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더러 친윤과 결별하고 용핵관 검핵관 공천도 하지 말라는 거는, 이성계 아들에게 수양대군이 될 것을 주문하는 거다라는 비유를 요즘에 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 미디어스 글에다가도 그 얘기를 썼다.
김건희 특검 문제와 더불어 한동훈 비대위가 용산과 관계 설정의 중요 고비가 될 지점은 공천 관련 대목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대규모의 물갈이와 친윤 기득권과의 결별을 촉구하고 있는데, 여기서 미묘한 갈등선이 감지된다.
가령 종편을 포함한 일부 보수언론은 ‘실세’로 거론되는 이철규 의원과 박성민 의원을 겨냥하고 있다. 대통령 혹은 영부인과 가깝다고 알려진 두 사람이 총선판을 짜고 있는데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유지돼서는 필패일 테니, 이 두 사람의 거취부터 파격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거다. 특히 박성민 의원의 경우 김기현 대표 체제의 마지막을 장식한 초선 의원 난동 사건의 배후라는 설도 있어 더욱 문제라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그런데 당 내외에서는 김기현 지도부에 참여했던 일부 최고위원들과 함께 이들 친윤 실세들이 ‘한동훈 비대위원장’ 카드를 당내에서 강하게 주장해 관철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그렇잖아도 정당 경험이 없는 한동훈 전 장관이 이끄는 비대위가 들어서면 이들이 ‘한핵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것인데, 이 때문에 당 내에선 벌써부터 자칭 ‘한핵관’들을 멀리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즉, 한동훈 전 장관으로서는 비대위원장으로서 친윤 기득권과 함께할 것인가, 아니면 이들을 공천 과정에서 날려버릴 것인가를 결단해야 하는 문제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짚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김기현 대표가 들어설 때도 그랬고 인요한 혁신위 때도 똑같았지만, 공천을 파격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 뒤에는 빈자리에 누가 오느냐에 대한 우려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용핵관’, ‘검핵관’이 빈 자리를 채우는 게 아니냐는 게 대체적인 우려였다. 그런데 최근 보수언론 등은 그렇게 되면 용산과의 관계설정은 실패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친윤 기득권들은 앞장서서 ‘용핵관’, ‘검핵관’을 꽂는 역할을 자임할 것으로 여겨져왔다. 한동훈 전 장관이 ‘윤석열 아바타’라면 친윤 기득권을 날려버리더라도 역시 ‘용핵관’ ‘검핵관’을 꽂는 역할을 자임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보수언론이 기대하는 대로 뭔가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킬 공천을 주도할 것이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라면 윤석열 대통령은 그걸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수 있는 것일까? 검사 시절에는 성과를 내는 걸로 자기 자신을 증명할 수 있었으니 능력으로 알아주는 관계가 될 수 있었고 따라서 얼마든지 상대를 존중해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의 세계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동훈 전 장관은 차기 대권주자이자 잠룡이다. 한국 정치에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은 어떤 측면에선 상시적인 제로섬 게임을 벌이게 되는 게 현실이다. 더군다나 임기 초반에, 미래권력이 여당에 용산의 통제에서 벗어난 자기 세력을 독자적으로 구축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립’에 집착하기로 유명한 윤석열 대통령이 용인할까? 대단히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한동훈 비대위의 미래를 보수언론의 이상적 기대로 바라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https://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378
미디어스 글에도 쓴 바이지만, 김건희 특검 수정안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여당과 용산은 조선일보 기대에 못 미치는 반응인 거 같다. 이기홍씨가 그러더라.
필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한 장관 발언에 상당히 불쾌해하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이미 다 문제없는걸로 판명난 일인데 왜 특검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여지를 두느냐는 것이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31221/122737182/1
그니까 한동훈 김건희 특검은 악법 발언 -> 조선일보의 시네루 -> 용산 불쾌감 -> 한동훈의 난 그만 말할래요… 이렇게 됐다는 거 아닌가 하는 건데, 물론 이것도 페인트 모션일 수도 있고 하다. 이러다가도 윤통이 그래도 동훈이가 한다면 뭐 내가 전향적으로… 이렇게 나올 수도 있는 건데, 그러나 미디어스 글에 썼듯 그것도 결국 더블민주당이 안 받을 거기 때문에 거부권 명분 쌓기만 될 거다.
