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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뉴라이트

남더러 정치적이라며 지가 제일 정치적인 뉴라이트

2024년 8월 26일 by 이상한 모자

난 솔직히 건국 얘기 이런 거 아주 피곤해 하는 사람이다. 그 논쟁이라는 것도 할만큼 했고, 왜 이걸 갖고 처싸우는지 역사적으로 보면 솔직히 이해 안 가고. 어느 방송 가가지고 내가 얘기했다. 임정법통론을 부정한 거는 우리 좌파들이라고요! 그러니까 김건우 교수라는 분은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이란 책을 써서, 어이 여러분 대한민국의 설계자는 어쨌든 우익이고 김구 계열이고 이승만 계열이고 같은 우익인데 왜 싸우는 거요 이렇게 한 바도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썼는데 방문진 이사 임명 집행정지 신청 인용된 거 속보 나와서 현웃 터졌네. 염병…. 야 너네 도대체 뭐하는 거냐 이게…. 이따위로 해놓고 어떻게 ‘우리 보수가 방송장악을 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민주당이 자기들이 장악한 MBC를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는 주장을 막 할 수가 있냐…. 괴담 타령이랑 똑같은 것.

뭐 하여간. 그런 점에서 건국은 어느 시점부터 어느 시점까지의 ing, 이런 거는 역사학적으로만 보자면 거의 모범답안 같은 거라고 볼 수 있지. 문제는 이게 여의도 정치로 와서 염병을 떠는 얘기가 되는 이 배후의 의도가 문제라고. 이게 들어가는 순간 이거는 더 이상 실제 건국을 언제로 봐야 되는지의 문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져요.

가령 사람들이 그냥 쿨하게 그러지? 아휴! 언제까지 또 반일 대 반북 프레임…. 너무 지겹다! 근데 이게 어디서 왜 시작됐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해방 직후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반일, 6.25 직후에는 반일반북 했다고. 당연한 거 아냐? 바로 직전까지 일본한테 지배를 당했거나 북한하고 전쟁을 했다고 해봐. 누가 친일 or 친북을 하냐. 다만 빼도 박도 못하는 경우에는 다른 거지.

특히 해방 이후의 학병세대, 그러니까 일제 때는 학생이다 해방 이후 사회 진출을 한 세대의 입장에서 친일 청산 요구는 당연한 거였다고. 그때는 구체제의 모든 모순(단순히 일제에 대한 것뿐만이 아닌, 모든 모순!)을 친일청산에다가 담아서… 친일청산=근대화=서구식 개혁=친미라는 득식을 세울 정도였다. ‘일본을 반대하는’ 관념인 거지. 이런 점에서 보면 이승만이 반일을 부르짖은 것은 매우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보수라는 사람들은 “이승만이 친일파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얼마나 반일하셨는데!”라고 막 그러는데, 이것도 괴담 같은 얘기인게, 이승만의 문제는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데에 있는 거다. 이건 후대에 갑자기 나온 평가가 아니라, 당대의 평가가 그랬다. 앞서 얘기했지? 그때는 친일청산에다가 구체제 청산을 모든 것을 담았다고…. 그러나 이승만은 학병세대 이전 엘리트와 결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친일청산을 할 수 없었던 거고, 학병세대는 거기에 절망했던 거다. 즉, 이승만의 친일청산 미흡은 오늘날의 반일 선동이 아니고 ‘당대의 평가’였다는 것.

