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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 현안

오염수 방류 반대하면 반일민족주의?

2023년 6월 28일 by 이상한 모자

그 편의점 점주라는 분도 그렇고 왜 죄 전직NL들이 나와 갖고 이 난린지 모르겠다. 오늘 횟집 사장님이라는 함모님(참고로 mc-MT 시절에 본인은 mc였다고 했다)이 윤심공감 특강을 하면서 “이 싸움은 과학과 괴담의 싸움만이 아니라 반일(反日) 감정을 부추기겠다는 명백한 의도를 갖고 시작된 싸움”이라고 그랬다는데, 기본적인 논리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아주 간단한 초등학생용 논리학 지식부터 리마인드해보자.

‘p 이면 q이다’가 참일때, ‘q이면 p이다’는 반드시 참인가? 아니다. ‘~q이면 ~p이다’는 반드시 참이다. 그럼 이제 이 문제에 대입해보자. ‘반일민족주의라면 오염수 방류 반대할 것이다’는 함모씨의 논리체계 안에서 참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오염수 방류 반대하면 반일민족주의다’는 자동으로 참이 되나? 아니지. 이건 초등학생이라도 안다. 그러다보니 조국 죽창가 얘기 또 하고 그러는데, 거기서부터는 그냥 일방의 정치적 프레임이지 무슨 주의고 뭐고도 아니다. 적어도 이게 반일민족주의라고 하려면, ‘오염수 방류’라는 행위를 ‘일본-민족’와 연결짓는 논리적 가교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오염수 방류 등을 말하는 주요 논리가 그런 거라고 보긴 어렵다.

미국과 캐나다는 가만히 있는데 왜 한국만 난리냐 라고 하는데, 미국과 캐나다 정부는 (한국 정부가 사실상 그렇듯) 가만히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과 캐나다의 모든 과학자, 모든 연구기관, 모든 시민단체가 다 가만히 있냐? 오늘 한겨레에 실린 글을 한 번 읽어봐라.

오염수 방류를 우려하는 과학자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지난 22일 <네이처>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안전한가? 과학이 말해주는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오염수 방류를 옹호하는 과학과 더불어 이를 우려하는 과학 간의 쟁점을 짚었다. 한쪽에서는 드넓은 바다에 희석된 방사능 수준은 거의 0에 가깝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쪽은 바다 생태계와 인체에 안전함을 충분히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25일엔 전문매체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미국 우즈홀해양연구소의 해양환경방사능센터 책임자인 켄 뷰슬러의 견해를 자세히 전했다. 그는 “오염수 방류가 태평양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뜨리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방사능 핵종을 걸러내는 여과장치가 효과적인지가 투명하게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방류를 추진하는 것을 우려했다. 지난 1월24일 <사이언스>는 논란과 함께 오염수를 방류하지 않고 육상에서 저장하는 대안을 전했다.

일부 과학단체와 기구는 오염수 방류에 심각한 우려와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18개 나라의 태평양제도포럼(PIF)이 임명한 독립 전문가 패널은 지난해 8월22일 일본 매체 <재팬 타임스>에서 도쿄전력의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안전성이 불확실하기에 방류를 무기한 연기하고 조사, 검토를 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12일엔 100개 해양학 연구소들이 모인 미국해양연구소연합회(NAML)가 ‘일본의 방사성 오염수 방류에 대한 과학적 반대’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달 14일에는 노벨평화상(1985년)을 수상한 단체인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IPPNW)가 이사회에서 채택한 성명을 통해 태평양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으로 사용하려는 계획을 중단하고 바다와 인간의 건강을 보호하는 대안의 방식을 추구할 것을 촉구했다.

전문매체의 보도와 과학자들의 주장을 보면, 후쿠시마 오염수 이슈는 조사, 검증, 확인이 필요한 논쟁 사안임을 쉽게 알 수 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97753.html

논쟁적인 사안을 논쟁 중인 걸로 다루고 있다고 한다면 가만히 있는 거라고 볼 수 없지… 그리고 중국과 한국 원전에서도 방류하는데 왜 찍소리도 안 하나요~~ 이러는데, 1) 멜트다운이 일어난 사고원전인가? 2) 그러니까 지구적으로 탈원전 하자고 했잖아! 이거 다 얘기하는데 다 무시하고 오로지 반일 괴담 타령만…

이런 분들 문제가 자기들이 운동권 출신이라고 남들도 다 그런 수준의 사고를 한다고 생각한 후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남의 수를 이미 다 읽고 있다는 듯이 씨부림. 그러나 그것 자체가 운동권 세계관에서 탈출한 후 주류에 감화됐다는 탕아 서사의 지루한 반복에 불과한 것. 거기다 이미 처음부터 주류에 익숙한 사람들이 볼 때는 이 분들이 귀엽겠지. 운동권도 처음에 학습당하고 나서가 제일 활발한 거 아니겠어? 그러니까 사실상 제2의 운동권 초년생의 삶을 사는 거랑 비슷하달까?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괴담, 후쿠시마, 후쿠시마 오염수

기후만 얘기하는 기후위기?

