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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좌파

좌파 AI (농담)

2026년 2월 28일 by 이상한 모자

지피티 코덱스 갖고 코딩 시켜가지고 뉴스 긁어오는 웹앱 만든 얘기는 언젠가 썼을 것이다. 비웃는 사람도 있지만, 나름대로 많은 기능이 탑재돼있다. 무시할 게 아니다. 알겠냐? 하여튼 내가 뭔 말만 하면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일단 아래로 보고… 이 새끼들 내가 나이를 좀 먹으면 덜 하려나 했는데, 지금 영포티도 중반을 지나는데도 이 염병을 계속 떨어요. 자, 아무튼.

이 뉴스 아카이빙 앱에 데이터베이스를 txt로 추출하는 기능이 있단 말이다. 뭐 쉬운 거지만. 이걸 일정 기간 단위로 노트북lm에다 넣으면 훌륭한 검색 도구가 된다. 브리핑 자료 같은 걸 만들기 좋지. 이건 뭐 다 쉬운 얘기다. 지난 번에 여기다가 쓴 얘기이기도 하고. 그런데 오늘에서야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아, 이 녀석에게 마르크스 레닌주의자처럼 해달라고 해보자. 그랬더니 이렇게 오늘의 4개 신문을 대상으로 한 신문 브리핑을 해주었다. 나는… 잠시 좀 배꼽을 잡았다.


1. 오늘의 핫 이슈 3개

① 부르주아 국가기구 내부의 헤게모니 투쟁: ‘사법 3법’과 법원행정처장의 사퇴 오늘 자 신문 지면을 압도한 최대 이슈는 지배계급 내 정파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상부구조(국가기구)의 충돌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통령을 사법적 리스크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법왜곡죄’와 ‘재판소원법’ 등을 강행 처리하자, 기존 사법 권력을 수호하려는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이 사퇴로 맞섰습니다. 한국일보와 동아일보는 물론 보수 언론들까지 일제히 이를 삼권분립의 붕괴로 묘사하고 있으나, 본질적으로 이는 노동자 계급의 이익과는 무관한 지배 권력 내부의 ‘법적 장치 장악’ 투쟁에 불과합니다. 입법부와 사법부라는 두 부르주아 국가기구가 서로의 권력을 제한하고 통제하려는 이 충돌은, 자본주의 국가의 법과 제도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특정 계급과 정치 세력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극명히 보여줍니다.

② 투기 자본의 이동과 주거의 상품화: 이재명 대통령의 아파트 매각 이재명 대통령이 29년간 소유했던 분당 아파트를 매각하고 1주택자에 대한 부동산 규제를 시사한 사건이 핵심 의제로 다뤄졌습니다. 언론은 이를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고 자본을 주식 시장(ETF 등)으로 유도하는 ‘머니 무브’로 긍정적으로 혹은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는 행위로 엇갈리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주택은 인간의 기본적 재생산 조건임에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철저히 투기와 이윤 창출의 ‘상품’으로 기능합니다. 대통령의 이번 조치 역시 근본적인 주택의 사적 소유 철폐나 무산계급의 주거권 보장이 아니라, 단지 부동산에 묶인 자본을 금융 독점자본 시장으로 이동시켜 자본 축적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려는 자본주의적 미봉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③ 초국적 독점자본과 제국주의의 승리: 구글 ‘고정밀 지도’ 반출 허용 한국 정부가 19년 만에 구글에 1대 5000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조건부로 허용한 사건은 초국적 독점자본의 위력을 여실히 증명합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이라는 제국주의적 통상 강요 앞에, 국가 안보라는 명분조차 무력화되며 한국 정부는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이 데이터는 자율주행과 AI 등 미래 산업의 핵심 생산수단이며, 이를 구글이라는 글로벌 빅테크 자본에 넘겨준 것은 국내 기술 자본의 종속을 심화시킬 것입니다. 이는 국가가 결국 초국적 자본의 팽창과 이윤 획득을 위해 국경의 장벽을 허물고 복무하는 기구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 오늘 신문 1면 지면 분석

[조선일보 – 자본과 보수 권력의 노골적 대변자]