친일반북 대 반일친북의 구도가 불명확했던 건 박정희 초반에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박정희는 집권 초기 K-민족주의를 스스로 형성하려고 했다. 당시 민족주의 열풍에 올라타 이를 활용하면서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생각이었을 거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친북(정확히는 친일친북)이라는 공격을 상대 후보로부터 자초하기도 했다. 그짓말 같냐? 아래 기사를 봐라. 1963년도에 윤보선은 박정희를 공산주의자로 몰았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606281445001

재미있는 것은 1967년 박정희는 윤보선을 또 친일파로 몰았다는 것이다…. 하여간, 이런 걸 보면 이 때만 해도 대한민국 주류 정치가 지금과 같은 친일반북 대 반일친북의 구도는 전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이 장준하인데, 장준하는 김구계열로 시작했지만 초장부터 대단한 반공주의자로 오히려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진 바도 있는 인물이다. 앞서 예로 든 ‘친일청산=근대화=서구식 개혁=친미’란 등식에 정확히 걸맞는 태도와 행보로 일관했다. 반일과 서구식 민주주의 도입을 달성하였는데도 기대한 바가 이뤄지지 않은 영향인지 5.16 직후에는 쿠데타를 긍정하기도 했다.

반일반북이라는 당시로서는 상식적인 장준하의 스탠스가 드라마틱하게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63년 한일회담, 1965년 한일수교다. 달성한줄 알았던 ‘반일’의 목표가 다시 목전에 등장한 것이다. 이후 박정희의 통치가 ‘독재-친일-반북’으로 완전히 굳어지면서 장준하는 그 반대편인 ‘민주화-반일-친북’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 결과가 우리가 아는 두루마기 입은 장준하로, “모든 통일은 좋은가? 그렇다”라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글이 이 맥락에서 나오게 된 거다.

친일반북대 반일친북의 구도는 이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반대하면서 자기 정당화를 거듭해 온 결과이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에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현실 정치에서의 포지셔닝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이제 뉴라이트 문제로 넘어오면, 뉴라이트는 기성의 역사학계가 ‘반일’이라는 정치적 지향에 부적절하게 물들어 있어(즉,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있어) 자신들의 주장이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늘 조선일보에 실린 안병직씨의 인터뷰 발언만 봐도 이들의 이론적 시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그 배경이 분명해 보인다.

-뉴라이트가 이승만, 박정희를 우상화한다고도 한다.

“북한의 실태에 눈뜬 뉴라이트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확립 즉, 1948년 대한민국 건국과 1960년대 이후 경제 발전이 한국의 자립과 발전을 이끈다는 것을 논증하는 데 목표를 두게 된다. 한미 동맹의 주역인 이승만과 고도성장을 이끈 박정희를 연구하고 재평가하는 건 당연하다.”

-선생은 ‘친미와 친일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힘’이라는 말도 했다.

“소위 진보라는 사람들이 저개발국의 경제 발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개탄스러워 해본 은유다. 우리의 근대는 자생적으로 발전해 온 게 아니다. 근대화 세력은 최소한 친일적이거나 친미적이었다. 우리 몸을 다 도려내기 전에는 친일·친미적 요소를 없앨 수 없다.”

(…)

-안병직의 ‘식민지 근대화론’ 역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다고 비판받는다.

“일제시대에 관한 연구는 일제의 정당성 여부를 논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일제시대에 사회경제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일본은 ‘조선의 일본화’ 정책을 실시하려 했기 때문에 근대적 제도와 기술을 도입하고 투자해 조선을 근대화했다. 식민지 체제가 붕괴하자 독립된 한국 사회를 건설할 기반이 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와 식민지 사회 간에는 강력한 연속성이 있다. 단절성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

-나치 청산을 한 프랑스처럼 우리도 친일파 처리를 단호히 했다면?

“해방 직후 독립운동 세력이 민족 반역자로 단죄한 사람은 수백 명에 불과했다. 독립운동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제 와서 무슨 권리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친일파로 몰 권리가 있나. 그리고 일제시대에 성장한 지식층을 전부 친일파로 단죄한다면, 해방 이후 누가 국가 경영을 맡을 수 있었겠나. 친일파를 청산했다는 북한은 현재 어떻게 돼 있나.”

https://www.chosun.com/opinion/2024/08/26/CVJUDQJ2E5EFBFBZUTZD4ISFLY/

그러니까 1948년 건국으로 NEW START 했으므로 단독정부 수립은 당연하고, 따라서 북한과 한민족이라는 이유로 친북적 정책을 펴야 할 이유가 없으며, 그러한 사상 기반 위를 걸어 온 보수정치는 정당하다는 것. 또 하나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볼 때 일제를 그렇게 미워할 이유는 크지 않고 친일 청산을 열심히 해야 할 이유도 없었으며(이승만) 한일수교와 대일청구권자금을 통한 중공업 발전(박정희)도 전적으로 정당하다는 것.

