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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Author: 이상한 모자

직접민주주의와 줄탁동시

2021년 6월 30일 by 이상한 모자

지난 번에 줄탁동시를 말한 것에 이어서. 가령 세계 각국의 직접민주주의적 시도는 대개 실패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엘리트주의가 해법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게 우리 좌익들의 팔자이다. 이것은 dna이기 때문이 어쩔 수 없다.

가령 우리가 가끔 주워 섬기는 밥 제솝이라는 사람 있잖아. 슘페터적 근로연계복지 탈국민체제라고 했다. 케인스주의 국가에서 이쪽으로의 변화가 세계적으로 대략 관찰된다는 거다. 이게 체제의 힘이라는 거겠지. 분석을 하는 사람에 따라 우리는 이 변화의 전제인 케인스주의 국민국가를 형성한 적이 없어서 이건 우리한테 맞는 분석은 아니라는 반론을 내놓기도 하는데, 최근 상황을 보면 적어도 이렇게 된 국가를 비슷한 모양새를 취하는 걸로 추격하고 있거나 했거나 아예 추월시도를 하는 경향은 분명하다고 본다.

지주형은 신자유주의의 변화에 대해 관료와 자본의 연결고리로서의 엘리트를 말한 바 있는데, 한국이 어떤 국가 모델로 변화를 하거나 또는 따라하거나 뭐 그런 맥락이라는 것도 글로벌 엘리트 체제의 합의라는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거다. 거기에 반대하는 우리 좌익들은 그래서 그게 아닌 어떤 힘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직접민주주의적 영감으로부터 시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다 실패했다. 사람들더러 그냥 다 결정하라고 한다고 올바른 결정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의 주인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세상의 열쇠를 맡겨 봐야 소용이 없는 것이다.

국내 사례로 보면 이런 게 있어요. 과천이라는 동네를 보면 말이다. 과천시 인구가 지금 한 7만명 된다고 하는데, 과천사랑이라는 네이버 카페 회원이 7만이다. 다 과천사람은 아니겠지. 이사 간 사람도 있겠고… 하지만 대단한 거다. 이런 식으로 모여있는 사람들이 계기가 있으면 정치적으로 막 조직이 된다. 계기란 교육과 집값이다. 과천시장 주민소환투표 한대잖아. 과천청사 부지에 주택공급 빼버려도 소용이 없어요.

그니까 이걸 직접민주주의적 플랫폼으로 본다면 절망 그 자체겠지. 그래서 그냥 직접민주주의를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거기서 여러분이 세상의 주인이 되셔야 한다는, 세상의 이익을 거두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책임도 지셔야 된다는…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당파적 경합이 있어야 된다는 거다. 그리고 이 경쟁은 직접민주주의의 장과 중앙정치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거고… 아이 여까지 횡설수설 썼는데 배고파서 이만…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직접민주주의

무슨 자유민주주의 타령인가

2021년 6월 29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 윤석열 하나 갖고 몇 시간을 떠들었는지 모른다. 한 11시 반부터… 중간에 좀 쉬고 다시 오후 3시 반까지… 지쳐서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으나, 참새가 방앗간을 이대로 떠날 수는…

아무튼 이 정권의 민주주의관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많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고 했다, 그것은 독재와 전제로 가는 것이다… 이런 스토리는 60년대로 다시 가자는 것이다. 지난 5월달에 아래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18은 현재도 진행 중인 살아있는 역사”라고 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인용을 보면 발언에 정파적 고려가 있는 듯하다. 조선일보는 <윤석열 “정부, 5·18 선택적으로 써먹고 던져”>란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선택적으로 써먹었다”는 게 뭘까? 보도를 보면 윤석열 전 총장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문제와 미얀마 사태에 대한 규탄에 미온적이라는 점 등을 겨냥해 발언하고 있다. 여기까지라면 그런 비판도 의미는 있을 것 같다.

다만 “자유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와 전체주의”, “그런데 현 정부는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 하지 않았느냐”라고 주장한 건 의문이다. 일각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나온 것은 북한이나 중국의 공산주의를 지지하자는 얘기가 아니었다. 첫째, 자유주의적 가치는 일반적 차원의 민주주의라는 개념만으로도 충분히 대변할 수 있다. 둘째, 과거 독재정권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악용해 민주화 요구를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것으로 몰아 탄압하였는데, 이러한 역사로부터의 단절이 필요하다. 셋째, 자유민주주의란 개념을 시장주의적 경쟁의 정당화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시장원리주의의 폐해가 강조되는 오늘날에 있어선 적절치 않은 개념일 수 있다.

