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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정치 사회 현안

백서와 흑서들이 사는 세상

2020년 8월 30일 by 이상한 모자

얼마 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백서 흑서 얘기를 했다. 백서에 대해선 그랬다. 조국 씨가 억울한 게 있을 수 있고 검찰과 언론의 만행도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일가가 실제로 한 일들만 따진다 하더라도, 그걸 기득권이면 모두 하는 일로 일반화하고 정당화 하는 게 옳은가? 우리 사회의 기준은 그 정도면 되는 것인가? 흑서에 대해선 그랬다. 분명 새겨들을 말이 있다. 특히 이 정권 지지자들 사이에 ‘대안적 서사’가 만연해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들의 주장은 그러한 ‘대안적 서사’에 또다른 서사로 대항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게 아닌가 의문이라고 했다. 물론 권력이 기획을 하다시피한 백서와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어댄 얘기를 책으로 만들고 흑서랍시고 하는 걸 동렬에 놓고 비교할 일은 아니긴 하다.

아무튼, 그럼에도 세상 만사 다 똑같아서 지겹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 횡행하는 논리… 조국이 미워서 윤석열을 지지하겠다든지, 윤석열이 미워서 조국을 지지하겠다든지… 정권에 속았다 이러면서 사뭇 비장하게… 이런 게 말이 되나? 조국 윤석열이 선거 나갔습니까? 지지하고 말고 하게? 걔네가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하고 억울한 건 억울하다고 하고, 그와 별개로 정권의 성격을 평가하고… 그러면 그만 아닌가?

이제는 뭐만 하면 박근혜랑 뭐 다르냐, 최순실이랑 똑같다 이러는데 물론 굳이 같은 점을 찾자면 찾을 수도 있다. 그걸 근거로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도 그걸 성실히 하면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냥 인상 하나를 단편적으로 떼서 봐라 박근혜랑 최순실이랑 뭐가 다르냐, 이러는 건 그럼 뭐 다른가?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종류가 다르다는 것이다. ‘더 낫다’는 게 아니고,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이걸 앞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이해를 못해. 더블민주당에 실망했으니 난 이제 보수정치를 지지… 이게 상품논리라고 얘기를 해도… “문정권이 박정권보다는 낫다”는 단순비교로 받아들인다. 빼빼로에 실망했다고 새우깡을 사겠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그게 아니고 원래부터 새우깡을 살 생각이었고 난 새우깡이 좋다… 그러면 새우깡을 사세요 누가 뭐라고 합니까?

왜 이런 세상이냐? 원래 이게 근대 민주주의의 문법이다. ‘지지한다’는 게 핵심이 아니고 ‘반대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모양 이꼴로 사는 것이다. 이거 처음 하는 얘기 아니야. 작년에도 했지. 서초동 촛불 어쩌고 할때. 봐라.

현대 민주주의에서 대중의 직접 행동은 무언가에 대한 요구보다는 ‘반대’하는 차원에서 이뤄진다. 예를 들면 민주주의를 요구한다는 것은 ‘독재정권에 반대한다’는 명확한 반대논리가 있어야 가능해진다. 2017년 조기 대선을 가능케 한 촛불집회 역시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의한 통치를 반대하자는 것이었다. 이른바 ‘운동권’들은 습관적으로 자신들이 선호하는 의제를 말하며 “촛불의 명령”이라고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야말로 이러한 반대 논리의 실천적 결론이었다. 28일의 시위도 마찬가지다.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검찰의 과잉수사와 이를 주도하는 인물로 비춰지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전횡에 반대한다는 것이고, 이의 실천적 결론이 ‘조국 수호’인 것이다.

(생략)

이 결과 남는 것은 오로지 이해득실과 손익계산이 정치의 본질이 되는 냉소적 세계관이다. 여기에는 어떤 가치판단이나 대의명분이 설 자리가 없다. 다들 어떤 당위를 내세우는 것 같지만 실제 가치와 명분은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대상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 세계관에서 앞서의 ‘열광’은 ‘각자도생’과 동전의 양면을 구성한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2546

글을 하나만 쓴 게 아니예요. 지겨워.