  • 與 사법폭주에 반발 법원행정처장 사의 (톱 기사): 거대 여당의 사법 개혁안 강행을 이재명 대통령 방탄을 위한 ‘사법 폭주’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의 사의 표명을 사법부 수호를 위한 결단으로 묘사하며 지배계급 내 보수 법조 카르텔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는 법률을 자본주의 질서 유지의 신성한 도구로 여기는 보수 언론의 전형적인 프레임입니다.
  • 李, 비거주 1주택 정조준… 분당 아파트 내놨다: 대통령의 아파트 매각 소식을 전하며, 정부의 후속 부동산 규제가 ‘똘똘한 한 채’를 소유한 선의의 자산가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누려온 부르주아지와 중간 계급의 이해관계를 방어하려는 논조입니다.
  • 정부, 구글에 ‘고정밀 지도’ 반출 허용: 미국의 통상 압박에 따른 고정밀 지도 반출 허용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독점 자본이 글로벌 거대 자본(구글)에 잠식될 수 있다는 국내 자본가들의 위기감과 불만을 중점적으로 부각시켰습니다.
  • 스마트폰에 자꾸만 손이… 70분 책 펴놓고 28분 읽어: 현대인의 문해력 위기를 스마트폰 중독 현상으로 짚어냈습니다. 빅테크 자본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들의 주의력과 정신적 여가 시간마저 착취하고 소외시키는 자본주의적 병폐의 일면을 보여주는 기사이나, 기사 자체는 개인의 습관 문제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 – 시장주의와 부르주아 체제 수호의 첨병]

  • 사퇴 내몰린 1인자 사의 표명한 2인자 (톱 기사): 민주당의 사법 3법 강행이 80년 사법 체제를 흔들고 있다며, 법원행정처장의 사퇴와 대법원장 사퇴 압박 상황을 참담하게 묘사했습니다. 국가의 강제 장치인 법원의 권위를 방어하고, 여당의 행보를 독재 정치로 비판하며 기존의 지배 체제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 “딱 작년 같은 날씨” 긴장의 대지: 영남 지역의 극심한 건조함과 강풍으로 인한 대형 산불 위기를 현장 르포로 다뤘습니다. 자본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가 낳은 기후 위기의 결과가 농민과 빈민 등 기층 민중의 생존을 어떻게 직접적으로 위협하는지 그 생생한 상흔을 기록했습니다.
  • 15% 증발된 서울 전세 … 2020년 임대차2법 데자뷔: 서울의 전세 매물이 급감하면서 2020년의 전세 대란이 재현될 조짐을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주택의 사적 소유와 이윤 추구가 낳은 주거 불안이 온전히 세입자인 노동자 계급의 고통으로 전가되고 있는 자본주의 주택 시장의 모순을 보여줍니다.

[동아일보 – 보수 지배 블록의 위기감 표출]

  • ‘지지율 바닥’ 쇼크에도 민심과 따로 가는 국힘 (톱 기사):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이 22%로 추락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보수 정당이 강성 지지층에만 매몰되어 중도층과 멀어지고 있음을 비판했습니다. 이는 보수 지배 블록이 대중적 지지 기반을 잃고 소멸할 수 있다는 자본가 계급 내부의 심각한 위기감을 반영한 것입니다.
  • 법왜곡죄 이어 재판소원법도 강행 처리… 법원행정처장 사퇴: 여당의 재판소원법 강행과 법원행정처장 사퇴 사태를 다뤘습니다. 헌정 질서가 난도질당하고 있다는 야당의 반발을 전하며,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식적 절차조차 무너지고 있는 권력 투쟁의 현실을 고발했습니다.
  • 국내서도 ‘구글 내비’로 길찾기 가능해진다: 구글의 고정밀 지도 반출 허가로 인해 국내에서도 고도화된 길찾기 서비스가 가능해졌음을 보도했습니다. 안보를 이유로 19년간 막아왔던 장벽이 글로벌 독점 자본의 요구 앞에 결국 해체되는 자본의 세계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 李, 분당아파트 매물로… 靑 “부동산 정상화 의지”: 이 대통령이 분당 아파트를 시장에 내놓으며 부동산 투기 세력에 강력한 매각 신호를 보냈음을 전했습니다. 이는 지대 추구 세력을 견제하려는 국가의 개입이나, 근본적인 모순 해결보다는 자본의 물길을 금융 시장으로 돌리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한국일보 – 중도적 개량주의 시각의 한계]