이런 맥락을 다 무시하고 “자유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와 전체주의”라고 하는 건 발언한 본인이 이념적 편향에 빠져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3940

오늘 윤석열 씨가 보여준 이 정권에 대한 비판은 검찰 얘기 빼고는 대부분 조선일보에 그 논리를 위탁하고 있다. 뭐어어~~? 정권 비판하면 다 조선일보~~??? 이럴라고 했지? 나도 이 정권 비판 많이 했고 또 할 수 있거든? 앞에 자유민주주의 얘기도 그런데, 민주적 통제 타령에 대해선 이 블로그에도 많이 썼다. 민주적 통제로 한 번 검색해봐. 또… 일본하고 관계가 이렇게 된 건 이념적 편향에 빠져 죽창가를 불러서냐?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거냐? 이거 게으른 평가이거나 프로파간다지. 그리고 국민을 약탈? 뭘 약탈? 포퓰리즘 매표행위래매… 그 외 기타 등등… 하루종일 떠들어서 더 쓰기 싫다.

가장 황당한 것. 왜 검찰총장 때려치고 정치직행이라는 비정상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없었음. 씨비에스에 윤지나 기자님이 쓴 글을 읽어봐라. 같은 얘기를 나도 방송 내내 했음.

https://www.nocutnews.co.kr/news/5579805

윤석열 미워하는 넘들이라서 이러는 게 아니예요. 오늘 중궈니횽도 제티비시 나가서 기대한 거보다 메시지가 보수적이고 구체적이지 않다고 하셨어. 근데 중궈니횽 이 정권의 민중민주주의 생각, 내가 볼 때는 틀린 규정이요. 암튼 그건 나중에 합시다. 지쳤다 오늘은…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윤석열, 자유민주주의

뭐하러 쓰고 떠드냐

2021년 6월 28일 by 이상한 모자

너무나 허무한 삶이다. 예를 들어 이대남 보수화 이런 거를 보자. 이대남이 보수화됐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보수화란 뭐고 근거는 뭔지, 그게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뭔지, 부정적 영향이라면 이걸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지… 이런 걸 논해야 될 거 아니냐.

근데 매번 이런 식… 이대남 보수화 딱 얘기하면 한쪽에서 이대남들 하여튼 ㅉㅉㅉ 이러고, 이걸 실제로 당했는지 어쨌는지 모르는 이대남들 일부가 사전적 대응에 나서 왜 우리를 마녀사냥 합니까!! 막 이러고… 무조건 근거가 잘못됐다 그러고… 실제로 문제 해결이나 뭐 그런 거에는 관심이 없는 거지. 누가 욕을 먹는 거냐, 이것만 얘기하고… 그 와중에 젠더갈등 싸우지 말고 차카게 살자 이런 기회주의자 나오고… 있는 갈등을 어떻게 하루 아침에 없는 걸로 치나?

사람들이 요즘 하는 얘기들 보면 정말 내가 이상해졌나 싶은 생각이… 얼마 전에 유치원생들이 어느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고 허락을 받고 싶다는 방을 써붙여서 주민들이 스티커 투표하는 얘길 봤거든. 근데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이…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관리비 내서 유지보수하는데 아무나 쓰게 할 순 없는 거 아니냐…

또 이런 예도 있어. 부자는 벌금 더 내게 하자는 얘기 있잖아. 이재명-윤희숙 논쟁 같은 거. 그 얘기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그랬다는 거야.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봐주자는 거냐… 부자 벌금 더 매겨야=가난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덜 매기는 효과=봐주자는 것…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거든? 더 나아가면, 가난하니 봐주자는 건 감성팔이고 선동이다 이거지. 내가 그래도 얼마 전까진 이런 선동에 속아도 주고 넘어가주고 했는데 진보들 하는 거 보니까 지들은 챙길 거 다 챙기고… 안 되겠더라는 거야.

처음 하는 얘기가 아니고, 다 옛날에 한 얘기야. 아래는 2018년 6월달에 쓴 글의 일부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2020년이나 2022년에 보수정치가 다시 부활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번 지방선거와 앞서 언급한 2008년 이후 흐름의 유사성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보다는 요동치는 대중의 원한감정(ressentiment)이 반영된 결과라는 점에서 발견된다. 즉, 최근의 급격한 변화는 구조가 아니라 사건이 주도한 것이란 얘기다.

