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연말 방송 내용
지난 일요일 이런 내용으로 방송을 했더니 도중에 너무 암울하다며 희망을 달라는 청취자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그래서 황급히 불행과 불운은 저 불행의 아이콘이 모두 안고 가겠으니 청취자 여러분은 그저 행복하시라… 하고 말하며 수습했다.
1.
오늘은 재벌 소식에 잠이 안 온다. 한 취업포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4년제 대학생 1천여명을 대상으로 매출 상위 100대 기업 가운데 가장 취업하고 싶은 삼성과 대한항공이 1, 2위를 차지했다. 최근에 시끄러운 일이 많았는데도 역시 인기가 좋다.
삼성의 경우 최근 자회사 노조 와해 공작 등의 문제로 임직원들이 1심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는데 이 내용 중에는 연말정산 때 직원들이 기부금을 낸 내역을 들여다 보고 혹시 불온단체에 후원을 한 것은 아닌지를 감시했다는 것도 있다. 문건에는 300명이 넘는 직원들을 모니터링해 특별관리 한다고 써있는데 실제로 시행됐는지는 알 수 없다. 들여다 본 것 만으로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대한항공은 경영권 다툼 얘기가 또 말썽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어머니 이명희 씨 집에서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보는 가운데 벽난로용 부지깽이를 휘둘러 꽃병이 깨졌다는 등… 조양호 회장 사망 이후 상황이 경영권 분쟁으로 갈 확률이 높아진 것인데 이른바 오너리스크가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사례가 또 하나 추가될 듯 하다.
이렇게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있는 기업들인데도 젊은이들이 취업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뭘까? 연봉과 복지제도 및 근무환경을 고려했다는 응답이 제일 많았다. 구체적인 순위에 있어선 기업을 다각적으로 평가했다기 보다는 이미지가 많이 좌우했을 것이다. 그래서 순위 자체를 놓고 따지는 것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봐야 한다. 규모가 크고 안정적인 고용이 보장되는, 근무조건이 좋은 직장을 선호한다는 거고 개인정보의 침해나 오너리스크 같은 것은 앞서의 조건보다는 우선순위가 한참 뒤로 밀려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취업난으로 인한 고통이 심각하다는 것인데, 여기서 취업난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앞서 조사에서 주목할 대목은 국내 4년제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는 것, 그리고 선택지가 매출 상위 100대기업이라는 것이다. 만일 중소기업에라도 취업하고 싶은지를 물었으면 어땠을까? 대다수가 부정적으로 답했을 것이다. 실제로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취업 지연으로 이어지는 게 취업난의 한 축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고 중소기업에라도 취업하라는 권유를 할 수도 없다. 최근 보도를 보면 중소기업에 취업한 경우 이직을 통해 더 안정적인 직장으로 옮길 가능성이 실제로 크지 않은 걸로 나타났다. 즉 첫 직장이 어디가 되느냐에 따라 나머지 인생이 어떻게 되느냐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첫 직장을 어디로 갖느냐가 더욱 더 중요하다. 이런 상황이니 함부로 중소기업 취업을 권유할 수 없다.
취업 뿐만이 아니고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유치원을 어디로 보내느냐부터가 엘리트 인생이 되느냐 아니면 그저 그런 인생이 되느냐의 갈림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영어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사립초등학교, 국제중학교, 영재고 과학고 외고… 해외 유학… 이 과정에서 탈락하면 실패하는 건데 한 번 실패하면 패자부활전은 없다. 우리 사회가 이런 논리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고 취업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즉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효율성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고, 효율의 기준을 나의 이익에 두게 되니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논리가 판을 치게 됐다. 이런 세계관에선 실패한 사람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실패하는 것이고 성공한 사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 중에는 부당한 수단을 써서 성공한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게 나의 성공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었다면 우리는 분노하지만 나의 성공과 관계없는 일일 때는 나몰라라 한다.
예를 들면,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승계를 위해 무슨 일을 했더라도 우리는 크게 분노하지 않는다. 다만 이재용 부회장의 이러한 시도가 정유라 씨에게 말을 사주는 것까지 이어졌다면 우리는 분노하게 된다. 재벌의 경영승계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말은 입시와 관련된 거고 그건 나의 이익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취업의 영역에서는 말 사주는 것도 관계없기 때문에 아직도 삼성전자 취업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슬픈 세상을 살고 있다.
2.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돼서 잠이 오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낭만적으로 생각하면 청년 중년 노년 각각의 삶에 새로움과 즐거움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실적 고통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돈이 있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으면 고통을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새로 직장이나 직업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작아진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아야 하는데 이 삶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도 알 수 없다.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한데 가능성은 계속 줄어가는 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 아닌가 한다.
미래가 예측 가능하면 좀 나을 것이다. 한국 사람은 미래가 예측 가능한 사람과 예측 불가능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미래가 예측 가능한 사람은… 매년 임금이 정해진 수준으로 오르고 정년이 보장돼있으며 노후 대책도 분명하고 자식 농사도 잘 돼있는 사람이다. 미래가 예측 불가능한 사람은 직업이 없고 있어도 언제 짤릴지 모르며 따라서 노후 대책 같은 것은 없고 매주 로또 긁는 것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이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하려고 한다.
얼마 전에 신문에 40대 니트족을 다룬 기사가 실렸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노동패널학술조사에서 발표한 보고서 내용을 쓴 것이다. 니트족이란 일을 하지 않고 직업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즉 일자리를 구하는 것을 포기했기 떄문에 지금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등… 그런데 이런 상태인 40대가 2018년 기준 거의 20만에 달한다는 것이다. 2000년에는 3만3천명 정도였으니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5배나 늘어났다고 보면 된다.
보도에 의하면 30대 니트와 40대 니트가 양상이 다르다는데, 30대 니트는 20대에는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 새로 진입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20대에 취업을 했거나 구직을 하다가 30대에 실직하거나 구직활동이 잘 안돼 니트가 된 경우다. 하지만 40대는 30대에도 니트였던 사람들이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취업에 실패하고 어느 시점을 넘기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최근에 40대 고용률 얘기가 화제였다. 고용관련 통계에서 산업 분류로는 제조업, 연령대로는 40대 고용률이 계속 좋지 않은 상황인 걸로 확인되고 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특단의 조치까지 언급할 정도였다. 기획재정부의 내년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40대 고용률 대책이 있는데 창업 지원이라든가 이런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40대는 그 특성상 새로운 일자리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기 쉽지 않아 재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게 잘못하면 그렇잖아도 상황이 좋지 않은 자영업자 양산으로 갈 수 있는데다, 40대 니트 이런 부분에선 대책이 안 된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고용대책에만 초점을 맞추면 해결이 안 된다. 좀 더 예측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줘야 한다. 어떤 직업을 갖든 또는 직업이 있든 없든 최소한 삶의 유지가 가능한 방향으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즉, 사회안전망이 강화돼야 하고 복지제도가 확충돼야 하는데, 이걸 원론적으로 말하면 다들 동의하겠지만 세금 문제나 이런 쪽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쉽지 않다. 그래서 역시 정치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