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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이준석

김웅과 이준석

2021년 5월 29일 by 이상한 모자

김웅은 컷오프 된다고 봤다. 당내에서 이준석 김웅은 한세트로 봤다. 김은혜는 결이 또 다르다. 밖에서는 셋을 묶지만 안에서는 아니다.

여튼 변화를 향한 열망 어쩌구 하는 남들 다 하는 얘긴 굳이 안 한다. 예비경선 숫자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이준석 대표는 탄생할 것이다. 언론은 나경원 주호영 등의 단일화를 말하는데 그냥은 쉽지 않다. 그 판을 만들 압력을 동원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어려울 것이다.

후보 간 단일화가 안 돼도 예비경선의 숫자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변화를 향한 어쩌구 그거는 상수니까 넘어가고… 구심이 사라진 계파지만 과거의 네트워크나 각자의 영향력은 남아있다. 나경원 주호영 이런 사람들은 보스가 아니다. 후보단일화가 안돼도 각 소그룹별 지지 흐름은 이준석 견제를 위한 전략적 판단 등을 근거로 변화할 수 있다. 그래서 박빙 싸움이 아닐까 한다.

물어야 할 건 이준석이 보수의 변화 맞냐는 거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태도인데, 태도는 기성세대와 다른 면이 분명 있다. 그러나 이념을 봐야 한다. 한국 보수정치는 국가주의-안보시장주의 보수와 시장원리주의 보수의 결합인데 지금까지 이준석의 주장을 종합하면 후자이다. 할당제 없애고 컴퓨터능력활용 등 공천 자격시험보고… 엑기스를 뽑아서 보면 무한경쟁 각자도생 승자독식의 세계관이다. 이건 지금까지 없었던 보수가 아니다.

유승민부터 김종인까지, 그동안 보수의 변화를 추동하리라 여겼던 사람들은 대개 사람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뭐 이런 축에 들어간다. 유승민은 할당제 폐지 반대다. 김종인이 언급한 데이비드 캐머런은 보수를 중도화 했는데, 그 수단 중 하나는 정치 활동 내내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정치 참여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하는 거였다.

놀랍게도 김웅이 이 동네에선 그나마 이쪽에 가깝다. 만약에 이준석 김웅이 둘 다 본선 진출해서 단일화 해야 되는 국면이 왔으면 매끄럽게 안 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의견을 서로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유승민계니 뭐니 하는데, 그런 흐름이 이 둘을 지지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통제할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특히 이준석에 대해선 불안할 것이다. 그래서 단일화 국면은 오히려 잡음이 나오는 그림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차라리 될 사람 몰아주는 걸로 끝내자고 봤을 수 있다. 컷오프란 형식을 통해 둘이 강제로 조용한 단일화?된 배경 중 하나가 이거라고 본다.

여튼 이준석 대표의 탄생은 보수정치의 역사로 보면 또 하나의 과거 회귀일 뿐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걸 변화라고 하는가? 문제의 본질이 거기에 있다. ‘변화’란 개념은 현재 상태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 상태는 ‘내가 몰락하는 세상’이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나’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기대가 충족된다면 ‘나’는 오늘은 따뜻한 보수를 내일은 할당제 폐지를 주장하고 용인할 수 있다. 그리하여 <<<어떤 면에서는>>> 촛불정신과 이준석에 대한 기대가 뫼비우스띠의 앞뒷면으로 연결돼있는 거다. 그래서 이 정치에선 앞과 뒤가 교차하는 뫼비우스적 운동의 경로를 따라가는 일을 ‘변화’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김웅, 이준석

진보와 보수가 하나인 세상

2021년 5월 25일 by 이상한 모자

어제 어떤 분과 대화를 했다. 그 분이 그랬다. 앞으로 한국 정치는 이준석류의 능력주의가 주류가 될 것이다. 내가 말했다. 박권일 선생을 비롯해 우리 입진보들이 계속 주장해오던 바가 그거 아니냐! 물론 상대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을 것이므로 그에게 항변할 것은 아니었다. 항변의 대상은 국정농단 이후 무슨 진보의 세상이 온듯 떠들어댔던 사람들이다. 2018년 지방선거가 정초선거였다느니… 여론조사를 해보면 ‘내가 진보’라는 답변이 더 많이 나온다느니…

위 주장이 가능하려면 다음의 등식이 성립해야 한다. 1)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보’는 정파가 아닌 가치 지향이다 2) ‘진보주의자’는 반드시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투표한다 … 둘 다 아니라는 걸 보여준 게 지난 재보선이다. 샤이 진보?

