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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정치 사회 현안

야 이 빨갱이들아

2021년 3월 6일 by 이상한 모자

코로나평론가 일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 생각. 빨갱이들아! 비 MB셔스! 좀 꿈을 가져라. 이게 뭐냐 도대체.

운동권들끼리 하는, 그 처음에 기본소득 기본소득 노래가 언제 시작됐냐면 금민 횽아가 등장한 2006년 정도야. 그때는 간판 상품이 사회적 공화주의였다고. 우리 뭐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한다고 우리끼리만 평가하는 무슨 조직이 모여서 평가를 했지. 첫째, 드디어 대주주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둘째, 그런데 우클릭했다. 물론 그때는 보드킴 형님이 거기 대주주인 거는 몰랐지. 이게 웃긴 얘긴데 그때 사회당 횽아들은 자기들끼리도 대주주가 누군지를 막 몰랐다고 우겼다는 거야. 지금은 정의당 서초구 어디쯤에 권 모라는 분이 있는데, 조직에서 이탈한지 4년이 지나 2012년이 돼서야 나한테 모른척 넌지시 가르쳐주더라고. 자기도 전혀 몰랐는데 내가 요즘 생각을 해보니 우리 옛날에 형님이 여기 이 분인 거 같다… 뭘 몰라 모르긴!

아무튼 기본소득은 그때 사회적 공화주의의 부속강령 정도에 불과했다고. 그게 반응이 좋으니까 메인 아이템이 됐지. 그때 통합을 하고 이래야 되니까 이걸 어떻게 할거냐, 우리 무슨 조직에서 얘기를 했어. 이렇게 정리했지. 이행 수단으로서 평가한다. 그때 좀 리버럴 성향의 연구원이 잠깐 일하러 왔었거든? 이건 아니라면서 도망가버리더라고. 지금은 어디서 뭘 하실지… 이재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지…

그니까 돈을 막 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걸 함으로서… 또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서 만들어지는 정치가 중요하다 이거야. 돈을 그냥 모두에게 일정액을 주는 거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그래서 기본소득의 애초 개념이 중요한 거야. 생활이 될 만큼 충분한 돈을, 조건없이, 모두에게 주는 것. 이게 지금 시스템으로 되겠냐? 안 되지.

근데, 어떻게 됐습니까? 기본소득은 가능하다! 돈을 주는 게 목표가 돼서는 아무데나 다 기본소득 이름을 붙이고 있다. 그것마저도 이재명한테 빼앗기고. 재난기본소득이 왜 기본소득이냐? 청년기본소득은 또 뭐냐? 30만원 주는 게 인생 최대 목표…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을 수단은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시스템 연명치료의 수단이 된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세요.

이게 비난 빨갱이들 뿐만이 아니야. 반대를 고리로 한 정치라는 게 다 그래. 이 정권의 소득주도성장을 봅시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은 이윤주도가 아니라는 거야. 임금주도의 플러스 알파라는 거지. 그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그래서 이 정권이 언제 이윤주도를 구체적 정책으로서 부정했니? 최저임금 올린 후 아랫돌 빼서 위에 쌓고 끝났지. 결국 확장재정만 남았잖아. 이게 새롭지 않은 얘기예요. 이미 2017년에 이거 문통이 공약 낼 때부터 예상했다고. 그냥 돈 푸는 걸로 귀결될 것이다… 시스템이란 게 원래 그런거야. 네가 뭘 먹어도 나오는 건 똥인 거랑 똑같아. 색과 향기가 조금씩 다를 뿐이지.

운동권들한테 참여계획경제 얘기하자 그러면 배가 산으로 가요. 이게 1990년대부터 문건에 있는 얘기거든? 지금 우리 집에도 있는데, 김선생님 등이 옛날에 진학련이 막 이상해지고 21세기가 되고 결과적으로 버려지고 해서 우울한 가운데 내던 자료집 같은 게 있어요. 여기에도 이 얘기가 있는데… 막 노동시간계산논쟁부터 하자 그래. 아이씨 거기까지 가지 말고. 아까 장선생님 글에도 나오잖아. 계획경제, 그걸 맨드는 정치가 중요하다… 팻 데바인 모델에서 협상조정기구가 핵심이래니깐?

그니까 기본소득이냐 참여소득이냐 이것도 똑같은 얘기예요. 참여소득을 하려면 누구한테 왜 무슨 돈을 주는 지를 얘기를 해야 된다는 게 핵심이라고. 그걸 귀찮고 번거롭게 왜 합니까? 귀찮고 번거로우라고 하는 것이다! 귀찮고 번거롭지 않고 우리가 세상의 주인이 어떻게 됩니까. 돈 주고 끝나는 얘기로 취급하면 참여소득도 결국 또 그렇게 된다. 이재명이 폐지수집 노인들에게 5만원씩 준 다음 이게 참여-기본소득이다 라고 할 거라고. 그냥 기본도지사라고 하지! 기본도지사특별법 1조, 경기도지사는 이재명으로 한다… 하여간 그러니까… 꿈을 가지세요!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기본소득, 소득주도성장, 이재명, 참여소득

참여소득

2021년 3월 6일 by 이상한 모자

참여소득에 대해서는 일전에 일면식도 없는(방송국서 지나가다 한 두번 스친 일은 있다) 홍기빈 씨가 라디오에서 얘기하는 걸 듣고 여기에도 메모를 남긴 바 있다. 한겨레TV가 만드는… 김완 기자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에서 기본소득을 다룰 때에도 단어를 언급했는데 설명할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나서 어제 오늘 전환사회 콤비가 쓴 글을 읽게 되니 다시 반갑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3060300035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5402.html

두 사람의 포지션은 말하자면 이게 ‘순한맛 기본소득’이라는 듯이 느껴진다. 나는 이론에는 무지한데, 이전에 남긴 메모에도 적었듯 참여소득의 의미가 확장되는 것에 주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가령 홍기빈 씨는 이렇게 썼다.

