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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냉소주의

이딴 걸 정치라고

2023년 1월 15일 by 이상한 모자

웃음만 나온다. 이건 더 이상 정치도 뭐도 아니다. 윤통이 검찰총장 시절에 검찰 조직을 어떻게 관리하고 대했는지가 눈에 선하다. 고발사주? 100%다. 고발사주가 자유민주주의다…

계속 이런 식이면 정권 말 분위기가 어떨지도 대략 예상 가능이다. 윤통과 어떤 방식으로든 대립한 넘들은 그 자신이 어떤 넘들이건 간에 정권 말엔 영웅처럼 떠받들어질 것이다. 그건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그런 분위기를 핑계로 다들 자기 잘못에는 눈을 감고 “거봐 역시 우리가 옳았어!”라고 할 거다. 이미 몇 번이나 겪었던 일이다.

그 결과 어떤 지옥같은 세계가 되었는지를 보쇼. 댓글창이니 SNS니 어디에나 인종주의가 판을 친다. 뭐!? 우리 백의민족에 무슨 인종주의!? 죄송하고요. 국힘 지지자는 어떻고 민주당 지지자는 어떻고 하는 얘기 있잖아. 탄핵 이후에는 탄핵이니까… 대선 때는 선거니까…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이제 정치적 인종주의의 단계에 왔다고 본다.

이 인종주의 게임에 끼기 싫은 사람이 두 부류 있는데 첫째는 그냥 정치 뉴스 다 피곤해서 무관심으로 가는 부류, 둘째는 소수인종이어서 어느 쪽에서나 탄압 당하고 어느 쪽에서나 이용당하며 갈팡질팡…

정말 웃긴건 그 소수인종 안으로 들어가도 또다른 인종주의가 만연해있다는 사실. 또 정치 무관심층도 일상 어딘가에선 다들 비슷한 생활양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

그나마 희망은? 그 인종주의의 세계에서 인종주의자들에 의해서라도 불쑥 불쑥 예외적으로 도착적 선의와 의도치 않은 보편타당한 가치관의 실현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세계는 기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무슨 말이야… 어깨가 아파서 뭐라도 키보드로 조잘거려 볼려고 썼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냉소주의, 인종주의, 정치적 무관심

소울

2021년 4월 23일 by 이상한 모자

유튜브에서 돈을 내고 소울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인터넷의 감상평을 보면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자 뭐 그런 메시지로 해석되는 것 같다.

정치병자의 해석은 당연히 다르다. 극중에 나오는 어린 영혼은 이미 자기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고 있으며 그럼에도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는 점에서 냉소주의적 대중의 속성을 갖고 있다. 누가 무엇을 말해도 이미 아는 얘기라며 부정한다.

이 영혼을 각성으로 이끄는 것은 특별한 멘토나 어떤 교육 기술이 아닌, 삶의 경험 그 자체이다. ‘아는 것’과 ‘살아보는 것’은 다른 것이다. 경험이 지식에 우선한다는 얘긴가? 내가 보기엔 그렇다기보다는, 세계의 주인이 된 것과 아닌 것의 차이다. 세계의 주인이 되어야 비로소 정치를 비롯한 세상만사가 ‘내 일’이 된다.

정치가 실패하는 이유… 더 정확히 말해 손바닥 뒤집기식 반대의 정치만이 가능한 이유가 이거다. 그렇기에 대안은 사람들을 세상의 주인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 영화에서 영혼에게 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그저 보통 사람이다. 그 보통 사람이 삶인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노예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우리는 민주주의로 해방된 삶을 통하여 오히려 삶을 잃은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아이러니를 바로잡는 것이 시작이다. 삶은 삶으로 연결돼야 한다.

Posted in: 작품 감상, 잡감 Tagged: 냉소주의, 무세계성, 소울

대안적 사실 대 대안적 사실

2020년 11월 20일 by 이상한 모자

대안적 사실 얘기하면서 “우리는 팩트”이러는 거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한심하기도 하고 그렇다. 일베도 그랬다. 저들은 선동하지만 우리는 팩트…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엔 대안적 사실과 대안적 사실, 선동과 선동의 충돌이다.

가령 우리가 밥을 먹는 이유가 뭔가? 허기를 해결해 생존하기 위해서인가 맛을 느껴 쾌락을 얻기 위해서인가? 둘 다이다! 당연하지 않나? 저 자식이 맨날 평론가랍시고 방송 나가서 떠드는 건 먹고 살기 위해서인가 그래도 뭔가 공적 사명의 실천을 위해서인가? 둘 다야! 그러나 우리가 보는 건 한쪽은 “맛을 모르고 허기만 채우면 된다는 무식한 놈들아!”, 다른 한쪽은 “남의 고통은 외면하면서 맛에만 관심이 있는 쾌락주의자들아!” 뭐 이러는 거다.

그러니까 한쪽이 대안적 사실을 갖고 장난을 친다고 해서 반드시 반대쪽이 얘기하는 대안적 사실을 ‘팩트’라고 해야 할 이유가 뭐냔 말이다. 뉴욕타임즈에 누가 또 트럼프 현상을 갖고 좌파들아 우린 왜 이렇게 편협하냐, 우리가 종교는 아니잖냐, 반성하자 이렇게 썼다는데 어떤 인간적인 태도의 문제라기 보다는 한쪽 거짓에 대한 분노로 반드시 다른 쪽 거짓을 진실로 믿어야 한다는 시대적 행동 양식이 원인이다. 여기엔 또 반드시 ‘속았다’는 서사가 들어간다. 내가 원래는 저쪽의 대안적 사실을 믿었는데 정신차려보니 거짓말이더라…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말… 냉소사회는 읽었습니까?

이래서 얘기를 하기가 싫어요. 무슨 얘기를 하면 양쪽에서 왜 상대편 대안적 사실을 인정하기 위한 꼼수를 펴냐며 난리 난리… 요즘에는 양쪽도 아니고 삼파전 사파전이야. 조국백서, 조국흑서, 진보, 태극기…

그러나 진지하게 ‘팩트’를 다루고 싶은 사람들이 할 일은 어느 쪽 버전의 대안적 사실을 선택해서 밀어줄 거냐 이게 아니다. 대안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들, 그러니까 음모론은 대개 한 톨만큼이라도 진실을 포함하고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것들을 영끌해서 각자의 ‘진짜 사실’을 재구성하는 게 필요하다. 당연히 이 ‘진짜 사실’은 진실과 같지 않을 거다. 그러나 각자의 ‘진짜 사실’들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요소들을 서로 따져봐서 진실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서는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하는 게 언론이고 이상적인 의미로서의 정치이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냉소주의, 대안적 사실,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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