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기행 4
8월 21일 / 숙취 속에 깨어났다. 6시 정도였다. 나머지 4명의 투숙객들이 모두 잠을 자고 있어 다시 잠이 들었다가 7시에 일어났다. 김 선생님이 씻는 동안 전날 먹다 남긴 무슨 차 음료 같은 걸 마시며 아이패드로 고국의 여론을 검토하였다. 황당한 얘기들이 많았다. 김 선생님과 교대해 씻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오늘의 계획은 섬에 가는 것이다. 게라마 제도의 자마미 섬이다. ‘페리 자마미’로는 2시간 걸리고 쾌속선인 ‘퀸 자마미’로는 1시간 정도라고 한다. 김 선생님이 퀸 자마미 예매에 실패했기에 페리 자마미를 이용해야 했다. 10시 탑승인데 여객 터미널에 8시에 도착했다. 티켓팅을 마치고 코인락커를 활용해 짐을 정리했다. 짐을 최소화한 후 근처의 도마리 수산시장을 방문해 김 선생님이 좋아하는 생선들을 보기로 했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걸어가야 하는데 가는 길을 쉽게 찾는 게 어렵다. 잠시 헤매던 김 선생님은 외국인 묘지에 잠시 앉아서 구글지도를 보며 길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걷는 도중에 모기에 물리기도 하면서 겨우 도마리 수산시장에 도착했다.
이곳의 수산시장 자체는 노량진처럼 크지는 않았는데, 항이랑 붙어있기 때문에 경매를 하는 장소가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작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했다. 스시나 참치 스테이크를 팔고 있는데 상당히 먹음직스러웠다. 중간에 ‘덮밥 스시 참치집 본점(丼・すし まぐろや本舗)’이라는 이름의 가게가 있다. 참치 덮밥과 오차즈케를 파는데 아침부터 손님들이 많다. 가격에 비하자면 아주 맛있었다. 여기에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잘 먹는다는 ‘바다포도(海ぶどう)’란 해초가 들어가는데 좋은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뭘 먹으니 또 살 것 같았다. 다음에 오키나와를 방문하게 되면 근방에 숙소를 잡고 세끼 정도는 이 시장에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여객터미널로 돌아와 용변을 해결하니 벌써 9시 40분이었다. 페리에 승선했는데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이다. 2층은 실내외에 좌석이 있고 1층은 바닥에 눕거나 앉아서 가도록 돼있다. 실내 좌석은 이미 찼고 실외 좌석은 남아 있었는데 더 이상 더워서는 안될 것 같아 난민 분위기인 1층으로 갔다.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승객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멍하니 있는 사이 배가 출발했다. 올림픽에 대해 떠들다가 쇼기를 두기 시작한 TV를 곁눈질하며 스마트폰으로 드래곤 퀘스트 5를 잠시 했다.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사먹으며 더위를 진정시킨 후에 밖으로 나가니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망망대해를 바라 보았다. 마시지 못하는 물이 모래와 무엇이 다르랴, 물의 사막이여. (??)
호기심 천국 김 선생님과 배의 오만 군데를 돌아다니며, 그러니까 배 안에서도 또 걷고 있는 중에 배는 뭐 어딘가에 도착했다. 아카 섬이 아니었나 싶다. 게라마 제도를 구성하는 섬 중에 가장 작은 것 같다. 일단 여기에 사람들이 내리고 배는 방향을 바꿔 다시 자마미 섬으로 간다. 이 섬들은 오키나와 전투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에 미군이 점령했다. 앞의 두 섬에 가장 큰 도카시키 섬 등에서 모두 전투가 벌어졌다. 특히 자마미와 도카시키는 격렬했다고 한다. 끌려와서 노역을 당하던 한국인들도 있었다. 지금은 물이 맑고 아름답고 관광자원 외에는 별게 없어서 그저 즐거운 관광지이다.