이 지면에서도 수차례 지적했듯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어떤 가치나 노선의 관철이라기보다는 기만적 행위를 지속하는 비정상적 권력을 하루빨리 제거하려는 욕망의 실현에 가까운 사건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앞서 글에서 지적했듯 이 사건의 영향 속에서 치러졌다. 따라서 앞서의 사례처럼 이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유권자의 지향은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다.

물론 하기에 따라서는 현재의 구도가 구조적 차원으로 고정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문재인 정권이 역대 그 어떤 정권보다도 성공적 마무리를 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의 여당이 10년 이상 장기집권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세대를 넘는 장기집권은 사실상의 독재체제가 구축되거나 현실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정치가 해결하는데 지속적으로 성공해야 가능하다. 전자는 바람직하지 않고 후자는 집권세력이 지속적인 변화를 도모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양당 중심 대통령제 기반의 구조에선 이것이 쉽지 않다.

만일 정권교체가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면 그때 대안으로 각인될 세력이 어떤 내용을 갖추고 있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정치권 인사들이 말하는대로 보수정치가 혁신에 성공하고 전열을 정비해 ‘합리적 보수’라는 새로운 노선을 갖고 대안 세력으로 떠오른다면 최악의 결과는 아닐 것이다.

현재의 정치권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결과는 서구의 경우처럼 대중의 원한감정이 극우화된 형태로 돌출되는 것이다. ‘공정성’을 요구하는 대중의 목소리에서 이 길로 이어질지 모르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공정성에 대한 갈망은 민주주의와 시장논리의 결합이라는 근대 사회의 원리로 볼 때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이 갈망이 좌절될 때 사람들이 무엇을 요구하느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것은 사람들은 불공정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평등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약육강식의 질서를 강화하는 시장원리의 확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실질적 평등을 요구하는 길은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을 내면화한 상황에선 스스로 강자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방식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같은 ‘요구’도 결국은 정치의 효과인 셈이다.

서구의 경우 이런 요구가 소수자 및 난민으로부터의 분리 시도를 통한 정상성 회복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요즘 말하는 극우포퓰리즘이다. 인터넷이 세계만물을 통합하는 시대상 속에서 우리도 자유롭지 않다. 이걸 바람직한 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을 자처하는 정치는 태평성대 속에서도 파국을 준비하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 실질적 평등의 달성이 가능하다는 사회적 신뢰가 만들어져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들 역시 마련돼야 한다. 대안적 정치는 이런 조건을 스스로 만드는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685

사실 이런 얘기, 계속 했었지. 아래는 2019년 3월달에 쓴 글의 일부이다.

최근의 자유한국당은 별다른 비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극단적 행태로 일관하고 있는데도 지지율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이 덕에 국정농단 정국 이전의 양당구도는 거의 복원됐다. 이것은 대중이 자유한국당의 극단적 행태에 단순히 호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어차피 손해를 감수하는 개혁이 어렵고 또 안 될 거라면 차라리 각자도생을 선택하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이 작용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주변화 된 경로와 거의 일치한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9136

이 글들 뿐만이 아니고 이 시기 정치에 대해 쓴 거의 모든 글에 이 얘기가 들어가 있다. 심지어 이때 한겨레 이재훈 님이라는 분과 디스팩트라는 팟캐스트 했거든? 거기서도 맨날 한 얘기가 이거였어. 나만 했느냐, 아니지. 대학 졸업도 안 했는데 나만 한 얘기겠니? 석박사 하신 분들도 다 하던 얘기고 난 그냥 따라한 것 뿐이다.

여러분이 절대로 믿지 말아야 될 표현이 있습니다. 단군이래 최초라든지 어쩌구 저쩌구 한 최초의 세대라든지 하여간 뭔가를 놓고 아주 새로운 현상이라든지 세대라든지 이런 얘기는 일단 걸러라. 그런 거 없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똑같은 일이 변주되는 것에 불과하다.

근데 이런 얘기 해봐야 다들 자기들 좋을대로만 듣고 말하거든. 누구 남 욕하는 근거인줄이나 알고… 왜 얘만 욕하고 얘는 욕 안 하냐 이런 얘기나 하고… 그러니 쓰고 떠들어봐야 다 소용이 없다 이거야.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각자도생, 내로남불, 이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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