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이 사람의 중앙일보 칼럼을 보고, 뭐 늘 또 그랬지만, 이번에는 좀 더 기가 찼다. 이게 도대체 뭐냐? 냄비 속에 들어가 있는 개구리처럼, 자기가 극우정치에 조직화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이러면 또 뭐 무슨 세상만사에 다 극우딱지를 붙이느냐 하면서 염병을 할텐데, 요즘 챗GPT 있어서 딱 좋아. 야! 챗GPT한테 물어봐. 옛날 극우와 요즘 극우, 차이가 뭐냐고 한 번 물어봐!
자… 아무튼 이미 유튜브에서 얘기를 했지만, 하도 한심해서 재차 메모를 남길 수밖에 없게 된… 이 가증스러운 칼럼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전반적으로 한심하지만 가장 용서가 어려운 대목은 여기다.
해석이 사실로 둔갑해 한갓 마케팅 실수가 ‘5·18 모독’ 사건이 된 이상, 표현의 의미를 결정하는 맥락도 달라진다. 이제 ‘스타벅스 가자’ ‘탱크 데이’라는 말은 진짜 5·18을 모독하는 혐오의 표현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배재고 사건의 배경이다.
배재고 야구부가 ‘하필’ 광주일고팀을 향해 ‘스타벅스 가자’ ‘탱크 데이’를 외친 데에는 명백히 모욕과 조롱의 의도가 있다. 일베와 같은 막장 커뮤니티에서나 사용하는 표현들이 이미 청소년들 사이에 문화적 밈(Meme)으로 퍼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재고 학생들이 일베 유저들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밈’은 ‘신념, 행동 양식 등 사회 속에서 모방과 복제를 통해 전달되는 문화적 유전자’. 모방과 복제가 거듭될수록 근원과의 연관은 끊기는 법이니까.
처음에는 극우적 표현이었던 것이 모방의 모방, 복제의 복제를 거치면 원래의 심각했던 함의는 망각되고 상대를 약올리는 놀이만 남게 된다. 그 놀이에 담긴 지저분한 함의는 철없는 청소년들에게 사회가 가르쳐야 할 어떤 것이다. 하지만 이 나라에선 어차피 진보나 보수나 ‘교육’의 힘보다는 처벌의 힘을 더 믿는다.
그래도 사건은 다행히 ‘어른스럽게’ 마무리됐다.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 학생들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기는 일은 우리가 바라는 길이 결코 아닙니다.”
한때 진빠질을 해본 사람이 아니면 이게 뭔 말인지 모를 수 있다. 이게 뭐냐면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그 얘기다. 원본과 복제품은 아우라에서 차이가 있다. 원본의 아우라는 복제할 수 없다. 다만 복제가 반복될수록 원본의 아우라는 약화된다. 그러나 이를 통해 예술은 대중화 되고 정치의 장으로 나올 수 있다. 진중권 글에서 이게 어떻게 나오냐면 배재고 선수들의 조롱은 일베의 행위에 대한 복제이며, 밈화된 일베는 유일성이 약화되면서 별거 아닌게 되고 장난질의 대상이 되었다 뭐 이런 얘기다. 나치한테 탄압을 당한 벤야민을 가지고 지금 배재고 5.18 조롱 응원을 옹호를 하다니 어이가 없다. 이게 타락이 아니면 뭐냐? 적어도 벤야민은 예술의 정치화를 말했다.
이런 식으로 이론을 갖고 장난을 할 거면 나는 보드리야르 얘기를 해주겠다. 진중권 식대로 하면 배재고 선수들의 응원은 아예 시뮬라크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배재고 선수들은 일베 사이트를 이용한 일도 없을 것이다. 일베를 뭐 알기나 하겠는가? 그들은 일베 비슷한 무엇일 뿐이다. 다만, 그들은 일베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일베가 아닌, 일베를 대신하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그건 왕이 자리에 없는데 초상화가 왕권을 대신 행사하는 것과 같다. CNN 뉴스 화면의 스펙터클이 전쟁 중계를 대신하는 것과 같다. 보드리야르에서 모사품은 원본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도 현실을 초월하며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존재가 된다. 이게 하이퍼리얼리티다. 따라서 배재고 학생들의 응원은 오히려 일베보다 더한 일베적인 무언가가 될 수 있다. 가령 일베는 좋게 봐줘야 혐오를 포함한 장난질이 반이고 나머지가 정치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어찌됐건 자기 진로가 걸린, 이기는 것 즉 남을 지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스포츠 경기다. 더 의도적이고, 더 목적의식적이었을 수 있다.
다른 기사를 보면서 생각해보라. 다른 데도 보도가 됐지만, 진중권이 기고한 중앙일보의 기사이다. 배재고 학생들이 학교에다가는 뭐라고 써냈는가 하는 내용인데, 읽어봐라. 읽고도 이런 글이 써지느냐 말이다.
“스타벅스 가야지”를 선창한 A군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주장했다. A군은 광주일고와의 경기 이튿날 제출한 경위서에 “오직 팀 분위기만을 생각했고 광주를 비하하고자 하는 마음은 절대로 없었다”고 적었다. 그는 “문득 광주 스타벅스 논란이 생각나 그런 파이팅을 하게 됐다”고 했다. A군은 “경기가 끝나고 난 뒤 큰 잘못을 했다고 느꼈고, 광주 시민들과 학교 관계자분들께 큰 죄책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탱크데이”라고 외친 B군도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이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B군은 경위서에서 “스타벅스에서 탱크데이 이벤트를 했던 게 기억이 났다”며 “5·18과 관련이 있는지 몰랐고, 스타벅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B군은 “상대방을 비하하고 조롱하려고 소리 지른 건 아니다. 잘못을 인지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일부 학생 선수들은 비하 표현임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나타났다. 한 배재고 학생은 경위서에 “경기 중반쯤에 ‘스타벅스 빵야’ 구호가 나와서 애들한테 ‘스타벅스가 갑자기 왜 나오냐’고 물었다”며 “5·18 광주에 대한 것이라고 해서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조롱성 응원에 반대했다는 진술도 있었다. 다른 학생은 “스타벅스 얘기를 들었고, 나는 이건 아닌 것 같아 A군에게 ‘야 이건 아니지. 하지 마’라고 경고했다”고 경위서에 적었다.
