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석열왕이 무슨 향우회 자리에 가서 호남홀대론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지역주의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반복되는 패턴이다. 윤석열 정권에선 지역의 경제적 이익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석열왕이 거듭 충청은 나의 뿌리라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 의미일 걸로 추정된다.
과거의 지역주의는 비유하자면 정치적 자력구제에 가까웠다. 우리 지역이 무시당하고 있으니 우리 손으로 직접 우리 정권을 창출하자는. 석열왕의 방식은 이것과는 다르다. 석열왕은 호남이나 충청 출신도 아니고, 어떤 지역 대표성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당선되면 섭섭치 않게 해주겠다’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은 고전적인 지역주의 정치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말하자면 정치적 동의를 자원 분배로 등치시키는, 후견주의(clientelism)다.
물론 지방에 대한 이익 배분은 모든 현실정치가 약속해온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적어도 어떤 보편적 차원의 명분이 덧칠돼있다. 균형발전이랄지, 물류와 산업의 발전이랄지, 수도권으로의 정치경제적 집중을 분산해야 한달지 등등…
그러나 석열왕식 접근은 그런 게 아니다. 여기서 두 가지 신호를 본다. 첫째, 석열왕은 대개의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 대의명분이 아니라 이해관계와 손익이 본질이라는 속물적 정치의식의 소유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두환 발언에서 호남 사람들도 동의할 거라는 얘기가 느닷없이 나오는 거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석열왕의 인기라는 것은, 대의(그게 진실된 것이든 아니든)를 앞세운 정권이 그 대의를 관철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형성되는 정치적 냉소주의가 이의 반동으로 형성된 속물적 정치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전형적 현상이 다시 나타난 거라고 볼 수 있다.
둘째, 후견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추종자를 자처하는 자들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문제로 지목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이런 점에서 석열왕은 ‘자유민주주의’를 자기가 당한 사실에 대한 억울함을 부각시키는 수사로서 활용할 뿐 그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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