1948년 건국을 이 주장을 하면서 얘기를 하니까, 역사적으로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던(실제 뉴라이트 등장 이전 시기 ‘건국’과 ‘정부수립’은 맥락에 맞춰 대충 혼용됨) 건국연도가 중요해진 거다. 그래서 반북친일로 시작한 뉴라이트에 대항해 반-뉴라이트가 1919년 건국론으로 결집한 거고, 뉴라이트는 크게 혼이 한 번 났다가 이번에 윤손뇨루 다이토료오를 만나 반-뉴라이트에 대항한 반-반-뉴라이트, 그러니까 뉴뉴라이트로 전선을 가다듬은 그러한 상황이라는 것.

더불어, 아래는 보훈부로부터 용역 특혜를 받았다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에 관한 기사.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211925

올해 4월에 이미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에 관한 연구를 수의계약으로 따냈다는 건데, 이종찬 광복회장은 독립기념관장 낙하산 음모가 이미 2월부터 가동 중이었던 것 같다고 의심한 바 있다. 아래는 8월 7일 MBC라디오 인터뷰 내용.

◎ 진행자 > 근데 독립기념관장도 있지만 이사들 있잖아요. 이사들. 독립기념관에. 근데 지난 2월에 신임 이사로 임명된 사람이 누구냐 하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했던 박이택 낙성대경제연구소장이다.

◎ 이종찬 > 제가 생각해보니까 이번에 독립기념관 이 인사 파동이 언제부터 계획됐느냐하면 바로 그 이사 선임부터 계획된 거 같습니다.

◎ 진행자 > 2월부터.

◎ 이종찬 > 그러니까 이사 선임을 하는데 위원들이 있었어요. 선임 위원들이. 선임 위원들이 전원이 반대를 했어요.

◎ 진행자 > 근데 어떻게 돼요? 이사가.

◎ 이종찬 > 보훈부 장관이 그냥 강행해버린 거예요.

◎ 진행자 > 국가보훈부 장관이.

◎ 이종찬 > 내 얘기는 이번에 이러한 인사 제도가 소위 말하자면 공공위원회를 만들어서 한다는 거 이 자체를 깨뜨려버린 거예요. 저는 이것이 독립기념관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모든 인사 관례를 자의적인 것으로 다 깨버리면 제도라는 것이 무력화되는 거죠.

◎ 진행자 > 그렇죠. 그렇죠.

◎ 이종찬 > 그래서 저는 이번에 제가 얘기하는 거는 비단 독립기념관 관장 이것이 잘못돼서 제가 서명을 거부했지만,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말하자면 공공기관장 인사하는 모든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제가 싸워야 되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 그러면 도대체 독립기념관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냐 우려가 되는 건데 회장님이 엊그제 기자회견에서 어떤 말씀을 하셨냐면 사전 각본에 의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말씀하셨어요. 그게 조금 전에 하셨던 말씀하고 맥이 같은 것 같은데 그게 2월부터 계획됐던 것 같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럼 목표가 뭐라는 거예요?

◎ 이종찬 > 제가 말이죠. 위원장이 김진과는 관계가 있으니까 기피하라고 그래요. 점수도 매기지 말고 묻지도 말라 이래요.

◎ 진행자 > 회피해라.

