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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정치 사회 현안

공감과 레닌과 오타쿠

2025년 2월 17일 by 이상한 모자

박선생님이 논문을 다 쓰셨는지 여기 저기 좋은 말씀 막 써내시는데…

인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근대 저널리즘이 그 탄생에서부터 “같은 감정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확인하는 의례”였다고 말했다. 언론학자 존 하틀리는 “근대 저널리즘의 진정한 기원”이 극소수 지식인의 고담준론이 실리던 ‘더 타임스’ 같은 신문이 아니라, 수십만부씩 팔려나갔던 18세기 영국의 ‘포퍼 프레스’(pauper press)였다고 밝힌다. 거기엔 가난한 인민의 기쁨과 슬픔이, 무엇보다 급진적 해방의 염원이 진솔하게 담겨 있었다. 언론이 아프고 힘든 이들을 위로하고 돌볼 때, 사람들은 공동체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자신 또한 타인을 돌보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이모티브 뉴스는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저널리즘의 ‘오래된 미래’(Old Futures)다. 그것은 진영 논리에 갇힌 부족주의적 저널리즘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극우주의에 맞설 효과적인 수단이면서 동시에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82413.html

분명한 건 해결의 열쇠가 논리가 아닌 ‘감정’에 있다는 점이다. 극우주의는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에 똬리를 튼 ‘감정 서사’이며 논리적 설득만으로 해소될 수 없다. 스피노자는 ‘감정은 이성으로는 통제될 수 없고 다른 강력한 감정으로만 제어될 수 있다’고 했다.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에 따르면 증오, 혐오 같은 타자에 대한 적대적 감정은 타자를 전혀 모르거나 자주 접촉하더라도 그 접촉이 피상적일 때 강해진다. 반면 타자와 ‘깊이’ 접촉하고 교류하게 되면 편견은 극적으로 줄어든다. 그것은 동질성 강화, 즉 같은 부족이 되는 과정이라기보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타협의 여지를 만드는 일에 가깝다. 즉, 공감을 통해 세계 속에 각자의 의미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더 나은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약속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트랙터와 응원봉이 남태령에서 만났을 때 우리는 일상에서 늘 경험하던 ‘회원제 민주주의’가 아니라 ‘누구나의 민주주의’를 목도했다. 그 기적을 가능케 한 건 깊은 접촉과 서로 돌보는 감정이었다. 다시 만들 세계는 바로 그 마음에서 시작돼야 한다.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6858.html

박선생님도 나이를 자셔서 그런가… 옛날 같았으면 감정 이런 얘기는 바로 비웃고 그러셨을 분인데…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계급투쟁의 전선 뭐 그런 얘기 할 적에를 생각해보면… 하긴 그것도 이십 몇 년 전입니다 이제…

제가 이런 말씀 다 이해할 깜냥은 안 되고, 그냥 제 딴에 드는 생각을 끄적여 보면, 레닌이 말이다. 이스크라를 하던 시기가 있고 프라우다를 내던 시기가 있어요. 이스크라는 혁명가 이론가 조직가 중심의 신문이지. 이스크라 자체가 신문이자 신문보급망이자 당 조직망이다. 사상과 이론을 보급하는 역할이다. 편집국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이 치열했다. 플레하노프가 멘셰비키의 편을 들면서 레닌은 축출되었다.

멘셰비키와 볼셰비키의 노선은 세간에 이렇게 알려졌다. 멘셰비키의 당 조직론은 느슨한 연대에 기반하는 것이었으나 볼셰비키는 활동가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지하 조직을 원했다. 그런데 1904년 이스크라를 떠난 레닌은 1912년 프라우다를 창간한다. 프라우다의 지면은 노동자, 농민, 병사가 직접 투고한 기사들로 채워졌다. 1905년 혁명과 두마 설치 이후 변화된 정세에 맞춰 전술을 전환한 것이다. 그런데 멘셰비키는 여전히 잘난척 하는 이론가 중심의 체계를 유지했다. 1917년이 되었을 때, 특히 2월 이후 볼셰비키에 대중 조직의 무게 중심이 넘어간 결정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게 표준적인 운동권 서사인데, 돋보기로 그 당시를 들여다 볼 수 있다면, 프라우다에 실린 글들도 위 첫 번째 글에 언급된 언론의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의 글들을 보면서 1)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체감하고 2) 그러면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을 교정하고 3) 남들에게도 같은 생각을 권하면서 하나의 계급으로서 조직화 되는 것이다.

