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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극우포퓰리즘

최근 이슈 (청년 극우, 멸칭, 비례대표)에 대한 생각

2026년 9월 20일 by 이상한 모자

1.

최근 미국 교수님의 논문이 일부에서 화제였는데 누가 기사로도 썼으니 이제 코멘트 해본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6091919220930901

이른바 젊은 남성의 극우화를 다룬 것인데 지난 번에 시사인에 했던 얘기를 논문으로 쓴 걸로 알고 있다. 대부분은 익숙한 얘기인데, 젊은 남성 극우화의 강력한 반론이라고들 내세우는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 부분이 흥미롭다. 다음의 대목.

정작 자신을 극우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낮았다. 조사에서 “나는 극우파다”라는 진술에 동의한 청년 남성은 10%에 불과했다. 청년 남성보다 극우 비율이 낮은 노년 남성(10.6%) 및 장년 여성(10.5%)와 비슷한 수치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청년 남성들이 극우적 성향을 극단적이라기보다는 보편적으로 간주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한 후속 탐구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짚었다.

청년 남성의 극우 성향 가운데 유독 ‘약자 멸시’ 태도가 돋보였다. 차별금지법 제정, 장애인 의무고용제 등 약자 정책에서 여성이나 다른 세대보다 반대 비율이 높았다. 폭력 사용도 청년 남성들은 가장 용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반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다른 세대보다 크게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청년 남성을 기준으로 반민주주의 성향을 측정했을 때, 대부분은 청년 남성보다 반민주주의 성향이 높았으며 청년 여성만 유의미하게 반민주주의에 더욱 큰 반감을 보였다.

즉, 이런 거다. 1) 청년 세대는 다른 세대보다 일반적으로 독재-전체주의-권위주의에 대한 반감이 크다. 2) 젊은 남성은 보수적 태도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심지어 폭력 사용에도 너그럽지만, 독재-전체주의-권위주의에 대해서는 반감이 크다.

민주주의에 대한 민감성은 세대 효과다. 그런데 젊은 남성은 그 안에서 극우화 되고 있다. 극우화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와 충돌한다. 그런데 젊은 남성은 여전히 독재-전체주의-권위주의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자신들의 극우화를 민주주의와 등치시키는 인식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인식 속에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저쪽이 싫은 책을 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민주주의는 독재의 반대이다.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적과 싸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 독재는 누가 하냐면 중국과 북한이 하며 이를 문재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진보, 페미니즘은 이를 옹호한다. 제가 늘 말씀드리는 반대해야 할 개념의 사슬… 따라서 진보-민주 세력(이들은 이를 한덩어리로 인식한다)과 싸우는 것이 곧 민주주의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정에 폭력도 동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오늘날의 극우 세력의 전략이다. 다른 나라의 극우 세력도 자신들을 민주주의자로 자칭한다. 가령 제가 지난 번에 한겨레21에 작성한 글.

이전까지 사람들이 극우정치 지지를 쉽게 말할 수 없었던 것은 근본주의자가 돼야 하기 때문인데, 포퓰리즘이 극우정치와 결합한 이후에는 극우를 지지하기 위해 근본주의자가 될 필요가 없어졌다. 극우정치가 포퓰리즘적으로 구성하는 기득권에 반대나 항의 의사를 밝히는 것으로 충분히 극우주의자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조사해보면 AfD를 지지하는 유권자 상당수는 AfD가 극우라기보다는 중도적이라고 답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극우정치가 기득권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극우정치는 앞서 본 것처럼 특정한 계층이나 민족을 호출하고 결과적으로는 가진 자의 이익을 보장하려 한다. 이런 점에서 극우정치는 민주주의와 상극이다. 대중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반민주’는 극우정치의 약점이다. 그런데 극우정치는 포퓰리즘적 어법으로 이 약점을 극복한다. 자신들이 아니라 엘리트 주류 기득권이 반민주적 독재를 일삼고, 자신들은 이에 저항하므로 민주주의자라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대중친화적 성격이 민주주의와 서사적으로 통한다는 점을 활용하는 셈이다.

AfD의 구체적 주장에서도 이런 점이 드러난다. 이들은 방화벽 자체를 반민주적 독재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자신들의 극우적 주장도 민주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정당한 의견이므로 이를 어떤 방식으로든 막는 것은 부패한 기득권의 횡포이자 독재라는 것이다. 이들은 코로나19 방역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절약 정책에 대해서도 독재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정부가 주도하는 방역 정책을 아돌프 히틀러가 합법적 절차를 가장해 독재 권력을 구축하기 위해 추진한 수권법에 비유했다. 오히려 이들이 평소 보여주는 정치관이야말로 나치에 가깝다는 점에서 이는 황당한 주장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 구도를 수용했다.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9899.html

그런 점에서 한국의 극우정치는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극우포퓰리즘)의 범주에 들어간 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윤석열의 당선도 그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다.

2.

오늘도 유시민 뉴스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데, 한심하다. 결국 ‘문조털래유’라는 말을 어떤 녀석들이 써서 지지층이 분열됐고 이재명이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진짜 한심한 세계관이다.

첫째, ‘문조털래유’라는 말이 멸칭인가? 나는 이 말을 인용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 노선의 문제를 세력과 사람의 문제로 바꾸면 본질이 흐려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멸칭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가령 ‘국민의짐’은 멸칭이다. 국민에게 짐이 되는 정치를 하는 세력에 불과하다는 가치판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조털래유’는 사람의 성, 이름, 특징을 열거한 말일 뿐이다. 이게 왜 멸칭인가??

이게 설명이 안되니 조국은 ‘조를 좆으로 바꾼 사례’를 굳이 찾아서 이게 멸칭의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 뭔 논리야 놀자 같은 얘긴가. ‘문좆털래유’는 멸칭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문좆털래유’는 ‘문조털래유’가 먼저 나온 상황에서 파생된 것일 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문조털래유’가 없는데 어떻게 ‘문좆털래유’가 나오냐? 근데 조국은 ‘문좆털래유’가 원본이라고 주장했다. 유시민은 여기에 지난 지방선거와 전당대회 구도에 편승해 이 모든 얘기를 하나의 음모론적 서사로 끼워 맞추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모든 얘기의 시작이 ‘문조털래유’로부터 나온 것처럼 되고, 이걸 심지어 대통령의 대국민 기자회견에서까지 말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이어진 것이다. 이래 놓고 조국, 유시민 등은 자기들이 뭐라도 쟁취한 거 마냥 의기양양해 있으니 황당하다. 특히 조국은 ‘친명 평론가와 유튜브’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도 했는데, 이들의 세계관이 유튜브 댓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게 여기서 드러난다.