기본소득은 국가와 사회가 모든 개개인에게 일정한 소득을 ‘무조건적’으로 주는 책임을 이야기할 뿐, 그 돈을 개인들이 어떻게 쓰고 활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개인의 재량에 맡기자고 한다. 반면 참여소득은 어떤 활동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인지 또 그 활동의 가치, 즉 참여소득의 액수를 어떻게 계산할 것인지 제반의 문제를 사회라는 실체가 결정할 문제라고 본다.

여기서 “사회라는 실체가 결정”이라는 대목은 단순하지 않다. 여기서 과거 언급했던 참여계획경제 등이 끼어들 틈이 생기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참여계획경제 등에 대해선 2013년 장선생님 글을 참고… 다들 머리를모아 누구의 어떤 활동에 얼마를 주는 게 옳은지를 결정하는 이런 모델에서 실패가 없으리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실패가 퇴적될 수 있는 구조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지금처럼 반대와 반대에 대한 반대를 거듭하는 손바닥 뒤집기 같은 정치가 아니고… 일하러 가야되어서 그만 씀…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장석준, 참여계획경제, 참여소득, 홍기빈

어제 쓴 글과 오늘의 생각

2021년 3월 5일 by 이상한 모자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0035.html

윤석열 씨가 훌륭한 검사라는 거랑 정치를 해도 된다는 거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하지 말라고 썼다. 혼자 생각으로는, 대한민국 정치가 검찰이냐 아니냐 하는 수준까지 가지도 못할 걸로 본다. 하여간, 잘 돼도 못 돼도 이건 말이 안 되는 거다.

이러고 있노라면 괜히 일본 생각을 하게 된다. 해외 사례를 갖고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우리랑 제일 유사한 건 역시 일본이다. 거기나 여기나 검찰이 봐주는 게 제일 큰 문제다. 권력은 봐주면서 약자에겐 가혹하다는 비판은 독재와 민주 구도에서 독재에 부역하면서 민주주의는 탄압한다는 개념으로 모습을 바꿨다. 이는 곧 독재=보수, 민주주의=리버럴의 정파 구도로 둔갑했다. 그래서 리버럴이 집권한 이 정권에서 검찰의 폐해는 ‘권력은 봐주고 약자에겐 가혹하다’는 게 아니라 ‘보수 야당에 부역하면서 집권 세력을 탄압한다’는 구도가 되었다. 그런데 권력 기관의 일부인 검찰이 어떻게 집권 세력을 탄압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민주적 통제’라는 구원투수가 등장한 것이다.

어느 나라나 똑같지만, 이런 개념적 장난이 일본에도 있었다. 민주당 정권이 집권할 때 슬로건이 관료가 아니라 정치! 라든가 뭐 그런 거였다. 사실 이건 한일만 그런 게 아니고 역사가 긴데 어쨌든, 그 근본은 ‘무언가에 대한 반대'(일본의 경우는 족의원-관료-자본의 삼각동맹)로 구성된 정파 논리를 통치에 적용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이다.

재미있는 건 수상 관저의 권한 강화를 추진해 온 자민당이 재집권한 이후에도 똑같은 얘기가 나왔다는 거다. 내가 선거로 선출됐으니깐 내 말을 들어! 가령 ‘용과 같이 7’은 의회에서 선출한 수상에 비해 직접 선출된 도쿄도지사가 무시무시한 권력 남용을 할 수 있다는 경계심을 보여주고 있다. 아베 신조의 부패 스캔들에 대하여 우익 정치인들이 전문가-관료를 무시하고 찍어 누르며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다 생긴 일이라고 아사히 신문이 비판하는 걸 봐라. ‘관료가 아니라 정치!’가 유행일 때에는 어떻게 했니? 그러니까, 역시 ‘반대’가 핵심인 것이다.

오늘은 이런 글을 보았는데, 뭐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305/105729956/1

그러니까 내 말은, 거칠게 말해서 막번체제가 천황 중심 중앙집권체제로 자연스럽게 넘어간 것은 천황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중앙 권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분산된 권력이 상호간 격렬한 투쟁 없이 중앙집권화되는 것은 어떤 경우든 쉽지 않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오래 전 폐기한 천황의 직접통치라는 대안이 있었다.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를 개발하는 것보다 대정봉환을 하는 것이 쉬운 길인 것이다. 이게 기껏 근대화라며 메이지 유신을 해놓고 전면적 대의제가 아니라 절충적 천황통치가 부활한 이유이다. 즉 막부는 천황의 대립항이었고, 천황은 막부의 대립항이었던 거다.

책을 써야 되니까 여기까지만 하고… 빨리 좀 끝내자…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메이지 유신, 민주적 통제,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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