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가 하나인 세상
어제 어떤 분과 대화를 했다. 그 분이 그랬다. 앞으로 한국 정치는 이준석류의 능력주의가 주류가 될 것이다. 내가 말했다. 박권일 선생을 비롯해 우리 입진보들이 계속 주장해오던 바가 그거 아니냐! 물론 상대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을 것이므로 그에게 항변할 것은 아니었다. 항변의 대상은 국정농단 이후 무슨 진보의 세상이 온듯 떠들어댔던 사람들이다. 2018년 지방선거가 정초선거였다느니… 여론조사를 해보면 ‘내가 진보’라는 답변이 더 많이 나온다느니…
위 주장이 가능하려면 다음의 등식이 성립해야 한다. 1)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보’는 정파가 아닌 가치 지향이다 2) ‘진보주의자’는 반드시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투표한다 … 둘 다 아니라는 걸 보여준 게 지난 재보선이다. 샤이 진보?
트로츠키가 벌써 얘기했다. 계급과 정파를 혼동하면 안 된다. 가령 노동자 정당이 집권한다는 게 노동계급이 국가를 장악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민전선은 계급연합조차 아니다. 여기서 하나 더할 것은 현대의 대의민주주의는 자신의 지향이 아니라 무엇에 반대하는가를 기준으로 정파가 조직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보’란 답변은 ‘보수세력이 싫다’는 것이며 ‘나는 보수’란 답변은 ‘진보세력이 싫다’는 거다. 중도는? 이짝도 저짝도 싫다는 거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걸 혼동하니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물론 이준석류가 주류가 될 것인가, 그것의 양상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하바드 졸업생, 코인-투자자, 이대남 전문가… 이런 것들을 그저 인정하고 끝내는 사회가 아니다. 누구라도 다른 누군가보다 나은 출발선에 섰을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박근혜 키드, 유승민 인턴… 이런 것들이 또다른 ‘반대’의 구실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스트-이준석을 메꾸는 자가 능력주의적 기준에서 더 완벽한 기준을 충족시키리라는 보장은 없다. 왜냐하면 원래 능력주의에서의 능력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박권일 선생은 그놈의 페이스북에다가 최후의 능력주의자는 반능력주의자이다 뭐 그런 얘기를 쓴 일이 있는데, 사석에서 그거 선생님 말씀입니까 하니 그렇다고 답을 했다. 박선생님 말씀과는 좀 결이 다를 수 있겠지만 가령 이건 어떠냐? 경기고 서울대법대 대법관 국무총리 출신 이회창과 아무런 엘리트 코스의 배경없이 대통령 자리에 오른 노무현 중 더 능력있는 사람은 누구냐?
이 답이 어렵기 때문에 대다수 인민들에게 있어 능력주의란 자기 이익을 보장하는 하나의 구실로서만 작용하는 것이다. 이게 상대 정파에 대반 반대와 결합한 게 정치에서의 능력주의다. 아무도 정치적 가치에 관심이 없음에도 정파가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여론조사상 ‘나는 진보다’와 ‘나는 보수다’는 어떤 차원에서는 사실상 같은 답변인 거다. 마찬가지로 <어떤 차원에서는>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대로서의 극우포퓰리즘, 극우포퓰리즘에 대한 반대로서의 엘리트주의도 같다. 트럼프와 바이든은 같다. 한미정상회담을 보고 느꼈어야 할 게 이거다.
처음 하는 얘기 아니고, 2019년 8월달에 쓴 글을 함 읽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