물론 나는 이 모든 게 문재인의 음모이며 친문의 복귀 시나리오라는 식의 해석에 동의 안 한다. 물론 그런 그림을 그리는 자도 있고 꿈꾸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그게 아니다. 늘 그랬듯 노선 갈등의 영역이 있고, 그에 기반해서 지방선거나 전당대회에 나가거나 여기에 이익이 달린 사람들이 어느 지지층의 말에 편승할 것이냐를 판단한 문제일 뿐이다. 한겨레가 여론조사기관과 함께 분석한 ‘뉴이재명’ 지지층을 언급했더니 “뭐!? 너희들이 뉴라고? 우린 올드란 말이냐!” 이 염병 떠는 바로 그 지지층 말이다. ‘뉴’는 좋은 거고 ‘올드’는 나쁜 거라는 식의 이런 수준 낮은 얘기를 막 하는데, 한겨레가 애초에 이 분석을 왜 어떻게 했는지는 온데간데 없다. 이들에게 그들이 억울해 하는 일에 다 이유가 있음을 설명하고, 이들의 반발을 정당화 시키는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 유시민 등인 것이다. 물론 그 판단의 배경에는 각자의 상황 인식이 있지만. 가령 김어준은 유튜브 수익 시스템의 유지, 조국은 자신이 이끄는 세력의 포지셔닝에 대한 정당화, 유시민은 망상과 확증편향에 의거한 음모론적 사고의 확대… 등등.

결국 지지층의 상태가 이런 거고, 나아가서는 한국 정치를 떠받치는 대중의 상태의 문제이다. 요즘은 어디나 그렇다. 무슨 세력의 지지층이 좀 더 상태가 낫고 이런 건 없다. 그냥 정치의 일반 문법이 이렇게 되었다.

3.

용혜인 문제, 위성정당 방지법만으론 부족하다는 취지의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9930.html

이 얘기를 하는데 최광은, 김찬휘 두 분이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좋은 얘기다. 특히 핵심은 아래 대목이다.

이 때문에 이날 강연자와 토론회 발표자들은 ‘개방명부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요한 선거제도 개혁안으로 꼽았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2년 12월 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이 제도를 택했는데, 이는 전국 17개 광역시도를 권역으로 설정하고 각 권역에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 선거제도다. 여기에 정당 지도부가 비례 순위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현행 ‘폐쇄명부형’이 아니라 유권자가 지지 정당에 투표하면서 동시에 해당 정당 안에서 지지하는 특정 후보에게 표를 던져 당선자까지 최종 결정할 수 있는 ‘개방명부형’이 전제로 붙었다. 비례대표는 ‘내가 직접 뽑은 의원이 아니다’라는 편견을 애초부터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인 셈이다.

박주민 의원안은 현행 지역대표 의석 253석을 이 방식으로 선출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현행 비례대표 의석 47석은 각 정당이 권역별 선거에서 얻은 의석 비율과 전국 득표율 사이에 괴리가 발생했을 때, 다시 한번 비례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의석 비율을 조정하기 위해 각 당에 추가로 배분하는 ‘조정의석’으로 활용한다.

사실 중간에 나오듯, 이 얘기가 나온 것도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욱 이 대목을 강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용혜인 문제를 비례 겸직 문제로 놓고 온갖 얘기를 한 이 개판을 보고서 든 생각이다. 겸직 논란은, 기본적으로 비례대표 의원의 역할과 위상 문제다. 양당은 비례대표 의원의 역할과 위상을 지속적으로 축소하려 한다. 이들의 주장 속에 비례대표 의원은 인심 좋게 각 분야에 나눠주는 개념이다. 그러니 언제든 그만두라면 그만둬도 되는 것이다.

용혜인의 경우 위성정당으로 비례 2번에 장관까지 하려니 욕심쟁이 아니냐는 게 대중적 반발의 핵심이었다. 프리라이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별 정치인의 입장에서 이를 돌파하기 위한 비례대표직 사퇴는 가능하다고 나는 봤고, 그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양당이 주장하는 ‘장관을 하면 비례는 사퇴하는 게 관례’라는 주장은 동의할 수 없다고 봤다. 무슨 설명을 갖다 붙이든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을 격이 다른 존재로 사고하며 취급해서는 안 된다. 그건 보궐선거 여부나 후순위 승계 등 편의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 그런데 저 관례는 ‘비례대표 의원은 지역구 의원보다 격이 낮다’는 인식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양당의 처지에서야 그 인식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소수정당(기본소득당의 경우가 아니다)의 경우도 그런가? 그 비례대표 한 석을 얻기 위해 얼마나 처절한 싸움을 했는가?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그 시각에서 보면 지역구 의원은 겸직이 당연하다면서 비례는 사퇴하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는 장기적으로 소수정당에 독이다. 이번에야 위성정당-욕심쟁이 상태의 용혜인이 하필이면 장관직에 지명돼서 이렇게 됐으나, 나중에 민주당이 독자적인 소수정당에 장관직을 제안하면서 대신 비례 의원은 사퇴하라고 할 때, 아무리 후순위가 준비되어 있다고 한들 이걸 받아들일 수 있겠나?