대중이 직접 거리로 나오는 ‘투쟁’은 대개 비주류 의식의 발현이다. 기성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기득권에 대항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다. ‘서초동’과 ‘광화문’은 서로를 가리켜 기득권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자신의 기득권적 속성은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따라서 이것은 텅 비어있는 대중투쟁이며 양쪽의 대립은 기만적 포퓰리즘의 대결이 될 수밖에 없다. ‘서초동’과 ‘광화문’의 배후가 되고 있는 정치세력들은 각자 이런 상황의 이해득실을 계산하며 정치적 이득을 재생산하기 위한 정치에 골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 실종된 것은 ‘대의정치’가 아니라 기만적 대립구도에 파열을 낼 ‘대안적 정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대안적 정치’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것 중 하나는 ‘서초동’이냐 ‘광화문’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대중투쟁의 ‘스펙터클’이다. 200만이니 300만이니 하는 데에만 몰두해서는 이 함정을 빠져나갈 수 없다. 그런데 언론과 기성 정치는 빠져 나가긴커녕 오히려 스스로 함정 속으로 몸을 던지는 상황을 계속해서 연출하고 있다. 이런 자해적 몸짓이 아니라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이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3224

이런 똑같은 관계가 백서와 흑서 사이에도 성립한다고 본다. 이제 또 그러겠지… 무슨 얘긴지 다 아는데 난 더 이상 이 정권을 지지할 수 없다… 난 처음부터 지지 안 했으니까 그건 맘대로 하시라고요!!! 제발!!!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조국

여당 전당대회 결과에 할 말은 없고

2020년 8월 30일 by 이상한 모자

윤석열 전광훈 아베신조 죽일 놈 그런 얘기만 하면 만사오케이라는… 예상했던 내용, 예상했던 결과, 예상했던 뭐 그대로니까 할 말도 없고. 엊그제 심야 라디오 방송에선 당청관계의 변화 필요성을 말하면서 화형식 하고 들이 받으라는 게 아니고 이제 청와대는 뒤로 물러서고 당이 앞에 나서서 자기 목소리를 내야 정권재창출 로드맵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여기서 ‘자기 목소리’란, 그걸 내면 내용이 좋을 거다 이런 게 아니라 걍 공학적인 얘기다.

일전에 잡지에 썼던 글이나 다시 올려본다.

이 정권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고들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피플파워’란 말을 쓴 일도 있다. 정권 초기엔 제법 기분이라도 냈는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 이후 개혁은 없어졌다. 그나마 밀어붙인 선거제도 개혁은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됐고 ‘검찰개혁’은 윤석열 검찰총장 거취만 관심사다.

이 상황이 고약한 건 개혁은 핑계였고 결국 유불리가 본질이란 인식의 근거가 될 수 있어서다. 휴지 조각이 된 선거법 개정도, 천하의 역적(?)이 된 ‘우리 윤 총장’도, 유리할 때는 삼키고 불리할 때는 뱉는 감탄고토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재보선 원인 제공 정당은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은 그냥 없는 걸로 치는 분위기가 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니 최근 여당의 행보는 최소한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원내대표가 행정수도 이전 같은 엄청난 일을 부동산 대책 말하듯 했는데, 정말 추진할 의지가 있어서 꺼낸 얘긴지 아니면 다른 부수적 효과를 노린 것인지 헷갈린다. 의지가 있다면 지방 소외가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현실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행정수도 이전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제시해야 한다. 정치판에 진심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박원순 전 시장에 대한 애도와 기자에게 폭언을 하는 이해찬 대표의 목소리엔 분명 진심이 있었다.

잘해보려다 안 된 것과 애초부터 할 마음이 없었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개혁이란 명분이 결국 특정 정파의 이익을 보장하는 핑계에 불과했다는 게 사실이 되면 국민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각자도생만 남는다. 이렇게 ‘피플파워’를 냉소하게 되는 와중에 치르는 전당대회의 가장 큰 의제가 또다시 대권을 둘러싼 ‘차기’들의 득실 문제라면 우리 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가.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8991.html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이낙연, 전당대회

아베 신조 사임에 대한 방송 내용

2020년 8월 30일 by 이상한 모자

1.

