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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정치 사회 현안

전교 1등 의사

2020년 9월 3일 by 이상한 모자

전교 1등 의사가 말하고자 하는 건 간명하다. 첫째, 의사는 이 사회의 존경받는 엘리트이다. 둘째, 엘리트 지위는 오직 실력으로 쟁취되어야 한다. 셋째, 실력이란 곧 시험 성적이다. 그동안 의사 집단이 주장해온 맥락까지 확장하면 이런 배후 논리도 도출해 낼 수 있다. 첫째, 실력이 아닌 정치로 엘리트 지위를 나눠먹는 것은 사회주의다. 둘째, 사회주의 체제에서 의사의 엘리트 지위는 박탈되었으므로 우리에게 손해이다. 셋째, 사회주의 문재앙 정권 반대! 의료사회주의집단 김용익 사단은 물러나라! 나라가 니꺼냐!

오늘 중앙일보에 이런 글도 실렸다.

이번 ‘의사의 난’ 배경에도 김용익에서 김창엽·김윤 교수로 이어지는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실의 입김이 작용했으리라는 막연한 추측만 나온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교수(의협 과학검증위원장)는 “서남의대 폐교를 겪으면서 의료계는 물론 복지부도 ‘의대는 함부로 만들면 안 된다’는 컨센서스가 있었다”며 “이번 사태는 정부가 직접 조종할 수 있는 의대가 필요하다는 김용익 사단의 오랜 신념에다 확실한 지역표를 통해 장기 집권을 꾀하는 집권당의 노림수가 결합해 나온 결과”라고 말했다.

(생략)

NMC 상황을 잘 아는 한 현직 의사는 “의대와 병원 설립 권한을 NMC 원장에게 몰아준다는 의미로, 의대 교수 선발 권한 등을 감안하면 좌파 정권에 대대손손 왕국을 선물로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863401

전교 1등 의사의 태도는 의사들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공정성이니 뭐니하는 얘기들이 다 그렇다.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가상화폐, 부동산, 인국공 등등… 대상만 다르지 다 비슷한 얘기다. 내가 쟁취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왜 내 돈, 내 능력, 내가 누리는 게 당연한 어떤 기회 등을 공정하게 평가 반영해주지 않느냐는 주장을 막 한다. 맨날 똑같다.

그런데 이미 확보한 걸 지키는 일에 대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를 한다고 하면 그 취지에 따라 수혜를 거부하느냐, 아니란 말이다. 재난지원금 하위 70% 주려고 하면 나는 왜 70%가 아닌가요 막 이러면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다. 부동산 얘기 하면 다 애 키우는 서민이다. 끝없는 피해자 경쟁이다.

진짜로 수혜를 받아야 할 대상에게는 왕관을 막 씌워준다. 라이더 연봉이 1억이란 얘기가 그렇다. 그러고선 막 부러워하는 척하면서 공정하지 않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나의 미래를 위해 투자를 했음에도 이렇게 산다… 라이더도 1억씩 버는데… 어쩌구… 그럼 라이더를 하세요! 내가 인터넷 신문에 글 쓰는데 건당 5만원이다. 한 달에 4개 쓴다. 한 달에 100개 쓰면 웬만한 중견기업 사원 못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 다니시는 분들도 투잡 쓰리잡 포잡을 하면 재벌이 될 수 있다. 파이팅이다.

인간극장에서 섭외할 정도는 되어야 사회적 연대의식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확실한 불행에 적선을 하는 걸로 도덕적 윤리적 우월감을 채운다. 그러고서는 ‘가짜 불행’들을 비난하며 그건 다 조국 윤미향이라고 한다. 자기는 그걸 비난할 자격이 있다는 거다. 그놈의 자격 얘기 좀 그만해라. 1을 얘기하면 1에 대해서만 좀 얘기하자. 그게 어렵니? 어려운가봐. 난 포기…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의사

닭 쫓던 개가 된 기시다 후미오

2020년 9월 2일 by 이상한 모자

기시다 후미오의 총재 선거 출마를 보며 일본 정치 참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아베 신조가 선양을 해줄 수 있다는 그러한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정작 사임을 하면서는 기시다? 누구세요?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시다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런데 그런 생각도 들 거다. 이시바 시게루는 그렇다 치고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 기시다는 뭐하러 출마해 3파전을 하는 건가. 어차피 진검승부의 때가 내년 9월 이전엔 오지 않는가. 내가 종종 편의점 주인을 할래도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느냐… 그러는데, 정치인이 뭘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거다. 기시다의 출마 역시 역시 ‘반대’를 조직화 하는 민주주의의 단면이다.