근데 한이나 윤이나 초록이 동색이면 들이받을 것도 없고, 굳이 그림을 만들어 들이받아 봐야 둘이 차이도 없는데 그러는 거면 결국 권력 쟁투밖에 안 된다는 근본적인 측면을 볼 필요도 있다. 가령 오늘 보면 한동훈의 언론관에 대한 지적… 많이 나오지 않나? 기자가 질문을 하니까 민주당의 질문사주냐고 되묻는거?
“민주당이 여러 군데에 물어보라고 시키고 다닌다고 그런다”라는 답변은 민주당의 ‘질문 사주’에 따라 기자들이 질문하고 있다는 지적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들린다.
이는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언론을 정치인의 하수인쯤으로 생각하는 발상에 가깝다. 한 전 장관의 논리대로라면, 그 스스로가 평소 ‘고발 사주’와 같은 공작 수사에 심취해 있기 때문에 기자들도 ‘질문 사주’를 받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온통 세상이 ‘정언 유착’, ‘검언 유착’ 등 카르텔로 뒤범벅 돼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또 기자의 질의가 본인을 곤란하게 하는, 골탕먹이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큰 오해다. 한 전 장관이 곤란함을 느낄지 여부는 기자들의 관심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https://www.nocutnews.co.kr/news/6067552
이 분이 동료 시민이니 어쩌니 했지만, 특별히 이 건에 대해서만 이러는 게 아니거든?
돌이켜보면 한 장관의 언론관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은 여럿 있었다. 그는 태국에 머물던 김성태 쌍방울그룹 회장이 올해 1월 현지에서 KBS와 인터뷰한 것을 두고 “해외 도피한 중범죄자가 귀국 직전에 자기 입장을 전할 언론사를 선택해 자기에게 유리하게 보도되도록 했다”고 말했다. 핵심 수사 대상을 인터뷰해 입장을 들어보는 것은 기본적인 취재 활동인데, 한 장관은 언론이 범죄자와 결탁해 범죄자 의도대로 이용되고 있는 것처럼 해석했다.
한 장관에게 언론은 정치인이든 범죄자이든 상대가 요청하는 대로 응하는 수동적인 조직일까.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면 아마 검사 시절 수사 내용을 흘려주면 충실히 받아쓰던 기자들을 너무 자주 접한 영향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한 장관이 언론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언론관이 엿보인다. 민주당과 사사건건 대립해온 그는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언론을 통해 자기 입장을 전파하는 데 열을 올렸다.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입장을 직접 올려도 될 텐데 굳이 언론을 이용하기를 고집했다.
그렇다면 불편한 보도에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는 검찰의 특수활동비 유용 의혹을 지적한 보도에 대해 “뉴스타파의 뇌피셜”이라며 발끈했다. 사실관계를 설명하거나 반박하기보다는 언론사를 깎아내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22117050000162
매사 이런 식인 사람이 뭔 동료 시민 운운 하는가? 그래서 제가 전에도 이 블로그에다가 오히려 윤석열의 본체가 한동훈일 수 있다고 쓴 것임. 지금은 보수 유권자들이 윤석열이 ‘안 긁은 복권’일 때 ‘옳게 된 윤석열’을 생각하며 기대를 가졌듯이 ‘옳게 된 한동훈’을 상상하며 이 얘기 저 얘기 하지만, 긁게 됐을 때에는 ‘그르게 된 윤석열’처럼 ‘그르게 된 한동훈’될 가능성이 상당해 보인다… 이런 얘기. 그니까 어차피 똑같은 사람들인데 둘이 싸운다면 그건 밥그릇 갖고 싸우는 거지 뭐 다른 게 있겠냐는 것.