◎ 이종찬 > 예. 그리고 두 번째는 뭐라고 그러냐면 김국주 장군의 아들도, 김국주 장군이라는 분이 전임 광복회장 하신 분이에요. 관계가 있으니까 그것도 기피해라 이래요.그래서 제가 그건 좀 이상하다. 왜냐 전임 광복회장은 제가 잘 알지만 그 아들은 내가 잘 모른다. 여기 와서 처음 보는데 왜 이것까지 내가 기피해야 되느냐 그러니까 그냥 하라고 그러면서 그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 사람하고 지금 말하자면 1, 2등을 한 사람들하고 깊은 관계가 있어요. 이 사람이 연구소의 연구소장이고 그 사람이 연구소의 이사장이에요. 그리고 둘째 번 하는 사람하고 공동 책도 다 썼고, 이렇게 죽이 맞아서 있는 사람은 기피를 안 하고 나같이 그냥 같은 독립운동 했던 그런 전력에 있는 분으로 아는 사람 정도를 다 기피하라고 그러면 불공정한 거 아니에요.

◎ 진행자 > 말이 안 되는 게 대한광복회에서 같이 활동하면 서로 아는 사이가 되는 거잖아요. 그 다음에 대한광복회는 당연히 독립기념관장이나 이사 선임에 대해 얼마든지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잖아요. 근데 아는 사이니까 광복회 활동을 같이 했으니까 빠져라. 그러면 광복회 발언하지 말라는 얘기밖에 안 되죠.

◎ 이종찬 > 제가 여기서 더 설명할게요. 얼마나 교묘한지 아세요. 다섯 사람입니다. 근데 자기네들은 윷 혹은 모예요. 그리고 이 사람들 두 사람은 도 아니면 개를 줬어요. 아주 낙제점을. 그리고 중간에 걸을 하나 딱 앉혀놨는데 혹시나 도 개 두 사람이 걸 위치에 들어가면 세 사람 중에 하나가 될까봐 아주 제가 생각하는데 제일 말하자면 표현이 아주 잘못한 사람을 딱 중간에다가 쐐기를 박아놨어요. 그러면서 자기네들 세 사람을 만드는 거는 두 사람 이외에 초이스가 없다.

◎ 진행자 > 회장님이 보시기에 아까 사전각본 말씀하셨잖아요.

◎ 이종찬 > 이게 사전각본이에요.

◎ 진행자 > 그럼 이걸 주도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라고 보세요?

◎ 이종찬 > 저는 요새요. 조금 불안한 생각을 합니다.

◎ 진행자 > 어떻게요.

◎ 이종찬 > 왜 그러느냐 하면 한국학중앙연구원도 그렇고 뭐도 그렇고 인사가 이런 식으로 가는 건 용산 어느 곳에 이런 밀정과 같은, 일제 때 밀정과 같은 존재의 그림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 진행자 > 용산에.

◎ 이종찬 > 네,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왜냐 뉴라이트라는 것은 현대판 밀정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독립운동선상에서요. 일본군에게 받은 피해보다 이 밀정에 의해서 받은 피해가 더 많습니다. 우리 가족이 그렇습니다. 우리 가족이. 우리 할아버지가 대련에 도착하자마자 붙잡힌 이유가 뭐냐 이건 밀정에 의한 공작입니다. 우리 숙부도 밀정에 의해서 매수된 분도 있고.

◎ 진행자 > 그러면 회장님, 윤석열 대통령 잘 아시잖아요. 윤석열 대통령한테 지금 대통령 주변에 밀정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진지하게 말씀  하시지 그러셨어요.

◎ 이종찬 > 지금은 그렇게 함부로 얘기할 수가 없잖아요. 국가 원수에게 어떤 근거도 없이, 제 지금 느낌은 이건 어떤 체계가 있어서 밀정과 같은 움직임이 있어서 일본을 더 미화하는 이런 장난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사실은 그런 불안한 감을 갖고 있습니다.

◎ 진행자 > 그 문제 좀 이따 따로 여쭤볼 게 있고요. 이 문제 마무리했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그래서 국가보훈부나 용산에 이건 안 된다 혹시 의견 전달하셨어요?

◎ 이종찬 > 물론 했죠.

◎ 진행자 > 뭐라고 하던가요?

