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줄탁동시를 말한 것에 이어서. 가령 세계 각국의 직접민주주의적 시도는 대개 실패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엘리트주의가 해법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게 우리 좌익들의 팔자이다. 이것은 dna이기 때문이 어쩔 수 없다.
가령 우리가 가끔 주워 섬기는 밥 제솝이라는 사람 있잖아. 슘페터적 근로연계복지 탈국민체제라고 했다. 케인스주의 국가에서 이쪽으로의 변화가 세계적으로 대략 관찰된다는 거다. 이게 체제의 힘이라는 거겠지. 분석을 하는 사람에 따라 우리는 이 변화의 전제인 케인스주의 국민국가를 형성한 적이 없어서 이건 우리한테 맞는 분석은 아니라는 반론을 내놓기도 하는데, 최근 상황을 보면 적어도 이렇게 된 국가를 비슷한 모양새를 취하는 걸로 추격하고 있거나 했거나 아예 추월시도를 하는 경향은 분명하다고 본다.
지주형은 신자유주의의 변화에 대해 관료와 자본의 연결고리로서의 엘리트를 말한 바 있는데, 한국이 어떤 국가 모델로 변화를 하거나 또는 따라하거나 뭐 그런 맥락이라는 것도 글로벌 엘리트 체제의 합의라는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거다. 거기에 반대하는 우리 좌익들은 그래서 그게 아닌 어떤 힘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직접민주주의적 영감으로부터 시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다 실패했다. 사람들더러 그냥 다 결정하라고 한다고 올바른 결정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의 주인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세상의 열쇠를 맡겨 봐야 소용이 없는 것이다.
국내 사례로 보면 이런 게 있어요. 과천이라는 동네를 보면 말이다. 과천시 인구가 지금 한 7만명 된다고 하는데, 과천사랑이라는 네이버 카페 회원이 7만이다. 다 과천사람은 아니겠지. 이사 간 사람도 있겠고… 하지만 대단한 거다. 이런 식으로 모여있는 사람들이 계기가 있으면 정치적으로 막 조직이 된다. 계기란 교육과 집값이다. 과천시장 주민소환투표 한대잖아. 과천청사 부지에 주택공급 빼버려도 소용이 없어요.
그니까 이걸 직접민주주의적 플랫폼으로 본다면 절망 그 자체겠지. 그래서 그냥 직접민주주의를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거기서 여러분이 세상의 주인이 되셔야 한다는, 세상의 이익을 거두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책임도 지셔야 된다는…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당파적 경합이 있어야 된다는 거다. 그리고 이 경쟁은 직접민주주의의 장과 중앙정치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거고… 아이 여까지 횡설수설 썼는데 배고파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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