금요일(8월 28일) 오후 라디오 방송 내용이다.

오늘 아베 신조 총리 전격 사임 표명했다. 측근들도 몰랐다고 하고 당내 파벌 주요 대표주자들도 당황하는 분위기인 걸 보면 아베 신조 본인의 의지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정권이 일본 사회에 뭘 남겼는지 돌아보며 앞으로를 전망해볼 필요가 있다.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것은 업적이다. 연속 재임일수로 따지면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의 7년 8개월 재임 기록을 넘어 2차대전 이후 총리 중에 가장 길다. 1차 집권기를 포함해 통산재임일수를 따지면 1차 대전 이전에 집권했었던 가쓰라 다로 전 총리를 넘어 역대 최장 기록이다. 이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1차 집권 때의 실패를 극복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많았다. 1차 집권 때도 병으로 물러나긴 했지만 그 이전에 이미 민심이 매우 흉흉해진 상태가 영향을 미쳤다는 거다.

그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자기 사람 위주로 중책을 맡겼기 때문에 ‘친구내각’이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그렇게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부적절하고 편향적인 발언을 해 논란이 되는가 하면 스캔들에 휘말리고 심지어 각료 중 한 명은 자살하기까지 했다. 아베 신조 총리 집안이 워낙 정치 명문가이다 보니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사람 아니냐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런 부정적 평가가 하나로 모이면서 철없는 도련님이 친구들을 모아 국민적 동의가 없는 정책을 성급히 추진하려다가 정권을 망쳤다는 평가가 당시에 나왔고, 이게 민심 악화로 이어졌다.

2차 집권 때부터는 몇몇 심복을 중용하기는 했으나, 대체로 주요 세력을 여러 이해관계 속에 묶어두고 적당한 직채을 나눠주면서 당과 관료를 지배하는 전략으로 바꿨다. 또 자신이 추진하려는 정책에 대해서도 국민들보다 반 발짝만 앞서가려 한다고 설명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 것도 1차 집권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평가됐다.초기부터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펴서 통화재정정책을 제대로 활용하려 하지 않았던 전임 민주당 정권과 비교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경기부양에 일정 정도 성공했으므로 정책적으로 유능하다는 이미지를 심는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평가는 별로 좋지 않았다. 코로나19에 대한 총체적 대응 실패가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그 이전부터 국민들 사이에 정치적 피로감이 있었다.일본 사람들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청렴하고 능력있는 지도자가 부패한 정치를 바꿔주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1980년대 나카소네 정권부터 일본 총리 관저의 권한은 계속 강화돼왔고 이게 아베 정권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문제는 총리 관저의 기능이 너무 강해지다 보니 오히려 역효과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관료들이 과도하게 정권의 눈치를 보며 코드를 맞추기 시작한 건데, ‘손타쿠란’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에 이른 것이다. 이건 모리토모 학원, 가케 학원 스캔들을 두고 자주 나왔던 표현인데. 총리가 자신과 가까운 사학 운영자들에게 특혜를 주고 싶어 한다는 걸 관료들이 스스로 헤아려 알아서 움직여 비리를 만들었다는 거다. 이는 일본 국민들에게 아베 신조 총리에 힘을 실어줬더니 결국 자기 좋은 일에만 쓰더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사건들이다. 지난해 벚꽃을 보는 모임 논란도 마찬가지였다. 정부 행사를 자기가 신세졌거나 신세질 사람들에게 보답할 용도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건데, 제대로 답도 안 하고 뭉개려고만 했다. 이러니 정치적 피로감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정권이 바뀌면 이런 분위기가 바뀔지는 두고 봐야 한다. 손타쿠 논란 이후에 관료들이 자기 주장을 갖고 전문성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건 사실인데, 차기 총리가 이 대목에서 어떤 컨셉을 잡느냐에 따라 한일관계도 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가령 한일관계가 지금처럼 경색된 이유는 역사갈등이라는 근본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만 외무성이 자기 권한을 갖고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로 꼽는 목소리가 있다.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만 해도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합의였으나 당시 외무상인 기시다 후미오가 자기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정권 후반으로 갈수록 외무성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됐고 이건 결국 총리가 좋아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체질이 된 거라는 얘기다.