물론 나는 ‘민주당이 독자적인 소수정당에 장관직을 제안’한다는 이런 정치 자체가 독자적 소수정당에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또 비례의원직이 더 필요하면 장관 제안은 안 받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략/전술의 문제이고,그 때 정치적으로 어떤 상황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모든 건 그때 가봐야 안다. 또, 민주당이 소수정당에 장관을 제안하는 것을 ‘나쁜 정치’라고 비난할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관례니까 사퇴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강도와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결국 룰의 문제이다. 룰이라는 것은 언제나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관례니까 사퇴, 이딴 얘기를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무슨 용혜인 욕하기 경쟁처럼 되고, 용혜인 욕하는 데에 각자가 가진 모든 원한을 실어 떠들어 대는 통에, 나는 아주 질려버렸다. 용혜인이 장관을 하는 데에서 문제로 볼 수 있는 건 2가지다. 1) 이 정권이 성평등가족부 장관직을 가볍게 본 문제, 2) 용혜인 본인이 성평등가족부 장관으로서 적임자가 아니었던 것의 문제. (나는 이 두 가지 문제를 주로 방송 등에서 지적했다.) 인사검증이니 뭐니가 다 이 두 쟁점 안에 속한다. 이 두 가지 만으로도 얼마든지 부적격성을 논할 수 있다.

욕하기 경연대회를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논의할 때 쟁점 형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의원을 가볍게 여기는 원인이 명부를 정당 내부 의사결정에 맡기는 문제에 있다면, 개방명부로 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 비례는 장관 겸직 안 된다를 룰로 추인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가는 것이 그나마 이 황당한 논의를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극우포퓰리즘, 극우화, 민주주의, 비례대표, 선거제도 개혁, 성평등가족부, 용혜인, 유시민, 조국

극우에 대해 모르면서 극우 딱지 붙이지 말라는 왕년의 진보

2026년 7월 28일 by 이상한 모자

마린 르펜. 21세기 극우 얘기하면 항상 예로 드는 인물이다. 사실 그 이전에도 극우는 자기가 극우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 누가 봐도 극우에 해당하는 주장을 당당하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마린 르펜부터는 전략이 다르다. 극우적 주장을 애매하게 한다. 일부러 전선을 교란한다. 포퓰리즘과 결합한 극우의 특징이다. 이 얘기를 글과 유튜브 등을 통해 수십차례는 한 거 같다. 그러나 포퓰리즘이 뭔지부터에서 갈피를 못 잡는다. 이제 챗GPT가 있어서 좋다. 챗GPT한테 꼭 물어보시오! 포퓰리즘이 뭔지! 최신의 학술적 정의로 설명해달라고 하세요.

아래는 한겨레 오늘자 지면에 실린 마린 르펜 이야기.

르펜의 정치 노선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로 요약된다. 그는 2016년 2월 국민전선 세미나에서 우파 공화당 탈당파 출신들을 향해 “나는 여러분이 몸담았던 우파를 잘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좌파는 물론 기존 우파 정당도 ‘기득권’으로 선 그으며, 자신은 이른바 ‘국민우선주의’를 펴겠다는 것이다. 부친 장마리 역시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사회적으로는 좌파, 경제적으로 우파, 국가적으로는 프랑스”라고 요약했는데 르펜은 이를 이어받는다.

르펜의 구상에서 국가는 긴축 없는 재정 집행과 서비스로 국민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수도·전기 등 공공요금은 낮추고 소상공인 세 부담을 줄여 서민들의 가용 소득을 높인다. 공적 연금의 재정 건전화를 위해 법정 정년을 늦추고 보험료 납입 기간을 늘리는 식의 연금 개혁에는 반대한다. 작은 정부와 시장 자유를 주장하는 기존 우파와는 다른 주장이다.

(…)

르펜은 아버지가 남긴 사상적 유산 중 집권에 걸림돌이 될 만한 반사회적인 노선은 제거하려 애써왔다. 당원들의 공개적인 유대인 혐오, 여성 혐오, 나치 추종 발언 등을 금지하며 ‘탈악마화’를 시도한 것이다. 2015년 87살의 아버지가 반유대주의 성향 매체 ‘리바롤’ 인터뷰에서 “(나치) 가스실은 전쟁의 한 세부사항이었을 뿐”, “북유럽과 백인 세계를 구하려면 러시아와 반드시 협력해야 한다” 등의 주장을 쏟아내자, 르펜은 아버지를 당에서 제명했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270235.html

이러한 마린 르펜은 극우인가? 극우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당연하게도 그렇다. 기사의 다음과 같은 부분 때문이다.

르펜은 옛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출신 무슬림 이민자를 향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26일 엑스에 “이슬람주의는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그 지배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전체주의 이념”이라고 못박았다.

그의 모든 여성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어쩌구 서사는 결국 무슬림을 쫓아내자는 극우적 목표 달성을 위해 작동한다. 세상을 일반 국민과 기득권으로 나눠 일반 국민을 동원하는 포퓰리즘적 논리가 극우와 결합한 것이다. 그래서 극우포퓰리즘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걸 제일 잘 아는 것이 조선일보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선우정씨 칼럼을 얘기한다. 리바이벌 하지 않고…

그런데 왕년의 진보라는 사람이 어제 조선일보에다가 이런 칼럼을 막 써놓은 것이었다.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극우’라는 유령이. 최근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검색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극우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난동으로 부쩍 늘었다가 잦아드는 듯싶더니, 스타벅스와 배재고 야구부의 ‘탱크 데이’ 및 조국 전 대표의 ‘무섭노’ 파동으로 다시 늘었다. 극우를 규정하는 글을 읽다 보면 극우가 마치 체계적인 이념을 갖춘 세력 아닌가 착각하게 된다. 국민을 죽이고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노태우 극우 정권과 공산주의로 무장한 극좌 운동권이 격렬하게 대립하던 1980년대로 회귀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

좌·우 개념은 철학과 가치관에 근거해서 ‘사회를 어떻게 설계하고 실현할 것인가’라는 이념의 영역이고, 보수·진보는 ‘국가와 사회의 여러 현안을 어떤 순서와 속도로 개혁하고 유지할 것인가’라는 태도의 영역이다. 이렇게 좌·우와 보수·진보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는 ‘우파는 보수, 좌파는 진보’라는 도식이 통용되고 있다. 그 결과 좌·우와 보수·진보 개념이 뒤섞여 한국의 정치·사회적 좌표가 진보, 보수, 극우라는 세 진영만 존재하는 듯한 집단적 착시가 생긴다. 지금의 극우 담론은 그 도식에 어물쩍 묻어가고 있다.

