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새로운 소명?
누가 그랬다. 임태훈씨의 낙천에 실망한 사람들은 조국혁신당을 지지해야 하는 것일까? 이게 무슨 질문인지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논리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본 바, 이런 얘기인 거 같았다. 일각에서 조국당 돌풍을 반윤비명이라 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어떤 이유로든 민주당에 실망을 했다면 이제 조국당을 지지해야 하는 거냐 라는…
그래서 내가 그랬다. 조국당이 요즘 뜨는 이유가 반윤비명이라는 맥락인 건 맞는거 같은데, ‘이재명의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임태훈씨의 낙천을 꼽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녹모라는 당 지지든 투표포기든 하지 않겠느냐… 지금 조국당 찍는다는 사람들의 ‘이재명의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는 윤석열-김건희를 더 세게 혼내주지 않아서이거나, 사법리스크 때문이거나, 말뽄새가 가벼워서거나… 등등등등의 이유 아니냐… 그러면서 제가 덧붙이길, 저는 애초에 평론을 반쯤 포기한 상태였는데 요즘은 90%는 포기했다…
얼마 전에 여기다가 위성정당의 나라를 만들으라고 쓴 일도 있는데, 조국당이 보여주는 어떤 징후가 있는 건 사실이다. 정권심판론이 강화되고 일부 유실되던 민주당 지지율이 복구됐다 이런 얘기를 방송에선 어쩔 수 없이 많이 하지만, 내심 더 관심있게 보는 건 다들 이상향처럼 말하던 ‘다당제’라는 게 ‘K대의민주주의’에서 양당제-한국식으로 구현되는 하나의 방식이 정식화되는 경로가 개척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다.
이런 정치행태가 지금은 준(?)위성정당과 위성지망정당인 조국당으로 표현되지만, 나중에는 친명정당 친문정당 하는 식의 다양한 계파별 위성지망정당의 창당으로 표현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 조금 더 진지한 정파적 모델을 따른다면 어떻게 될까? 소위 시민사회 등을 자처하는 범민주당 진영이 민주당-좌파, 민주당-중도, 민주당-우파 하는 식으로 각기 위성지망정당을 만드는 거다. 본체인 더블민주당은 공식적으로는 위성정당을 정하지 않고 이번처럼 애매하게 가는데, 대신 위성지망정당들에 대한 비례공천권은 사실상의 경쟁명부가 되면서 형해화되는 거지…(후보가 알아서 위성지망정당에 공천 신청하고 유권자의 표심에 따라 공천 여부가 결정되므로…) 이러면 다당제가 양당제에 종속된 무늬만의 형태로 연동형 비례제를 타고 구현되는 거다. 사실상 더블민주당의 우호그룹이나 다름이 없었던 시민사회 일부의 태도를 보면 이게 차라리 솔직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팔자에 대하여는 저의 저쪽이 싫은 책을 참고…) 하여간 이게 조국당이 보여주는 K대의민주주의의 미래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거다.
최근 장선생님이 쓴 글에 약간 비슷한 느낌이 있어서 이러한 생각을 다시 한 번 되새기기도 했던 것인데, 아래의 대목이다.
다시금 준연동형 방식에 따라 총선을 치르려 하는 지금, 양대 정당은 전보다 더 당당히 비례위성정당을 만들고 있고, 한때 이를 비판했던 인사들이 이제는 그 전도사로 활약한다. 이쯤 되면, 양대 정당과 그 비례위성정당이 한국형 정치제도로 뿌리내렸다고 봐야 한다. 달리 말하면, 양당 독점 정치를 깨려던 진보정당 운동의 정치개혁 시도는 일단 처참히 ‘실패’했다. 이렇게 한 시대가 끝나 버렸다.
이 글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제안하고 있는데 방향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가 있으면서도…
정치개혁 운동 제1기의 패배 이후 우리에게 남은 수단은 마치 1987년 6월의 거리에서 그랬듯이 정치체제 바깥으로부터 시민의 힘으로 낡은 질서에 충격을 주는 것이다. 아마도 법안 국민발의권, 국민투표 국민발의권 도입처럼 국민주권을 강화하는 ‘원 포인트’ 개헌을 요구하는 운동이 정치개혁 운동 제2기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진보정당’은 이렇게 시민주권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세력의 다른 이름이 되어야만 한다.
…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지금 진보쓰가 특히 약한 게 방향도 방향이지만 그걸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 아닌가 하는 생각. “개헌을 합시다”라고 지금 그냥 외치는 것과, 개헌 논의를 위한 여론을 모으는 모임 단위 기구 등등을 누가 어떻게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냐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 특히 후자가 중요한데, 왜냐면 위 글에서도 “개헌을 합시다”라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정치체제 바깥으로부터 시민의 힘으로 낡은 질서에 충격을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 그런데 우리 진보쓰들은, 이것도 한국인이라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과정은 다 건너뛰고 결론만 외워서 앞뒤가 바뀐채 그냥 개헌만 외치다 끝나는 때가 부지기수임. 개헌은 수단이고, 그 수단을 갖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상상하지 않으면, 죽는 것임.
죽는다고요? 그건 너무 심한 얘기 아닌가? 아니 제가 옛날에 강철의 라인배럴이라는 로봇애니메이션을 봤는데 상상력이 고갈돼서 인류가 멸망했다고 그럽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