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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대학내일] 새내기들을 위하여

조회 수 814 추천 수 0 2008.03.03 07:54:37

'개강'이란 소재에 맞춰서 글을 써달라고 해서 쓰긴 썼는데,
역시 난 이런 글은 별로 안 어울리는 듯.
어쨌든 개강날 아침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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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과 새내기 대학생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 있었다. 고3때는 공부하느라, 새내기는 노느라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격언(?)이건만, 요즈음의 세태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입시지옥을 뚫고 도착한 곳은 낭만의 공간이 아니라 취업 전쟁에 필요한 ‘스펙’을 높이느라 무한경쟁을 펼쳐야 하는 또 다른 지옥이다.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온다. 80%가 넘는 대학진학률은 그 자체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어떤 선진국에서는 지식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직종의 경우 고졸 학력만으로도 충분히 고용이 되기 때문에 굳이 대학을 갈 필요가 없지만, 학벌사회에서 대학을 포기한다는 건 그 자체로 차별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울며 겨자먹기로 다닐 수밖에 없는데, 설상가상으로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신입생들은 내가 입학했을 때보다 두 배 이상 많은 등록금을 학교에 납부한다. 한해 등록금 1천만원 시대. 그런데도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의 금리는 시중금리와도 별 차이가 없다. 대학생들이 취업에 목매는 현실을 비난할 수 없는 이유다. 앞으로도 이런 사정이 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학생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윤리적인 행위, 혹은 어떤 종류의 사치가 되어 버렸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급기야 지난해엔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에 20대의 대다수는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운명에 놓여 있다는 주장이었다. 암울함에 암울함이 더해지는 느낌이지만, 어쩌면 바로 그 지점에서 희망이 보이는 것일 터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경제구조는 몰개성화된 우등생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해 줄만한 상황이 아니다. 취업 전쟁의 요건이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이유는 기업이 슈퍼맨을 원해서가 아니라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의 인격과 개성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으로도’ 현명한 일일 수가 있다. 모두가 가판대에 제 영혼을 진열해도 악마가 거들떠보지 않는 시대엔, 영혼을 가슴 속에 감춰두는 이가 오래 살아남는 법이다.


씀씀이가 평균 수준인데도 용돈이 남지 않는 처지라면 굳이 재테크 책을 봐야 할 필요가 없다. 그 책들은 단지 잠시동안 ‘나는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라는 만족감을 주기 위해 소비될 뿐이다. 그 시간에 정말 읽고 싶은 다른 책들을, 혹은 그런 것이 없다면 전공에 관련된 책을 한권이라도 더 읽는 것이 낫다. 토익 공부를 안 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만 정신이 팔려 전공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다. 어차피 우리는 자신의 전공으로 세상과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 ‘쓸모’라는 말을 너무 좁게, 근시안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공부의 쓸모라는 것은 원래 돌아서 돌아서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에서 오는 것이니까.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마음에 맞는 친구와 만나서 수다를 떠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시간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낭비가 없다면 우울함에 젖어드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생각하려고 억지로 애쓸 필요는 없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언제나 미소지어야 한다는 생각도 버리자. 미소짓는 것이 일의 일부인 사람이라도, 언짢을 때 찡그릴 수 있는 공간을 어딘가에 마련해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가끔은 서로를 향해 돌아보기. 힘든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이상은 이기는 법이 아니라 견디는 법밖에 알려줄 수 없는 무능한 선배의 어줍잖은 조언이었다.


한윤형 서울대 인문 01 (대학내일 410호)

Jocelyn

2008.03.03 09:03:06
*.246.187.134

끼욧.
제가 지난 달에 '입학을 압둔 후배들에게' 라는 제목으로 출신 고등학교 편집부에 보낸 글과 요점이 꽤 일치하네요. 저 역시 '이런 얘기 밖에 못 해줘 미안하다'는 감상을 달았는데. 요새 등록금을 보면 제가 이미 대졸이라는 게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능.. ㅠ_ㅠ

Azure

2008.03.03 11:07:49
*.5.156.216

아아아아아아 등록금-_-

누룽

2008.03.03 23:49:27
*.157.204.82

저 새내긴데...흑흑..열심히 견뎌볼게요

또르

2008.03.05 01:39:29
*.254.25.107

퍼갑니다~ 저희과 동생들에게 들여주고 싶은 이야기네요~
아직 어리기만한 20살?에게는 내용이 어둡다고 느낄수도 있겠지만
다큰 20살들 에게는 모르는게 약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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