아베 신조 총리가 남긴 성과라고 할만한 게 많지는 않다. 개헌을 평생의 과업으로 언급해왔는데 결국 이루지 못했고 오히려 숱한 논쟁과 주변국들과의 갈등 소지만 남겼다. 개헌이 실질적으로 어려워지자 아베 신조 총리는 도쿄올림픽을 개최해 후쿠시마의 부흥 등 새로운 발전 전망을 제시하는 걸로 정권을 마무리 하려 했으나 연기된데다 내년에도 정상적으로 개최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이것도 엄청난 빚만 남긴채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아베노믹스도 결과적으로는 끝이 좋지 않다. 아베노믹스는 신속한 재정정책, 과감한 통화정책, 구조개혁이라는 3가지 화살로 요약되는데 앞의 두 가지는 앞서 언급했듯 경기부양에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 성과를 구조개혁으로 이어가는 데는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 엔화 약세 기조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면서 다시 저성장 국면이 돌아왔고 코로나 19 영향까지 더하면 전후 최악의 침체를 기록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렇다 보니, 최장 재임 기록에도 불구하고 비운의 총리로 역사에 기록되게 됐다.

2.

아래는 사임 발표가 되기 전인 금요일 오전 라디오 방송 내용이다. 겹치는 내용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오늘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해 알아보자.

오늘 기자회견 열어 건강상태를 설명할 거라는데, 사임이다 아니다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에 자꾸 병원에 가서 화제였는데, 지병인 궤양성대장염이 재발한 것은 거의 사실로 보인다. 아베 신조는 1차 집권 당시인 2007년 9월 이 병으로 갑작스럽게 사퇴했다. 병이 재발했다면 언제 사퇴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문제는 포스트 아베에 대한 교통정리가 안 됐다는 점이다.

후임으로 거론되는 건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 전 외상,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고노 다로 방위상 등이다. 이 중 이시바 시게루는 아베 신조 총리와 상극이어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고 기시다 후미오는 국민적 지지율이 낮고 스가 요시히데는 정치적 무게감이 떨어지고 고노 다로는 통제가 안 돼 불안하다. 거기다가 아베 신조가 자기 파벌 안에서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파벌 간 이해관계 문제까지 겹쳐보면 더 복잡한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교통정리가 될 때까지 자의 반 타의 반 총리직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엄마가 시키기 전엔 사임 안 한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일국의 총리가 엄마가 시킨다고 사임하진 않을 것이다. 아베 신조 집안이 워낙 정치명문가다보니 모친도 보통 사람이 아니어서 나오는 얘기다. 아베 신조의 외조부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인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고, 기시 노부스케의 동생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이므로 여기까지만 따져도 벌써 집안에 총리가 2명이다. 아베 신조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다케시타 노보루 정권에서 자민당 간사장까지 올라 총리도 바라볼 수 있었는데 1988년 리쿠르트 사건으로 다케시타 정권이 무너지면서 부패 정치인 세트로 묶여 낙마했고, 1990년에 췌장암 선고를 받고 1991년 사망했다. 이게 아베 신조가 아버지보다 외할아버지를 더 따른다고 말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 같다(근본적으로는 물론 이념 문제).