(…)

극우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극우가 정치 좌표로 성립하려면 우·중도·좌·극좌가 동일한 선상에서 정렬되고 비교돼야 한다. 이념 좌표를 정렬하려면 평등과 자유, 국가와 시장, 분배와 성장, 민족과 세계 등을 둘러싼 가치관·정책·행동을 규정하고 분석해야 한다. 거기서 형성되는 기본 이념은 우·극우로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좌·극좌로서 사민주의와 공산주의 등이다. 거기에 또 여성·소수자·환경·이주노동자 등의 현대적 사안을 보태야 한다.

엄밀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프랑스 극우 국민전선의 전 대통령 후보 마린 르펜이 페미니스트이고, 우파 트럼프 정부의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성소수자이며, 탈원전 정책을 펼쳤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우파인 것처럼, 페미니즘이나 환경주의 등은 그 자체로 좌·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이념에 가깝다는 점이다.

결국 극우 담론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대한민국의 이념 좌표를 다시 정리하고 그 위에서 극우를 규정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는 그것이 없다. 혹시나 해서 논문과 책을 살폈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지금까지 본 것에 따르면, 한국의 극우 담론은 어떤 현상 또는 집단에 대한 낙인 말고는 없다.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6/07/27/W73POZMCLBGB7PZZXMSCZHQSTA/

이 칼럼은 여러 문제가 있다. 첫째, 무식한 소리다. 앞서 얘기했다. 요즘 극우의 트렌드는 포퓰리즘과의 결합이다. 포퓰리즘이야말로 좌도 우도 아니다. 챗GPT한테 물어봐라. ‘포퓰리즘은 중심이 얇은 이념이라는 데, 이게 무슨 뜻이야?’ 이렇게 물어보시라. 글로벌 극우가 모두 이 전략을 택하고 있는데 뭔 우 중도 좌 극좌가 동일 선상에서 정렬돼야 비로소 극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소릴 하고 있나? 그 논리로 얘기하면 이 세상에 극우는 없는 것이다. 트럼프도 극우가 아니고 마린 르펜도 극우가 아니다. 극우와 포퓰리즘의 결합은 이미 2천년대 초반에도 학자들이 논하고 있었다. 그 시절에 골방에서 문건 읽고 쓰던 전진 회원들이 세상물정을 몰랐어서 그렇지.

둘째, 좌 우 보수 진보 개념이 뒤섞였다고 하는데, 느낌이 온다. 진보 보수 개념이 좌우와 다르다면 진보적 우파, 보수적 좌파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그런 표현과 규정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얘기하는 건, 내가 몇몇 글에서 규정한 ‘반진보적 진보'(이념적 진보에 반대하는 것을 세상을  진보시키는 방식으로 진정으로 믿는 태도-가령 이준석 지지층의 그것-로 내가 볼 때는 결국 보수정치의 한 갈래)로 유권자가 조직되는 논리에 이 사람이 동조할 수 있다는 거다.

추가: 막 쓰다가 이 얘길 빠뜨렸네. 보통 마린 르펜이 페미니스트고 극우정당이 성소수자 대표를 뽑고… 이렇게 가면 일반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나? 아 이제 극우정치가 페미니즘과 성소수자까지 활용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잖아? 근데 이 사람은 반대로 생각을 한다. 마린 르펜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한다고? 아~ 페미니즘은 원래 좌우랑 상관이 없구나… 페미니즘, 기후환경, 성소수자 이런 거는 원래 좌우의 문제가 아니구나~ 아 미쳐버린다.

셋째, 결국 뭐냐? ‘스타벅스, 배재고, 사투리 논란은 86세대의 이대남 극우 딱지붙이기를 위해 동원된 수단’이라는 논리를 자기 식으로 반복한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사람이 이러고 있다는 거 자체가, 이 사람이 극우포퓰리즘으로 조직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면 또 막 코웃음 치면서 내가 극우라니… 내가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고 이런 생각도 하고 저런 생각도 이런 사람더러 극우라고 하는 이런 나쁜 자식 어쩌고 이럴텐데, 마린 르펜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 극우활동가인줄 아시나? 마린 르펜 지지율이 몇 퍼센트가 나오는지 함 찾아보쇼. 내가 계속 말하지? 극우정치에 조직되는 유권자가 있는 거지, 그 사람이 얼마나 극우인지 그거는 지금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라고.

이러니까 윤석열 정부에 참여를 하고… 내란을 일으킨 다음에 그것에 대한 평가나 반성도 불분명한 상태이고 한 것이 아닌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극우정치, 극우포퓰리즘

배재고-사투리-정통망법에 대한 반발을 조직하는 극우포퓰리즘

2026년 7월 9일 by 이상한 모자

에이전틱 AI의 시대가 대한글화 시대를 열어, 고전게임 한글 패치가 쏟아지고 있는 이 때에, 일전에 큰 마음 먹고(큰 마음을 도대체 몇 번째 먹는 것인지 모르겠다) 구비해 놓은 토르(중국인들이 만든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한 에뮬레이터 게임기)를 이용해 침대에 누워서 느긋하게 한글화 된 게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지 여러 날이 지났으나, 결심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참세상 유튜브에서 한참 떠들고 집에 왔지만 글을 써 넘겨야 하는 일이 더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모를 남기는 이유. 너무 답답하기 때문이다.

일전에 사투리 논란에 대해 쓴 메모가 이래 저래 공유가 된 모양이다. 트위터에 들어가 보았는데 어떤 놈이 멘션을 남겨놨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일베가 나오기 전에도 있던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거면 야채인간이라는 밴드 이름부터 바꾸고 얘기해라’ … 이게 무슨 얘기냐면, 1) ‘무섭노’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일베가 만들어 지기 전부터 쓰여진 말이라는 게 증명된다. 2) 너의 밴드인 ‘야채인간’도 혐오 표현일텐데, 아마 너는 그게 혐오 표현이 되기 전에 만든 이름이라고 반론할 것이다. 3)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무섭노’도 같은 사례이다. 4) 따라서 너는 뭘 주장하든 ‘내로남불’이다!