12시 정도에 하선을 해 먼저 자전거를 빌리러 갔다. 자전거 대여점을 운영하는 할머니는 친절했다. 자전거가 좀 낡아 보였지만 모처럼 걷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기뻤다. 그런데 출발 5분 후 끝이 나지 않는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언덕을 넘어 다시 내리막을 내려가니 후루자마미 비치가 나왔다. 이곳 매점에서 얼굴이 타버릴 것 같아 모자를 사려 했으나 고정시키는 끈이 없어서 관뒀다. 모자를 사기 위해 다시 언덕을 넘어가기로 했다. 이럴수가,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고 끌고 다니는 꼴이다!
다시 언덕을 넘어와서 귀여운 모자를 1200엔 주고 샀다. 이제 달리는 일만 남았다. 오르막이 없는 반대쪽 도로로 달렸다. 그러다 어느 소년들이 낚시를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곳은 ‘비치’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모래에 산호가 섞여 있었다. 이곳에서 허물을 벗는 작은 게들을 목격했다. 작은 섬의 생태계에 대해 잠시 감탄한 후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아마 비치와 캠핑장이 나왔는데, 여기서 화장실을 이용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이미 비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시 자전거를 달리는 도중 드디어 오르막이 나왔다. 나는 돌아가겠다고 했으나 김 선생님은 오르막을 올라 카미노하마 전망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걸 또 올라갔다. 언제부터 이름이 카미노하마였는진 모르겠지만 과연 그럴듯 했다. 먼저 와있던 유럽인 여성이 우릴 보고 인사했는데 뭔가 여행객 다운 대화를 기대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아이패드를 꺼내 정성들여 사진을 찍고 (사진을 보면 느낄 수 있지만 아이폰의 카메라는 고장이 나있다) 땀을 식히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러다 또 다른 이름없는 해변을 발견해 김 선생님과 잠시 앉아 쉬었다. 다른 일본인 관광객 가족이 작은 천막을 쳐놓고 있었다. 아이들이 ‘곤니치와’라고 인사를 해서 손을 흔들어 줬다. 물에 발을 담궈 보기도 했는데 산호 때문에 발이 아파서 그만두었다. 바위는 너무 뜨겁고 마음 편히 쉬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아마 비치로 돌아와 점심을 해결했다. 소바와 카레를 파는 매점인데 시원한 차를 제공한다. 나는 돈까스 카레, 김 선생님은 소바를 먹기로 했다. 김 선생님은 소바를 뜨겁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어했으나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손짓 발짓 영어를 섞어 이게 뜨겁냐고 물었는데 매우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뜨겁다고 대답하는 거였다. 그래서 김 선생님은 아주 뜨거운 소바를 먹게 되었다. 과연 오키나와의 소바답게 큼직한 돼지고기가 올려져 있다. 내가 먹은 돈까스 카레는 기성품인 것 같았다. 지친 와중이니가 맛이 없을리 없다. 다만 평가의 대상이 될만한 음식은 아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쏜살같이 달리는 중에 웬 개동상을 발견했다. 마리린상 이라고 써있었는데, 별 신경을 안 쓰고 지나쳤다. 나중에 찾아보니 아카 섬에 사는 시로라는 개가 마리린이라는 개를 만나기 위해 바다를 헤엄쳐 왔다고 한다. ‘마리린을 만나고 싶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1988년에 개봉을 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카 섬에 가면 시로 동상이 있다는 거다. 흠… 개를 말이지… 흠…
다시 배를 타는 곳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가게에 들러 음료수 같은 것들을 사먹었다. 내 팔은 시뻘겋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배를 타려고 줄을 서있었으나 난 더운 게 너무 싫어 에어컨이 나오는 기념품점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승선 시간이 임박해 다시 배에 올랐는데 거의 뭐 난민선이었다. 놀라웠던 건 돌아갈 때에도 아카 섬을 거쳐야 하므로, 그들이 탈 수 있는 공간은 펜스를 쳐서 따로 남겨 놓게 해놨다는 거다. 역시 대단하다. 앉을 데가 없으므로 2층 실내 좌석의 맨 앞 바닥에 방랑자처럼 앉았다. 졸다가 드래곤 퀘스트 5를 하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루한 항해 끝에 간신히 나하에 도착하니 오후 6시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코인락커에서 짐을 찾아 새로운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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