기시다파, 그러니까 굉지회라고 그러면 유서 깊은 전통의 파벌이라 그러는데, 아무튼 지금 자민당 내에 주요하게 꼽을 파벌은 5개다. 아베 신조가 속한 호소다파, 아소 다로의 아소파, 니카이 도시히로의 니카이파, 기시다파, 그리고 다케시타파. 다케시타파는 다나카 가쿠에이, 다케시타 노보루, 오부치 게이조, 하시모토 류타로 등을 배출하며 7~80년대를 주름 잡았던 파벌이다. 지금은 다케시타 노보루의 동생이 영수이다. 아무튼 이외에도 이시하라파니 수월회니 다니가키그룹이니 뭐니 있지만, 결국 이 5개 위주로 봐야 된다고 본다.

기시다가 닭 쫓는 개가 된 것은 굉지회의 부침과 함께 봐야 한다. 굉지회의 분열은 역설적이라고 해야 될까 90년대 다케시타파의 분열에서 촉발됐다. 록히드 사건이니 리쿠르트 사건이니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되면서 다케시타파는 어떤 놈은 뛰쳐 나가고(오자와 이치로) 어떤 놈은 남고 엉망진창이 되는데, 이게 다케시타파만의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자민당이 정권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파벌정치는 고질적 부패의 토양으로 지목됐고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자민당 내부 정치는 파벌에 세대 갈등의 성격이 덧붙여지게 된다.

이때 부패를 일소하고 파벌정치를 극복하자며 나온 게 야마사키 타쿠, 가토 고이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소위 YKK연합이다. 이들은 각각 나카소네파, 굉지회, 청화회(지금의 아베 신조네 식구)의 중견 간부 정도의 위치였다. 이때 부패정치 척결은 정경유착의 일소였고 작은 정부-건전재정과 동의어였다(그래서 사회당은 부정부패와 직접적 관련은 없었으나 자민당 파벌과 구태정치라는 카테고리로 묶이고 만다). 정부가 크니까 임마 정치-관료-자본이 이익동맹을 맺는 것 아닌가. 일본 정치에서 정치개혁과 신자유주의가 동맹을 맺은 베이스 중 하나다.

아무튼 이들이 움직이기 전 이들이 속한 각 파벌들은 본래 질서대로 움직였고 그 결과가 다케시타파의 손을 잡고 굉지회 영수 미야자와 기이치가 집권한 거였다. 다만 부패정치로부터 뭔가 벗어날 거라는 의지를 보여줘야 해서 미야자와 정권은 록히드 사건 때 뛰쳐 나가 신자유클럽을 결성해 활동하며 청렴한 인물로 잘 알려진 고노 요헤이를 영입해 관방장관을 맡기는데, 그 유명한 고노 담화의 탄생이다. 이런 얼굴마담 정치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가토 고이치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YKK연합의 활동이 본격화 된 것이다(애초에 고노 요헤이는 우리 식구도 아니잖은가!). 하지만 결국 부패 이미지로 인해 자민당은 정권을 잃고 말았다.

부패 이미지를 벗기 위해 청렴한 고노 요헤이가 총재를 맡게 되었고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결단으로 사회당 자민당 연정이 성립되었지만, 파벌 영수인 미야자와의 후계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했다. 이제 굉지회 내부 갈등의 핵은 고노 요헤이와 가토 고이치 사이의 후계를 둘러싼 대립이 됐는데 난리 끝에 결국 가토 고이치가 굉지회를 넘겨 받게 되자 고노 요헤이는 일군의 지지자를 이끌고 새로운 파벌을 만드는데 그 휘하에 아소 다로가 있었으니 이것이 오늘날의 아소파이다.

하시모토 류타로가 정권을 되찾아 온 이후 마찬가지로 다케시타파의 오부치 게이조가 그 뒤를 잇는데, 오부치는 YKK를 주도하며 반다케시타파의 선봉에 섰던 가토 고이치를 제끼고 청화회와 손을 잡았다. 오부치 급사 이후 밀실합의를 통해 청화외의 모리 요시로가 2000년 총리가 된 것은 이 맥락이다. 기시 노부스케의 후예인 모리 요시로는 그답게 “일본은 천황이 중심에 있는 신의 나라”라는 등의 발언을 해 야당에 의한 내각불신임안 제출을 자초하는데 이때 가토 고이치는 결국 사고를 치고 만다. 모리 요시로의 인기가 땅에 떨어져 이대로는 선거가 안 된다는 명분으로 야당의 불신임안에 찬성 표결을 하자고 한 것이다.

