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도 제대로 못해
오늘 오전에 컨설턴트가 라디오 나와서 윤석열 이재명 둘 다 패자라고 그러던데, 나도 웬만해선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고도 싶지만 이건 뭐… 정도껏 해야 그런 얘기를 해도 할 거 아닌가.
다른 거는 다 그렇다 치자. 25만원 지원금 주자는 거를 왜 대통령실이 이렇게 밖에 못 써먹는지 이해가 안 된다. 오늘도 인터넷 방송에서 얘기한 거지만, 25만원 얘기는 더블민주당의 약한 고리다. 더블민주당 성향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린다. 대통령실이 유연하게 나오면 더블민주당도 못 이기는 척 절충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윈-윈이다. 신문 1면 제목이 다 바뀌었을 거고 어떻게든 오버를 해서라도 보수언론도 정당화했을 거다. 가령 지난주 월요일 조선일보 사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 국민 현금 지원이 아니라 저소득층을 위한 맞춤형 민생 대책이다. 물가고에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서민과 자영업자, 영세 상공인 등의 고통이 심화되고 있다. 예산을 쓰더라도 정말 아껴서 진짜 어려운 계층에게 도움 되는 지원책을 우선순위를 정해서 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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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수출 등이 회복되면서 전체 경제 지표는 개선되는 듯 보여도 고금리, 고물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내수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고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체감 경기도 빙하기다. 야당의 무리한 돈 풀기를 설득하고 저지하려면 물가 관리와 소상공인 대책 등 타깃을 세분화한 핀셋형 민생 대책을 추려 집중할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전 국민 25만원’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민생 대책의 대안을 갖고 이 대표를 만나야 한다. 민주당 요구 중 전세 사기 피해자 우선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나 소상공인 정책 자금, 저금리 대환 대출 확대 등은 전향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4/04/22/X3XMOHM3EJFVPERFHED44VERAU/
이게 현금성 지원 자체를 거부하라는 얘긴지 범위와 액수를 조정 축소하라는 얘긴지 좀 애매하지만 “예산을 쓰더라도”, “소상공인 대책 등 타깃을 세분화한 핀셋형 민생 대책” 등의 단어에 힌트가 다 있다고 본다. 실제로 실무 회동이 시작되는 시점까지는 이 대목에 대해선 다들 절충이 가능하다고 봤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조선일보가 ‘그냥 만나기만 해도 성과’라는 식으로 기대 수준을 낮췄고 TV조선도 현금성 지원 자체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전에 여기다가 대통령실과 기재부가 1분기 실질성장률 갖고 오버를 무지하게 해댄 게 추경을 거부하기 위해서 아니냐는 얘기를 썼는데, 이 얘기를 더블민주당 유관 인사에게 하니까 그냥 부처 차원에서 나오는 얘기 아닐까 하더라. 더블민주당은 마지막까지 절충안을 대통령실이 낼 거라고 본 거다. 그런데? 정작 영수회담 뚜껑 열어보니 아무런 제안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진성준씨의 언론 코멘트와 라디오 인터뷰 발언으로도 확인된다. 아래는 한국일보의 오늘 보도.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윤 대통령이) 민주당 제안에 대해 다른 경로에서도 더 크게 지원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단칼에 잘랐다. 선을 그었다’고 표현했다”고 전했다. 진 정책위원장은 “만약 윤 대통령이 ‘보편 지원은 안되니 소득 하위 몇 퍼센트 까지만 해 봅시다’라고 얘기를 했다면 협의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안 된다고 잘라버리고, 일체의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도 했다.
또 아래는 오늘 MBC라디오 인터뷰.
◎ 진성준 > 모든 의제와 현안에서 큰 간극을 느꼈는데 가장 먼저 논의되었던 것은 공개 모두발언이 끝나고 비공개로 전환되었을 때 대통령께서 이재명 대표가 모두발언에서 제기했던 여러 가지 의안들에 대해서 자기 입장을 얘기를 먼저 적극적으로 꺼내시더라고요. 그 첫 번째 의제가 민생회복지원금이었습니다. 근데 이 민생회복지원금은 그렇지 않아도 민주당에서 국민 1인당 25만 원씩 회복지원금 드리자라고 하는 제안이 나왔을 때 어떤 분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게 한 50만 원씩 드려가지고 되치자라고 하는 의견도 주었지만 당신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 진행자 > 국민의힘 안에서 50만 원 얘기가 나온 적 있었다.
