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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잡감

마스크부터 100조원까지

2021년 12월 8일 by 이상한 모자

짝귀가 구라칠 때 상대의 눈을 보지 마라, 라고 했는데…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세상이니 사람들과 마주치면 눈밖에 볼 데가 없다. 근데 마스크로 얼굴을 반 이상 가리고 있으니, 눈을 보면서 이 사람이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인가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러다보면 일상에서 그랬던 것보다 더 오래 남의 눈을 쳐다보게 된다.

그런데 상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결국 서로 빤히 쳐다보게 되는데, 그러면 혹시 우리가 아는 사이인가 싶어서 나도 더 쳐다보는 악순환?이 돼버린다. 결국 먼저 누군가 외면해야 문제가 풀린다. 이런 일들이 자주 있다보니 대부분 빨리 외면하는 쪽을 택한다. 실제로 그래서 상대를 못 알아보고 실례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마스크를 언제까지 써야 하는가. 정답은? 앞으로도 주욱~ 다들 위드코로나 위드코로나 노래를 부르던 때, 위드 코로나 얘기하는 사람이 대단한 현인 대접을 받고 방역이 죄인 취급 받던 바로 그 시기에, 그래서 방역당국은 물론 모든 의료전문가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백신접종 70%인지 80%인지 넘기면 위드 코로나 가즈아 다 얘기하던 그 때…

방송국 대기실에서 의사 선생님이 그랬다. 자기가 볼 때는 백신 접종률이 높아졌음에도 중증환자가 줄지 않을 것 같다… 확진자가 늘어나서 분모가 커져 지금(그러니까 그 때)은 비율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중증화율과 치명률은 일종의 후행지표이다… 지금 흐름 보면 줄어든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확진자가 늘었으니 앞으로도 이 흐름대로 늘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병상확보도 제대로 못할 거면서 무슨 배짱으로 일상회복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방송 나가서는 이런 얘기 안 할 거다…

결국 그 선생님 말씀대로 됐다. 그때 위드코로나 위드코로나 잘난척 하면서 말하던 사람들한테 묻고 싶다. 만족하냐!! 아마 이렇게 말하겠지. 병상확보 등 준비를 제대로 했어야지, 자영업자에게 희생 강요하는 체제를 유지했어야 됐다는 거냐? 그런데 병상확보 네 글자가 말처럼 쉽냐고… 지금 하는 거 봐라. 하기 싫어서 안 하는가? 병원 다 국유화 해야 한다.

그러니까 길은 두 가지 뿐이다. 방역을 철저히 하고 자영업자를 국유화 하든지(비유니까 흥분하지 마시오), 위드코로나를 하고 병원을 국유화 하든지… 이 나라는 그 두 개를 다 못하는 나라라서 위드코로나든 아니든 답이 없는 거다.

그 둘 중 하나도 제대로 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선거 때 되니까 50조 100조를 얘기하고 있다. 100조를 어떻게 맨들어? 예산을 구조조정? 웃기지 말고. 국채 발행이지. 근데 3조 5조도 안 된다는 사람들이 100조 중에 최소 몇십조 국채 발행을 어떻게 해. 그리고 수단은? 추경? 100조 추경이 어디있냐. 동의할 생각도 없지. 긴급재정경제명령? 임기 말 대통령이 100조짜리 명령 발동을 하리? 신임 대통령이? 3월에 선거하고 인수위 어쩌고 하고 5월 취임… 초기에 정부조직법 어쩌고 바쁘니까 결국 뭘 하든 여름이나 돼서야 하는 거다. 그때가면 50조건 100조건 생각 안 난다에 100원을 건다.

시대와 싸워야지. 지금 모여서 정치개혁 얘기나 할 때가 아니다. 이런 얘기하면 자꾸 선거제도 마니아들이 와서 뭐라고 뭐라고… 내가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에요. 일단 마음을 얻어야 우리에게 유리한 운동장으로 만들어 달라고 얘기할 거 아니냐고. 무조건 우리 물건 지금 100원 밖에 못 받는데 1000원은 받아야 되거든요… 이게 맞거든요… 이런다고 통하냐? 맨날 하는 얘기니까 이만 줄입니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위드코로나, 코로나19

석열왕식 후견주의

2021년 12월 8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은 석열왕이 무슨 향우회 자리에 가서 호남홀대론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지역주의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반복되는 패턴이다. 윤석열 정권에선 지역의 경제적 이익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석열왕이 거듭 충청은 나의 뿌리라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 의미일 걸로 추정된다.

과거의 지역주의는 비유하자면 정치적 자력구제에 가까웠다. 우리 지역이 무시당하고 있으니 우리 손으로 직접 우리 정권을 창출하자는. 석열왕의 방식은 이것과는 다르다. 석열왕은 호남이나 충청 출신도 아니고, 어떤 지역 대표성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당선되면 섭섭치 않게 해주겠다’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은 고전적인 지역주의 정치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말하자면 정치적 동의를 자원 분배로 등치시키는, 후견주의(clientelism)다.

물론 지방에 대한 이익 배분은 모든 현실정치가 약속해온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적어도 어떤 보편적 차원의 명분이 덧칠돼있다. 균형발전이랄지, 물류와 산업의 발전이랄지, 수도권으로의 정치경제적 집중을 분산해야 한달지 등등…

그러나 석열왕식 접근은 그런 게 아니다. 여기서 두 가지 신호를 본다. 첫째, 석열왕은 대개의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 대의명분이 아니라 이해관계와 손익이 본질이라는 속물적 정치의식의 소유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두환 발언에서 호남 사람들도 동의할 거라는 얘기가 느닷없이 나오는 거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석열왕의 인기라는 것은, 대의(그게 진실된 것이든 아니든)를 앞세운 정권이 그 대의를 관철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형성되는 정치적 냉소주의가 이의 반동으로 형성된 속물적 정치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전형적 현상이 다시 나타난 거라고 볼 수 있다.