아베 신조는 미국 유학 후 고베 제강이라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1982년 부친인 아베 신타로 당시 외무상의 비서로 일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다. 그러다 1993년 아베 신타로가 사망한 이후인 지역구를 이어받아 중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2000년 모리 요시로 내각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추천으로 요직인 내각관방부장관을 맡았는데 아베 신조가 1954년생이니 이때가 우리 나이로 불과 47세인데도 요직에 오른 셈이다. 2001년 고이즈미가 집권한 이후에도 이 직책을 유지했는데 이때부터 선대의 후광을 벗어나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름을 날리게 된 계기는 납북자 문제다. 2천년대 초반 북핵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동아시아 국제정치 무대에서 일본의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국면이 왔다. 이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고이즈미 총리는 북일정상회담을 추진했고 당시 김정을 북한 국무위원장도 이에 호응해 2002년 고이즈미의 방북이 이뤄졌다. 이때 현안은 북한이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인을 납치한 사건이었다. 이 시기 이 사건이 언론에 의해 다각도로 조명되면서 일본 내 여론이 악화됐다. 아베 신조는 이런 분위기를 읽고 북한과 적절히 타협하려는 고이즈미 총리에게 원칙론을 강하게 주장했고 일본 언론에 이런 사실이 보도되면서 인기가 급상승했다. 2003년 9월 고이즈미 총리는 이런 능력을 높이 평가했는지 당시 3선에 불과했던 아베 신조에게 자민당 간사장직을 맡겼다.

고이즈미는 주류 파벌 소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을 부숴버리겠다는 등 비주류적 슬로건을 내걸고 총리가 됐다. 집권 이후에도 우정민영화로 대표되는, 기성 정치질서를 해체하는 것에 가까운 개혁을 추진했다. 이러다 보니 당내 기득권은 반발할 수밖에 없었고 고이즈미는 자기편을 늘리기 위해 그 때까지 주목받지 못하던 젊은 세대들을 요직에 등용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인물들을 중용한 것은 고이즈미 총리의 브랜드인 파격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베 신조는 이 중 한 명이었고 현재 차기로 유력한 인물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도 이때 중용됐다. 아베 신조가 총리 자리까지 가는 데에는 고이즈미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었던 것이다.

아베 신조는 고이즈미 내각의 주요 정책을 계승할 것을 내걸고 2006년 9월 자민당 총재로 선출, 총리가 됐다. 당시 52세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연소 총리 기록이다. 문제는 시작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행정개혁상이 사무실 운영 비용 관련 의혹에 연루돼 사임했고 농림수산상은 비리 의혹으로 자살했다. 이 밖에 원폭 투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주요 각료의 발언도 논란이 되면서 민심이 급격히 나빠졌다. 이런 사건들은 아베 신조의 인사 스타일 때문에 불거진 걸로 해석됐는데, 세상물정을 모르는 도련님이 주변의 친한 사람들 위주로 내각을 꾸리는 바람에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는 시각이다. 여기에 국민들이 과거에 낸 연금기록 중에 상당 부분이 누락돼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사건(전임 때도 같은 일이 있었다)까지 일어나면서 민심은 더욱 악화됐다. 이 결과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했고 그랬는데도 인적쇄신을 하지 않아 분위기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건강 상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결국 총리직을 사임한 것이다.

아베 신조 사임 이후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등이 총리직을 이어갔으나 아베 신조보다도 정권 운영 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아소 다로 내각은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쳐 거의 재앙에 가까운 상황이었는데 당내 다수가 그만두라는 분위기였는데도 아소 다로 본인이 직을 유지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막장 사태까지 일어났다. 결국 2009년 엄청난 표차로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주면서 자민당의 시대는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민주당 역시 일본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는데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이 터지면서 자민당에 다시 기회가 왔다. 2012년 중의원 선거가 예상되는 시점에 그간 절치부심하던 아베 신조가 다시 등장해 총재 선거에 출마해 승리하면서 정치적 재기가 이뤄졌다.

당시 총재선은 처음에 파벌 내 분열 등으로 아베 신조에 불리했고 무파벌에 가까웠던 이시바 시게루 당선이 유력했다. 1차 투표 결과는 이시바 시게루가 1등, 아베 신조가 2등이었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현역 의원 투표와 지방조직 대표 투표로 이뤄지는데 현역 의원들이 그래도 정권을 운영해본 아베 신조의 손을 들어주면서 결선 투표 결과 아베 신조가 당선됐다. 이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다시 정권을 되찾아오면서 아베 신조의 정치적 기반은 한층 탄탄해졌다.

