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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정치 사회 현안

김명수 씨의 사정

2021년 2월 5일 by 이상한 모자

다른 건 다 됐고 임성근 씨를 앞에 놓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추정했다. 어제 라디오 방송에서도 한 얘기다.

김명수 씨가 한 말에 해당하는 부분만 의혹 제기와 해명에서 건져 보면 이렇다.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탄핵 논의를 할 수 없게 돼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수리 여부는 대법원장이 알아서 하겠다.” (임성근 주장 및 녹취)

“일단 치료에 전념하고 신상 문제는 향후 건강상태를 지켜본 후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말했다.” (김명수 첫 번째 해명)

“‘정기인사 시점이 아닌 중도에 사직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 (김명수 두 번째 해명)

말이 엇갈리면 둘 중 하나는 거짓이라고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렇다기 보다는 양쪽이 자기에 유리한 부분만 선택한 결과인 경우가 많다. 동전의 양면이고 달의 앞뒷면이다. 모든 발언을 사실의 일부로 간주하고 상황을 재구성해보는 게 진실을 파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김명수 씨가 하려던 말은 뭘까? 재현해본다.

“성근아… 네가 사표를 낼 순 있어. 내면 안 된다는 게 아니야. 근데 너는 지금 재판도 받고 있고 국회에서 탄핵될 수도 있잖아. 내가 사표 수리를 할 수 있겠어? 내가 물론 탄핵에 동의하는 건 아냐. 최소한 내가 대법원장 하는데… 1호가 될 순 없어… 그렇지만 어떡하냐, 국회가 하겠다면 말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너 어차피 임기 얼마 안 남았잖아? 조용히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 다들 그렇게 하잖아. 왜 지금 사표를 내서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시끄럽게 하려고 그래? 쟤들이 가만히 있겠어? 일단 성근아, 건강 문제는 치료를 좀 해보고 어떻게 할지는 나중에 얘기를 더 해보자. 형은 무조건 네 편인 거 알지? 그래 우리 힘내자. 성근아, 참 세상살이 팍팍해 그지? 산다는 게 참 이런 게 아닌데…”

하지만 성근 씨는 애초에 형을 못 믿었고 그래서 녹음 버튼을 누르고 들어간 것이었으니…

아무튼 내 생각은 김명수 씨가 눈치를 봤다고는 할 수는 있다. 근데 애초에 여당하고 같이 편먹고 후배 목을 뇌물로 바쳤다 이런 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조용히 넘어가자고 한 거다. 법원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해야 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김명수, 임성근, 판사 탄핵

팔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

2021년 2월 4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 중앙일보 이정재 씨 글을 보고 한 생각.

내가 옛날에 덤프트럭 아저씨들이랑 일을 할 때,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아저씨들이, 남북통일이 절실하다는 얘길 자꾸 하는 거다. 이게 왜 이러지 이게 아닌데… 알고보니 조직에 들어온 자주파 성향 상근자가 통일되면 북한에 개발을 해야 되고 그러면 덤프 일거리가 아주 많다고 했다는 거다.

이게 먹히는 거야. 알겠어? 남북통일 필요하냐고 물어보면, 그동안은 반대한다고 했어. 근데 실생활의 문제로 오면 솔직히 다 그런거는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는 거야. 남북통일이 어쨌든지 남의 일이고 돈! 먹고 사는 문제!

원전 이거 마찬가지라고. 남북관계가 개선이 된다? 뭐 상관없어. 원전만 할 수 있으면 되지.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라! 탈원전은 잘못됐다! 그러다가 다시 오늘날에 이르면… 탈원전이라면서 북한에 원전을 지어준다니! 이 얘기를 왜 탈원전을 안 하냐로 가면 나는 맞는 비판이라고 본다. 근데 아니잖아. 이게 뭐냐 도대체?

이러고 있는데 이정재 씨가 정답을 제시했다. 북한에 원전을 지원하고 싶다면, 탈원전부터 바꾸자! 그러니까 이적행위는 핵심이 아니지 지금… 아 너무 웃기다 진짜.

이해를 못할 듯 하여 이정재 씨 글을 부분 인용한다.

대북 원전 지원은 할 수 있다. 다만 두 가지 전제가 꼭 필요하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국 원전 산업의 발전이다. 이 둘이 충족돼야만 명분과 실리가 생긴다. 보수 정부 시절엔 이런 전제를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결이 다르다. 대통령은 언제부터인가 북한 비핵화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대화’만 말한다. 남북 연락사무소가 폭파당하고, 서해에서 공무원이 사살돼도 ‘대화’만 말한다. 그러니 북한 비핵화 의지에 대해 국민의 의구심만 커진다.