◎ 이종찬 > 저는 얘기를 했습니다. 장관에게, 이거는 미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내가 여기에 희생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끝까지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물론 보훈부는 정부고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고소라도 하겠다. 법에 호소를 하겠다. 가처분신청 냈습니다. 그리고 저도 지금 하나씩 변호사하고 의논하고 있습니다. 이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입니다. 위계, 이 문제는 제가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요.

http://imbbs.imbc.com/view.mbc?list_id=7244724&bid=focus03

전에 제가 올린 글하고 퍼즐을 맞춰서, 한 번 상상을 해보시라.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김형석, 뉴라이트, 박정희, 안병직, 윤보선, 이승만, 장준하

윤석열 시대 뉴뉴라이트의 전략

2024년 8월 17일 by 이상한 모자

KBS는 나비부인을 왜 틀었을까? 욕처먹고 싶어서? ‘꼭 광복절 0시에 기미가요랑 기모노 나오는 걸 틀어야짘ㅋㅋㅋ’ 이런 마음을 먹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고 본다. 그렇게 하려면 더 고약한 걸 틀었어야 한다. 나비부인은 오리엔탈리즘이다. 나는 KBS가 ‘튼 것’보다 ‘틀지 않은 것’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는 쪽이다.

방송을 트는 놈이라면 무슨 날에 뭘 틀 것인지는 기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데일리로 돌아가는 방송이라는 일의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광복절날 뭘 틀 것인지는 거의 한 달 전부터 생각을 해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면, 광복절날 공연을 튼다고 하면 뭘 틀어야 되나? 독립운동 나오고 민족대표 33인 막 비분강개 이런 거 나오고… 이런 걸로 가야지 무조건. 뮤지컬 안중근… 이런 것도 있잖아? 보통 이런 식으로 가야 되거든. 제 생각에는 이런 게 이번에는 다 하면 틀면 안 되는 거 아니었나 하는 것임. 네거티브 리스트 아니었냐는 거지.

지난 번에 세월호 참사 관련 방송도 총선 이후에 한다는데도 정치적으로 편향됐네 어쩌네 하면서 못 틀게 해버렸잖아. 최근에 기자가 노트북에다가 노란 리본 스티커 붙이고 나왔다고 모자이크 처리 해버렸잖아. 이런 녀석들이라고 하면, 그냥 일반적인 광복절 콘텐츠 같은 것도 “내년이 한일 수교 60주년인데 꼭 반일 분위기 조성해야 되겠어?” 이럴 수 있다고. 특히 윗선의 지침이 있다면? 윗선이 “광복절날은 나비부인 틀어주세요” 이렇게 디테일하게 나오진 않았을 거 아냐. 가령 지난 번에 배구 중계 유튜브에다가 올려 놓은 것을 생각해보자고. 세상물정에 어두운 부장님이 ‘일본팀을 친근하게 느끼게 해야 한다..!’라고 생각한 티가 나지 않나? 적어도 ‘반일은 안됨’이란 지침이 있고, 이게 현장에서 이것도 문제 되고 저것도 문제 되고 이것도 그렇고 저것도 그렇고… 이런 방식으로 적용됐다고 하면 이런 꼴이 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

이 얘기를 왜 하느냐. 그런 KBS가 이상하게 광복절날 고하 송진우 선생 다큐멘타리는 틀어버린 것임. 나비부인 틀다가 송진우 다큐는 왜 틉니까? 거기서 끝났으면 몰라. 광복절 다음날 16일에, KBS에 사사건건이라고 낮에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나도 옛날에는 종종 갔는데, 여기서 또 송진우 선생 얘기를 해. 근데 나와서 송진우 얘기하는 분이 전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교수… 진행자가 역시나 김구가 암살 배후인가요 막 묻는다. 아래의 내용.

◎송영석 : 지금 말씀하신 그 논쟁이 이제 뜨거운 그 상황에서 반탁론자들에게 이제 송진우 선생이 암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잖아요. 그런데 이제 앞서 이종찬 회장이 한 얘기 중에 김구 선생을 고하 송진우를 암살한 테러리스트로 전락시키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대목이 나와요. 이런 얘기를 왜 한 걸까요?