하도 한심해서 차단해버렸지만, 이 주장이 한심한 이유에 대해 특별히 서술하겠다. 왜냐하면 SNS 논쟁에 이따위 식의 주장을 하는 놈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1) 내가 쓴 원 글을 보면 ‘일베가 나오기 전에도 있던 표현이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 2) 내가 쓴 원 글의 결론은 ‘무섭노’도 아이돌 가수도 일베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확증은 없다는 거다. 이 씨발놈들아 써놔도 처읽지를 않으니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가서 봐봐라. ‘무섭노’라는 표현도 아이돌 가수도 일베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확증은 없다는 게 내가 쓴 글의 결론이다. 가서 좀 봐봐 좀! 이 개쌍노무새끼들아. 쓰면 뭐해 처 보지를 않는데… 3) 내가 참여한 밴드 이름과 이 논의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4) ‘내로남불’이라는 논리로 모든 문제제기를 무력화 시키려는 바로 그 태도가 내 원 글에 나오는 ‘개인화’ 전략에 해당한다.

문재인 정권 시기에 가장 흥했던 논리가 바로 이 ‘내로남불’이다. 뭘 얘기해도 무조건 내로남불 타령만 한다. 내로남불임을 증명하면 나머지는 아무것도 다루지 않아도 된다. 가령 부동산 대책에 대한 이러쿵 저러쿵 논의? 다 필요없다. 강남 다주택자가 남에게 집을 팔으라고 하다니! 이거 한 마디로 끝난다. 이 내로남불 염병이 개인화의 한 방식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은 ‘이웃집 극우’의 3장을 보시면 일부 서술이 되어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기득권을 의인화하는 포퓰리즘의 전형적 방식일텐데, 이걸 제일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 현재로서는 극우정치인 것이다.)

또 하나 열 받는 거는… 똥오줌 못가리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이 상황의 심각함을 보지 못하고 지엽적인 걸 반대하는 것에 꽂혀 있는 놈들이다. 유튜브에 어떤 놈이 댓글을 달았던데… 내가 유튜브에서 진중권의 ‘5.18 제단에 아이돌을 바치겠다는 거냐’ 어쩌구 한 것에 비판을 한 데 대해, 조국이 이 문제를 언급했으니 진중권이 발작하는 것은 당연하잖느냐고 하는 내용이었다. 조국 반대만 할 수 있으면 진중권은 뭘 주장해도 괜찮은 건가?? 뭐 어쨌든 그런 댓글도 달 수는 있다. 영상 내용을 꼭 완벽히 파악하고 댓글 달으라는 법은 없으니. 근데 그러면서, 모든 문제에 현미경을 들이댈 필요는 없다며, 마지막을 경상도 사투리로 장식한 것이다. 왜그래쌌노 였나?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차단해버렸기 때문. 경상도 사투리로 마지막을 쓴 게 의도가 빤하지 않는가. ‘사투리 검열’ 이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거 아니냐. 자기가 극우포퓰리즘 동원 논리에 포섭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 상태를 합리적이고 지적인 어떤 걸로 착각을 하면서 자뻑에 빠져있는 그런건데… 꼴같잖아서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는 오늘 유튜브에서 한 얘기들이긴 한데… 오늘 신문 칼럼들이 아주 전형적이었다. 가령 이런 얘기들을 봐라. 아래 링크된 글은 70% 정도는 맞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30%가 문제다. 가령 아래와 같은 대목…

정부 주도 이념 논쟁도 지겹다. 지난 10년간 가장 뜨거웠던 이념 운동은 노노재팬이었다. 유니클로에 누가 들어가는지 사진을 찍어대며 감시하던 전체주의적 강요에 가까웠다. 지난 선거철의 정부 주도 스타벅스 불매운동이 그걸 상기시켰다. 스타벅스가 잘못을 저질렀지만 정부 주도 불매 운동은 차원이 다르다. 스타벅스가 그릇된 이념으로 문제적이라면 정부가 주도한 불매는 너무나 이념적이라 문제였다.

대응도 반감을 키운다. 극우와 일베로 몰아가거나 야당에는 왜 침묵하냐고 되묻는다. 아니라고 증명할 방법은 민주당 지지밖에 없다. 그 시대의 책임은 여당이 진다. 부족함을 지적하면 반대쪽을 보라는 뻔뻔함은 집권당의 태도가 아니다. 이번에 당선된 보수 후보들은 역설적으로 보수정당 색채가 옅었기에 당선됐다. 즉, 젊은 유권자들은 보수에 동조한 게 아니라 민주당에 실망한 것이다. 여당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거악을 만들고 싸우는 진보의 지겨움에 지친 것이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70710230002005

분명히 말했다. 70%의 맞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정당하거나 필요한 지적 혹은 분석을 해도 그 모든 걸 ‘극우와 일베로 몰아갔다’, ‘아니라고 증명할 방법은 민주당 지지밖에 없다'(민주당 지지자들의 성에 차지 않는 방식이긴 하겠으나 진보정당 지지도 선택지에 있다. 여기서 수차례 지적했듯, 그게 아닌 극우적 방식을 택하니까 극우나 일베 얘기를 하는 것이다)라는 전형적 항변을 되풀이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 ‘젊은 유권자들은 보수에 동조한 게 아니라 민주당에 실망한 것이다’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에 실망하더라도 보수에 동조하지 않는 다른 방법이 있다. 민주당에 실망을 했는데, 하필이면 보수에 동조를 하니까 보수화라고 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얘기를 인정을 하지 않고 개소리에 개소리를 거듭하며 좋은 건 다 가지려고 하니까 극우포퓰리즘적 동원 논리에 포섭이 되는 것이다.

거듭되는 극우포퓰리즘적 동원 논리의 실례를 보겠다.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과 배재고 야구부의 광주일고 상대 “스타벅스 가자” 응원 후 6개월 출전 정지 중징계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우리 사회는 정통망법 시행 전부터 다른 이의 의도를 멋대로 재단해 응징하려는 ‘입틀막’ 징후가 농후했다. 옷 색깔, 특정 숫자, 말투…. 주류가 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피해자라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친 민주당 진영은 유명 연예인은 물론이요, 평범한 시민의 일상 하나하나에 ‘혐오’ 딱지를 붙여 의견 다른 이들의 숨통을 조르는 질식 사회를 만들어왔다.

