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에 있어 선거법이라는 환상
엊그제 우연히 비대위원장님이 된 변호사님과 마주쳤다. 비대위원장님은 담배를 입에 물고는 좀 좋게 말을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제가 말씀을 드렸다. 뭘 좋게 말해주는가? 사실 그렇다. 정의당에 대해서 대체 뭘 좋게 말해줘야 하나? 비대위원장님이 말했다. 내가 불쌍하지도 않느냐! 내가 그랬다. 제가 제일 불쌍합니다!
지난주엔가 한겨레 사람들이 ‘월간 김민하’라는 방송을 하라고 해놓구선 언론노조 KBS본부장을 부르고 비대위원장님을 전화 연결하고 그랬다. 이 방송은 1부에 김민하가 나와서 뭘 떠들고 2부에 다른 분이 나와서 무슨 말씀을 하는 형식인데, 최근에는 2부에 김준일님이 나오는 걸로 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또 김준일님이 2부에 나오니 그 분의 수많은 팬들이 1부에서부터 기다리다가 김준일은 어디가고 이상한 놈이 나와서 자꾸 떠드냐며 항의하다가 나가버린다는 이유로, 김민하는 2부에 나오는 게 좋겠다는 그런 취지에서 1부 2부의 순서를 바꿔 이제부터는 1부에 김준일님이 나오는 걸로 하겠다는 모양(저의 피해망상이 아니고 직접 들은 말임)이다. 어쨌든 그러고 나서 1, 2부에 김민하가 모두 나오는 주도 있단다 라는 취지에서 ‘월간 김민하’를 하자더니(제가 하자고 한 것은 전혀 아님) 실제로 레디 액션~ 들어가니 한 자리에 4명씩 앉아있는 올스타전 같은 구성으로…
여튼 여기서 비대위원장님과 두 진행자가 전화 연결을 하면서 나에게 진보가 왜 망했느냐 묻기에 나름대로 생각한 바를 말씀드렸다. 과거에는 1) 양당은 무능하고 부패했으니 유능하고 깨끗한 제3세력을 지지해주쇼, 2) 없는 놈들은 없는 놈들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해주쇼 이 논리로 먹고 살았는데 여러 정치환경의 변화와 자폭으로 더 이상 진보정치가 둘 다 자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비대위원장님이 나름의 방어논리가 작동하였는지 덧붙였는데, 님 말도 다 맞지만 전세계 진보세력이 다 어렵다며 선거법을 바꿔야 한다는 게 아닌가.
엊그제 마주친 비대위원장님은 ‘일본사회당의 흥망성쇠에 대한 책을 쓰신 김민하 평론가’라고 나를 지칭하였는데 그런 책을 쓴 일은 없고… 저는 저쪽이 싫은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 일본 정치 얘기를 한 챕터 썼을 뿐이다. 거기서도 일본사회당 얘기는 거의 없고 대개는 자민당 얘기…
아무튼 그 책에서 선거제도를 둘러싼 소동에 대한 얘기도 좀 다뤘는데, 핵심은 늘 말씀드린 그런 얘기다. 선거제도 개혁을 지지하는 국민이 다수인데 더블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선거제도 개혁을 뻥 걷어 찼을 때 왜 아무도 그것을 응징하고 심판하지 않았는가? 그게 보여주는 바는 뭔가? 선거제도 개혁 담론은 지금의 국힘을 반대하는 반-기득권 담론의 하위 담론이었을 따름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해도 아무런 타격이 없지. 그렇기 때문에 결산이 그랬다는 거다. 진보정치가 원내 전략으로 주고 받기를 통해 뭔가를 쟁취했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는 게 다 드러난 거 아닌가.
오늘도 이제… 한국일보의 이런 기사가 더블민주당 내의 셈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 또 진보 출신 최선생님 등장하시고…
26일 복수의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당내에선 민주당이 병립형을 포기했을 경우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비례대표 의석수 격차가 최소 20석에서 최대 35석에 이를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보고서가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
해당 보고서를 본 중진의원은 “결국 연동형으로 갈 경우 원내 1당을 잃어버린다는 얘기”라며 “당론을 포기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 역시 “당 지도부가 논의한다는 것은 당연히 그런 자료를 본다는 뜻”이라며 “연동형 유지 시 민주당에 이득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병립형으로 가고 권역별 넣고 일부 연동형인척 하는 색깔 좀 칠하고 이러면 과연 어마어마한 역풍이 불고 그럴까? 아니겠지. 그래서, 제가 지난주 방송에서 말씀드리길, 선거법 개정하면 우리 진보들이 어마어마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아니고, 진보가 어마어마한 일을 했는데 선거법을 개정하면 훨씬 더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럼 저한테 그러시겠지? 지금 우리의 현실을 모른다…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느냐… 제가요? 진보신당 얘기 할까요? 그때 노대표님 심대표님이랑 단식한다고 건강도 안 좋은데 단식장에다가 옷가지랑 몇 가지 물품을 비서실장이 공금으로 사서 넣었다가 감사에서 이걸 인정하느니 마느니 갖고 입씨름 하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저도 답답하고 슬퍼서 하는 얘깁니다. 그럼 뭐 제가 어떡합니까. 방송도 다 짤려서 갈데도 없는데. 팬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