아마 ‘리버럴’에 가깝다고 하는 본인의 세계관에도 맞지 않는 일이어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굉지회 원로들은 이에 반대했고 파벌 전체 합의를 이루지 못해 거사는 실패했다. 기대했던 YKK도 모리파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이건 아니라고 해서 일이 안 됐다. 결국 가토 고이치는 혼자서라도 적진으로 달려가 산화해 무사다운 모습을 보이고자 했으나 이때 측근인 다니가키 사다카즈가 “가토 선생은 대장이니까 혼자서 돌격은 안 됩니다!”라며 만류한 얘기는 유명하다. 아무튼 이 용두사미 사건을 기점으로 굉지회는 또 가토파와 반-가토파로 분열해 각자 굉지회를 자처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시기 YKK의 한 명인 야마사키 타쿠 일당들의 나카소네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가토가 무슨 스캔들로 퇴갤하고 나서는 충신 다니가키 사다카즈가 가토파를 이어받는데, 자민당을 부셔버리겠다는 구호를 내걸고 개혁을 부르짖으며 총리가 된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정권에서 다니가키가 주류와 손을 잡은 것은 당연한 결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고이즈미의 승리는 다케시타파의 최종적 패배였고 우정민영화는 이들의 씨를 말리자는 거였다.

그런데 고이즈미의 뒤를 이어 집권한 아베 신조는 도련님들끼리 통한 것인지 파트너로 아소 다로를 선택했다(총재선은 아베 신조, 아소 다로, 다니가키 사다카즈의 3파전이었다). 지금과 달리 이 둘은 거의 코미디 같은 국정을 연출해 아베 신조 사임 이후에는 아소파를 제외한 모든 파벌이 ‘아소 포위망’을 결성하고 모리파 출신(지금의 아베 신조네 식구) 후쿠다 야스오를 총리로 밀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그러잖아도 구원이 있던 아소 다로에 대한 반대를 고리로 굉지회는 아소파를 제외하고 재통합을 이루게 되었다. 여기엔 고이즈미와 아베의 외교 노선(아소 다로가 외무상…)에 대한 반발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이 시기 야마사키 다로와 굉지회의 분열된 양쪽 파벌인 가토파와 고가파는 신YKK연합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후쿠다 야스오의 뒤를 이은 아소 다로 총리 시대를 거쳐 정권을 잃고 난 후 총재 선거에서 굉지회는 다니가키의 출마를 두고 다시 분열 양상을 보였다. 정권을 잃었기 때문에 개혁을 해야 해 또 세대론을 얘기했고, 그러다 보니 파벌 갈등에 세대 갈등이 다시 겹친 거다(이때 젊은 세대의 기수가 우리나이로 불과 47세의 고노 다로였다). 분열 속에서 다니가키 사다카즈가 총재가 되는 데는 성공했지만 비슷한 일이 2012년에도 벌어지는데 이때는 민주당 정권 말기로, 총재가 되면 곧 총리가 될 수 있다는 메리트까지 더해져 분열이 극심했다.

결국 반-가토파 출신이자 파벌 영수였던 고가 마코토가 재선을 노리던 다니가키에게 당신은 너무 늙었고 젊은 세대가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라고 하며 다른 사람을 밀면서 갈등은 폭발했다. 파벌의 지지를 얻지 못하게 된 다니가키가 출마를 포기하면서 고가도 물러났고 다니가키를 따르던 사람들은 탈퇴했다. 이렇게 탈퇴한 이들이 느슨한 형태로 모여있는 게 지금의 다니가키그룹이고 고가 마코토의 뒤를 이어 회장을 맡은 사람이 바로 기시다 후미오이다. 아베 신조로부터 누구세요? 란 말을 듣고 기시다 후미오가 바로 다니가키 사다카즈부터 찾아간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거다.

아무튼 기시다가 아베, 아소와 한 배를 타면서 생각한 모델은 오부치 사후 모리가 뒤를 잇는 모델이었겠으나 생각대로는 안 됐다. 하지만 이대로 끝이 아니다. 스가의 시대는 아베의 연장전이지만 코로나19에 경제에 도쿄올림픽에…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 일본 사람들이 아베 신조에 대해 좀 짠한 마음을 갖지만 내년 9월에는 모를 일이다. 이때도 구도는 아베 식구들 대 반-아베들이 될 수 있다. 이시바 시게루가 한줌도 안 되는 밑천을 갖고 계속 개기고 있는 이유도 이것이다. 자력으로는 안 되지만 반-아베의 바람이 불면 가장 먼저 메리트를 얻는다. 선양을 원했던 기시다 후미오가 출마를 강행하는 것은 반-아베의 상징을 노린 경쟁에 뒤늦게라도 나선 걸로 볼 수 있다. 지금이야 스가에게 고개를 숙이기로 한 다케시타파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다만 선수가 없고 모테기 도시미쓰 같은 카드로는 반-아베를 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내년에는 이시바를 밀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건데… 다케시타파들이 지지고 볶은 얘기는 또 나중에 기회 되면…