2023년 6월 26일 by 이상한 모자

언젠가 여기다가도 ‘내일은 늦으리’ 그걸 언제까지 할 거냐, 그런 얘기를 쓴 일이 있다. 오늘 경향신문 지면에 ‘1.5도 너머 기후위기 적응을 말하다’란 기획이 실렸는데, 기사 내용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기획 자체는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https://www.khan.co.kr/series/articles/am039

내가 볼 때, 그러니까 과문해서인지는 모르나 언론 일반이 다루는 기후위기에 대한 톤은 여전히 “1.5도 상승을 막아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이상의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렇다기 보다도, 하긴 하는데 주변적으로 다루거나 소극적으로 얘기할 따름이다.

대다수 일반 시민에게 기후위기는 ‘차카게 살자’ 이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조차 오직 ‘기후’만을 말하는 답답한 일이 일반적이다. 그냥 하던대로 하는 사람들이 많고, 언론보도도 이를 반영한다. 매너리즘이다. 그러한 일이 일반적이 되어 있으므로 기후위기에 별 관심없는 사람들도 이미 이 문제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후위기’를 말하면 어떤 전형적인 기후위기-스토리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상상하고 그걸 근거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돈룩업 같은 게 대표적이다(나는 이 영화가 양가적인 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 유효한 질문은 “1.5도 상승을 막지 못했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1.5도 상승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목표가 달성될 가능성은 냉정하게 말해 크지 않다.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그 변화를 감당하는 비용은 약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그게 핵심인데, 지겨워서인지 어려워서인지 하여간 이런 얘기가 개연성있게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게 잘 안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김선생님이 경향신문에 이러한 글을 쓰기도 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2306142151005

뭔가 손에 잡히는 실천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 활동가들의 고민을 눈여겨 본 일도 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61214490001854

이제 기후위기가 더 이상 ‘기후’에 갇힐 수 없는 시대라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실에 발을 딛고 외면하지 말고 사방으로 뻗어 나가야 기후위기의 의미있는 정치세력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 것이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기후위기

과학 대 괴담?

2023년 6월 26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은 ‘먹방 정치’에 대해서 썼는데, 중간에 네이처 기사가 인용돼있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5438

쓰고보니 네이처 기사가 ‘우려’에 포인트를 둔 걸로 오해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 ‘우려’에 대한 반론도 포함한 균형잡힌 내용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려’가 제기되면 반론하고 해명해나가는 게 중요한 건데 그걸 ‘괴담’이라고 하고 “마시겠다”고 하는 게 과연 과학적 태도이냐 하는 거다.

일전에도 썼지만 하나의 과학적 진실이 영원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과학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과학적 진실 역시 그렇게 믿기로 한 어떤 약속의 결과라는 거다. 과학이 내놓는 결과가 그럼에도 신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잘못됐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이것을 바로잡는 프로세스 자체가 과학이라는 개념 내에 내포돼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걸 부정하면 그건 더 이상 과학적 태도일 수 없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가령 P값 논쟁을 떠올려봐라. P<0.05 이걸 얼마나 많이 써먹느냔 말이다. 그런데 과학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P<0.05 여기에 매몰되지 마라, 아예 사회과학이나 생물의학 같은 데는 0.005로 해라, 이런 제안이 있었던 거 아니냐? P<0.05 이것도 절대적인 수치는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근데 그렇다고 P<0.05를 전제하고 이뤄진 연구를 모두 부정할거냐, 그건 아닌 거지. 그러나 어쨌든지간에 적어도 그것은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는 게 과학적 태도이다 이것이다. P값 논쟁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고.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id=285403&Board=news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그렇기에 과학 못 믿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P값을 어떻게 수정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것 자체가 과학적 체계 내에 있다는 게 중요하다. 과학이 하는 일이 본질적으로 무엇인지를 생각하라는 거다.

국가 정책이라는 거는 오늘의 과학적 진실에 근거할 수도 있고 추가적인 다른 고려를 할 수도 있다. 국가가 뭔가를 한다면 그건 그게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적어도 여러 불확실성 속에서 그 정책을 추진할 경우 잃는 것과 얻는 것 즉 비용-편익을 고려한 결과로서 이뤄지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잃는 것’이 있는 쪽에서 하는 얘기에 대해서는 신의성실해야 한다는 아주 상식적인 얘기다. 근데 거기다 대고 괴담 타령…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 거 하나만 합시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P값, 과학,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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