른 조직 같으면 노조위원장이나 대표 쯤 된다)이셨던 분은 활동가들에겐 후자의 중요성을, 후자의 아저씨들에겐 활동가들 주장의 당위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 시점에 그 아저씨는 적어도 그 대목에선 존경할만 했다.

할머니들도 그런 거 아니냔 말이다. 90년대 초반부터 해왔는데, 이게 해결이 될 기미가 안 보이지 않는가. 그러다 보면 누구는 보상금이라도 받았어야 하는 거 아니냐, 활동가란 것들은 장관도 되고 의원도 되는데 우린 이게 뭐냐 이렇게 되는 거다.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 한 날 내가 주변에 한 얘기가 그거다. 이거 국회의원이 돼서 그런 거다… 당연하지 않냐?

그러니까 문제의 핵심은 할머니가 아닌 활동가가 국회에 간데서 온 게 아니고, 이 운동 내에서 국회에 간다는 게 뭔지, 누가 뭘 하러 가는 건지… 그 정도의 합의도 없으면서 급조된 비례정당 소속으로 덜컥 배지를 달아버리는, 그런 허약하고 부실한 운동관이 문제인 것이다. 활동의 총의를 모아야지. 이용수 할머니도 썼다. 자기가 여성인권운동가라고. 할머니를 운동가로서 대해왔는지 돌아봐라. 그래서 국회에는 할머니가 갔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볼 때는 오히려 할머니를 대상화하는 얘기일 수도 있는 거다 이 말이야.

집 치우고 빨래하다 심란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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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 대한 생각

2020년 5월 15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방송에 가서 말을 하는데 차례가 잘 오지 않았다. 이용수 할머니가 이실직고 하라지 않느냐 하기에, 거기 보면 내가 몰랐던 것도 많더라 하신다… 언론이 쓴 의혹 기사 보고 하시는 말씀 아니냐 라고 했다. 맥락을 비틀지 말란 거였다. 그러자 경향신문도 친일이냐, 한다. 기억이 온전치 않다면 왜 30년 간 써먹었느냐 하는 말씀이 있다는 거다. 기억에 대해선 이미 얘기했다. 윤미향 씨 얘기는 위안부 합의 발표 당일의 기억이 달라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냐. 그걸 이용수 할머니라는 한 사람의 인식능력을 말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 뭐 이런 얘기도 소용이 없다.

원래 30년간 써먹더니 이제와서 기억이 어쩐다더라 하는 얘기는 조선일보인가에 실린 칼럼에 나온 얘기다. 그 신문은 윤미향 씨가 이용수 할머니와 처음 전화통화한 경험을 말하며서 “내가 아니고 내 친구가요”라고 했다는 대목을 피해자 본인이 아닐 가능성을 말한 거라고 해석한 일도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기가 당한 일이란 걸 제대로 말도 못하던 시대라는 것에 관심이 없든지 아니면 이간질 하려고 작정을 한 것이다.

월간중앙인지 뭔지의 인터뷰에선 그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김학순이 시작했지만 이용수가 끝낸다는 마음으로… 이제 생존자 18명, 언제 어떻게 되실지도 모르고. 피해당사자의 존재가 운동의 큰 동력이었는데, 그 다음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그런 고민도 있지 않으셨겠나 생각했다. 그런 얘기도 했지만 별로 뭐 관심들은 주지 않았을 거다.

어느 잡지에 보내는 글에는 이용수 할머니는 피해 당사자인 동시에 여성인권운동가이므로 당연히 단체의 운영과 노선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썼다. 친일 반일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의 의사를 얼마나 잘 대변하고 있느냐는 문제라는 중앙일보의 논조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얘기 하는 거랑 비슷한 거다. 진보들이 명분을 내세우며 당사자가 응당 가져가야 할 몫을 빼앗아 사익을 채우는데 쓰고 있다… 그렇다면 피해당사자는? 알아서 살아 남아야 한다. 각자도생 적자생존. 시장원리주의. 그런 게 아니라 운동의 큰 틀에서 서로 부대끼며 부딪치고 입씨름 하면서 같이 걸어가는 게 맞는 거다. 문제가 있다면 그걸 더 못한 게 문제이다.

이런 얘기와 별개로, 내 고향 수원의 수원시민신문 문제는 심각하다. 하루이틀 보는 것도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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