◎ 진성준 > 그런 모양이에요. 대통령의 논리는 지금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는데 통화관리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돈이 조금이라도 더 풀리면 바로 물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절대 있을 수 없다 라고 하면서 단호하게 그건 거부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재명이 추경을 정당화 하려고 R&D 예산을 즉각 살려야 되지 않습니까 라고 했는데, 보도를 보면 대통령이 응 그건 어차피 내년에 할거야^^ 그니까 추경 안해두 돼^^ 라고 했다는 얘기도 있다. 아래는 한겨레 기사.
이 대표는 머리발언에서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던 연구개발 예산 복원도 내년까지 미룰 게 아니라 가능하면 민생 지원을 위한 추경이 있다면 한꺼번에 처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내년 예산에 연구개발 증액을 반영할 생각이다. 추경을 통해 이 예산을 복원하거나 증액할 생각이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고 한다.
그니까 영수회담 당일의 이런 기류를 보면, 전에 썼던 용산 정책실장과 기재부의 1분기 실질GDP성장률 1.3% 갖고 막 오바했던 거는 추경 거부용 명분 쌓기가 맞는 거다. 국가보훈부의 거부권 행사 운운도 영수회담 의제용이 맞는 거고. 상대가 의제 협상을 하다 말고 난 절대 안 해~ 난 절대 안 받아 줘~ 이러는데 그럼 방법이 뭐가 있냐. 가서 사진이나 한 방 찍자고 용산까지 갔습니까 얘기 안 들으려면 모두발언 할 때 A4 10장 읽어야지 방법이 뭐가 있냐고.
앞서도 말했지만, 용산이 주류 경제학에서도 용인할 수 있는, 무릎을 탁 칠만한 기가 막힌 고물가 대책을 더블민주당에다가 던져버렸다고 해봐. 고물가 상황을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층 등 특정 계층 지원하는 거, 그거 용인 안 되는 건 아니거든? 그러면 ‘1인당 25만원’의 대항담론이 형성돼서 보수는 여론 결집의 명분이 생기고, 그것과의 대비 효과로 ‘1인당 25만원’은 이재명에 대한 의문을 남기는 하나의 소재가 될 수 있음.
더군다나 지금 좋은 시기인게, 범보수가 불안해하잖냐. 오세훈이 따뜻한 보수를 하자고 하는 시기다. 따뜻한 보수 좋잖아. 아래는 오세훈이 어제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의 일부.
실제로 우리나라는 부의 절반 가까이를 상위 10%가 가지고 있지만, 하위 50%가 전체 부의 20%도 가지지 못한 양극화 상태이고, 그 정도가 점차 심해지고 있다.
50·60대 국민 중에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부모님보다 잘살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3040은 부모보다 가난한 경우가 많다. 부모는 집을 가졌지만 자신은 평생 월급을 모아도 주택 하나 장만이 어렵다. 더욱이 내 인생은 참을 수 있는데 자식 세대의 앞날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분노와 사회변혁의 갈증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국민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는 정치를 하였는가. 보수 실패의 근본 원인은 국민 개개인이 이런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어떠한 비전과 실천적 방안도 제시하지 못한 데 있다.
선거 전략의 기본은 비전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이(李)-조(曺) 심판론’, 심지어 ‘586 운동권 청산론’까지 꺼내 들었다. 스스로 비전의 부재를 국민 앞에 드러낸 것이다. 그 결과가 수도권-중도층-중산층의 이탈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성장의 기회를 다시 주고, 계층 이동 사다리를 만들어서 열심히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해야 한다.
필자가 지난 3년간 ‘약자와의 동행’에 천착하며 당내 강연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강조해 온 것은 이런 결과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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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이렇게 비전에 소극적인 것은 ‘신자유주의적 보수론’에 빠진 수구적 보수 세력 때문이다. 이들은 선명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이념 논쟁과 대결을 위해 전투적 지도부를 요구한다. 대통령은 이들에게 화답하는 길을 택했고, 결국은 수도권과 중도층에서 외면받았다.
