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

지난 주말에는 약속이 있었는데 연락을 해보니 상대가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최근 전 직장동료에게 뭘 물어보려고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오지 않았다. 텔레그램방에서 내가 사라졌는데 다들 몇 달 동안 몰랐다고 한다.

오늘은 자다 깨다 자다 깨다 일어나서 빵 먹고 신문보고 방송국 갔다가 다시 또 방송국 앞에 가서 샌드위치인지 뭔지를 먹고 다시 방송을 하고 집에 오면서 스팸도시락인지 뭔지를 샀다. 그걸 먹고 나니까 이 시간이다.

요즘은 목 디스크가 더 심해졌는지 계속 머리가 아프고 느낌이 좋지 않다. 목 디스크 같은 게 있을 나이도 됐지. 젊은 시절을 허송세월 했으니까 목 디스크 정도는 있어도 좋은 거냐? 난 세월을 낭비한 일이 없는데, 다들 낭비했다고 하겠지. 어차피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으니 상관없다.

빨리 책을 써야 한다. 근데 책을 왜 쓰지? 책을 쓰나 안 쓰나 혼자 용쓴 것만 빼놓고 똑같은데… 똑같기나 하면 다행… 엘리트 지식인 및 소비자 분들이 비웃어요… 이런 책이나 썼다고… 이미 다 겪은 일이다.

진짜 한심하다. 뭘 해야 돼서 하는데, 이제는 왜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다 참고 견뎌야 하고, 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없고…

오늘은 누구를 만났는데 소병철 씨가 검찰 쪽에서도 평가가 좋다며, 자기가 어디 법조팀장에게 들었는데 어록이 있을 정도라고… 그래서 내가 검사를 하려면 소병철처럼 해라? 라고 하니까 그렇단다. 기사에 다 있는 거잖아… 법조팀장쯤 되면 기사에 안 쓴 거를 가르쳐 줘야지…

기사 제목도 다 한심하고… 어느 교수님 인터뷰 기사 제목. “김정은, 이란의 솔레이마니 사망 보며 공포 느꼈을 것” … 김정은한테 물어봤어요? 김정은은 안 그래도 맨날 공포를 느껴. 숨 차서. 걷다가 죽을지도 몰라.

이렇게 세상만사 다 한심해 보이는 이유는 내가 한심한 처지이기 때문이지. 내가 하나님에게 천벌을 받나 하고 생각한 일도 있다. 죄를 안 짓고 살진 않았을테니까. 근데 뭔 천벌이냐. 천벌은 아무한테나 주냐? 하나님이 그랬겠지. 이 자가 사람을 죽이거나 한 일은 없으니… 벌은 주긴 줘야 되는데… 벌을 뭐 어떤 걸 줘야 되나… 벌을 줄 게 없네 지금… 벌을 주긴 뭘 줍니까 애초에 아무것도 없는데. 벌도 뭐가 있어야 받지.

가만히 있는데도 어깨가 아퍼… 이렇게 몸도 정신도 맛이 갔는데 열심히 하는 거는 그거 목숨을 거는 거는 그냥 내일부터 합시다. 내일부턴 진짜! 목숨 걸고 열심히! YEAH!

2020

한국 기준으로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이제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될 때이다. 그래도 유치한 질문을 떨칠 수가 없다. 지금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소용이 없는 일을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차피 손에 잡히는 무엇도 없는 일을…

인간관계에는 여전히 서투르다. 이제 한 살 더 먹었으니까 여전히 라는 말은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한다. 오랜만에 모친과 통화를 했는데 환갑이었다고 한다. 나처럼 생년이 여러 개시라 무엇을 기준으로 따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 아무튼 결국 돈 얘기로 갈 수밖에 없는… 그런 통화를 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 사람의 잘못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세대의 문제인지 교육의 문제인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머릿 속에 박혀있다. 잘못을 하더라도, 그 순간 만큼은 다시 잘못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다(물론 잘못을 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피해야 겠지만 사람은 상품이 아니고 불완전한 존재이니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를 수도 있다(물론 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여간 중요한 건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다시는 잘못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과, 거듭 진심으로 결심하지만 결국 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되고야 마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굳이 둘 중 한 사람에 기회를 줘야 한다면 후자이다. 하지만 요즘은 노력한다는 말은 안 믿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또 기회를 준다는 개념에 대단히 인색한 시대이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것보다는 나의 고통 나의 피해 나의 어려움을 당장 해소하는 것이 더 급한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말 해봐야 곁눈질이나 당한다.

가장 믿기 힘든 사람은 애초에 책임지지 못할 말은 안 하는 사람이다. 잘못을 다시 저지를 것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애초에 의지가 없는 것이다. “잘못을 안 한다고는 한 일이 없다”면서 스스로에 대한 비난을 회피하는 것보다 다시는 잘못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실패를 무릅쓰고라도 노력을 반복하는 것이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넓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살면서 잘못을 많이 했다. 앞으로도 할지 모른다. 아니, 앞으로도 분명히 잘못할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그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또 결심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돼야 할 책임을 피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책임의 무게를 다 짊어진 채로 계속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물론 책임은 쌓이면 무겁다. 그래서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비겁해 질 수밖에 없다. 깔려 죽더라도 덜 비겁한 사람이 되고 싶다. 2020년은 그런 한 해가 돼야 한다.

이제 내일 일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것도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