(…)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가 지난 6·3 지방선거 전날 SNS에 어떤 색 옷 사진을 올렸을까. 아마 많은 이들이 지난해 5월 대선을 떠올리며 (국민의힘 상징인) “빨간색”이라 답했을 거다. 틀렸다. 선명한 (민주당 상징) 파란색이다. (…) 카리나의 파란 옷은 아무 논란 없이 넘어갔다. 그새 사회가 성숙해진 걸까. 그럴 리가. 래퍼 이영지는 6·3 지방선거 나흘 전인 5월 30일 붉게 염색한 머리에 빨간 옷 입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공격받고는 곧바로 삭제했다. “빨리 염색하고 오느라 해명이 늦어 죄송하다”며 검은색 머리 사진을 올리며 거듭 사과했다. 1년 전 방송인 홍진경이 대선 투표 전날 빨간 옷 입었다고 자필 사과문 써야 했던 데서 한발도 나아가지 않았다. 내 편 네편 나눈 조리돌림도 밥줄 끊길까 무서웠는데, 이젠 뭘 걸고넘어질지 법 걱정까지 할 판이다.

(…)

‘어른 김장하’ 감독인 경남 MBC 김현지 PD는 대형 엔터사도, 금수저도 아닌 거제 출신 ‘노력돌'(노력+아이돌) 리센느의 원이가 한 영상에서 “무섭노”라는 말을 주고받는 걸 놓고 “일베식 표현”이라며 문제 삼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고 폄훼하는 잘못된 행위…’노’ 붙여 사용하지 말아야”라며 일베 감별법으로 논란을 키웠다. 자기들한테나 노 전 대통령이 성역이지, 1020은 아무 관심도 없는데 젊은 애들 말투까지 통제하려 든다. 과거 보수 정부 때 쥐·닭 거리며 멸칭 쓰고 낄낄대던 걸 다 잊은 모양이다.

(…)

웹툰 원작 드라마 ‘김부장’을 놓고 한 좌파 유튜브 채널은 원작자의 다른 작품(‘외모지상주의’)까지 끌어와 ‘락아울’이라는 간판 아래 “5분 23초” 대사가 나오는 게 노 전 대통령 서거일과 서거 장소 부엉이바위를 언급하는 혐오라고 비판했다. 정작 이 유튜브 속 장면을 보면 간판은 ‘락아울’이 아니라 다른 구조물에 가려져 B가 안 보이는 ‘ROCK (B)OWLING(락 볼링)’이다. 이야말로 정통망법상 고의적 허위라 볼만한 사례 아닐까.

억지 혐오 딱지 붙이는 이런 세상, 숨 막힌다. 옷이, 말투가, 숫자가 누굴 화나게 하는지 매 순간 고민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3268

보면 스타벅스-배재고-카리나/이영지-사투리 논란-김부장-정통망법을 하나로 묶어 혐오 표현을 지적하는 시도에 대한 반발로 조직해 ‘검열(전체주의) 대 자유’ 구도에 욱여넣고 있다. 위에 하나로 묶인 소재 중 하나에라도 반감을 가지면 전체 사슬 구조에 대한 반대로 조직되며 이게 ‘자유’라는 텅 빈 기표 밑으로 결집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또 하나의 글을 보겠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진상 파악도 하기 전에 배재고 야구부 전체에 출전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경찰은 모욕죄 여부를 수사 중이다. 여권에선 지역 비하와 혐오 표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며 ‘야구부 해체’ 얘기까지 나왔는데 그런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면 박정희 대통령 혐오와 부산 비하 발언 전력이 드러났을 때 최교진 교육부 장관 지명을 철회했어야 했다. 올해 5·18 전야제에서 해직 교사가 “이준석이로 드는 액은 매불쇼가 막아내고…”라 노래해 비판이 제기되자 좌파 단체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는 성명을 냈다. 조롱도 내가 하면 표현의 자유이고, 남이 하면 혐오가 된다는 내로남불식 과잉 대응에 아무 잘못 없는 광주일고 학생들이 역풍의 돌을 맞고 있다.

이제는 ‘김부장’과 ‘거제소녀’ 차례다. 드라마 ‘김부장’의 웹툰 원작가는 최근 일베 연루설에 휘말렸다. 예전에 그린 웹툰에 ‘5분 23초’가 나오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이 5월 23일이라는 게 일베의 증거라고 한다. 경남 거제 출신의 여성 아이돌 멤버는 “무섭노”라고 말했다가 일베로 찍혔다. 일베 커뮤니티에서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뜻으로 말끝마다 ‘노’를 붙여 쓴다는 것이다.

어이없는 트집이라고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청년들도 의문문에 ‘노’를 붙여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혐오 표현임을 알고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거들었다. 여당과 조국혁신당 의원들은 조롱과 혐오 표현도 불법 정보로 처벌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 제안 이유에는 ‘일베’ ‘노무현’ ‘5·18’을 적시해 일베금지법임을 숨기지 않았다. 여성 아이돌의 ‘무섭노’는 일베식 조롱이고, 조국 수호 집회의 가수가 부른 ‘와그라노’는 사투린가. 어떤 ‘노’는 되고, 어떤 ‘노’는 안 되는 걸 누가 정확히 판단한다는 건가. 반국가단체 활동을 찬양 또는 고무하면 처벌하는 국가보안법도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폐지하자던 이들이 ‘우리 편’에 대해선 입조심하라는 중세식 협박을 하고 있다.

좌파 진영의 위선은 젊은이들이 여당에 등을 돌리는 이유 중 하나다. 광주 청년들도 예외가 아니다. (…) 5·18을 직접 겪지 않은 이들은 ‘광주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5·18 묘역 이상을 기대한다고 한다. 하지만 “왜 광주에는 복합쇼핑몰이 없고, 마켓컬리 새벽배송도 안 되느냐”고 하면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광주 정신과 상충한다’며 말문을 닫게 한다는 것이다. 광주 청년의 새로운 요구도 수용하지 못하는 배타적 5·18 정신이 어떻게 보편적 민주주의의 상징이 될 수 있겠나.

