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져버림

내일 녹음 준비를 해야 되는데 주제를 정하지 못해서… 전염병 하지 말라 그랬는데, 염병 해야지 안 되겠다. 책도 써야 되는데… 오랜만에 다시 시동을 걸어볼까 하다가 진짜 말 그대로 던져 버렸음. 계약금 돌려주고 못 쓰겠다고 할까? 아니면 너무 스케쥴을 조급하게 잡았으니 조금 더 여유를 가져보자고 할까? 이미 계약 기간은 넘겼는데?

근데 난 지금 확실히 여유가 필요해. 뭔가 미뤄 놓은 일을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꼭 무슨 다른 일이 있어… 그리고 요즘에 마음이 좀 벼랑 끝에 몰렸다는 그런 느낌이야. 고립감 같은 거? 근데 요새는 그런 감정까지 여기다가 적기는 좀 그렇거든. 너무 그런 얘기가 창피하고 저열해서.

그래서 일기를 써볼까 했어요. 옛날에 강 변호사님이 선물로 준 가죽 재질의 그런 게 있단 말이지. 내 돈 주고는 못 사는. 노트를 이리 저리 끼워 넣어서 커스터마이즈 하는 건데, 그걸 새해가 되고 했으니까 이리 저리 또 셋팅을 했다. 그리고 나서 거기다가 딱 뭔가 적으면서 마음을 다스려 보고자 했단 말이지. 근데 정작 폼을 잡으니까 쓸 말이 없어요.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쓸 게 없어… 던져 버렸다.

어렸을 때는 좀 그렇잖아. 세상과 싸운다는 건 뭐니. 내일이 없는 듯이 싸운다지만 그건 사실 내일이 있는 거야. 말 장난? 내일이 없는데, 내일은 오잖아 어차피. 오게 돼있어요. 그런데도 내일이 없는 듯이 한다는 건 뭐냐, 그건 내일 리셋을 한다는 거거든. 어렸을 때는 리셋이 되는 줄 알았어요. 새로 시작할 수가 있는 거지.

근데 지금은 아니야. 이제는 조금 늙었어. 당장 내일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해봐.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면 만화나 그런 데 나오는 것처럼, 어차피 죽을 거 불 지르고 마약하고 거리를 뛰어댕기면서, 막 똥 집어 던지면서 살 수 있을까? 난 아닐 것 같아. 뭐 내가 잘못한 거나… 그런 거… 아직 미안하다고 못한 사람들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않을까?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서 했어야 했는데 못 한 얘기를 한다든지… 아니면 이메일을 몇십 통 쓸 것 같아. 금성이한테 문자도 보내고. 금성이 이 자식은 답 안 하겠지… 지구 멸망 직전에야 ㅎㅎㅎ 이렇게 답문 오면 기적… 지금도 자기 결혼식 축가를 미리 들려달라기에 날 검열하는 거냐고 보냈더니 또 답이 없어… 던져 버렸다.

아무튼 현실에 충실해야 되니까 하던 일을 더 열심히 하려고 했거든? 근데 요즘엔 신문을 봐도 토할 것 같고… 공영방송은 뭐 진행자가 바뀐다고 난리. 호구 잡혔니? 적폐와 나꼼수의 양당제인가? 진짜 너무 하는 거 아닌가? 누가 그러대, 누구 누구는 거기 라인이라더라… 그제서야 모든 게 이해가 갔어요. 하루만 살고 다 끝낼 거냐? 우리가 이제 나이도 먹었는데 성숙해져야지. 모든 걸 내려놓자. 던져 버리자. 괜찮아, 괜찮다고. 총선 전에 책을 안 써도 괜찮아요. 하수도의 제왕에 우리 집 얘기 올라왔어. 드러우니까 보지 마세요. 근데 뭐 괜찮아. 전염병 얘기 하지 말라 그랬는데 해도 괜찮아. 흑흑 내가 이렇게 힘든데 전염병 얘기 할 수도 있잖아 흑흑… 트위터를 다시 할까? 아니지, 아니지, 그건 절대 아니지… 그건 절대 안 되지… 차라리 가스관을 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