물론 당시의 노동계급 안에서도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차이가 있었겠으나, 이렇게만 말하고 끝내면 하나의 진영이 형성되는 과정에 불과한 것 같지. 그래서 두 번째 글의 인용된 대목에 대한 생각을 추가로 하게 되는 것인데, 타자와의 감정적 공감대를 논리와 이성과 설득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은 맞는 얘기 같다.

그래서 지난 번에 좌파-오타쿠 모임에서 취미를 더 열심히 즐기자 한 것이다. 오타쿠라고 한다면, 어떤 타자들과는 같은 취미라는 이미 훌륭한 공감대가 먼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그냥 서로 낄낄대는 것만으로는 취미와 현실을 연결시킬 수 없으니 비평적 활동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는 것이다. 꼭 좌파-오타쿠 프라우다를 만들자 이런 게 아니라고 해도… 프라모델 아니고 임마…

그냥 생각나는 걸 적어봤다. 여기 쓴 이야기는 박선생님의 생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오로지 저의 망상임을 밝힘.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이스크라, 프라우다

전광훈보다 나으니 손현보는 봐줘라?

2025년 2월 17일 by 이상한 모자

오늘 보니까 대략 견적 나온다. 전광훈 같은 녀석도 있는데… 손현보 정도는 상식파라는 것이다. 살인범도 있으니 폭행범 정도는 봐줄만 하다는 이런 논리는 곳곳에서 횡행한다. 못난 자신을 정당화 하는 이러한 논리가 많이 있다. 때리는 남편도 있는데 나 정도는 양반이지!(배우자를 착취하며) … 같은 거?

가령 이런 칼럼.

그리고 2020년 초,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이 새로운보수당 등과 탄핵의 강을 건너겠다며 통합을 추진하자 이를 배신으로 규정한 전광훈 등 강성 보수층은 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다. 보수 주류는 미래통합당으로 뭉쳐 중도화를 시도했지만 강성 보수층의 눈치를 보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코로나 국면에서 총선이 본격화됐는데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외 집회가 이어졌고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일부 인사의 성적 폭언 등이 터졌다. 하지만 보수 유튜버들과 강경 보수층은 “그게 뭐가 문제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총선에서 위성 정당을 포함해서 민주당이 180석, 미래통합당이 103석을 얻었다.

비싼 대가를 치른 보수 정치권은 반대로 돌아섰다.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꾸고 유튜버, 강성 보수층과 절연했다. 부정선거 주장엔 곁을 주지 않았다. 서울시장 재보선이 열리자 탈민주당의 금태섭-중도의 안철수-보수 오세훈이 순차적 단일화를 성사시켜 이겼다. 그 흐름이 이어진 것이 2022년 윤석열의 대선 승리다. 지금도 갈림길이다. 지난 주말 보수 집회에선 거친 발언도 있었지만 5·18을 긍정하는 이야기와 “갈등과 분열이 아니라 통합과 화합으로 뭉쳐야만 한다”는 구호가 나왔다. 그 말대로 하면 된다.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5/02/17/DFK7M2I2QZEY5FPGZNQN5DS36M/

이 논리의 연장선으로 가면, 내란을 옹호하고 이 나라는 계엄이 필요한 나라라는 취지의 주장을 계속해도, 전광훈 수준만 아니면 되는 것이다. 물론 꼭 그러라고 쓴 글은 아닐테고, 독자층을 고려하여 알아들으라고 쓴 글이겠지만, 논리만 따지면 그렇다는 것.