  • 법원행정처장 사의 ‘사법 3법’ 반발 고조 (톱 기사): 민주당의 사법 3법 입법 폭주와 이에 항의하는 법원행정처장의 사퇴를 균형 있게 다루려 노력했습니다. 법왜곡죄의 모호성이 가져올 판결의 위축을 우려하며, 사법 체계의 안정을 중시하는 개량주의적 한계를 노출했습니다.
  • 1주택자 李, 분당 아파트 내놨다… 부동산 정상화 의지: 대통령의 주택 매각이 부동산에 몰린 자금을 주식 등 금융시장으로 분산시키는 ‘머니 무브’의 일환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산업 및 금융 자본의 축적을 지원하기 위한 국가 정책의 일면을 정확히 지적한 것입니다.
  • 정부, 고정밀지도 반출 구글에 조건부 첫 허가: 구글의 지도 반출 허용을 다루며, 국내 모빌리티 및 자율주행 시장이 거대 다국적 자본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산업계의 우려를 비중 있게 전했습니다. 초국적 자본의 시장 침투에 대한 국가 독점 자본주의의 두려움을 잘 대변합니다.
  • 현대차, 새만금에 9조 투자… AI·로봇·수소 혁신거점 구축: 현대차그룹이 새만금에 9조 원을 투자해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공장 등을 짓는다는 소식입니다. 독점 자본이 국가의 전폭적인 행정적, 인프라적 지원을 등에 업고 노동 절약적 신기술(로봇, AI)에 대규모 자본을 투하하여 이윤율 저하 경향을 극복하려는 전형적인 축적 고도화 전략입니다.

3. 오늘 신문 사설 비교 해설

① 권력 기구 장악 투쟁: ‘사법 3법’ 강행과 사법부 흔들기 지배계급 내 특정 정파(민주당)가 법적 상부구조를 장악하려는 시도에 대해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가 일제히 사설로 비판했습니다.

  • 한국일보는 “법원행정처장 전격 사퇴 부른 여당의 ‘사법 3법’ 졸속 처리” 사설에서 여당의 속도전이 절차적 완결성을 훼손하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 비판했습니다.
  • 중앙일보는 “민주당의 ‘사법 3법’ 폭주…벼랑으로 몰린 사법독립”을 통해 다수 의석을 앞세운 여당이 삼권분립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사법부 수장을 압박한다며 대통령의 거부권을 촉구했습니다.
  • 조선일보는 “‘4심제’도 강행, 대통령에겐 기회, “국민은 피해””에서 권력자의 방탄을 위해 사법 제도를 뒤흔들어 국민을 소송 지옥으로 내몰고 있다고 맹비난했습니다.
  • (비평) 세 매체 모두 부르주아 사법 제도의 형식적 독립성 훼손을 규탄합니다. 맑스주의 관점에서 이 사태는 노동자 계급의 기본권 방어와는 무관하며, 단지 국가의 강제력을 어느 분파가 독점하느냐를 두고 벌이는 지배계급 내부의 천박한 헤게모니 쟁탈전일 뿐입니다.

② 제국주의 통상 압박과 데이터 주권: 구글 지도 반출 허가 미국 제국주의의 압박에 의해 한국의 핵심 데이터가 글로벌 독점자본(구글)에 넘어간 사태를 다루었습니다.

  • 한국일보는 “구글에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 보안 조건 철저히 감시해야”에서 구글이 한국 시장에서 단물만 빼먹는 것을 막기 위해 세금 회피 감시와 상생 방안 명문화를 요구했습니다.
  • 조선일보는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 허가… 생존 시험대 오른 韓 기업” 사설을 통해 토종 플랫폼들이 거대 자본과 기술로 무장한 빅테크와의 전면전에 내몰렸다며 국내 기업의 자생력 강화를 주문했습니다.
  • (비평) 한국일보는 국가의 적절한 통제로 초국적 자본을 길들일 수 있다는 환상을 보이고, 조선일보는 국내 독점자본의 경쟁력 강화를 옹호합니다. 본질적으로 이는 글로벌 거대 자본의 팽창주의 앞에 종속 국가가 굴복하여 생산수단(데이터)을 헌납한 사건입니다.