▼김명구 : 그 이 경교장에서 그 논란이 있었는데 굉장한 논쟁이 있었죠. 그랬을 때 김구를 비롯한 임종의 요인들이 고하 송진우를 당신은 그 찬탁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해서 그렇게 주장을 해요. 그러고 나서 그 다음 날 그리고 나서 돌아갔는데 그다음 날 새벽에 암살 당했거든요. 그 암살 당했을 때 그 이게 김구 쪽에서 죽인 거다 뭐 이런 소문이 퍼졌어요. 시카고 대학에 있는 그 뭐 하여간 뭐 그런 제가 여기까지 브루스 커밍스. 브루스 커밍스도 그렇게 얘기를 했고 그랬는데 그 역사가들은요. 알려진 확실한 근거가 없으면 그렇다라고 얘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송영석 : 이종찬 회장의 일단 주장이니까요. 일단 현재로서는.

▼김명구 : 그는 그거는 이종찬 회장이 그러한 소문들이 있어 과거에 있었는데 그래서 그 기자들이 김구 주석에게 물어보죠. 그 김구 주석에게 왜 죽였냐라고 하니까 내가 정치자금을 송진우로부터 받는데 왜 내가 죽이겠냐라고 해서 그래서 죽이지 않았다고 얘기를 하거든요. 그러니까 확실히 하지 않은 걸 가지고 자꾸 이러쿵저러쿵 세간의 그런 것들을 이종찬 회장이 끌어오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36954

저 교수님 같은 경우엔 아마 독실한 기독교인 같고 문재인 때는 ‘기독교에서 정교분리가 꼭 원칙은 아니다, 나라를 구할 때는 나서야 한다’란 취지로 주장한 바도 있는데, 하여간 KBS만 이러는 게 아니고 중앙일보도 ‘암살 배후는 김구’ 냄새를 풍기며… ‘송진우(+이승만)는 자유민주주의, 나머지는 반지성주의…’ 이런 뉘앙스의 연재를 하더란 말이다.

경교장의 모임에는 송진우도 참석했다. 누구도 반탁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는 격앙돼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직 송진우만이 이렇게 말했다.

“원론적으로 탁치를 반대하지만, 아직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문을 읽어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와 같은 흥분된 방법으로 회의를 이끌어가는 것은 미국과 군정을 적으로 몰 수 있으므로 좀 더 냉정하게 사태를 논의합시다.”

그러나 그의 그런 의견은 분노의 고성이 오가는 분위기에서 아무런 호소력이 없었다. 이튿날이 되자 서울의 정가에서는 송진우가 탁치에 찬성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치적 노선으로 볼 때 온건 중도 노선의 지도자들에게는 설 땅이 없고 오히려 광야에 홀로 선 사람처럼 외롭게 소신을 지탱하던 그는 끝내 탁치 발표 사흘 만인 12월 30일에 사살됐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난마와 같은 해방정국에서 “신탁통치 문제를 가슴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냉정과 이성으로 지혜롭게 고민하자”고 주장하던 송진우나 장덕수나 여운형은 좌우의 십자포화로 말미암아 희생됐다. 그 시대의 정서는 이성이나 우국적 고민보다는 성급하고 충동적이었으며 광기와 무지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땅에 중도 온건파가 설 자리가 없었다는 점이 그 뒤의 비극, 곧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졌다. 어느 시대의 역사를 보더라도 온건 중도파가 박해받는 사회의 말로는 비극적이었다. 그를 죽인 자객들의 논리에 따르면 “반탁의 반대는 찬탁”이라는 것이라지만, 그 논리는 맞지 않는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1176

물론 송진우든 누구든 친일 이력이 분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자는 것 자체를 한국 사회가 뭐라고 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그냥 재조명 하면 토달 사람 없다. 그렇다는 사실이 보수정치의 새로운 마일드한 전략이 되고 있다. 역사전쟁에서 중도를 점하고 자기네 편의 극단은 감추며 상대를 극단으로 모는 것임. 이게 왕년에 ‘반대의 정치’의 맥락에서 뉴라이트 논리를 학습한 사람들이 “나는 뉴라이트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이유이며, 김진태 씨가 다른 건 다 얘기했어도 “건국절 얘기는 안 했다”라고 하는 이유다. 그 맥락이 보이는 또 하나의 단서가 오늘 조선일보의 아래 칼럼.