국힘이 우측에서 피벗을 이런 식으로 시도하고 있다면, 좌측에서는 한동훈을 이용할 조짐이다. 이 얘기는 지난주에 친윤 인사들도 대놓고 막 하던데, 오늘 비싼 컨설턴트 대담에서도 얘기가 나오더라.

Q : 조기 대선을 하게 되면 어떤 후보가 되는 게 여권에 유리할까.

A : ▶이철희=“보수 진영이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나 심지어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까지 포용해 넓은 연합의 틀을 만든다면 해볼 만한 싸움 아닐까. 결국 탄핵의 바다를 어떻게 건너느냐가 숙제가 될 거다. 하지만 김문수 장관의 지지율이 견고해 보이는 점은 중도 확장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A : ▶박성민=“자유 우파 결집론이라는 건 역대 선거에서 채택된 적이 한 번도 없다. 당연히 선거의 관건은 중도 외연 확장이다. 현재 내부 갈등이 있어도 결국 선거를 이길 사람을 내보내자고 할 것이다. 결국 윤 대통령과 대척점에 섰던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 의원, 유 전 의원의 싸움이 될 것으로 본다.”

A : ▶이철희=“지금 국민의힘을 이끄는 주류, 즉 친윤계는 대선보다는 총선에 관심 있어 보인다. 일부는 오 시장이 당을 장악할 것 같진 않으니 만만하게 보고, 가보자는 기류가 있다. 나는 유 전 의원이 제일 센 후보 같지만 보수에선 유 전 의원을 뽑지 않을 거다.”

A : ▶박성민=“오늘(16일) 한 전 대표가 페이스북에 활동 재개 글을 올렸다. 그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원래 하던 (보수 개혁) 얘기를 세게 할 거고, 김문수 장관이나 홍준표 대구시장과 충돌할 거다. 그러면 오히려 오 시장이 반사이익을 보지 않겠나.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새천년민주당) 후보가 이회창(한나라당) 후보보다 개혁적으로 보이고, 권영길(민주노동당) 후보보다 온건해 보이는 효과를 본 것 같은 이치다.”

A : ▶이철희=“윤 대통령이 ‘이기는 후보로 가야 한다’는 데 동의하느냐도 문제다. 윤 대통령이 대선에서 심각한 교란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4416

저게 컨설턴트가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고 실제 오세훈-친윤쓰들의 계산법인 걸로 안다. 김문수, 홍준표는 한동훈이 잡아줄테고, 그렇게 되더라도 당원 및 지지층이 한동훈을 찍지는 못할테니 결국 오세훈이 먹는 판이 되지 않겠느냐 라는…. 그리고 더블민주당 쪽도 오세훈이 나오면 국힘 지지층이 그나마 온전히 보전된 채로 오는 거 아니냐는 우려를 한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그걸로도 판을 뒤집는 건 역부족이다. 그러니까 완전히 판을 뒤집기 위해서는 윤석열이 하야를 선언해가지고 보수층 내 탄핵 찬반 구도를 완전히 중화시켜 줘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그래서 하야론을 떠드는 것. 오늘도 동아일보가 떠들더라.

여기서 제가 생각하는 건 뭐? 역시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게 진리 아닌가? 전광훈이 싫고 한동훈이 싫어서 오세훈에 몰려가는….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손현보, 오세훈, 전광훈, 한동훈

SNS적 사고방식

2025년 2월 17일 by 이상한 모자

내가 진짜 웃기다고 생각하는 항변이 있는데, 가령 내가 이 아래에도 ‘경향적으로 젊은 세대 남성은 보수적, 여성은 진보적’ 이런 얘기를 한단 말이다. 그러면 바로 뭐라고 그러냐면, 젊은 여성이라고 다 진보적이냐, 터어프으는 어떻게 설명할거냐, 막 이런단 말야. 근데 내가 그거를 갖고 뭐라고 했나??? 터프 그게 진보적이라 그랬어???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오냐?

