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간 여기서 두어 차례 언급했던 한겨레의 극우 기획 마지막 회인 거 같은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83358.html
이런 기획은 대개 좌담으로 끝내는 그런 클리셰가 있다. 전문가들이 출동하였는데, 역시 우려했던 한계가 여기서 다 드러난 걸로 보인다. 참가자들 다수가 현대의 극우정치를 과거의 구도로만 보려 하거나, 문제를 파편화 해 평가하거나, 축소하려고 하는 인상을 준다. 인상이라고 하니까 느낌적 느낌을 말하는 것 같겠지만, 그게 아니고 구체적 발언에 이런 문제가 드러난다는 거다. 기사의 해법에는 동의하면서도, 이런 전형적 시각이 갖는 위험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령 아래 이어지는 발언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김종우
‘왜 1020 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인스타그램에선 진보적 의제가 잘 안 보이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이 세대가 진보 담론을 주도하는 세대가 아니니까’라는 답변도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청년 하위문화는 기성세대에 반하는, 안티테제를 지향한다.박선경
저도 안티테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정치 지형에서 민주당이 기득권이었고, 10대가 반기득권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면도 있다. 특정 플랫폼에 특정 이념이 더 유리하다고 보긴 어렵다. 한겨레가 10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일수록,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할수록 5·18 민주화운동 등을 조롱하는 밈을 많이 보고, 또 그런 밈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왔다. ‘보수화’는 맞다. 하지만 ‘극우화’라고 말하긴 어렵다. 전세계 극우 논의에서 공통적인 극우의 기준은 ‘폭력에 대한 용인’이다. 밈을 보고 깔깔 웃는 ‘강한 보수 성향’과 폭력적 수단을 용인하는 ‘극우 성향’ 사이에는 구분이 필요하다. 하지만 설문조사 결과에서 ‘남성이 더 차별받는다’는 인식이 극우를 결정짓는 변수로 나온 것은 중요하게 봐야 한다. 10대 남성의 경우, 군대 문제 때문에 스스로 ‘피해자’란 의식이 강해지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홍성수
군대 문제가 혐오 담론 확산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여성이 겪는 성차별은 양상이 복잡하다. 이제 ‘여성은 채용 안 한다’고 표방하는 기업은 없다. 반면 남성 차별은 설명하기 쉽다. ‘남자는 군대에 가는데 여자는 안 간다’가 끝이다. 인스타그램 특성에 맞는 담론 확산에 유리한 논리 구조다. 10대 남성들이 ‘피해자’ 정체성을 갖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둔감해지고 혐오에 동참하기 쉬워진다.문성호
대학 입시도 중요한 것 같다. 서울에 여자대학교가 4곳 있다는 것에 (남성들의) 분노가 크다. 서울에 자사고 여성 정원이 남성의 4분의 1 수준이라고 반박해도 듣질 않는다. 대입 경쟁에 내몰린 교육 환경 자체가 극우를 양산하는 셈이다. ‘쟤는 나보다 (성적이) 낮아’와 같은 인식을 점점 더 내면화한다.박선경
최근 혐오 양상을 보면, 능력·재산·성별이 우위에 있는 자가 군림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타인이 ‘루저’로 인식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가지고 놀아도 된다고 정당화한다. 세상을 위아래로 나누는 ‘사회적 지배 성향’의 태도가 마음 밑바닥에서 작동하는 것 같다.홍성수
극우 세력의 여러 특징 중 기본이 표적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다. 이는 약자의 슬픔에 대한 무감각에 기반을 둔다. 중국인을 혐오하는 표현을 보면 대림동에 사는 중국 동포가 어떻게 느낄까,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면 유가족이나 광주 학생들이 어떻게 느낄까, 이런 감각 자체에 둔감한 거다. 독일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학살) 교육에서 확인된 것처럼,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약자나 소수자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중요하다.
첫째, 청년들의 반기득권 정서는 언제나 당연한 것인데, 이들이 사회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윗세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 반기득권 정서가 과거에는 진보적 운동의 동력이 되었는데, 지금은 왜 이 논자들이 말하는대로 보수화 혹은 극우화의 동력이 되고 있느냐이다.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그냥 이것도 관계있고 저것도 관계있다, 이런 얘기만 반복되어서는 해법을 찾기가 어려운 국면에 우리는 들어와 있다. 왜 그때는 그랬고 이때는 이랬을까? 자타칭 진보가 집권을 해봤기 때문에, 혹은 이들이 내로남불이어서, 정치를 잘못해서 등등 여러가지 설명 방식이 가능하지만 그 모든 걸 관통하는 하나의 답은 정치가 이 반기득권 정서를 어떻게 조직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유가 뭐든 이들을 진보-정치가 조직했지만, 이제는 극우정치가 조직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조직의 방식과 매커니즘, 이를 가능케 하는 담론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못했던 일을 이제는 극우정치가 할 수 있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런데 계속 논의가 어떤 집단을 극우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고… 등등 하는 영역으로 되돌아간다. 원래 세상만사 모든 것은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 초기에 자기가 진보라고 하는 사람이 과반 이상이었다. 그걸 근거로 앞으로는 진보의 시대가 이어질 거라고 전망한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난 그 때도 상황 달라지면 자기가 보수라고 하는 사람이 더 늘어나고 정치 구도도 그렇게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걸 갖고 공개 토론 비슷하게 했던 기억도 난다. 왜냐면 자기가 진보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 자기가 진보적 지향을 틀림없이 갖고 있어서 그렇게 답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가 개같아서 자기가 진보라고 하는 거지… 마찬가지 원리로 진보(라고들 알려져있는) 집단이 죽을 쑤면 자기가 보수라고 하는 사람은 늘어나는 것이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진보 보수도 단정이 안 되는데 극우냐 아니냐가 단정이 되겠나? 그러나 극우정치를 뒷받침하고 그들을 지지하며 세계를 극우화 하는데 기여를 하고 있으니까 극우정치의 지지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둘째… 군대 및 피해자 정체성, 대학 입시 및 능력주의,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가 분절적으로 언급되는데 이게 하나의 서사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자격이 없는 이들’이 불순한 동기를 가진 기득권에 의하여 자원과 권력을 배분받고 있어서 ‘자격을 가진 이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므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 이게 현대 극우정치의 핵심 서사이다. 이 서사를 떠받치기 위해 피해자 정체성과 능력주의 등이 동원되는 것이며, 이 논리의 연장이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로 표출되는 것이며, 이를 논리적이 아닌 정서적으로 정당화 하기 위해 짐이 동원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파편화하고 주변화 하면 핵심을 볼 수 없다.