이제 ‘신자유주의 우파’에서 ‘따뜻한 우파’로 노선 전환을 할 때가 됐다. 집토끼 산토끼 따지지 말고 힘든 토끼 억울한 토끼를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이번 변화의 기회를 놓치면 국민은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는다.
https://www.chosun.com/opinion/contribution/2024/04/29/7PUODTB64JFGDEQZYKKGFKKDXM/
포퓰리즘 파이터라던 윤희숙씨는 어떤가? 아래는 지난 19일 동아일보 인터뷰 기사 일부.
“그렇죠. 지금 정부가 능력 있는 사람을 밀어주고 규제를 완화하는 건 잘하고 있다고 봐요. 하지만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애정을 더 보여야 합니다. 정치의 본질이 그것이죠.”
그는 이 대목에서 “지혜로운 포퓰리즘”이라는 표현을 썼다. ‘포퓰리즘 파이터’로 불리며 전임 정부의 현금 살포성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윤 전 의원이 이런 말을 한 건 의외였다.
“지혜로운 포퓰리즘은 나라를 말아먹는 갈라치기 포퓰리즘과는 달라요. 불안한 시대에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민에게 정부가 사랑한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거죠. 이를 표현하는 방법은 그 어려움을 헤쳐나갈 버팀목을 제공하는 거예요. 모든 사람에게 돈을 뿌리며 쇠고기 사먹으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고물가로 고통받는 서민을 위해 돈을 왜 못 씁니까. 재정건전성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 어려운 이들을 위해 돈을 쓰라고 유지하는 겁니다. 지금은 재정건전성을 어느 정도 허물어서라도 한계에 몰린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지혜로운 포퓰리즘입니다.”
―따뜻한 정당으로 지향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인가요.
“그동안 보수정당에 결핍된 것이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느낌이 없다’는 점이에요. 당의 지향을 바꿔야 합니다. 이것 역시 민심에 둔감하면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면 당의 미래는 없는 거죠.”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40418/124551785/1
아래는 오늘 중앙일보 인터뷰 기사 일부.
Q.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전 국민 1인당 25만원 지원금 아이디어는 어떤가.
A. 넉넉하신 분들은 받아도 별 도움도 안 되면서 재정으로는 어마어마한 부담이 된다. 미래의 빚을 그냥 선심성으로 쓰는 것 아니냐. 반대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대표가 그렇게 나왔을 때 사람들이 귀에 꽂힌 이유다. 뭔가 우리를 배려한다는 느낌이 있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도 국민을 배려하는 마음을, 국가를 망가뜨리지 않는 방식으로 내보였어야 했는데, 그에 둔감했고 공을 덜 들였다.
Q. 그럼 어떻게 해야 했나.
A. 예컨대 농산물 가격 상승에 대해선 ‘국민 여러분. 지금 농산물 가격이 이러저러해서 급등했습니다. 수입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농민들에게 타격이 갑니다. 수입까지는 준비가 덜 돼 있습니다. 그래서 재정으로 어느 정도 틀어막겠습니다. 대파 한단 가격 4000원까지 갔는데, 하나로마트에서 1000원까지 내려간 것 모두 재정으로 틀어막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거 오래가면 정말 안 좋습니다. 우린 이걸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설명했어야 했다. 시장원리를 무너뜨리면서 선심성으로 가는 건 반대하지만,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 대한 도움은 보수에서도 필요하다. 시장원리를 적자생존의 논리로 잘못 이해해선 안 된다. 사회의 응집을 위해선 따뜻한 것을 서로 나눠야 한다. 그 방법을 계속 고민해야 한다.
손에 잡히는 건 잘 없지만 하여튼 간에 따뜻한 보수로 가자는 거다. 만약에 용산이 더블민주당에 그럴듯한 거 딱 던지면서 ‘이제는 따뜻한 보수로 가야 합니다’ 딱 그랬으면? 좋은 기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당연하게도 안 받아 주는 건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조차도 없는 건지 그건 모르겠지만 말야. 어찌됐든 손뼉도 짝이 맞아야 칠 거 아니냐고. 용산이 이러는데 뭔 답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