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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잡감

진보의 새로운 소명?

2024년 3월 17일 by 이상한 모자

누가 그랬다. 임태훈씨의 낙천에 실망한 사람들은 조국혁신당을 지지해야 하는 것일까? 이게 무슨 질문인지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논리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본 바, 이런 얘기인 거 같았다. 일각에서 조국당 돌풍을 반윤비명이라 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어떤 이유로든 민주당에 실망을 했다면 이제 조국당을 지지해야 하는 거냐 라는…

그래서 내가 그랬다. 조국당이 요즘 뜨는 이유가 반윤비명이라는 맥락인 건 맞는거 같은데, ‘이재명의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임태훈씨의 낙천을 꼽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녹모라는 당 지지든 투표포기든 하지 않겠느냐… 지금 조국당 찍는다는 사람들의 ‘이재명의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는 윤석열-김건희를 더 세게 혼내주지 않아서이거나, 사법리스크 때문이거나, 말뽄새가 가벼워서거나… 등등등등의 이유 아니냐… 그러면서 제가 덧붙이길, 저는 애초에 평론을 반쯤 포기한 상태였는데 요즘은 90%는 포기했다…

얼마 전에 여기다가 위성정당의 나라를 만들으라고 쓴 일도 있는데, 조국당이 보여주는 어떤 징후가 있는 건 사실이다. 정권심판론이 강화되고 일부 유실되던 민주당 지지율이 복구됐다 이런 얘기를 방송에선 어쩔 수 없이 많이 하지만, 내심 더 관심있게 보는 건 다들 이상향처럼 말하던 ‘다당제’라는 게 ‘K대의민주주의’에서 양당제-한국식으로 구현되는 하나의 방식이 정식화되는 경로가 개척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다.

이런 정치행태가 지금은 준(?)위성정당과 위성지망정당인 조국당으로 표현되지만, 나중에는 친명정당 친문정당 하는 식의 다양한 계파별 위성지망정당의 창당으로 표현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 조금 더 진지한 정파적 모델을 따른다면 어떻게 될까? 소위 시민사회 등을 자처하는 범민주당 진영이 민주당-좌파, 민주당-중도, 민주당-우파 하는 식으로 각기 위성지망정당을 만드는 거다. 본체인 더블민주당은 공식적으로는 위성정당을 정하지 않고 이번처럼 애매하게 가는데, 대신 위성지망정당들에 대한 비례공천권은 사실상의 경쟁명부가 되면서 형해화되는 거지…(후보가 알아서 위성지망정당에 공천 신청하고 유권자의 표심에 따라 공천 여부가 결정되므로…) 이러면 다당제가 양당제에 종속된 무늬만의 형태로 연동형 비례제를 타고 구현되는 거다. 사실상 더블민주당의 우호그룹이나 다름이 없었던 시민사회 일부의 태도를 보면 이게 차라리 솔직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팔자에 대하여는 저의 저쪽이 싫은 책을 참고…) 하여간 이게 조국당이 보여주는 K대의민주주의의 미래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거다.

최근 장선생님이 쓴 글에 약간 비슷한 느낌이 있어서 이러한 생각을 다시 한 번 되새기기도 했던 것인데, 아래의 대목이다.

다시금 준연동형 방식에 따라 총선을 치르려 하는 지금, 양대 정당은 전보다 더 당당히 비례위성정당을 만들고 있고, 한때 이를 비판했던 인사들이 이제는 그 전도사로 활약한다. 이쯤 되면, 양대 정당과 그 비례위성정당이 한국형 정치제도로 뿌리내렸다고 봐야 한다. 달리 말하면, 양당 독점 정치를 깨려던 진보정당 운동의 정치개혁 시도는 일단 처참히 ‘실패’했다. 이렇게 한 시대가 끝나 버렸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32128.html

이 글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제안하고 있는데 방향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가 있으면서도…

정치개혁 운동 제1기의 패배 이후 우리에게 남은 수단은 마치 1987년 6월의 거리에서 그랬듯이 정치체제 바깥으로부터 시민의 힘으로 낡은 질서에 충격을 주는 것이다. 아마도 법안 국민발의권, 국민투표 국민발의권 도입처럼 국민주권을 강화하는 ‘원 포인트’ 개헌을 요구하는 운동이 정치개혁 운동 제2기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진보정당’은 이렇게 시민주권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세력의 다른 이름이 되어야만 한다.