③ 지대 추구 방어와 자본의 이해: 강남·용산 집값 하락 (동아일보)

  • 동아일보는 “2년 만에 꺾인 강남·용산 집값… 아직 갈 길 멀다” 사설에서 초고가 아파트값 하락을 언급하며, 1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규제 대신 일관된 정책과 예측 가능한 세제를 요구했습니다.
  • (비평) 전형적인 자산 계급의 입장을 대변합니다. 지대 수취를 방어하고 부유층의 세금 부담을 줄여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 체제의 근간을 보호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선동입니다.

④ 플랫폼 독점 자본의 기만: 쿠팡 정보 유출 사과 (동아일보)

  • 동아일보는 “정보 유출 99일 만에 고개 숙인 쿠팡 김범석” 사설에서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하고도 99일 만에야 온라인으로 사과한 초국적 유통 독점자본 쿠팡의 오만한 태도를 질타했습니다.
  • (비평) 소비자(노동자)의 데이터를 착취하여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면서도 그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마저 회피하는 플랫폼 독점자본의 폭력성과 기만성을 잘 보여줍니다.

⑤ 독점 자본을 위한 국가의 복무: 현대차 새만금 투자 (조선일보)

  • 조선일보는 “현대차 새만금 9조 투자 ’35년 희망 고문’ 끝나길”에서 현대차의 9조 원 투자를 환영하며, 이를 위해 정부가 파격적인 규제 철폐와 인프라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 (비평) 국가가 앞장서서 독점자본(현대차)이 이윤을 축적할 수 있도록 물리적 기반(인프라)을 세금으로 깔아주고 법적 규제를 제거해 주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생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설입니다.

⑥ 한미 연합훈련 축소 비판 (조선일보)

  • 조선일보는 “전작권 전환한다며 도리어 한미 훈련은 대폭 축소” 사설에서 대북 유화를 위해 한미 야외 기동 훈련을 축소한 것을 비판하며, 군의 대비 태세 약화를 경고했습니다.

⑦ 국민의힘 쇄신 촉구 (한국일보)

  • 한국일보는 “끝없는 추락, 민심 이반 국민의힘… 장동혁 거취 고려할 때다” 사설에서 지지율이 17~22%로 폭락한 보수 여당이 극성 지지층에만 매달리는 행태를 비판하며 지도부 교체를 촉구했습니다.

4. 핫 이슈 및 1면 기사 관련 주목할만한 칼럼

부동산이라는 자본주의적 상품의 성격과 공간의 문제를 다룬 두 칼럼을 맑스주의적 시각에서 비평합니다.

  • 중앙일보 [에디터 프리즘] 주택의 당위성 (황정일 에디터) 이 칼럼은 이재명 대통령의 ‘실거주 1주택’ 정책이 임대사업자와 비거주 1주택자를 압박하여 결국 전세 공급을 줄이고 세입자(무산계급)를 외곽으로 밀어내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겉으로는 세입자를 걱정하는 듯 보이나, 본질적으로는 주택을 투기 수단으로 삼아 지대(Rent)를 착취하는 임대사업자(자본가)들의 이윤 창출 구조를 방어하기 위한 부르주아 경제학의 전형적인 논리입니다. 주택의 사적 소유라는 근본 모순은 은폐한 채 임대인의 이익 보장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 동아일보 [오늘과 내일] 서울을 비우려면 재택근무가 답이다 (한애란 논설위원) 수도권 주택 수요 집중과 집값 폭등을 해결하기 위한 파격적인 대안으로 ‘재택근무 전면 도입’을 주장하는 칼럼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도심으로의 노동력 집중 현상을 일하는 방식(노동 과정)의 개편을 통해 분산시키자는 참신한 공간적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다만, 이는 노동자의 재생산 공간(가정)을 자본의 잉여가치 착취 공간(작업장)으로 포섭하여 생활과 노동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5. 노동, 여성 및 소수자, 기후 환경 관련 기사 및 칼럼