둘째, 후견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추종자를 자처하는 자들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문제로 지목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이런 점에서 석열왕은 ‘자유민주주의’를 자기가 당한 사실에 대한 억울함을 부각시키는 수사로서 활용할 뿐 그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윤석열, 자유민주주의, 지역주의, 호남

바닥을 드러낸 논평가들

2021년 12월 6일 by 이상한 모자

지난주, 이른바 혼외자 얘기가 거론된 모든 방송에서 주장했다. 그게 어떤 맥락의 어떤 사건이건 간에 당사자 간의 문제일 뿐이고 상호간에 또 법적으로 해소된 문제라고 하면 공적 영역에서 이걸 갖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더블민주당이 쉽게 ‘손절’을 택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지킬 이유도 없으면 애초에 영입은 왜 했는가?

항상 하는 얘기지만 나라고 듣는 얘기가 없겠는가. 그러나 그건 다 논외로 하는 거다. 어제 오늘도 봐라. 완전히 상황 달라졌지. 세상사 논평하는 사람들은 명심을 해야 한다. 주워듣는 게 다 진실이 아니고, 우리 언론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공론장에서 다뤄지지 않았다면 진실이어도 아직 진실이 아니다. 오늘까지의 재료들만 갖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무튼 더블민주당의 해명이 잘못됐기에 어쩔 수 없이 보도한다는 명분으로 이 문제를 이런 식으로 보도하는 보수언론, 그리고 이제 이미 보도가 됐으니까 나는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식으로… 이혼은 되지만 혼외자는 안 되지 않느냐는 맥락을 깔고 질문하는 라디오 진행자… SNS와 댓글에서 아침드라마 코드 그대로 그저 아무 말이나 떠들어 대는 인간말종들까지. 여기가 지옥이다, 여기서 뛰어라!

SNS를 하지 않으니 뭐라고들 떠드는지 별 관심이 없는데 자꾸 보도를 하니 알게 될 수밖에 없다. 박정희 허리 아래 얘기를 하며 도대체 뭘 어쩌잔 건지 모를 소릴 하던 중궈니횽은 본인 표현대로 주제넘은 소리를 하고는 결국 사과했다.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그렇다. 문제는 그런 실수가 왜 일어났느냐는 거다. 민주당은 운동권이고 선전선동이니 절대 거기에 속으면 안 된다… 다짐에 다짐을 거듭한 결과로서의 반신반의가 원인 아닌가?

물론 사람 말이라고 다 믿을 수 있느냐는 항변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그건 형사나 사립탐정의 윤리이고 공론장의 참여자 혹은 관전자들이 취해야 할 모범적인 태도는 무엇인가? 가령 조교수한테 속았다 치자. 그래서 너희가 잃는 건 뭔가? 1) SNS에서 잘난척 따봉이나 받는 기쁨 2) 정파적 승리감… 반면 조교수에게 속을 각오를 하고 그의 항변을 적어도 들어주는 걸 선택할 때 우리 사회가 얻을 수 있는 건? 최소한 몇 사람의 인생이 더 파탄지경으로 가는 것 정도는 막을 수 있다. 우리 스스로가 쓰레기로 전락하지 않는 효과는 덤이다.

중궈니횽은 최근에 ‘금요 울산 합의’를 두고 윤석열의 정치력이 확인됐다고 썼다던데, 윤석열이 자기 똥 못 치우는 걸 이준석이 실력행사로 강제 청소를 시킨 건데 뭔 정치력이 빛났는가? 이준석 큰일 했다고 말하면 모르겠다. 이준석은 정말 큰일했다. 그러니까, 그걸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 또 드러나는 거다. 논평가가 정파적 승리감을 얻는 방식이라는 게…

어느 평론가가 조교수에 대해 그동안 썼던 글을 지웠다고 고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천륜이니 인륜이니 했더란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내 새끼인지 아닌지 당사자는 중요할 수 있다. 그런데 제3자들에게 그게 그렇게 중요한 정치적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백 명이 있으면 적어도 백 가지 가정사가 있는데, 거기서 일어난 일이 뭔지 알고 천륜이니 인륜이니 했는가.

황당하게도 이런 논리는 최근에 본 여성정치네트워크?란 그룹의 논평에도 등장했다. 물론 전체 맥락은 조교수에 대한 민주당의 무책임을 겨냥한 것이었으나, 다소 의문이다. 가정을 거짓으로 구성했다는 게 뭔가? 사회의 어떤 규칙을 어겼다는 것인가? 아무것도 정확하게 확인된 바 없는 상황에서 그게 뭔가? 혼외자를 두고 분쟁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건가? 유교를 국교로 하는 신정국가라면 인정한다.

적어도 앞의 평론가는 생각이 짧았던 것에 대해 사과했다고 한다. 그나마 좋은 일이다. 대다수의 인간들은 그게 따봉이든 정파성이든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또는 자신의 처지에 유리하도록 편리하게 ‘피해자’에 감정이입해서는 떠들고 싶은대로들 떠들 것이다. 뭐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 나도 마찬가지겠지. 뭐 어떠냐. 당신은 나를 오해한 것입니다. 물론 나도 당신을 오해했겠지요. 나도 나를 오해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와서 착한척? 여긴 지옥이에요. 각자 알아서 살아남자고?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혼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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