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헌 당규에 대한 기자들의 게으른 접근
요 며칠 코미디 같다. 기자들이 그냥 정치인들 말만 듣고 된다던대? 아니래, 안 된다던대? 아니 누구는 된다던대? 에이씨 뭐야… 이러면서 기사 쓴 티가 역력해갖고… 된다 안 된다만 갖고 얘기하는 게 아니고 당헌 당규를 직접 확인을 하고 기사를 써야지.
당헌 당규라는 게 그 특성상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이런 저런 안 되는 이유를 얘기할 수 있지만, 결론이 이미 정해진 상황에선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래서 지난주 금요일부터 여당은 비대위로 간다고 말해왔다.
먼저 최고위원 몇 명이 사퇴하면 기능이 정지되는 거냐에 대해. 모두 사퇴해야 기능 정지라는 얘기는 반대파가 할 수 있는 얘기다. 그건 알아들었고. 이제 반대쪽 입장에서, 되는 방법을 찾아보자. 실제 당헌 10장 보칙을 보면 이렇게 돼있다.
제 96 조 (비상대책위원회) ①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 안정적인 당 운영과 비상상황의 해소를 위하여 비상대책위원회를 둘 수 있다.
일전에 검수완박 얘기할 때 기자들이 ‘부패 경제 등’ 이라는 문구에서 ‘등’이 들어가는 바람에 검사의 수사 대상이 무한히 늘어날 수 있다는 식으로 기사를 썼다. 나는 어디 평론가로 나가서 그런 해석도 있지만 그건 어려울 거라고 했다. ‘등’이라는 거는 대략 앞의 규정에서 정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말라는 정도이지, ‘등’에다가 아무거나 다 구겨넣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근데 아무튼 적어도 앞의 의미로 해석을 했으면, 이 당헌도 ‘등’에다가 방점을 찍고 봐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 규정에서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이라는 거는 대략 그런 정도의 일을 얘기하는 거지 저 두 가지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타이트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는 거다. 사퇴하는 최고위원이 4명이든 5명이든 전원이든, 핵심은 ‘~하는 등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있는 거고 그래서 의원총회가 ‘지금은 뭐가 어떻든지 간에 비상상황이라고 생각한다’는 데에 동의한 것이다.
그런데 의원총회가 뭐라 생각하든 비대위 구성은 결국 전국위에서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전국위 의장이 비대위 구성에 동의를 안 한다… 그래서 전국위 소집도 어렵다… 라고 어제 오후까지 많이들 기사를 썼다. 그때도 의문이었는데 당규를 보면 이렇게 돼있다.
제 4 조 (소집 및 의사) ① 위원회는 상임전국위원회의 의결 또는 최고위원회의의 의결 또는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의장이 소집한다. 다만, 의장이 위원회를 소집하지 않을 경우에는 당 대표가 소집하여야 한다.
그니까 서병수 씨가 뭐라고 생각하든 전국위는 최고위 의결로 요구하든 3분의 1 이상 요구를 받든 소집을 하게 만들면 되는 거다. 이걸 서병수 씨가 자기 입으로 기자들에게 설명하기 전까지(내가 소집하진 않을 거고, 요건 맞춰서 소집 요구하면 그건 거부할 수 없다) 아무도 이 얘기를 안 썼다니 이해가 되나?
그 다음, 비대위원장 지명 권한에 대한 쟁점이 있는데 이것도 안 된다는 쪽의 입장은 잘 알았고 된다는 쪽의 주장은 뭘까? 당헌을 다시 보자.
제 96 조 (비상대책위원회) ③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은 전국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당 대표 또는 당 대표 권한대행이 임명한다.
이거는 비대위원장 인사 추인 권한을 전국위가 가진다는 게 핵심이다. 지명권을 ‘당 대표 또는 당 대표 권한대행’이 갖도록 해놓은 것의 취지는, 비대위로 넘어가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이해 가능하다. 비대위는 당 대표가 “지도부는 총사퇴하고 비대위를 구성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당 대표는 “이미 책임지고 그만두겠습니다”라고 하고 없어진 상태고 남은 사람들이 “저희도 그만두고 비대위 구성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상황, 둘 중에 하나라고 본 거다. 대표가 징계를 당해갖고 당권정지가 돼있는 상황까지 가정한 건 아니니까 규정이 저렇게 돼있는 거지, ‘비대위원장 지명은 당 대표와 당 대표 권한대행만이 할 수 있고 직무대행은 절대로 안 된다’는 취지가 아닌 거다. 애초에 직무대행이란 거 자체가 당 대표의 권한을 대리 행사하는 거 아니냐. ‘당 대표 직무대행’이라고 안 써있어서 안 되는 거라고 하면 당헌 당규 상에 ‘당 대표’로 표기된 모든 대목에 ‘직무대행’을 같이 넣어야지.
정 이 조항이 문제라고 하면 개정을 하면 되는데 그것은 전국위에서 한다… 라는 게 보도 내용인데, 여기선 오히려 의문을 제기해봐야 한다. 문제가 되는 조항은 앞서도 봤듯 당헌 보칙인데, 당헌 개정 권한은 누구에게 있나? 이것도 당헌을 보자.
제 13 조 (기능) ① 전당대회는 다음의 기능을 가진다.
1. 당강령의 채택과 개정
2. 당헌의 채택 및 개정
3. 당의 해산과 합당에 관한 사항
4. 당 대표 및 최고위원의 지명
5. 대통령후보자의 지명
6. 기타 주요당무에 관한 사항의 의결 및 승인
② 전당대회를 소집하기 곤란한 때에는 제1항 각 호의 기능은 전국위원회가 대행할 수 있다.
당헌 개정은 전당대회가 다룰 사안이다. 참고로 당규 개정과 당헌 당규에 대한 유권해석은 상임전국위 소관임. 그래서 원칙적으로 당헌은 전당대회가 개정해야 한다. 다만 2항에서 보듯 ‘소집하기 곤란한 때’ 전국위가 그 기능을 대행할 수 있다. 그래서 전국위에서 당헌 개정이 가능하다고 하는 거다. 봐라, 이 당의 당헌 당규라는 것은 ‘하면 된다’ 이다. 그런데 앞서 보도한 것처럼 하려면 ‘전당대회를 소집하기 곤란한 때’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얘기들은 반윤 최고위원들이 안 해서 기사에 없는 것이다.
남이 얘기하는 걸 중심으로 기사를 쓰는 것 자체는 이해도 되지만… 여기 저기서 내가 답을 하는 거에 대해서 네가 뭔데 다 된다고 하느냐는 식의 태도와 눈초리가 싫어 괜히 그냥 심술부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