셋째, 폭력을 용인하는가가 극우의 척도이다 라는 말은 수단을 얼마나 과격하게 급진적으로 동원할 것이냐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문제는 오늘날 폭력은 전체주의-권위주의의 속성인 것처럼 덧칠되어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금지되어 있으므로(물론 주류의 담론에서, 기만적으로… 논하자면 기니까 일단 넘어가시라), “나는 일반적으로 폭력을 옹호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극우정치는 조건부로 폭력을 옹호한다. 너는 폭력을 옹호하니? 라고 물어보면 아니오 라고 하지만, 극단적 페미니스트에 대한 폭력은 옹호하니? 라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답한다는 것이다. 이 답을 정당화하는 것도 밈이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밈적 영상과 그 밑에 댓글 달아놓은 것들을 좀 보시라!
이러한 태도는 통계로도 일부 확인된다. 여기서도 한참 전에 인용한 지난 시사인의 기사 내용 일부가 이를 확인해준다.
민주주의 규범과 관련한 여러 문항에서 2030 남성은 전체 평균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또래 여성들과의 차이도 그리 크지 않다. 물론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20대 남성은 보수, 20대 여성은 진보 성향이 높게 나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보수와 극우는 다르다. ‘2030 남성 극우화’ 담론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 집단에 존재하는 소수의 ‘계엄 옹호·탄핵 반대’ 세력이 과대 대표된 측면이 없지 않다.
다만 2030 남성들의 버튼을 누르는 요인이 있다. 페미니즘이다. ‘지나친 페미니즘의 영향을 막기 위해서라면 법규칙을 어기거나 무력을 사용하는 게 정당화될 수 있다’는 문장을 제시했다. 전체에서 14%가 동의한 반면, 20대 남자의 32%, 30대 남자의 25%가 동의했다. 이는 동세대 여자들과 16%포인트에서 27%포인트 차이 날 뿐 아니라 여타 세대 남자들에 비해서도 튀는 수치다. 즉 2030 남성 대부분은 민주주의적 규범을 대체로 존중하지만, 적어도 이 집단의 네 명 중 한 명은 페미니즘에 대한 강한 반감과 불신을 이유로 무력도 불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최근 시사인 기사를 보면 2030 남성의 윤석열 비상계엄에 대한 태도가 특출나게 긍정적으로 나오는 것이 확인된다고 한다. 온라인 기사는 현재 구독자만 볼 수 있으니 미국 교수님의 블로그 링크(https://sovidence.tistory.com/1332)로 대신하겠다. 블로그에 첨부된 그림을 잘 보시기 바란다. 시사인은 얼마 전까지도 이대남 극우화를 단정하면 안돼요 이런 내용의 기사를 몇 차례에 걸쳐 썼었다. 모르긴 몰라도 조사 결과가 이렇게 나온 데 대해 자기들도 당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새로운 조사에서 젊은 남성의 비상계엄은 정당했다라는 응답은 왜 증가했을까? 꾸준히 생각하고 고민한 결과? 그렇다기 보다는 극우정치의 반-이재명, 반-민주당 담론(이게 뭔지는 여기서 수도 없이 얘기했다)이 윤석열의 만행을 정당화 하는 데로 이끄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다. 앞서 보수화/극우화를 나누는 도식으로 하면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다. 왜? 그 도식에 따르면 반-이재명, 반-민주당 담론은 보수화를 정당화 하지 극우화를 정당화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극우화가 아닌 보수화 된 계층은 이재명과 민주당은 증오해도 윤석열의 비상계엄 앞에서는 멈춰야 한다. 실제 다른 성별 및 세대는 어느 정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젊은 남성은 아니다. 고령층보다 변화가 더 드라마틱 하다. 폭력의 용인을 기준으로 보수화/극우화를 손쉽게 도식으로 나눌 수 없다는 증거다.
그럼 젊은 남성은 다 극우인가요? 내가 말했잖아요. 극우 정치의 조직화의 방식이 어떻게 담론으로 작동하고 있고, 거기에 젊은 남성 집단의 뭐가 반응하고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그 얘기는 여기서도 충분히 한 거 같으니 리바이벌 하지 않고…
아무튼 간에, 좋은 기획에도 불구하고 답답하다 이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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