여기 보면 응원을 주도한 A군은 ‘의도가 없었다’면서도 ‘문득 광주 스타벅스 논란이 생각나’서 선창을 했다고 한다. 5.18이 아니면 뭘로 광주와 스타벅스를 연결했는가? 탱크데이를 외친 B군도 다 몰랐다고 하고 비하와 조롱의 의도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타벅스’를 듣고 ‘탱크데이’를 뭘 연결고리로 연상했나? 다른 대목을 보면 ‘스타벅스 빵야’ 구호가 나왔다고 돼있다. ‘빵야’란 무엇인가? 단순한 다른 응원구호를 활용한 무언가일 수도 있다. ‘발포’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학생들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어떤 분위기인지 아니까 말렸다는 대목도 나온다. 여기 어디에 일베 유저와 응원을 주도한 배재고 학생의 질적 차이가 있는가? 더하면 더했지.
‘교육’과 ‘처벌’을 나누는 논리도 한심하다. 처벌의 목적엔 원래도 교정 교화가 포함된다. 하물며 학생이다. 처벌없는 교육 현장이 어디에 있는가?
글의 나머지 부분도 한심하긴 매한가지다.
스타벅스의 파장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어느 PD가 한 걸그룹 멤버의 발언을 문제 삼고 나섰다. ‘무섭노’라고 딱 한 번 한 것을 일베의 표식으로 본 것이다. 내 기억에 일베를 제외하고 말끝마다 ‘노’를 붙이던 집단은 따로 있었다. 메갈리아. 그들도 일베였던가?
좌표가 찍히자 ‘노’가 일베어임을 입증하는 온갖 언어학 이론과 더불어 정의로운 자들의 사이버불링이 시작됐다. 어린 아이돌 스타 하나 잡아서 5·18 제단에 바쳐야 만족들 하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5·18 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애초에 문제제기의 내용이 뭔지도 모르면서 얼빠진 주장을 하고 있다. 정신을 차려라. SNS에 경상도 사람이, ‘일베와 상관이 없는 사람도 인터넷에 퍼진 일베 말투를 쓰게 된 것 같아 우려된다’는 취지의 얘기를 한 거다. 문제의 진원지는 애초에 그런 식의 말투를 만들어 유통한 일베지, 아이돌 가수도 메갈리아도 아니다. 좌표는 가수가 아니고 이 경상도 사람인 경남MBC PD에게 찍혔고, 이 PD에게 온갖 사람들이 쌍욕을 퍼붓고 사이버불링을 하고 직장인 경남MBC에까지 항의를 하고 있다. 이 경상도 사람의 의도가 애초 그런 게 아니었다고 설명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소용이 없다. 그 사람들이 듣는 얘기는 ‘아이돌 한 명을 파묻으려고 했으면 본인도 이 정도를 당할 각오는 하셨어야지~’라는 야쿠자의 언어이다.
언론은 때는 이 때다 신이 나서, 애초 이 사람의 문제제기 내용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조롱성 보도(과거에 만든 프로그램에 뭐라카노 등 자막이 있었다는)를 이어가며 이 현상을 부채질 하고 있다. 사태를 호도하는 바로 너네들 때문에 전후관계를 정확히 알 길이 없는 경상도 출신 연예계 인사들은 ‘노’로 끝나는 사투리를 SNS에 인증(!)하며 연대 의사를 표명한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행위가 이 사이버불링의 행진을 부채질한다. ‘노’가 일베어임을 입증하는 온갖 이론이 나온 게 아니라, 정확히 그 반대인 ‘노’가 일베어가 아님을 입증하려는 온갖 이론들이 제출되었다.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는 고향이 주로 경북 지역인 친민주당 변호사 및 평론가들이 줄줄이 출연해 일상 생활에서 얼마든지 ‘노’를 쓸 수 있다, 조국이 큰 잘못을 했다는 식의 해설을 며칠에 걸쳐서 내놨다. 웬만한 진보라는 사람들도 진중권의 머릿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달리 ‘노’의 출처가 어찌됐든 간에 이 아이돌 가수를 감싸느라 여념이 없다. 뭘 지금 알고 이따위 글을 쓰는 건가?
‘노’가 일베어일 가능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이 가수가 일베 유저임을 증명하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일베어가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이 스며 들어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려는 것이지만, 다 소용이 없다. 낙인찍기 마녀사냥 어쩌구 옹알옹알 이러면 다 끝난다. 그래도 옛날의 진중권은 누가 부당하게 욕을 먹고 있으면 혼자서라도 거기 뛰어 들어가 같이 욕을 먹어주는 미학적인 실천이라도 했다. 지금은? 때는 이때다 하는 극우포퓰리즘에 편승해 그저 조국 욕하고 민주당 비난하고 진보 때리면서 한동훈 띄우기에 열중한다. 그러느라고 SNS의 일부 사람들과 악의적 언론의 장난감 신세가 된 경남MBC PD 두들겨 패는 데에 자기도 합세해 막 두들겨 팬다. 자기가 지금 그런 상태라는 걸 스스로 아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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