총재 선거 때부터 아베 신조는 자기 주변 사람들을 중용했던 1차 집권 때와는 달리 파벌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지지 기반을 넓히는 방식으로 전략을 달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내 조직을 틀어쥔 것과 동시에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며 정책적으로 유능하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그러자 1차 집권 당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도 평가를 달리 하기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총리 관저의 권한 강화와 개헌으로 대표되는 보통국가화를 추진하면서 뭔가 책임있는 총리의 모습으로 각인됐다.

하지만 지금은 별로 인기가 없다. 역대 최장수 총리로 너무 오래 재임해서 여론의 피로가 쌓여있는 상황이다. 또 일본인들은 정치인들이 자본과 관료와 결탁해 스스로 배를 불리고 있다는 식의 정치불신을 강하게 갖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강력하고 청렴한 총리가 나타나 이런 구조를 깨줄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다. 과거 고이즈미의 사례가 대표적인데… 마찬가지로 아베 신조 총리에게도 일본 국민들이 힘을 실어줬으나 모리토모 스캔들, 가케학원 스캔들, 벚꽃을 보는 모임 논란 등 자기 자신을 위해서 권력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사건들이 결정타가 되고 있다. 또 아베 신조가 공언한 개헌과 보통국가화 관련해서도 일본 국민들 입장에선 전적으로 찬성하진 않으나 굳이 하겠다니까 내버려뒀는데, 시끄럽기만 하고 마찰만 생기고 성과가 없었다. 이 점도 부정적 평가의 원인이다. 이래 저래 시기가 문제일 뿐 총리가 바뀌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3.

후임에 대해서는 대개 분석이 일치하는데 현재로선 스가 요시히데가 이어받을 확률이 높으나 이건 주류3파(호소다, 아소, 니카이)가 대안을 갖고 있지 않는 상태가 원인이라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내년이 돼도 대안이 있을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고노 다로가 그나마 명목상 아소파이지만 고노 요헤이(얼굴마담)-아소 다로(실세)라는 구조가 선행된 상태라서 통제가 어려워 지지가 쉽지 않다(낭만화하면, 마치 자비가와 샤아 아즈나블의 관계인가??). 기시다 후미오는… 지난 번에 나카타니 겐 전 방위상이 아베의 장기집권에 국민이 완전히 지쳤다고 했는데, 이 사람은 기시다파이므로 똥차는 빨리 좀 비키라고 얘기한 걸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안달난 걸로 볼때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주류가 그냥 정권을 넘겨주기로 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그냥 기시다파가 사고 못 치게 관리를 하는 차원이었던 걸로…

이런 상황이면 의외로 내년에는 이시바 시게루에게 기회가 올 수도 있다. 특히 전통의 다케시타파가 인물이 없기 때문에… 이시바 시게루는 워낙 풍운아이다. 다나카파로 시작해서 나카소네파 갔다가 자민당 정권 잃고 분위기 안 좋을때 막 흩어지던 사람들 틈에 껴서 오자와 이치로의 신진당까지 갔다가 왔다. 근데 이게 요즘 같은 상황에선 이게 오히려 득일 수도 있다. 모리 요시로 이후 야당 시절 다니가키 사다카즈를 제외하고 구 후쿠다파의 세상이었는데 그 설욕을 이제 할 때가 온 거 아니냐, 이거다. 누카가 때부터 조짐이 있었다.

이시바 시게루가 되면 한일관계 좀 풀리지 않겠나 하는 사람들 있는데, 개헌과 보통국가화는 흐름이라서 되돌리기 어려울 거다. 다만 이시바의 논리는 개헌을 하려면 주변국들과 사이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고 이건 하토야마 유키오 등 리버럴들과도 의견이 대략 일치한다. 문제는 이 양반이 밀덕이라는 건데… 그런고로 생각하지 못한데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아베 신조, 일본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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