[노동] 자본의 하청 노동자 분할 통제: 노란봉투법 교섭 매뉴얼 발표 (중앙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고용노동부가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하청 노조 간의 교섭 단위 분리를 허용하는 매뉴얼을 발표했습니다. 매체들은 기업이 수많은 하청 노조와 개별 교섭해야 하는 부담과 경영권 침해를 우려하는 자본 측의 목소리를 대변합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통해 극심한 착취를 당해온 하청 노동자들의 정당한 단결권과 교섭권을, 부르주아 국가 기구(노동부)가 복잡한 행정 절차와 분리 교섭이라는 기제를 통해 통제하고 분열시키려는 자본 방어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여성] 여성 노동 가치의 상업화와 투쟁: 비즈니스석으로 날아간 축구공 (조선일보)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36년 만에 처음으로 원정길에 비즈니스석을 제공받았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그동안 여자 선수들은 더 우수한 성적을 내고도 자본주의 스포츠 시장에서 상품성(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남성 선수들에 비해 철저히 차별대우를 받아왔습니다. 이들의 비즈니스석 쟁취는 동일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요구한 투쟁의 산물이며, 가부장제와 결합한 자본의 이윤 논리가 스포츠 영역에서 여성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폄하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기후 환경] 이윤 축적의 결과가 부른 생태계의 파괴: ‘열’ 받은 봄, 성질 더 급해졌다 (조선일보) 기후 온난화로 인해 제주 등지에서 매화와 벚꽃 등 봄꽃들의 개화 시기가 평년보다 극단적으로 앞당겨지는 등 생태계의 비정상적 교란 현상을 짚은 기사입니다. 무한한 자본 축적을 위해 자연을 무자비하게 착취해 온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이 결국 한반도의 계절적 순환마저 파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생태적 위기(Ecological rift)는 종국적으로 식량 위기로 이어져 가장 취약한 노동 계층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이상으로 2026년 2월 28일 자 뉴스 브리핑을 마칩니다. 변증법적 통찰을 통해 현상 이면의 구조적 모순을 읽어내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

내가 웃기다고 생각한 배꼽 포인트 2개.

1) 구글이 만든 노트북LM이 요약한 뉴스 브리핑인데, 구글로 지도 반출 허가한 것을 ‘제국주의 통상 압박과 데이터 주권’이라고 말하고 있다.

2) 마지막 부분인데, ‘변증법적 통찰을 통해 현상 이면의 구조적 모순을 읽어내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라고 하고 있다…. 이 자식 우리 취향을 너무 잘 아는데?

노트북lm은 뭐 유명하지만 이걸 양자대담으로 만드는 기능을 갖고 있다. 함 들어봐라. 이것도 웃기다.

https://traffic.libsyn.com/forcedn/weirdhat/20260228.mp3

너네들 분명히 내가 이거 올린 거 갖고 뭘 그런 거 가지고 자랑을 하고 그러느냐 부터 시작해서, 이게 무슨 좌파냐 그냥 좌파 따라한 거지 등등 막 비웃고 그럴 거지? 그런 너희들을 위해 말해주마. 내가 여기서 느낀 건 말이다. 이 시대에 좌파란? 어휘와 취향의 문제에 불과하게 되었구나 하는 거다. 왜냐면 llm이라는 게 결국 학습한 어휘 패턴을 생성하는 것에 불과하는 거잖냐. 근데 거기서 느끼는 바가… 아무리 이런 것이래도 왠지 반갑고 뭔가 즐겁고 뭐 그렇다는 게… 배꼽을 잡았지만 동시에 비애감을 느꼈다 이거다. 그런 의미에서 이 포스팅의 장르는 블랙 코미디임.