(…)

“5·18은 성역”이라며 어린 선수들의 잘못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는 건 광주를 ‘그들만의 광주’로 고립시키는 일이다. 최근 인터넷 언론에 실린 칼럼 ‘야구선수 아들 둔 광주 아버지가 배재고 근조 화환 보며 한 말’의 일부를 공유한다. “광주는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무릎 꿇리는 것으로 기억되는 오월이라면, 그것은 이미 오월이 아니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60707/134254858/2

역시 배재고와 내로남불로 시작해서 김부장-사투리-정통망법으로 가고 있다. 앞서 글과 약속이라도 한 듯 사슬의 구성 방식이 비슷하다. 문장 하나 하나에 다 반론을 할 수가 있는데, 너무 저열해서 그런 노력을 기울이고 싶지도 않다. 이 글은 앞서 글의 사슬 구성에 하나를 더 첨가했는데, ‘복합쇼핑몰’과 ‘마켓컬리 새벽배송’이 그것이다. 이걸로 이념과 이익의 상충 구도를 형성했다. 즉, 전체주의=이념 대 자유=실리의 구도이다. 이 구도도 많이 등장하니 외워두시라. 시험에 나와요. 외워.

그리고 이 글도 봐라.

한국에서도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전체주의라는 유령이.

개정 정보통신망법이 7일부터 시행됐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입틀막 하겠다는 ‘전체주의 선언’”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전날인 6일 이병태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5·18이 성역이 됐다”는 발언으로 사퇴했다. 그는 “자유와 방종의 경계마저 권력이 자의적으로 정의하면 바로 전체주의의 시작”이란 말을 남겼다. 5일엔 조국 전 조국혁신당 전 대표가 ‘무섭노’가 극우성향 일베의 표현일 것이라고 했다. “전체주의 홍위병을 보는 것 같다”는 야당의 반응이 나왔다. 전체주의에는 국가의 독점과 통제·억압이 따라다닌다. 우리 국가에 전체주의의 유령이 아른거리는가.

영어 접미사 ‘~ism’이 ‘~주의’로 번역된 때는 일본 메이지 유신 직후다. 1881년 수신사 이헌영이 『일사집략』에서 조선에 처음 선보였다. 하지만 ‘~주의’란 단어는 복잡한 현실을 고정된 틀로 환원해 사유를 막고, 교조화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특정 목적을 위해 ‘~주의’를 소환할 수 있다는 뜻.

그러면 이런 구호도 나올 수 있나.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자들이여 단결하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3257

앞서의 구도를 정확하게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더욱 분명하게 ‘전체주의 대 자유민주주의’ 구도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아마 또 내 얘기를 제대로 듣지 않은 분들이 말할 것이다. 아니, 전체주의를 반대한다는데 왜 자꾸 극우포퓰리즘이라고 하는 거요? 이렇게 묻는 분들은 극우+포퓰리즘… ‘포퓰리즘’의 의미를 자꾸 잊어먹고 다시 또 질문을 하는 거다. 이들의 전체주의 반대 담론에서 ‘전체주의’는 친중, 친북과 연결된다. 과거에 운동권을 하던 녀석들이 정권을 잡아 친중, 친북 성향이 있어 전체주의적 해법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앞서 전체주의=이념 대 자유=실리 구도 역시 이를 반영한다. 너무 넘겨 짚는 거 아니냐고? 1) 이미 인스타그램과 쓰레드, 일부 커뮤니티 등 극우적 논리의 자장 안에 있는 공간은 이런 논리들에 의해 점거되었다. 2) 이런 논리를 활용해 집권해 극우정치를 펼치는 장면을 이미 우리는 목격했다. 코리안 트럼프! 이 자가 정확히 이 전략을 사용해 집권했으며, 내란을 일으켜 지금은 감옥에 있다. 여러분이 이 자의 집권 과정을 잊어버렸을 뿐. 이 자의 집권을 이뤄낸 자들이 똑같은 시도를 또 하는 거다!

극우포퓰리즘이라는 요상한 단어를 네가 만들어 낸 거 아니냐, 이런 말씀 하시는 분들도 가끔 있다. 난 처음 들어보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막 이러는 분들이 있는데, 오늘 뉴욕타임스 뉴스레터에도 있더라. 번역된 전문을 올려드린다. 전쟁에 협조하는 오픈AI의 챗GPT가 수고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세계의 독자 여러분. 제가 극우 포퓰리즘(원문: far-right populism)에 대해 처음 글을 썼을 때만 해도, 그것은 유럽 정치의 주요 세력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2008년 마린 르펜을 인터뷰했고, 2015년에는 나이절 패라지를 만났으며, 같은 해 독일대안당(AfD)을 취재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많은 관측통은 이들 가운데 누구라도 권력을 잡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이 세 세력은 각자의 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 세력이 됐습니다. 그리고 르펜과 패라지가 바로 어제 분명히 했듯, 재정 문제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인데도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승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중도 정당들은 이들을 막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제 뒤를 이어 베를린 지국장을 맡은 짐 탱커슬리가, 바로 그 목적을 위해 마련된 34개 항목의 개혁 패키지에 대해 씁니다. 잠시만 참고 들어주시죠. 사람들을 고무하는 힘찬 구호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짐이 쓰듯, 독일 정부는 유권자들이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무언가를 하는’ 정치인에게 보상할 것이라는 데 승부를 걸고 있습니다. 저는 그다지 확신이 서지는 않습니다.

또한 오늘 다룰 내용입니다.

르펜 판결이 프랑스 정치를 뒤흔들다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대역전
우주에서 온 한 장면

‘무언가를 하는’ 정치

짐 탱커슬리

독일 정부는 지난주 침체된 경제에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한 34개 항목의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발표는 늦었고, 전문가와 대중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연금 개혁과 소폭 감세 등을 포함한 세부 내용은, 가장 기술관료적인 성향의 기술관료들을 제외하면, 정치적으로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재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이 계획에 따라붙은 과감한 약속이 더욱 눈에 띄었습니다. 당국자들은 이 계획이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극우의 기세를 꺾을 청사진이 될 수 있다고 시사했습니다.

