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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벽

극우와 민주주의

2026년 10월 16일 by 이상한 모자

최근 한겨레가 좋은 기획을 연재하고 있다. 그러나… 엊그제 보다가 역시 이 대목이 한계다 싶은 게 있어서 따로 적어놔야지 했었는데, 계속 미루다가 이제야 적는다. 뭐 어차피 맨날 하는 얘기긴 한데… 아래의 대목이다.

그렇다면 실제 10대들은 ‘극우화’된 것일까. ‘극우’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학계에서도 논쟁적이다. 한겨레는 관련 논문과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극우’를 판별하는 세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째, 민주주의 원리를 반대하거나 부정한다. 둘째, 강력한 지도자에 의한 통치를 선호하는 등 권위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셋째, 중국과 북한, 성소수자, 장애인 등 특정 집단에 대한 강한 혐오를 나타낸다. 이를 가늠할 수 있는 8개의 문장을 제시하고 10대에게 ‘동의’하는 정도를 물었다.

‘중국인 대상 혐오 발언을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문장에 10대 남성 응답자의 42.4%가 동의(그렇다+매우 그렇다)했다. 유럽 극우 세력이 ‘이민자’를 표적으로 삼았다면, 한국 극우 세력은 ‘중국(인)’을 주로 공격한다. 디스토리팀이 만난 10대들도 외부 집단에 대해 강한 ‘배타주의’ 성향을 내비쳤다. 고등학교 1학년 이주한은 중국인이 위험한 이유에 대해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본) 무비자 입국”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김가연은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면 (일본에서) 사슴을 발로 차고 이런 건 다 중국인이더라” “제주도에서 중국인 때문에 어떤 분이 죽었다는 게시물을 봤다”고 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 진보 언론 등을 중국·북한과 연결하는 파시즘적 음모론이 전파되고 있으며, 이를 접하는 온·오프라인 공간이 일부에겐 ‘극우로 들어가는 관문’이 될 수 있다.”(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최근 유행하는 계급도 ‘밈’이 대표적이다. 피라미드 형태의 계급도 가장 위에 중국공산당이 있고 민주당, 전라도, 4050, 2030 순서로 차례로 짓눌리고 밑바닥에는 10대가 피라미드를 떠받치고 있다.

‘경우에 따라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필요할 수 있다’는 문장에는 남성 응답자의 21.5%가, ‘나와 의견이 같은 단체라면 가끔 폭력을 써도 응원할 것이다’라는 문장에는 15.6%가 동의했다. 중국 혐오를 포함해 앞에 제시한 3개 문장 모두에 동의한 남성 응답자는 8%였다. 10대 남성이 집단적으로 극우화됐다고 단정 짓기엔 다소 낮은 수치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82067.html

나는 이 방법론으로 ‘극우 감염자들'(내 비유다)의 숫자를 셈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말해왔다. 나뿐만이 아니고 그런 말씀하시는 분들이 더 있을 거다. 오늘날의 극우 정치는 정치적 조직화의 방식이 핵심이다. 한 사람이 얼마나 극우농도가 높은가… 이거 필요 없다. 사람은 다 제각각이고 어떤 부분에서 극우라 할지라도 또 어떤 부분에선 진보에 가까울 수도 있다. 가령 유럽 사람들 (어디까지나 그들 기준에서) 나름 멀쩡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극우정당을 대거 찍는다.

극우정치란 무엇인가?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자격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자원과 권한을 빼앗아 가고 있으므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극단적 급진적 방식으로 배제하거나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다. 유대인 절멸! 본래대로면 이 끔찍한 아이디어를 지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극우정치가 위력을 갖게 된 건 이 불리한 구도를 해킹하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극우정치가 민주주의를 자처한다. 자유주의-엘리트 세력을 ‘독재’로 규정하고, 그것과 싸우는 자신들을 ‘독재와 싸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민주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민주주의가 텅 빈 기표가 되는 등가 사슬을 구성하면, 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것만으로도 극우정치의 지지자가 되는 연결 고리가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극우 감염자’를 판별하기 위해 넌 민주주의를 지지하니?(물론 이렇게 직접적으로 묻지 않는 경우라도 말이다)라고 묻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거다. 중국을 왜 혐오하는가? 오늘날의 극우정치 지지자들은  중국인이 더럽고 규칙을 몰라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국이란 나라가 민주주의가 아니라서 혐오한다고 주장한다. 올공시위는 왜 부정선거를 말하면서 왜 참정권 운운하는가? 자신들이 이재명 독재에 맞서 훼손된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들이 다 민주주의자들이다. 충실한 민주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자격이 없는 자들’에 북한, 중국, 진보, 여성, 장애인, 무능력자(그들만의 기준) 등을 몰아넣고 혐오할 수 있다. 왜? 독재-기득권이 이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으로 정치적 이득을 얻고 독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 이 담론 구조가 한국에서만 관찰되는 게 아니다. 전 세계 극우 정치가 이제는 다 이 지랄한다.

그러면 왜 한겨레 혹은 한겨레의 자문에 응한 학자들은 ‘젊은이 8%만 극우론’의 관점을 가져야만 하는 것일까? 제 얘기대로 하면 ‘극우 감염자’가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김문수 찍은 사십 몇 퍼센트를 다 ‘극우 감염자’로 보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거다. 왜냐면 ‘극우 감염자’는 ‘방화벽’ 너머로 밀어내야 하는데, 국민의 40%를 어떻게 밀어내나?

문제는 이런 태도가 극우정치의 정당성을 오히려 강화한다는 것이다. 독일을 위한 대안이 바로 이런 이유로 자기들을 ‘중도 세력’이라고 한다. 가령 국민의힘도 그런 주장 할 수 있다. 우리가 대선 뛰면 국민의 40%가 지지하는데, 그런 극우가 어디 있느냐! 그러나 극우를 극우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겠나? 그러니 여기서는 두 개의 개념을 버려야 하는 거다. 첫째 ‘극우 감염자’, 둘째 ‘방화벽’. 실제 방화벽은 유럽의 예로 볼 때 오늘날 극우정치를 막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또한, 극우정치의 지지자를 논하려면 늘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 조직화 방식, 동원 논리, 그러니까 담론이 문제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

여기서 다 한 얘기잖어?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극우, 극우정치, 방화벽,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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