“헌법 전문에 ‘우리 대한민국은 기미년 3·1혁명에 궐기하여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세계에 선포하였으므로 그 위대한 독립 정신을 계승하여 자주독립의 조국을 ‘재건(再建)’하기로 함’을 넣었으면 합니다. 우리 앞길이 무엇인지 그리고 3·1혁명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헌법 맨 꼭대기에 이 문구를 넣어야 합니다.”

이 발언 가운데 ‘3·1혁명’이 ‘3·1운동’으로 바뀌어 이승만의 간절한 바람대로 여러 차례 헌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헌법 맨 꼭대기를 지키고 있다. 이승만의 발언 어느 틈새에 왜색풍(倭色風)의 건국절(建國節) 발상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겠는가. 정말 그런 세력이 있다면 헛꿈을 깨야 하고, 있지도 않은 헛것을 보고 소스라쳤다면 찬물에 얼굴을 담글 일이다.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4/08/17/TB2OGPREVRCX3PWCGAWHQO7RMA/

이 칼럼의 다음 대목은 이렇다.

독립운동사에서 이승만과 김구는 서로 상대방에게 없는 것을 갖췄던 거인(巨人)이다. 이승만은 세계 정세를 굽어보는 통찰력으로 독립운동과 독립 후 대한민국을 번영의 길로 선도(先導)했다. 김구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궂은일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고 독립 정신의 촛불을 꺼뜨리지 않고 지켜냈다. 양쪽 모두 결점도 있는 인간이었다. 장점을 합하면 나라의 보물이다. 반대로 결점을 부풀리면 북한 동포를 노예로 부리는 김일성 일족(一族)에게 이득이 될 뿐이다.

즉, ‘니덜이 자꾸 이승만 흠 잡는데 우리도 할 말 있어!’ 이런 얘기 아니겠나. ‘우리도 할 말 있어’의 근거로 송진우 띄우기가 이뤄지고 있는 거고. ‘원래 송진우-이승만은 한 식구였어!’ 이렇게 우기면서. 그걸 광복회장 입장에서 봐봐. 뭐할라고 독립운동가 후손들끼리 쌈 붙이냐고. 그걸 두고볼 수가 없는 것 아녀? 뭐 윤통은 은사님 할아버님 명예 회복 하자는데 뭔 이렇게 태클이 많냐 사이비 지식인들아 이런 생각만 하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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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뉴라이트 아니라 뉴뉴라이트 뉴뉴

2024년 8월 12일 by 이상한 모자

지난주부터 이 얘기를 하는데, 사람들이 잘 못 알아먹는다.

뉴라이트라고 하면 보통 2개를 얘기한다. 첫째, 건국절. 둘째, 식민지근대화론. 2개를 끌고 이승만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주장하고 싶은 바는 이렇다. 첫째, 1948년에 없던 나라가 생겼다. 없던 나라가 생겼다는 거는, 다시 말하자면 이전에 나라가 없어진 게 맞다는 거고, 그건 한일합병이 합법이며 곧 식민지배도 합법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반대편의 지적이다. 둘째, 따라서 일제가 지배했을 당시의 친일은 일본인이 그저 살아간 것 뿐이고, 잘 찾아보면 식민 지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자, 그러므로…. 이승만이 남한단독정부를 수립한 것은 정당하며(존재하던 나라의 일부에 대해서만 따로 정부 수립을 한 게 아니라, 아예 나라가 없어진 가운데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이므로), 친일 청산에 열심이지 않은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반북-친일에 근거한 보수의 정체성과 보수 정부의 대북/대일정책은 전적으로 정당하며 이승만은 국부이다. 이게 뉴라이트의 일반적 논리다.