…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지금 진보쓰가 특히 약한 게 방향도 방향이지만 그걸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 아닌가 하는 생각. “개헌을 합시다”라고 지금 그냥 외치는 것과, 개헌 논의를 위한 여론을 모으는 모임 단위 기구 등등을 누가 어떻게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냐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 특히 후자가 중요한데, 왜냐면 위 글에서도 “개헌을 합시다”라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정치체제 바깥으로부터 시민의 힘으로 낡은 질서에 충격을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 그런데 우리 진보쓰들은, 이것도 한국인이라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과정은 다 건너뛰고 결론만 외워서 앞뒤가 바뀐채 그냥 개헌만 외치다 끝나는 때가 부지기수임. 개헌은 수단이고, 그 수단을 갖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상상하지 않으면, 죽는 것임.

죽는다고요? 그건 너무 심한 얘기 아닌가? 아니 제가 옛날에 강철의 라인배럴이라는 로봇애니메이션을 봤는데 상상력이 고갈돼서 인류가 멸망했다고 그럽디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다당제, 선거연합, 연동형비례대표제, 조국혁신당

신문의 임종석 보도는 오보인가

2024년 3월 4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 어떤 분이 오늘 아침 신문의 임종석 관련 보도는 오보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비유적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오보는 아니다… 왜냐면, 신문의 기사는 임종석과 이낙연과의 만남에 대해 쓴 거다. ‘임종석과 이낙연이 만났으니 앞으로 탈당 가능성이 생겼고, 탈당을 한다면 이런 저런 일이 될 수 있는데, 당내에선 탈당 안 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 대개 이런 내용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임종석이 나 탈당 안 합니다 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이게 왜 오보가 되나? 오보라면… 모 종편의 경우는 오보가 될 수 있다. 그 방송사는 ‘탈당은 하는데 불출마 한다’라고 단독달고 썼다. 이 사례와 앞서 말씀드린 신문 기사 내용의 차이가 구분이 안 된다면 당신은 지금 글을 대충 읽은 거다. 다시 읽어봐라. 초등학교를 다녔으면 누구라도 이해한다.

그랬더니 그 분이 그러는 게 아닌가? 신문들이 임종석이 탈당하고 민주당이 분열했으면 좋겠어서 이런 예측 전망 기사를 잔뜩 썼다… 임종석이 이낙연을 만났으니까 당연히 탈당 시나리오를 쓰지, 임종석이 이낙연을 만났는데, ‘임종석, 이낙연 만났지만 탈당은 절대 안 할듯’ 기사를 이렇게 쓰나?? 사람 마음이 하룻밤에도 달라질 수 있는데, 그거야말로 편향적인 기사 아닌가? 신문과 무슨 원수를 져서 그러는 건지…

혹자는 이럴 거야 분명. 그러게 왜 전망을 쓰냐 그냥 드라이하게 팩트만 쓰지… 그지? ‘임종석 이낙연 만나’ 이렇게만 쓰라는 거잖아. 그지? 그게 무슨 언론의 정의인 듯이 말하는 분들 있어. 그럴까? 근데 그렇게 말하는 분들도 아주 선택적으로 접근한다고.

가령 오늘 어떤 분은 또 이렇게 말했다. 왜 국힘 공천은 조용한 공천이라고 쓰냐! 김건희 공천이라고 써야 한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지금까지 김건희 특검 의식한 공천 지연 얘기 많이 말씀드리지 않았느냐, 여기서 얘기를 했다는 거는 신문에 써있다는 거다… 대문짝만하게 안 쓴 게 문제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여당 공천에 대해서 더 입체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근데 어떤 분은 내가 뭐라 말하든 신문은 김건희 공천이라고 안 썼고, 김건희 공천이라고 써야 한다고 계속 주장을 하는 것임.