보수 성향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와 그의 중도좌파 연정 파트너들은 독일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는 극우 도전자들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 극우 세력은 물가 상승, 성장 둔화, 그리고 사회적 결속의 균열 심화로 타격을 받았다고 느끼는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메르츠 총리와 연정 파트너들은 승리할 유일한 방법은 정치적 중도가 성과를 내고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때문에 이 패키지의 운명, 그리고 이에 대한 독일 유권자들의 반응은 유럽 전역에서 면밀히 주시될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중도 정당들은 포퓰리스트 경쟁자들을 견제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험은 그런 정당들이 불완전하거나 미흡한 해법으로라도 문제를 조금씩 덜어내는 정책을 통해 유권자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지, 아니면 2026년의 지금 시점에서 그런 정치 자체를 더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것입니다.

판을 바꿀 수 있을까?

이 패키지는 일련의 조치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지지자들은 이 조치들이 합쳐져 정체된 독일 경제에 활력을 되찾게 하고, 월드컵 조기 탈락 이상의 여러 이유로 가라앉은 나라의 분위기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법정 은퇴연령을 높여 공적연금을 보강하는 방안과, 중산층 가정에 대한 소폭 감세가 포함됩니다. 이 감세는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을 약간 올려 상쇄하는 방식입니다. 이 패키지는 또 규제를 줄이고, 일부 노동법을 완화하며, 전반적으로 독일인들이 더 많이 일하도록 유도하려 합니다.

유능한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조치들이 어느 정도의 경제적 효과를 낼지를 놓고 의견이 갈립니다. 일부는 성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이들은 내용이 너무 희석돼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정치적 결과는 정책의 세부 내용보다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더 좌우될 수 있습니다. 곧 이 조치들이 유권자들에게 중도 정당도 여전히 보통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능력이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행동에 거는 승부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는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완전히 엇갈리는 두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첫 번째 이론은 단순한 해법, 예컨대 충분한 수의 이민자를 추방하거나 정부를 충분히 줄이는 식의 해법이 부패했거나 무능한 선출직 정치인들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들을 제거하면 그런 해법을 실행할 수 있고, 상황은 나아질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에 대한 지지가 급등하는 영국부터 독일까지, 이 관점은 점점 더 많은 지지자를 얻고 있습니다.

유럽의 상당 부분을 여전히 통치하는 중도파가 내세우는 또 다른 이론은 해법에는 어려운 선택이 필요하며, 유권자의 상당수가 그 선택을 몹시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메르츠 총리의 계획 중 한 조항은 이미 거센 대중의 반발을 불렀습니다. 노동자가 병가를 낸 첫날부터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입니다. 결근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 위험도 있습니다.

결국 이는 ‘몸에 좋으니 채소를 먹어라’식의 정치 철학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취재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은, 중도파가 자신들의 어려운 해법이 시간이 지나면 유럽의 삶을 개선할 것이며, 유권자들이 결국 그에 보상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점입니다.

지난주 말 베를린에서 메르츠 총리와 그의 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을 한자리에 모은 것도 바로 그 이론이었습니다. 이들은 채소 한 바구니를 통째로 내놓았습니다.

메르츠 총리는 독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AfD를 막을 길이라고 자주 말합니다. 그는 자신이 중재한 타협이 얼마나 취약해 보이는지 알고 있습니다. 경제단체들은 계획의 일부를 싫어합니다. 노동단체들도 다른 부분을 싫어합니다. 반대의 목소리가 충분히 커지면 이 계획은 의회 통과 전부터 좌초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통과되더라도 유권자들이 등을 돌릴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 계획이 잘못된 종류의 ‘채소’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공공재정 보강과 더 긴 노동시간 장려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자동화와 세계 경쟁으로 위협받는 일자리를 지키는 데는 충분히 집중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승부수는 이 계획들이 여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메르츠 총리는 “우리나라 시민들은 결정을 원하지, 다툼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해낸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대중 사이에서 정체를 뒤로하고 새로운 출발을 감행하려는 엄청난 의지를 느낍니다.”

그가 옳은지는 곧 알게 될 것입니다.

https://messaging-custom-newsletters.nytimes.com/dynamic/render?campaign_id=346&emc=edit_wor_20260707&instance_id=178361&isViewInBrowser=true&nl=the-world&paid_regi=0&productCode=WOR&regi_id=153436748&segment_id=222732&sendId=222732&uri=nyt://newsletter/71090acd-2bed-5a54-8578-61465a00d7d5&user_id=d0f24d297561105b134ff20d52757065

이 뉴스레터의 위 기사는 내가 평소에 자주 얘기하던 구도의 일부를 전제하고 있는데, 주류-엘리트주의 대 비주류-극우포퓰리즘의 대결 구도이다. 뉴욕타임스 기사의 구도는 ‘주류-엘리트주의가 성공해야 할텐데… 안 그러면 비주류-극우포퓰리즘 세력에게 넘어갈텐데… 성공할까? 걱정이네…’ 여기에 맞춰져 있다. 이게 리버럴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정치세력은 실패하게 되어있다. 주류든 비주류든. 중요한 것은 주류와 비주류가 권력을 주고 받을 때, 그 주류와 비주류가 어떤 세력이냐에 있다. 주류가 통치책임성을 충분히 담보하는 세력이라면, 비주류는 대안적이고 미래적인 정치관을 가진 세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주류가 무책임하거나 비주류가 극우포퓰리즘 세력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계속 하고 있다. 잘 못 알아 먹겠지만.

그러니까 제발 정신 좀 차리라는 것이다. 맨날 내로남불이나 떠들고, 누구를 반대하는 것에나 열중하고, 그러면서 자기가 어떤 정치에 조직되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그게 지금 어떤 파멸적 결과를 불러오고 있는지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원한 발산에만… 야!!!!! 극우포퓰리즘이 더블민주당한테 치명적인 거 같냐? 실제로 망하는 건 진보이다. 진보의 무기를 다 빼앗아 가서 지들이 활용하기 때문. 아직도 모르겠어?? 한동훈 앞잡이나 하고… 터커 칼슨이 트럼프랑 척졌다고 마가가 아니게 되냐? 한심하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극우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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