근데 윤통은 후보 시절에 건국절과 식근론 두 가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이 없었다. 특히 건국절에 대해선 뉴라이트와 코드를 안 맞췄다. 이런 기조는 정권 초반에 계속 이어졌다. 이종찬 씨 같은 사람들이 윤석열 지지를 표명하고 감투를 쓸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근데 요새 왜 그러는 거냐? 윤통이 뉴라이트를 뉴뉴라이트로 진화시킨 거다. 뉴뉴…

앞서 봤듯 뉴라이트는 이승만을 통해서 친일로 간다. 특히 통치 논리로서의 뉴라이트는 바로 한미일 동맹 등의 친일 노선으로 가기에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으니 일단 그 기초를 놓는다는 차원에서 건국이라든가 이승만이라든가 이런 이슈에 집착을 한다. 이게 이명박근혜 시대의 건국절 논란이다. 그런데 윤통은 그런 징검다리 없이도 바로 친일로 질러 간다. 놀라울 정도다. 일본 게임하고 일본 음악 듣고 일본 만화보고 여행도 일본으로만 가는 나조차도 놀란다. 역대 이런 정권이 없었다. 역대 정권이 모두 머리를 싸매 온 한일 간 난제를 마구 다 해결해버려…. 다 해결할 수밖에 없겠지. 그것들이 난제인 이유는 양쪽 이해관계가 조정이 안 돼서 그런 건데, 갑자기 한쪽이 이익을 다 포기하자 하면 문제가 해결이 안 될 리가 있나. 보통은 이거 부담되어서 못하는데, 놀라울 정도야. 놀~ 라~ 워~ 오죽하면 일본 포함 외국 언론들이 윤석열 아니면 못했을 일이라고 하는가.

이러니까 뉴라이트도 깜짝 놀라는 거야. 아니!? 이런 방법이?! 그냥 쌩까고 막 가면 되는 거였구나. 윤통의 무지막지한 친일행각에 대해선 같은 보수끼리도 국익수호의 관점에선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그럴텐데, 그런 외로운 와중에 그나마 윤통더러 잘했다고 하는 건 뉴라이트 밖에 없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윤통이 얼마나 기쁘겠냐. 뉴라이트 인사들이 막 요직에 가. 그러니까 이종찬 씨가 보기엔, 그들이 ‘밀정’인 거다.

이 와중에 뉴라이트들도 윤통하고 주파수를 맞춰야 될 거 아니야? 괜히 건국절 얘기하고 이러면 될 일도 안 될 수 있잖아. 그러니까 이제 뉴뉴라이트가 되는 거라고.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뉴라이트를 부정하는 거야. 지난 번에 이진숙 씨가 나는 뉴라이트가 아닙니다! 그랬지? 그게 다 이런 이유이다. 지금 논란이 되는 김형석 씨가 문화일보랑 인터뷰를 했거든? 이렇게 말을 한다고.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정부 출범으로‘건국 60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후 건국절 제정을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역사학계는 이영훈 교수의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과 함께 건국절을 둘러싼 싸움이 본격화했다. 결국 광복회가 중심이 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소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이로 인해‘건국절 제정’시도는 사회적인 혼란만 야기한 채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4081101039910114003

아무튼, 이 뉴뉴라이트들이 이제와선 ‘난 뉴라이트 아니다’, ‘난 건국절에도 동의 안 한다’라고 하기 시작하니 뭐 어떡하냐. 대장한테 물어야지. 그래서 절친의 아버지인 이종찬 씨가 뉴뉴라이트 창시자한테 지금 그러는 것임. 석열아! 너 진짜 뉴라이트가 아니냐? 정말 뉴라이트가 아니면 네가 먼저 말해봐! 건국절 개새끼! 해봐! … 이게 뭡니까 도대체… 뉴뉴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김형석, 뉴라이트,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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