트로츠키가 벌써 얘기했다. 계급과 정파를 혼동하면 안 된다. 가령 노동자 정당이 집권한다는 게 노동계급이 국가를 장악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민전선은 계급연합조차 아니다. 여기서 하나 더할 것은 현대의 대의민주주의는 자신의 지향이 아니라 무엇에 반대하는가를 기준으로 정파가 조직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보’란 답변은 ‘보수세력이 싫다’는 것이며 ‘나는 보수’란 답변은 ‘진보세력이 싫다’는 거다. 중도는? 이짝도 저짝도 싫다는 거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걸 혼동하니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물론 이준석류가 주류가 될 것인가, 그것의 양상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하바드 졸업생, 코인-투자자, 이대남 전문가… 이런 것들을 그저 인정하고 끝내는 사회가 아니다. 누구라도 다른 누군가보다 나은 출발선에 섰을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박근혜 키드, 유승민 인턴… 이런 것들이 또다른 ‘반대’의 구실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스트-이준석을 메꾸는 자가 능력주의적 기준에서 더 완벽한 기준을 충족시키리라는 보장은 없다. 왜냐하면 원래 능력주의에서의 능력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박권일 선생은 그놈의 페이스북에다가 최후의 능력주의자는 반능력주의자이다 뭐 그런 얘기를 쓴 일이 있는데, 사석에서 그거 선생님 말씀입니까 하니 그렇다고 답을 했다. 박선생님 말씀과는 좀 결이 다를 수 있겠지만 가령 이건 어떠냐? 경기고 서울대법대 대법관 국무총리 출신 이회창과 아무런 엘리트 코스의 배경없이 대통령 자리에 오른 노무현 중 더 능력있는 사람은 누구냐?

이 답이 어렵기 때문에 대다수 인민들에게 있어 능력주의란 자기 이익을 보장하는 하나의 구실로서만 작용하는 것이다. 이게 상대 정파에 대반 반대와 결합한 게 정치에서의 능력주의다. 아무도 정치적 가치에 관심이 없음에도 정파가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여론조사상 ‘나는 진보다’와 ‘나는 보수다’는 어떤 차원에서는 사실상 같은 답변인 거다. 마찬가지로 <어떤 차원에서는>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대로서의 극우포퓰리즘, 극우포퓰리즘에 대한 반대로서의 엘리트주의도 같다. 트럼프와 바이든은 같다. 한미정상회담을 보고 느꼈어야 할 게 이거다.

처음 하는 얘기 아니고, 2019년 8월달에 쓴 글을 함 읽어봐라.

http://www.newsmin.co.kr/news/41156/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능력주의, 이준석

830 세대 어쩌구

2020년 4월 25일 by 이상한 모자

솔직히 양심이 있나,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란 생각이다. 지난 주 모 방송에서 830세대(말은 잘 만들어요)를 앞세워 당 혁신을 해야 한다기에, 좋은 말씀인데 공천 과정에서 한 일 보면 믿음이 안 간다… 지역에서 성실히 준비하는 사람 다른 지역구에 꽂더니 그것마저도 뒤집어서 집에 보냈다… 필요할 때만 이용하고 정작 밥그릇 걸리면 쫓아 내면서 무슨 830이냐 했다.

말미에 이준석 최고 얘기가 나왔다. 이준석 최고가 보수의 젊은 세대 중엔 그래도 차세대 리더가 될 것이다… 선거 과정 중에 “준석이”란 단어를 여기저기서 십 수 차례는 들은 것 같다. 정치인 답게 발이 넓으시고… 근데 뭐 얼마나 친하길래 준석이 준석이인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830세대 얘기를 하니 기가 막힌다. 아무튼 내가 그랬다. 이준석 최고도 물론 좋은 말씀 많이 하시고 리더도 되시겠지만 따지고 보면 슬픈 케이스다… 비대위원 할 때 박근혜 후광으로 버틴 측면이 있는 거고 이후에는 자기 목소리 냈지만 해외의 훌륭한 대학을 나왔다든지 하는 배경이 든든하니까 또 가능한 것 아니겠나. 이준석 최고가 앞으로 잘 되겠지만 어떤 전형이나 모델이 되기는 예외적 경우 아닌가…

그랬더니 다들 뭐 아니다 하바드 나온 게 뭐 어떠냐 한 마디씩 하는데 외롭더라. 하바드는 뭐 자기 혼자 잘나서 가는 겁니까 라고 하고 싶었으나 말았다. 최소 정치인 친구 아버지 정도는 둬야 이준석 최고 정도의 성취가 가능한 거 아닌가? 어떤 분이 또 그랬다. 김민석을 보라, 386중에 누구 한 사람이 치고 나가니까 동세대들이 같이 크는 효과도 있지 않은가. 뭐 그 말도 맞다. 김민석이 좀 되니까 그 다음에 젊은피 수혈론도 있었던 거다. 어차피 다 디제이가 한 거지만. 김종인이 디제이 역할을 할까? 뭐 아무튼 이준석 최고한테 기계적으로 대입하면 젊은-엘리트-벤처기업인(이건 좀 애매하지만) 출신들이 치고 올라오는 그림도 생각해볼 수 있다.

투표 다음 날 어느 인터넷 방송에서 어떤 분이 이제 시대가 변했다, 색깔론은 안 먹힌다, 진보적 이슈가 앞으로의 선거를 주도할 수 있다 라고 했는데, 그 말도 맞다고 하면서 젊은 세대의 경우는 보수적 논리가 또 다른 형태로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위선론이다. 진보가 겉으로는 명분 말하면서 뒤에서는 자기 이득이나 챙긴다는 거다. 위선떨면서 자기 사람 챙기는 진보보다는 대놓고 야비한 솔직한 보수를 지지하라. 플러스 젊은 경영인의 능력주의. 보수정치는 죽 쑤지만 더 넓은 의미에서의 포석은 차근차근 갖춰가고 있다. 인구 구성과 지역 여론, 주류 정치 구성의 변화 등을 근거로 재정렬 등 얘기하는 걸 내가 별로 선호하지 않는 이유다. 미국 정치도 마찬가지였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386세대, 830세대, 김민석, 이준석, 재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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