그럼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이 분들의 정체라는 건 뭐냐. 도대체 뭐길래 이러는 거냐. 가령 서복경 선생은 이런 글을 써서 이런 얘기를 했는데…
이 정부와 집권당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혹자는 ‘극우’라고 한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정치적 스펙트럼의 오른쪽 끝에 있는 이념이나 신념을 지지하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확실히 이 정부는 뜬금없을 만큼 극우적인 발상이나 행동을 한다. 주 69시간 노동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그 행동이 ‘극우’적 신념에 기반해서 나온 걸까? 아닌 것 같다. 이념이나 신념을 가진 집단이라면 최소한 핵심 정책 영역에서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 정부는 맥락 없이 옛 주장들을 소환한다는 점에서 일관성은 있지만 정치적 신념으로서 일관성을 보여준 적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지 못한다. 어떤 이념이나 신념에 기반한 행동이 아니라는 증거다.
혹자는 이 정부의 행태를 ‘포퓰리즘’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도 아닌 것 같다. 어떤 행위나 생각을 ‘포퓰리즘’으로 정의하려면, 정치적 경쟁 상대를 이기기 위해 법규범을 무시한 채 대중의 지지를 동원하여 공격해야 한다. 이 정부는 정치적 경쟁 상대를 이기려는 목적의식이 있고 법규범을 무시하는 행태도 보이지만, 그 수단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 친구들은 집권당 내 정적을 제거하거나 제1야당 대표를 제거하기 위한 일관된 행동을 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굳이 여론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지지가 있든 없든 그냥 하는 거다.
굳이 이 정부의 정체성을 찾자면 과거다. 민주화 이후 지난 35년의 기억을 돌이켜보더라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그 이전의 과거. 2023년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민에게 기억에서조차 잊힌 오래된 것들만 소환해 버무려놓은 것 같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1446.html
이 얘기를 내식으로 하면 (이 브로그에도 쓴 적 있는데) 포퓰리즘인 척 하는 엘리트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 글의 논지를 덧붙이자면, 엘리트주의의 미덕이랄까 그런 것도 구현을 못하고 있는 거지. 하고자 하는 게 없으니까. 하고자 하는 게 없다는 거는 실짱님 글에서도 지적이 되고 있다. 하고자 하는 게 없으니 집권 연합도 제대로 안 된다는 거다.
선혈이 낭자했고 배신자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대통령들은 미래의 비전과 과거 청산의 명분을 하나로 묶었다. 동지를 쳐내는 대신 어제의 적과 손을 잡았다. 노태우는 전두환보다, 김영삼은 노태우보다, 노무현은 김대중보다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설득했다. 그냥 힘으로만 밀어붙인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여당을 자기 당으로 만든 것만 똑같다. 내세운 특별한 명분이나 가치는 없다.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 외교 방향 전환 등이 전 정부와 차별점이지만 여당 재편과는 관련 없다. 야당이 발목을 잡으니, 개혁을 해야 하니 여당을 일사불란하게 재편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듣긴 했다. 그런데 이른바 3대 개혁이라는 노동·교육·국민연금에 대한 정부의 개혁안이 뭔지는 들어본 적이 없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들이 전면에 서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국정 철학이 뭔진 잘 모르겠다. 요즘은 좀 뜸하지만, 이념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많이 들었다. 인재풀? 이태원 참사의 이상민 장관과 잼버리의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현 정부의 최장수 각료라고 한다.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3/12/22/WG7VY5QXVREQVFJXYUC4AHKM5I/
어떻게 보면 이게 법무부 장관을 하다말고 한동훈이 비대위원장을 하러 와야 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똑같이 포퓰리즘인 척 하는 엘리트인데 국정 철학이든 뭐든 공통분모가 없어도 공유하는 뭔가(하다못해 검사실 짜장면 냄새라도)가 있는 누군가가 여당을 맡아야 되는 거지. 근데 제가 앞에도 썼지요? 그게 미래권력이라면 그것마저도 양자는 싸울 수밖에 없는 관계인 것. 되겠어?
그러면 다시 서복경 선생 얘기로 돌아가서, 이런 과거가 아닌 새로운 보수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게 그 글의 마무리인데, 지금 이 시점에 새로운 보수가 나온다면 그 기수는 누구요? 여기서도 제가 몇 번 말씀드렸음. 여러분이 싫든 좋든, 그거요. 우리는 그것 때문에 한 10년은 더 헛물켭니다. 그 점이 가장 큰일인 것임. 그 얘기는 나중에 또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