Posted in: 신변잡기, 잡감 Tagged: AI, GPT, 구글, 노트북LM, 뉴스 브리핑, 바이브 코딩, 신문 브리핑, 좌파

좌파-오타쿠 행사에서 한 말

2025년 1월 23일 by 이상한 모자

좌파 오타쿠 행사에서 두서없이 떠든 내용을 주최측이 정리해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떠들면서 망설임이 많았다. 평론가질을 하고 다니면서 ‘말’을 하는 것에 대한 덧없음을 계속 체화하던 차이기 때문이다. 말을 해봐야, 똑같은 의미의 말을 해도 자기가 원하는 표현으로 나오지 않으면 알아듣지를 않는 시대다. 더군다나 오타쿠들을 상대로? 오타쿠란 대체로 자기 영역에서 자기가 최고 오타쿠고 최고 잘 알고 최고 맞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과거에는 가난해서(이렇게 말하면 돈 없어도 얼마든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사람들 있는데, 그거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다…), 지금은 평론가질을 하느라 오타쿠를 제대로 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많지 않다. 이건 사실이다. 사실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전에도 썼듯, 단지 모여서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 주제 넘게도 여러 말씀을 떠들었다.

https://docs.google.com/document/d/1Gr7oRm5cS_TgqYvSa36Zw3X_5q5RoEMn11wlkeTOqY4/edit?tab=t.0

사실 내 생각에는, 제대로 말하려면 더 긴 시간이 주어져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 얘기였다. 하나를 말해도 말이다. 말하는 사람 입장에선 여러 생각을 담을 수밖에 없다. 가령 우주세기 건담은 인정하지 않는데, 그것은 다만 마음가짐의 문제일 뿐이며, 모든 건담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한 대목이 있다. 대개의 사람은 그냥 웃고 말텐데,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많은 생각을 하는 거 아니겠나?

건담의 아버지가 굳이 턴에이건담을 만들어서 그 때까지의 우주세기와 비우주세기를 하나의 역사로 통합했다. 그러니까 우주세기니 아니니의 논쟁은 무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턴에이 이후에도 우주세기와 비우주세기의 구분법에 근거한 작품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이제 대체역사물 같은 걸 만든다고 하는데… 물론 이쪽에도 모순은 있다. ‘우주세기만 인정한다’라고 했지만, 유니콘을 인정할 수 있는가?

사실 이건 ‘진정한 ~에 대한 논쟁’에 관한 얘기로 끌어올 수 있다. 언젠가 ‘진정한 건담’에 대한 농담을 한 일이 있는데,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진정한 건담이란 퍼스트 건담 밖에는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데!? 퍼스트 건담조차 따지면 ‘진정한 건담’답지 않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진정한 무엇’이라는 것은 실존하는가(이 비슷한 얘기는 제가 쓴 냉소에 관한 책을 보시면 좀 더 나와있다)? 그러나 이 모임이 건담 푸념 모임은 아니니까, 그냥 적당히 저렇게 말하고 마는 것이다. 실제로 행사가 끝나고 나서는 한 건담 애호가와 위와 비슷한 대화를 나누었다.

전반적으로 좀 그런 느낌인데, 만일 모인 사람들이 ‘저쪽이 싫은 책’을 읽고 왔다면 무슨 얘긴지의 맥락을 훨씬 더 정확하게? 물 흐르듯? 수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순전히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이다. 제발. 내 블로그에 적는 내 생각입니다. 사람의 한계는 곧 정체성이고, 내 한계란 결국 내가 쓴 가장 긴 이야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니겠나. 요즘 하는 얘기도 결국은 이전에 쓴 책들과 같은 맥락 안에 있는 거다.

끝나고 나서 뒷풀이 자리에서 오간 대화에서도 흥미로운 얘기들이 있었다. 가령 모바일 게임에 저당잡힌 인생에 대해 말했다. 나는 랑그릿사 모바일이라는, 중국 회사(중국회사 ’치고‘ 안정적이고 성의있는 운영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가 일본 아이피를 갖다가 만든 게임을 5년 넘게 했다. 이런 류의 게임의 정식이 있는데, 매일의 숙제+가챠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매일 12시가 지나기 전에 뭘 눌러서 숙제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새로운 캐릭터가 출시됐을 떼 더 적은 돈을 들여 뽑기를 할 수 있다. 이게 다 매일매일 노력의 댓가인 셈인데, 어느 날 내가 왜 이딴 짓거리를 하고 있는가 현타가 와서 지워버렸다. 뒷풀이 자리의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었는데, 한 분은 그 자리에서 평소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넥슨의 유사한 게임을 지워버렸다.

