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뉴스 보다가 트라우마 생길 지경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공감한다. 참사 현장 화면을 불필요하게 쓰지 말라고도 말했다. 방송사들은 실제로 그러겠다고 한다. 그러고 있는데 친절한 언론들은 트라우마 대응법을 앞다퉈 전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 시사평론가 노릇을 하고 다니는 저의 트라우마를 말씀드리겠다. 나는 일부 사람들이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 아주 환멸을 느낀다. 사고가 일어난 그 시점에 컴퓨터 게임 중이었다. 피해 규모가 50명이 됐다는 속보가 나오고 나서는 계속 뉴스를 봤다. 다음날 바로 이른바 방재전문가들이 등장했고 경찰 대응의 문제를 말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거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다룬 기사의 포털 댓글에서 어떤 놈들이 지랄을 한다. 거길 간 사람이 잘못이라는둥 여기다가 차마 쓰고 싶지 않은 그런 논리를 꺼내서는 언론이 정부 책임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좌파들이 어쩌구 저쩌구… 뭐 이러더라. 그러니까 이놈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아 이거 윤석열의 세월호 참사가 될 수 있겠구나, 그걸 막아야겠구나, 이 생각부터 한 것이다. 토할 뻔했다. 오늘 보니까 조선일보가 또 장난치더라. 이건 나중에 얘기하고.
참사 일어난 바로 다음날 용산 이전 책임론을 페이스북에 올린 남영희 씨의 글은 이러한 주장의 좋은 빌미가 되었다. 거봐라 벌써 정치공세 하지 않느냐… 그런데 또 포털 댓글들 자세히 보니 이미 남영희 씨의 논리를 그대로 읊으며 윤석열 퇴진을 주장하는 놈들이 늘어난 거다. 어제는 인터넷 방송을 하러 갔는데, 큰 화면으로 유튜브 댓글창 띄워준다. 그쪽을 바라보면서 말을 해야되기 때문에 댓글들이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댓글들 보면서 너무나 우울했다. 마치 민주당 정권이었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듯한… 어떤 댓글은 세월호 인신공양설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정치적 측면에서, 한쪽은 이 사건이 윤석열 정권의 세월호 참사가 되는 것만은 막자고 하고, 또 다른 쪽은 윤석열 정권의 세월호 참사가 되기를 바라는 듯한 느낌 속에 있는 거다. 이것이 저의 트라우마이다. 이게 모든 주제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따져 얘기하는 게 아무 소용이 없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민주당을 비난하거나 어떤 방향이든 자기들에 익숙한, 정해진 방식으로 하지 않으면 무슨 얘긴지 인식도 못한다. 편만 다르지 정파적 논리에 뇌가 절여진 똑같은 사람들이다.
또 하나의 트라우마. 이런 얘기 하면 또 양비론이냐며 개지랄을 또 하는데, 잘 보세요. 내 얘기는 민주당 편과 국힘 편이 있는데 다 똑같은 놈들이다, 이게 아니고 ‘정파적 논리에 뇌가 절여진 분들’과 ‘그래도 양식있는 분들’이 있는데 앞의 분들에 문제가 있고 뒤의 분들이 참 좋다 이 얘기다. 양비론이냐? 아니지. 나는 확실한 한쪽 편이지. 요즘 같은 국면에선 앞의 분과 뒤의 분이 막 뒤섞이고 시시각각 다르고 그렇기도 합니다만… 인간이 다 그런 걸 뭐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