근데, 여기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해보면… 여당이 김건희 공천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한 적은 없잖아. 앞서 ‘임종석 이낙연 만나’라고 쓰는 것 이외엔 무조건 안 된다는 분들 주장대로 한다면 여당도 ‘권성동 이철규 공천 받아’ 또는 ‘김선교 박덕흠’ 이렇게만 써야지. ‘김건희 공천’ 쓰면 안 되지. 근데 ‘임종석 이낙연 만나’ 무조건 이렇게만 쓰라고 하는 분이 있다면, 아마 ‘김건희 공천’ 이렇게 써야 한다고 주장할 거 아니냐. 기준이 뭐야?

기준이 뭐긴 뭐야 누구한테 도움 되고 유리하냐지. 신문도 안 보는 분들이 신문 욕하는 이유는 결국 그거 밖에 없지 뭐… 그니까 내가 도대체 누구를 위해 뭘 하고 있나 현타온다는 것임. 최근 어떤 동종업계 종사하시는 분을 만났는데, 여러 말씀 하시는데 내 입장에선 가늘고 길게 가자는 취지의 말씀이었거든? 근데 그 말씀은 좀 귀담아 듣게 되더라. 당신이 사라지면 더 이상한 녀석들이 자리를 채우게 될 것이다… 그건 그럴 것도 같애. 근데 내가 내 얘길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거니와, 다들 그 이상한 녀석을 원하는 세상이니 이거 뭐 어떡하나. 아니, 애초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내가 이상한 녀석이라니깐.

이렇게 썼다고 누가 또 징징댔다고 하겠지? 보지 마 그러면. 누가 보라고 칼들고 협박함?

Posted in: 신변잡기, 잡감 Tagged: 신문

용과 같이 8

2024년 2월 29일 by 이상한 모자

대망의 엔딩을 보았는데, 눈물이…

이 게임은 전반적으로 좀 엉망이다. 하려는 얘기는 알겠는데,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다. 원전마피아 스토리는 용기있다. 대한민국이었으면 윤석열한테 혼나는 스토리… 근데 늘 그렇듯 스토리텔링에 문제가 있다. 잘 이해가 안 된다. 사실 이 시리즈는 원래 B급이다. 렌탈 비디오 같은 거다. 근데 제로와 리메이크작인 극, 극2의 흥행에 힘입어 7편서부터는 메이저를 지향한다고 봤는데, 8에서 다시 B급으로 뒷걸음질 친 느낌이다.

그럼에도 하려는 얘기를 알겠다는 건 이런 거다. 야쿠자도 그렇고 방사성폐기물도 그렇고 본질적으로는 체제의 부산물이다. 사실 어떤 면에서 핵발전소는 체제에 대한 완벽한 비유다. 핵발전소의 존재를 통해 문명은 비약적 발전을 이루고 사람들은 이게 지속가능한 닫힌 계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고 그런 설명은 폐기물과 그것을 처리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 등을 외면한 결과일 뿐이다. 그 ‘외면’이라는 행위가 체제의 일부이다. 외면이 없으면 체제는 유지되지 않는다.

야쿠자도 그런 존재였던 때가 있었는데, 어디나 그렇듯 공권력이 강화되고 체제가 변화하면서 이제는 그 역할이 실질적으로 사라졌다. 용과 같이 시리즈는 그 과도기에 등장한 게임이다. 주인공은 야쿠자가 아닌 신분이지만 게임은 결국 야쿠자 얘기고 키류횽님은 야쿠자 얘기의 주인공이다. 6편까지가 그랬다. 6편을 보라. 전형적인 야쿠자 얘기다.