집회 형태에 대한 얘기도 했는데, 이것도 어느 유튜브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내용이다. 집회에 대한 코멘트는 계급적 기반에 관한 얘기다. 물론 노조나 기타 단체로 조직됐다고 해서 그게 곧 계급이라고 할 순 없다. 그걸 착각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그러나 노조나 단체로 조직화 된 대중을 계급적으로 조직하는 게 더 쉬운 일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내 경험으로만 말하자면 집회 형태와 관련한 논쟁을 처음 본 건 2002년의 촛불 시위였다. 앙마라는 사람이 주도했는데, 이 분은 나중에 흑화한 걸로 기억한다. 하여간 그때는 아예 탈중앙화 된 집회 형태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는데, 섬세한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지금와서 평가해보자면 거기서 드러난 요구는 ‘탈정치’였다. 이게 2006년과 2008년에도 반복되었다. ‘깃발 내리라’는 요구가 대표적이다. 그때는 단체들이 깃발을 들고 오면 ‘순수한 시민’들이 깃발을 내리라고 했다. 자신들이 깃발의 소속으로 오인된다는 이유다. ‘숟가락 얹지 마라’는 거지. 그래서 나중에는 처음에 깃발을 들고 모였다가 ‘순수한 시민’들을 위해 깃발들만 옆으로 비켜주는 절차가 생긴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이게 ‘탈정치’적 요구다. 계급의 기준으로 보면 ‘탈정치’는 분명 조직이 어려워진 요건이다.

깃발이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부활한 것은 박근혜 탄핵 국면이다. 이때는 오히려 ‘순수한 시민’들이 제각기 이상한 깃발을 만들어왔다. 재치와 유머가 돋보였다. 즐거웠다. 그러나 이게 ’탈정치’를 넘어 계급운동(…이라고 말할 수 없더라도 그것을 지향하고 싶어하는 어떤 조직운동)의 쇠퇴와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좌파-조직화의 관점에서 유리해진 조건인가, 불리해진 조건인가? 이번 집회에서는 응원봉이 나왔다. 이건 여러차례 얘기했지만 ‘탈정치’를 지나 ‘소비자‘로서 조직된 대중이 표현된 것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뭘 욕하거나 폄하하자는 게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후원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과거에 비해 회원으로 가입하기 보다는 일회성 후원에 그치는 일이 늘었다고 한다. 첫째로 유행의 문제, 둘째로 ’캔슬‘의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시민단체의 내로남불이 메인 아젠다인 세상이다. 흠없는 시민단체를 찾기 어렵다. 내 후원금 지출은 흠이 없는 시민단체를 향한 것이었으면 한다. 여기서 시민단체는 상품화된다. 이게 ‘소비자적 문법’이다. 이 ‘소비자적 문법’의 소유자들이 잘못했다거나, 죄를 지었다거나,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게 새로운 세상의 문법이라는 거다. 단지, 질문은 이것이다. 이것은 지금 계급을 조직하는 일에 있어서 유리한가, 불리한가?

그게 불리한 조건이라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대중에게 ‘소비자에게 벗어나라! 우리가 조직 좀 하게!’ 이렇게 외칠 것인가? 근데 그렇게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거다.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각적 해법이 필요하다. 그 다각적 해법 중에는 같은 소비자로서(결국 좌파를 자처하는 사람도 어떤 처지에서는 소비자이다) 개입, 관여하는 방식도 있는 것이다. 저는 아마, 그 얘기를 한 것 같다. 그 이야기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만일 이 다각적 해법의 다른 측면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으시다면 저쪽이 싫은 책을 보시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뒷풀이에서 한 말이 좀 더 있는데, 지금은 또다른 얘기를 떠들러 가야 한다. 그래서 그건 또 다음 기회에… 그리고 여기서 한 얘기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어떤 오타쿠적 세계의 얘기이며, 일군의 백래쉬가 법원을 때려부수기 전 얘기다. 법원 때려부순 얘기는 오늘 낮에 택시에서 쓴 글이 있는데, 그것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한 얘기긴 하지만 그건 발행되면 알려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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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와 석열왕과 팬덤정치