두 번째 전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문 대통령은 2017년 6월 “원전은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으며, 친환경적이지도 않다”고 했다. 그래 놓고 이듬해 체코 총리와 만나 “한국은 지난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며 세일즈를 했다. 원전에 대한 대통령의 말이 이 때 다르고, 저 때 바뀌니 국민이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원전은 남북을 잇는 평화의 교두보로 안성맞춤이다. 한반도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정치적 진실 공방으로만 흐르면 이 정부는 물론 다음 정부도 원전 카드를 잃게 된다. 결국 한반도는 원전도 평화도 잃고 말 것이다. 이 모든 일의 출발점에 탈원전이 있다. 탈원전은 탄소 중립과 미세먼지 해결을 어렵게 하고 일자리와 미래 먹거리를 파괴한 주범이다. 급기야 이젠 대북 원전 지원마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리더의 잘못된 비전이 부른 후과(後果)가 이리도 무겁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 결단할 때다. 차라리 이참에 북한 비핵화+대북 원전 지원+탈원전 폐기의 3종 세트를 공개 선언하고 국민적 동의를 구하면 어떤가.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탈원전

능력주의와 반지성주의와 계급론

2021년 2월 4일 by 이상한 모자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20120131321209

지금보다 좀 더 젊고 기운이 넘쳤던 시절에 계급 문제의 인식 폭을 넓히게 된 계기는 김선생님이 에릭 올린 라이트(명복을 빈다)의 계급론과 폴 윌리스의 저서를 소개해준 거였다.

학교와 계급재생산은 지금도 책장에 꽂혀 있다. 해머타운의 싸나이들(lads)은 성차별주의자고 인종차별주의자이며 반지성주의적 행태를 보인다. 폴 윌리스가 여기서 발견한 것은 이들이 공교육에 저항하며 주체적으로 노동계급문화를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게 사회적으로 계급이 재생산되는 중요 요인이었다는 거다. 그런데 이건 영국처럼 계급적 분화가 분명한 사회 조건에서의 얘기고, 다른 조건이면 또 달랐을 거다. 가령 오늘날의 미국이었다면 이들은 백퍼센트 트럼프 지지자가 된다. 지금 영국에선 아마도 브렉시트… 아무튼 그래서 반기득권적 문화 즉 저항이 어떤 긍정적 적극적 대안적 방식으로 조직화될 수 있느냐,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이 문제를 푸는 것이 숙제이다.

가령 반지성주의를 말하지만, 반-지성의 ‘지성’은 뭘 말하나? 과학… 백신 왜 안 맞냐? 백신을 둘러싼 일련의 과학적 지식과 체계가 ‘우리’가 아닌 ‘엘리트’의 것이기 때문에(물론 나는 백신-자본은 의심하지만 백신-과학을 신뢰한다) 냉소주의적 접근, 그러니까 의심을 하는 거다. 그게 프랑스 같이 똑똑한 사람들 모여있는 데서도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는 이유다. 이런 맥락을 따져보면 사실 반지성주의라는 명명 자체가 엘리트주의적인 것이다. 호스스태터는 1955년에 ‘개혁의 시대(The Age of Reform)’를 썼는데 거기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영향력을 미쳤던 미국 민중주의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그것의 핵심은 그의 주장대로 ‘반지성’이 핵심이 아니라 반기득권적 저항과 ‘대안부재’의 만남이다.

극우포퓰리즘은 여러차례 얘기하지만 반기득권적 저항을 ‘거짓 대안’과 짝지은 결과물이다. ‘거짓대안’은 사회적 코드로서의 껍데기 뿐인 자유주의, 세계체제로서의 자본주의, 특정 계층이 주도하는 대의민주주의의 결합을 다시 한 번 퇴행적 방식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좌파는 ‘대안부재’는 해결하지 못하면서 권력을 잡았을 때는 (전후사정이 어떻게 됐든지 간에) 기성 해법을 답습하고, 권력을 잃었을 때는 반기득권적 저항만을 관성적으로 주장하면서 극우포퓰리즘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진짜 대안’은 좌파-엘리트라고 답을 갖고 있지 않으니 모두가 모여 만들어 가야 하고, 그러면 모두가 모여 만드는 방법이란 뭐냐가 핵심이다. 그게 칼 폴라니든지 심의민주주의든지 참여계획경제든지 참여소득이든지 그런 것들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를 합의하고 그 청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거다. 그게 장기적인 정치적 기획이 돼야 하는데, 한 발도 나아간 바 없다. 우울해지니까 그만 합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극우포퓰리즘, 능력주의, 반지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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