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와 정치 윤리
어떤 훌륭한 분이 물었다.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맞느냐? 짧게 답을 했다. 사과 두 글자가 문제라기 보다는 권력이 법적 책임만 거론하니 그 이상의 것을 책임지라는 취지 아니겠느냐. 그러면서 그 얘기도 했다. 권력이 법적 책임만 말하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실제로 정책적 실패나 정치적 문제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는 처지에 놓여왔기 때문이다… 섬세한 구분은 아니지만 그냥 크게 나누기로는 1997년 위기부터 관료들 사이에 그런 공포가 커지지 않았나 한다. 가깝게는 국정농단을 봐도 그렇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책을 쓰면서 했던 생각이기도 한데, 이런 거다. 그러니까 책의 표현을 빌자면 반기득권 투쟁의 일환으로 우리는 늘 법적 책임을 지라든지, 법을 만들라든지, 바꾸라든지 그런 요구를 해왔는데 그게 이뤄지고 나서 문제가 시원하게 해소된 일이 있던가? 선거법이 그렇고 중대재해법이 그렇고… 합법투쟁은 무용하고 혁명으로 가야 한다 그런 우스개를 하려는 건 아니다. 성에 안차는 법 개정이더라도 그게 다 우리 인생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다. 그런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냐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기득권의 “법적으로 책임질 일 없다”는 기술적 항변은 반기득권의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와 한쌍이라는 것이다. 반면 반기득권의 “사과하라!”는 요구는 기득권의 “도의적 사과는 할 수 있지만 책임질 일은 없다”는 답변과 한 쌍이다. 기득권의 기만과 파렴치는 제쳐두고 포인트를 반기득권에 맞춰 보면, 우리는 기득권의 도의적 사과, 법적 책임 모두에 만족하지 않는 것이다. 이걸 도식화하면 당연히 우리의 요구는 모순일 수 있다. 하지만 양쪽 모두에 포함되지는 않으면서 동시에 양쪽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을 상정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그게 말하자면 윤리라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그걸 뭐라고 표현하든 윤리적 책임의 영역에 있다. 그러니까 이 참사에 대해서도 그 내용과 정도가 어떻든 권력이 정치적 영역에서 윤리적으로 책임을 지라는 거다.
이제 장을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오면 윤리와 부딪치는 것은 이해관계이다. 그 중에서도 민주주의가 보편화됐다고 스스로 믿는 세상에 사는 우리가 직면하는 것은 윤리와 정파적 이해관계의 갈등이다. 정파적 이득 추구가 윤리를 압도하는 것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보고 있다. 가령 절대로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는 역설적인 참사의 정치적 이용 사례는 어떤가? 국가 애도 기간은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참사를 탈정치화하는 방식으로 정권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복속시킨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조처였다. 법적 책임을 거론하는 것의 이면에서 우리가 결국 찾아내는 것도 여론을 정파적 이해관계로서 다루는 통치의 기술이다.
이게 권력의 말하자면 눈가리고 아웅 식의 위선이라면 그 건너편에는 노골적인 뻔뻔함을 앞세운 정치 세력의 만행이 자리잡고 있다. 무책임한 음모론을 생산해내며 상대를 악마화하고, 그걸 근거로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그러니까 서로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던가 하면서 동시에 얼마든지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뻔한 정치 기술의 향연이다. 이것은 정파를 가리지 않는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것은 정파적 이득의 추구를 위해 윤리가 어디까지 짓밟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심지어 그러한 음모론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사람들의 흔적에는 어떤 즐거움 같은 게 묻어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과거에 신념윤리 책임윤리 이런 얘기를 속류적으로 하는 걸 보면, 질러 놓고 반발은 무시하고 가는 게 책임윤리라는 식의 표현을 보게 되는 일이 많았다. 어떤 정치적 문제에 있어서 윤리는 정파적 이득 추구와 반드시 대립하지 않는다. 책임을 지기 위하여 정파적 이득을 극한까지 추구해야 되는 일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것 역시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볼 때에는 윤리와 정파적 이득이 충돌하는 그 순간에 정파적 이득을 포기하는 것이 어떤 뭐랄까 책임윤리 그런 거다. 그리고 참사에 대해서, 더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가 무언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 역시 그러한 윤리적 책임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매료됐던 어떤 장면들, 민주당 지지자라면 바보 노무현이랄지 뭐 그런 것들… 운동권들이라면 우리 스스로 기억하는 그 숱한 수많은 사람들의 그러한 영웅적 순간들… 전태일 열사… 이런 것들… 어떤 포기-페티시가 아니다. 사건의 그 순간에 우리 각자는 어떤 윤리를 본 것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뭐 그러한 생각… 이것 저것 생각을 했다는 그러한 기록이었다.