그러나 이건 지속가능하지 않다. 언제까지 비현실적인 야쿠자 얘기를 할 것인가? 그래서 7편서부터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한 거다. 카스가녀석은 똑같이 야쿠자 출신이지만 좀 멀리서 보면 비주류가 모인 주인공 집단의 한 명에 불과하다. 비주류 모임의 다수는 일본, 중국, 한국계의 폭력단 출신이지만 캬바걸, 노숙자, 퇴직 경찰도 포함된다. 주인공 그룹이 이렇게 재정의되면 큰 줄기가 되는 스토리도 단순한 야쿠자 얘기가 아니라 사회적 비주류의 얘기로 확장될 가능성이 생긴다. 7편은 야쿠자 얘기가 전반적 비주류 얘기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 정도의 역할로 보였고 그걸 잘 해냈다고 생각됐다. 그러니 이제 8부터는 새로운 용과 같이 이야기를 하면 되는 거였다. 가령 앞의 그 ‘외면’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야쿠자 뿐은 아니잖나. 그런 존재들의 얘기를 잘 찝어내면 흥행과 의미 둘 다 잡을 수 있는 좋은 시리즈로 거듭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뚜껑을 열어보니, 물론 세세하게 얘기하면 확장된 얘기가 없진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7편의 취지를 다시 반복하는 듯한 느낌이다. 야쿠자 얘기를 못 끝낸 거지. 미련이 남은 거다. 그게 세계시장 때문이든 뭐든… (가령, 세계시장을 겨냥한다면 하면 야쿠자, 닌자, 사무라이 등 같은 소재를 빼고 갈 수 있겠는가.) 8편이 무슨 얘긴지 알겠는데, 무슨 얘긴지 모르겠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번에야 말로 야쿠자 얘기를 확실히 끝내기 위해 키류횽님이 야쿠자-예수로서 이 원죄를 (또다시!) 대속하셔야 할 처지가 되신 거고, 그래서 8편의 핵심은 하와이나 카스가타치가 아니고 바로 이 키류횽님의 대속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그런데, 바로 그 점에 있어서 시리즈를 오래 붙들고 있었던 사람으로선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마음이랄까, 그렇다는 것이다… 나 같은 라이트 유저라면 2016년에 제로나 극을 한글화 된 버전으로 접하면서 이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만 따져도 8년차 아니겠나. 그런데 실제로 1편이 발매된 것은 2005년이었기 때문에 용과 같이 월드는 거의 20년 가까이 게임 속 존재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근데 이 게임은 어쌔신 크리드나 그런 시리즈처럼 공간을 막 옮겨 다니지 않는다. 결국은 돌고 돌아 카무로쵸고 나오던 사람들이 계속 나온다. 저 같은 사람들은 8년간 20년의 역사를 압축체험한 것인데, 어쨌든간에 이러나 저러나 20년의 역사다. 게임 속 기준으로 시간을 따진다면 어떨까? 제로의 시점이 1988년이니까 거의 40년…… 키류횽님 40년 인생과 카무로쵸의 역사를, 뭐 말은 안 되지만 하여간 체험해 온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키류횽님이 말년이 되어 돌아보면서 후일담을 확인해 나간다고 하면, 코끝이 찡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거다. 그리고 이것은 전에도 쓴 것처럼 게임이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다. 영화나 드라마였으면 후일담으로만 이렇게 긴 시간을 채울 수가 없지. 하다못해 식당 메뉴 대화지만… 라면 먹는데 그릇에 키류 카즈마라고 써있는 걸 보고 동명이인이라고 우기다가 옆에 다나카 신지라고 나오니까 바로 그 키류 카즈마는 내 이름 맞다고 하는 장면…(신지와의 추억인데… 부정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낙향해 두부를 팔다 카무로쵸로 돌아온… 더 늙어 버린 포케사화이타… 더 늙었는데도 여전히 맛이 가있는 마지마노아니키… 마지막에 더 수척해진 키류횽님… 엇갈리긴 했지만 문병하러 온 모자… 시리즈를 죽 해온 사람들이라면 역시 진정할 수 없는 장면 아니겠나. 그런 점에 있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거였다 이 말이야 이거는.

아무튼 그런 생각을 했고… 근데 이놈들아 키류횽님 살려내라. 카시와기횽님도 살아있는데 키류횽님 그게 아니면 이제 그만 만들든지. 용과 같이 그만 만들어라. 그만 만들어! 이제 충분하잖아! 더 쓰고 싶은 얘기도 있지만 지금 시간이 없네.

Posted in: 작품 감상, 잡감 Tagged: 용과 같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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