똑같은 기준으로, 86세대는 그럼 다 진보적이냐? 또는, 86세대는 다 무조건 위선적이고 지 자식새끼 좋은 학교 보내자고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뭐 그런 거냐? 다 그런 거냐? 아니잖아. 86세대에 해당하는 인구 중에 조국처럼 할 수 있는 녀석이 얼마나 되냐??? 근데 왜 86세대 한테는 86들이 무조건 다 세상 진보를 다 대표해야 되는 것처럼, 또는 모든 위선을 다 86이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왜 그러는 거냐? 그 세대가 가지는 경향과 상징성이 있어서 그러는 거잖아. 근데 86에 대해서는 뭐 막 그러던 사람들이 20대 얘기하면 갑자기 이거는 이래서 아니고 저거는 저래서 아니고 그런다니까.

이게 왜 이러냐. 첫째, 정치적 효과 때문. 이번 선거에선 이대남 이대녀 이거 갈라가지고 이대남이 보수쪽으로 완전히 붙게 하면 안 된다 뭐 이런 거지. 둘째, SNS적 사고방식 때문. 젊은 세대 남성의 보수화를 자꾸 얘기하는 것은 그렇게 된 이유와 사회적 구조를 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일 것이다. 그래서 제가 저쪽이 싫은 책에다가 이렇게 썼다. ‘진보’와 ‘이익’이 결합되어 있을 때(자칭 진보가 경제적으로는 자유경쟁을 논하면서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일부 띄었던 것도 이 논리)는 상관이 없었는데, ‘진보’와 ‘이익’이 분리되기 시작하면서 생긴 문제이다… 이익을 쟁취하려고 진보를 한 거였는데…

가령 언론으로 환원해서 본다면, 방송장악의 문제 같은 거거든. 옛날에 방송장악이 뭐가 문제냐고 했을 때, 방송이 장악돼서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아서 시청률이 바닥을 기고 그래서 회사가 어려워진다 그랬거든? 그래서 방송장악만 걷어내면 시청률도 뛰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막 그랬단 말야. 근데 그러냐? 아니지. 오히려 방송장악을 걷어내고 방송을 통해 공적가치(공정한 보도)를 추구하면 시청률은 오르지 않지. 해법은 방송장악을 걷어낸 후 돈의 논리를 따르는 것인데 그러면 더 이상 공적가치를 구현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발생하는 거고. 이런 때에 절실히 필요한 존재가 빌런 즉 윤석열과 같은 존재이다. 윤석열이 나타나서 공적가치와 돈의 논리(시청률)를 한 방에 해결… 이게 MBC와 JTBC가 흥하는 이유이지. 즉, 1987년 체제에서 진보란 반독재이며 독재가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개념의 덩어리이다…

하여간에 옆 길로 샜는데. 그런데 SNS적 사고방식에서는 이런 얘기가 아니고, ‘젊은 세대 남성 보수화’ 이렇게 키워드 딱 던지면, 아 젊은 세대 남성 욕하자는 얘기구나! 그냥 이렇게 생각한다고. 실제 얘기가 그렇게 되고. 그래서 자동적으로 야! 젊은 세대 남성만 욕 먹을 이유 있냐? 여성도 욕 먹어야 할 애들이 있어! 이런 반론을 꺼내는 거야. 그게 터프인 거지. 그럼 얘기가 어떻게 되냐, 이쪽 저쪽 욕 먹어야 할 놈과 칭찬 받아야 할 놈을 죄 꺼내놓고 일별하는 뭐 그런 얘기만 하는 거야. 그게 SNS야. 애초에 하려던 얘기는 없어지고… 그것만 주구장창…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되는 거야! 멍충이들…

이제 내가 이렇게 쓰면 어떤 놈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냐? 내가 막 터프 옹호했다고… 2004년 쯤에 누가 마크 죽커버그랑 짹 도시 이런 놈들을 아주 죽도록 패고 짹 소리도 못하게 해놨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냥 싸이월드나 하면서 도토리로 미니홈피나 꾸미고 파도타기나 좀 하고 그러고 살면 됐었던 건데…

Posted in: 잡감, 정치 사회 현안 Tagged: SNS, 세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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