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방송에 가서 말을 하는데 차례가 잘 오지 않았다. 이용수 할머니가 이실직고 하라지 않느냐 하기에, 거기 보면 내가 몰랐던 것도 많더라 하신다… 언론이 쓴 의혹 기사 보고 하시는 말씀 아니냐 라고 했다. 맥락을 비틀지 말란 거였다. 그러자 경향신문도 친일이냐, 한다. 기억이 온전치 않다면 왜 30년 간 써먹었느냐 하는 말씀이 있다는 거다. 기억에 대해선 이미 얘기했다. 윤미향 씨 얘기는 위안부 합의 발표 당일의 기억이 달라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냐. 그걸 이용수 할머니라는 한 사람의 인식능력을 말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 뭐 이런 얘기도 소용이 없다.
원래 30년간 써먹더니 이제와서 기억이 어쩐다더라 하는 얘기는 조선일보인가에 실린 칼럼에 나온 얘기다. 그 신문은 윤미향 씨가 이용수 할머니와 처음 전화통화한 경험을 말하며서 “내가 아니고 내 친구가요”라고 했다는 대목을 피해자 본인이 아닐 가능성을 말한 거라고 해석한 일도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기가 당한 일이란 걸 제대로 말도 못하던 시대라는 것에 관심이 없든지 아니면 이간질 하려고 작정을 한 것이다.
월간중앙인지 뭔지의 인터뷰에선 그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김학순이 시작했지만 이용수가 끝낸다는 마음으로… 이제 생존자 18명, 언제 어떻게 되실지도 모르고. 피해당사자의 존재가 운동의 큰 동력이었는데, 그 다음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그런 고민도 있지 않으셨겠나 생각했다. 그런 얘기도 했지만 별로 뭐 관심들은 주지 않았을 거다.
어느 잡지에 보내는 글에는 이용수 할머니는 피해 당사자인 동시에 여성인권운동가이므로 당연히 단체의 운영과 노선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썼다. 친일 반일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의 의사를 얼마나 잘 대변하고 있느냐는 문제라는 중앙일보의 논조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얘기 하는 거랑 비슷한 거다. 진보들이 명분을 내세우며 당사자가 응당 가져가야 할 몫을 빼앗아 사익을 채우는데 쓰고 있다… 그렇다면 피해당사자는? 알아서 살아 남아야 한다. 각자도생 적자생존. 시장원리주의. 그런 게 아니라 운동의 큰 틀에서 서로 부대끼며 부딪치고 입씨름 하면서 같이 걸어가는 게 맞는 거다. 문제가 있다면 그걸 더 못한 게 문제이다.
이런 얘기와 별개로, 내 고향 수원의 수원시민신문 문제는 심각하다. 하루이틀 보는 것도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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