뭐 그냥 망상이다. 지금까지 얘기를 죽 보며 뭔가를 계속 ‘반대’하면서 합종연횡하며 지들끼리 지지고 볶는 정치의 서사를 만끽하셨길 바라며…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기시다 후미오, 아베 신조, 일본 정치

판단중지의 세상

2020년 8월 31일 by 이상한 모자

비운의 졸저 냉소사회에 보면 ‘판단중지’의 현대적 버전을 묘사한 부분이 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일의 실체, 즉 진리를 따지려 노력하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치고 판단이 중지된다.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노력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판단이 중지된 문제를 서로 유리한 대로 서사화 하는 게 더 일반적이다. 이 ‘서사’는 사적이익의 추구라는 보편적 의구심(사유재산의 보편화가 이 의구심을 더 위력적으로 만들었다)에 크게 기댄다. 그리고 전에도 썼지만 이게 ‘찬성’을 조직하는 게 아니라 ‘반대’를 조직하는, 근대 민주주의의 주요 문법이 돼왔다.

백서와 흑서의 논리는 대표적 사례가 될 것 같다. 백서는 조국 임명에 대한 반대를 검찰 입장에 대한 찬성과 개혁에 대한 반대로, 즉 ‘우리 편 아님’으로 규정한다. 흑서는 이 정권이 추진하는 모든 개혁을 선거나 정치자금 기타 정치적 이득 등의 ‘사익추구’로 규정한다. 즉 백서와 흑서는 서로를 ‘배신자’와 ‘사기꾼’으로 규정하면서 자기 정당성을 획득한다. 이게 기본이고, 이걸 ‘찬성’을 조직하는 얘기로 포장하려니 개혁가는 동서고금 원래 이중적 존재라는둥 사익추구를 위한 선전선동이 아닌 팩트와 논리라는 둥 서사를 동원하게 되는 거다. 이게 조장관님이 조광조가 되고 후니월드가 시대의 양심이 되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이다.

이런 면에서 ‘배신자’와 ‘사기꾼’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를테면 ‘사기꾼’은 개혁에 동의하는 촛불시민에 대한 ‘배신자’이다. ‘배신자’는 금전이나 관심, 또 다른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는 ‘사기꾼’이다. 양쪽의 부족원들은 서로 의도가 불순하다는 걸 증명하려 할 뿐 여기에 도움이 되는 걸 제외하면 문제 그 자체에는 사실 무관심하다. 서로가 진정성을 거론하고 있음에도 이런 태도는 오히려 진리에 대한 냉소를 증명한다.

애초에 왜 ‘반대’로 조직하는가? 그게 효율적인 동시에 유일하게 믿을만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사기꾼’과 ‘배신자’가 아님을, 즉 ‘우리 편’임을 증명하는 일은 그저 신의성실을 주장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고 “나는 사기꾼 또는 배신자가 아니다”라는 걸 보여주는 절차로만 된다. 주장은 믿을 수 없으니, 행동으로 증명하라! 짜르라! 집에 가야지!

그래서 나는, 그런 거는 웬만한 게 아니면 안 하기로 했다 이 말이다. 뭐에 반대하는 사람 모두 모이시오 이런 거.

얘기하다 보니까 갑자기… 우리가 옛날에 민주대연합을 왜 반대했습니까? 그건 좌익소아병(childish disorder! 유치한 혼란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뭔가 ‘찬성’을 근거로 조직하는 신의성실을 앞세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거연대를 반대한 게 아니라, 선거연대에 이를 수 있는 여러가지 합의나 절차를 요구한 것이다. 물론 그 합의 내용과 절차에 대해 합의를 못해 끝없는 주장을 하는 문제도 있었다. 전공의협의회 비대위가 이렇게 된 것도 리더십에만 국한해 보면 그런 아마추어리즘 때문이라고 본다. 안건 심의 방식이 그게 뭡니까… 회의의 프로들인 운동권들이 컨설팅을 해줬어야?

일하러 가기 싫고 별 생각 다 했는데… 그만 하고 일하자.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냉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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