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정치개혁 논의의 경우
오늘 진짜보수 정진석님께서 이렇게 페이스북에 쓰셨다고 한다.
“(일본이) 2인에서 5인까지를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하면서 공천권을 갖기 위한 당내 파벌정치가 심화됐다”, “이 폐해를 막기 위해 소선거구제로 돌아갔고, 정당들의 파벌정치가 완화됐다고 평가된다”
1차적으론 틀린 말 아닌데, 디테일이 좀 있어야 한다. 당시 일본인들이 생각한 스토리라는 건 이렇다. 어느 날 뉴스를 보는데,정치인들이 부정한 돈을 받았다고 막 잡혀가는 거야. 심지어 수상을 지낸 인사까지 잡혀갔으니 말 다했지. 정치는 참 썩었군! 이게 록히드 사건이다.
록히드 사건의 주인공은 야미쇼군 다나카 가쿠에이이다. 이 양반은 원래 요시다 시게루의 오른팔은 아니고 왼팔쯤 되는 사토 에이사쿠의 오른팔이었는데, 사토 에이사쿠 말년에 독립을 해서 자기 식구를 꾸려 수상이 된 사람이다. 학력이 중학교에서 끝난 전형적인 언더독 서사를 갖고 있는데, 그래서 현대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든지 많은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양반의 특기랄까 선호했던 정치전략이 ‘일본열도개조론'(책 제목)으로 대표되는 전면적 토건사업과 이를 통한 정경유착으로 형성된 금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거였다. 고도성장시대에 딱 맞는 전략이었기 때문에 다나카파는 강했다!
또 이 시기는 자민당의 태생적 갈등구도(일단 경제부터 키우고 보자는 쪽과 전범이라는 굴레부터 벗자는 쪽의 연합)가 가쿠(가쿠에이의 가쿠)후쿠(후쿠다의 후쿠)전쟁의 형태로 격렬하게 전개되었는데, 당연히 돈으로 사람을 모으는 다나카파가 강할 수밖에 없지. 뒤집어 말하면 다나카파의 금권정치라는 거는 파벌을 유지하는데 있어 비자금을 활용하는 형태였다는 거지. 이러한 사정의 전말이 문예춘추를 통해 공개되고, 다나카 가쿠에이 이후에도 몇 차례의 대형 정치부패스캔들이 화제가 되면서 정치개혁의 주요 의제는 파벌-부패 척결이 돼버린 거다. 그니까 우리도 옛날에 한나라당이 쎘을 때 보면, 뉴스에 친박 친이 나와서 싸우면 피곤하고 성질나잖아? 민생은 안 챙기고 말야. 근데 알고 보니까 이 피곤한 싸움이 가능한 이유는 친박 친이 구조를 부정한 돈으로 유지한 덕분이다… 그러니까 친박 친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를 없애는 게 정치를 똑바로 만드는 길이다… 이렇게 되는 거지.
그럼 자민당 파벌 구조는 어떻게 유지된 거냐? 여기서 문제라고 등장한 게 중선거구제였음. 비유하자면 친박도 1명 친이도 1명 이렇게 공천을 할 수 있는 조건인 상황에, 이 친박 친이가 다 동네를 쥐락펴락 하는 자본과 관료와 유착한 상태이다… 그니까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파벌 영수한테 잘 보여야 되고, 더 유착해야 되고, 부정한 돈은 더 필요하고… 이게 중선거구제 때문이 아니냐. 그러니까 이걸 바꾸자! 이렇게 해서 비례대표-소선거구제 조합으로의 제도개선이 정치개혁 의제의 알파이자 오메가로서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이 과제는 우리 윤통도 좋아하는 기득권의 저항 때문에 관철이 안 되다가 정치개혁 원포인트를 의제로 비자민7당이 연립정권을 통해 집권하면서 관철이 되게 된 것이게 되는 것이 된 것이었드아!!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소선거구제 도입이 그러면 정치개혁의 효과를 낼 수 있게 되었느냐? 아니지. 소선거구제를 도입했더니 이제는 공천을 총재한테 받아야 되는 상황이 된 것 뿐임. 고이즈미의 극장정치까지 맞물리면서 파벌구도는 확실히 약화됐지만 대신에 총재의 권한이 강해지고 이게 나중에는 ‘아베1강’의 문제로까지 이어지게 됐음. 그럼 이제 아베1강이 문제니까 다시 중선거구를 도입하는 게 개혁인거냐?
그리고 파벌의 약화는… ‘자민당을 박살내겠다’는 구호로 집권한 고이즈미가 일부러 파벌을 개박살내는 일련의 제스처를 동원했기 때문인 영향도 크다. 파벌영수를 개무시하고 자기가 각 파벌의 2인자를 직접 포섭해서 키워버린다든지(같은 파벌 출신이었으나 아베 신조도 이들 중 하나였음), 우정민영화 이슈로 금권정치의 동력을 짓밟아 다나카파의 후신들(이 때는 세칭 하시모토파였겠지)을 고사 직전까지 몰아 붙인다든지… 근데 파벌구도가 완전히 해체된적은 없거든. 아베 신조가 아베1강시대인데도 2차집권기에 파벌안배를 했기 때문에, 파벌은 지금도 있지. 아베파 기시다파 아소파 모테기파 니카이파 얘기하잖아. 다만 옛날에 가쿠후쿠전쟁 같은 그런 분위기가 아닐 뿐이지.
그니까 다 지나고 보면… 일본의 경우에 한정해 보면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꾸거나 말거나 달라진 게 뭐냐는 것임. 뒤집어 말하면, 일본의 문제 그러니까 파벌정치라든지 아베1강이라든지 이런 거는 오히려 선거구제 문제가 핵심이 아닌 것임. 선거구제는 일종의 참주선동에서의 참주처럼 끌려나온 것에 불과했던 거지. 그래서 제가 어떤 제도가 어떤 제도보다 낫다든지, 이런 논쟁만큼(소용이 없다는 게 아님) 정치적 맥락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임. 정치적 맥락 없는 제도 논의는 허깨비 같은 결말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함.
가령 제가 책에 이렇게 썼어요. 연동형무슨비례대표제를 도입해 놓고 위성정당을 맨들어서 그걸 개박살내버렸잖아. 그럼 선거법 개정을 염원한 우리 국민들이 위성정당 만든 정당들을 막 심판해야되잖아. 그러든가요? 아니지. 왜지? 정의당이나 우리공화당(제가 균형감있게 하려고 일부러 넣어봤습니다)을 키워줄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임. 내가 이거를, 2019년에 정의당 관계자가 출연한 한겨레 팟캐스트 방송에서도 말씀을 드렸는데, 선거법 개정 타령만 하면 오히려 망한다, 이 말씀을… 에휴 아닙니다 이제와서… 됐고요.
결국 정진석 씨가 유도하는 정치적 맥락은 뭐다? “조건 없이 원상태로 돌리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 중대선거구제 갖고 물고 빨고 핥는 걸 한 달 정도는 하리라 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