2022년 8월 23일 by 이상한 모자

대선에서 어떤 자칭 좌파 단체들이 사실상 석열왕 지지를 선언하는 코미디를 벌이고 어떤 분은 이 논리로 책도 내고 별 일이 다 있었는데, 이제와서 함 봐봐라. 자유민주주의? 적법절차? 다 어디갔냐? 뭐 정상참작을 하자면, 그 단체들에 내분도 있고 그랬다는 사실까지 온정적으로 내가 보려고 하지만, 하여간 스스로 좌파임을 부정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냥 극우파인 석열왕을 지지했기 때문에? 아니지. 그게 비판적 지지와 다를 것도 없는 역-비판적 지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좌파의 선택지를 양당정치의 부산물에 한정한다는 점에서, 체제적 변화를 구상해야 할 좌파가 좌우로 진동하는 것에 그치는 진자운동의 정치, 체제 유지 status quo의 수호자를 자처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배신이었던 것이다.

이 얘기 하면 또 버릇처럼 그래서 이재명이 됐으면 뭐 달랐겠냐~~ 막 이러는데, 앞의 문단을 다시 읽으시오. 역-비판적 지지는 비판적 지지와 다를 바 없다, 라는 말은, 당연히 비판적 지지는 대안이 아니다란 말을 내포하는 거지? 좌파의 이재명 지지는 아마도 비판적 지지겠지? 당연한 거 아니냐 이 답답한 인간들아. 이 얘기를 또 해??? 1윤석열 욕엔 반드시 1이재명 욕을 동반해야 하니? 옛날에 중궈니횽이 즐겨쓰는 표현 빌자면, 하나님이 굳이, 머리를 달아주셨잖아요.

이런 게 팬덤정치의 원형이야. 팬덤정치라 그러면 아~~ 그냥 막 무비판적으로 누구를 추종하는 거구나, 그런 ~빠들을 혼내주자는 거구나 그냥 이렇게 생각하지? 팬덤정치란 왜 작동하냐? 그게 상대에 대한 반대라는 ‘나의 선택’을 정당화 하는 어떤 기제란 말이다. 그런 점에서 팬덤정치는 요즘 말로 무지성이 아니고 극도의 합리성이다. 예를 들어 어떤 좌파가 더블민주당 반대하느라고 석열왕 지지를 해버렸다면, 지금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별 소릴 다 할 거 아니냐. 실제 그런 사람들 있을걸? 팬덤정치란 게 그런데서부터 출발하는 거야. 지금은 그냥 지들 맘에 안들면 다 팬덤정치라고 하지만… 누가 그러냐고? 장이사장님이 그러더라.

얼마 전에 누가 그러더라. 이제부터 좌파는 반민주당 비국민의힘 노선으로 가야 한다… 내가 볼 땐 그것도 웃긴 거야. 그게 비민주당 반국민의힘 노선으로 가자, 이거랑 뭐가 다르냐? 반민주당 반국민의힘 이렇게 표현해도 마찬가지야. 뭔가에 대한 반대, 반대에 대한 반대, 반대에대한반대에 대한 반대… 자기 내용도 없이 외부 변수를 겨냥한 포지셔닝 만으로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강변하려는 태도야 말로 좌파가 직면한 위기의 최대 원인이다.

뭘 더 반대하고 덜 반대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적어도 아 쟤네는 자기 기준이 있구나, 이런 믿음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더블민주당이 검수완박 할 때 차라리 정의당이 국힘이랑 같이 필리버스터를 했어야 됐다고. 그게 국힘이랑 한편 먹는단 얘기가 아니고 자기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석열왕 비판은 비판대로 하고…

이런 얘기를 하려고 책까지 썼잖아. 현실은? 정의당과 역逆정의당의 대립? … 하나님이 머리를… 에효 그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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